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7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73화(573/589)
573 : 외전 새 시대, 새 먹거리(3)
“그러니 지금 같은 경우 오히려 소련으로의 재정 차관을 늘리는 것도 생각해 볼법합니다.”
“어려울 때 돕고 나중에 더 큰 보답을 받겠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미국이 볼 땐 조금 껄끄러울 것 같기도 합니다.”
DJ는 대통령답게 미소 양국 정계를 모두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미국이야 한소 경협을 지속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여길 테고, 일본도 대한민국이 수렁에 빠졌다고 여길 테니 말입니다.”
“그렇군요! 겉으로 보기엔 우리 대한민국이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상황 같겠군요.”
“그렇습니다. 급격히 성장하는 한국에 대해 견제 심리가 작동해서라도 가만히 두고 볼 겁니다.”
견제심리마저 국익에 이용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다. 필요하면 개도국이니, 약소국이니 하는 코스프레도 해야 한다.
“소련의 위기가 우리에겐 큰 기회군요. 자칫하면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겠고요. 조심히 다뤄야 하는 사안임은 분명합니다.”
“미운털이 박혀도 그때 뿐이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이야 아무리 국방력이 강해지고 GDP가 높아져 봐야 딱히 주변 강대국엔 위협이 되질 않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유사시에는 자기편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한미 동맹을 누구보다도 강조하는 우 회장님이 할 말은 아닐 것 같군요.”
“한미 동맹이 아무리 중요한들 국익보다 더 중요하겠습니까? 다 우리가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록펠러의 사위이자 뼛속까지 미국 통이라고 불리는 내가 이런 소릴 하니 DJ는 웃다가 말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차기 대선 후보에게도 한소 경협의 중요성에 대해선 깊이 얘기를 해줘야겠군요. 물론, 우 회장님을 통해서 탱크든 전투기든 전략 자산을 들여오는 게 좋을 것 같고 말입니다.”
“전투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만…”
소련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최신 전투기를 주진 않겠지. 대한민국이 전투기를 역설계하길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소련을 지렛대 삼아 미국 항공사의 라이선스를 얻어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게 훨씬 낫다.
21세기 대한민국이 너무나도 잘하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이 양반이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천명해서 일이 그리 됐…
아, 이런 곳에서도 나비 효과가 있군.
딱히 우려할 일은 아니었다.
이 양반도 정치적 후계자를 만들 테고, 내가 적당한 때에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대해 적극 나설 계기를 만들어주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허허, 역시 소련의 전략자산 도입에 관여할 생각이셨군요.”
“도울 수만 있다면 도와야지요. 기업이든 국가든 전략 기술 확보는 매우 중요하지 않습니까.”
“국민 기업의 총수다운 말씀입니다. 역시… 회장님껜 부탁 말씀을 좀 드려야겠군요.”
“부탁이라니, 대통령님께서 어찌…”
DJ는 절대 내게 부탁 같은 걸 하지 않았다.
한소 경협이든 국제 유가 문제든, 정부 차원에서 논의할 바가 있으면 꼭 담당 장·차관을 앉혀두고 협상하듯 대화를 했었다.
나는 그런 협상을 할 때마다 적당한 선에서 내 몫과 정부 몫을 분리했고 말이다.
DJ도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들릴까 극히 경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시다시피 제 임기가 얼마 안 남았지 않습니까. 저 또한 정치인이기에 이 정권이 계승되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설마 저더러 여당 후보에 대해 지지 선언이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나는 상당히 불쾌했다.
아무리 내가 국정 과제에 준하는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했다고 해도 한쪽 대선 후보를 지지하라고 하다니. 박 대통령 때도 안 했던 일이다.
내가 10여 년 전 YS든 DJ든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두 양반에게 동전 던지기를 제안했던 걸 벌써 잊었나?
“아아, 우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내가 굳이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90년대는 국가적으로 워낙 중요한 시기라 그러는 겁니다.”
“정부의 전략이 온전히 계승되어야 한다… 그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동구권이 무너지고 소련도 흔들거릴 때 차기 대통령이 현 정부가 펼쳤던 전략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제대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다시 안 올 기회이지 않습니까?”
나는 DJ에게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한들 솔직히 정부가 대세의 뒷다리만 잡지 않아도 될 일이다.
YS의 문민정부를 기점으로 관치 금융과 관치 경제 기조가 희미해지고, 민간 중심의 경제 체제가 확립되면서 경제 전략의 무게 중심이 확실히 재계로 옮겨갔다.
게다가 로테나 한부 같은 양아치 기업도 일찌감치 정리를 해뒀기에 재계 자체도 기반이 탄탄한 편이다.
물론, 1호 영업사원의 영향을 절대 무시할 수는 없기에 서로 도우면 시너지가 배가 되겠지.
“다시 안 올 기회인 것 맞습니다만, 딱히 걱정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중진국 중에서도 탑 티어고 사업 계획부터 수행 전략까지 민간 체제로 많이 넘어온 편입니다. 게다가 한소 경험이 유지가 되는 한 물가 상승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특정 후보를 지지할 생각이 없다는 한 문장을 에둘러 말했다.
“역시 정치적 행보는 부담되시나 보군요. 무리한 걸 알고 한 부탁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십시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실은 저도 대통령님께서 3년 정도만 더 자리를 유지하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내 말에 DJ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정책의 일관성 면에서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뭐, 여당 후보가 당선되면 큰 걱정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허허, 지지 선언은 힘들어도 내심 여당이 집권하길 바라신다는 말씀이군요.”
“현재 경제 기조가 쭉 이어졌으면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나 당연시 되지, 솔직히 연간 15%나 성장하는 게 쉬운 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같은 성장률이 10년 정도만 유지되어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게 꿈은 아닐 테니까요.”
“회장님께서 대통령 연임제를 지지할 줄은 몰랐습니다. 차기 여당 대통령 후보의 주된 공약이 미국과 같은 대통령 중임제인데 말입니다. 실은 그 공약이 꼭 필요한데 국민들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워 노파심에 우 회장님의 지지 선언을 부탁드린 겁니다.”
뭐지? DJ가 대통령 중임제를 원한다고?
독재 타파를 부르짖었던 자신은 중임제를 내세울 순 없었지만, 차기 대통령 후보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하긴 YS와 DJ를 거치며 독재의 망령은 사라졌으니 중임제를 해볼 만도 하지.
“굳이 저의 지지 선언이 필요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임기 내내 경제성장률 15%에다가,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물가도 극단적으로 안정적이니 야당의 정권 교체론이 먹혀들 리가 없을 겁니다. 자신 있게 밀어붙이시지요.”
나는 정중하지만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내 말은 진심이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3저 호황을 기점으로 중산층이 엄청나게 두터워졌다.
그들이 이끄는 내수 소비와 수출 실적이 동반 상승효과를 내면서 대한민국은 이상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다.
심지어 그런 고속 성장에 따른 반대급부로 농어촌이 소외당하는 부작용이 생길 법도 하지만, 한소 경협을 통한 수익의 상당 부분을 농어촌 현대화에 쓰고 있기에 더욱 이상적이었다.
가히 나라 전체가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국민들도 이 기조를 유지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휴우, 정치권을 그리 믿어주시니 감동이군요. 허나, 차기 대통령 후보는 열정 대비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걱정이… 아니, 걱정 반 설렘 반이라고 해야겠지요.”
DJ는 잠시 눈을 감더니 혼잣말처럼 답했다.
그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YS든 DJ든 걸어온 정치 여정을 보면, 이미 준비된 대통령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차기 대통령부턴 그런 인물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직 대한민국의 정계는 저급한 이전투구가 일상인 곳이라, 차기 대통령이 정치적 공세에 흔들리지 않고 국운 상승의 기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리라.
“제가 지지 선언을 할 수는 없지만, 차기 대통령님이 취임하시면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외람되지만, 그리 걱정하시는 차기 후보는 대체 누구신지요?”
“아직 당내 경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밝히기는 어렵군요. 하지만, YS와 저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인물은 있습니다. 이제 다가올 90년대는 젊은 40대 대통령이 이끌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말 그대로 첨단 시대 아닙니까?”
“누굴 말씀하시는지 대충 감이 오는군요. 너무나도 기대가 됩니다만, 그래도 공개 지지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시 그분인가? 했더니 역시나군.
YS도 물밑에서 지지했다는 뉘앙스인 걸 보니, 오래 전부터 지켜봐 왔다는 거로군.
원래 역사에서도 정치권은 물론이고 전국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밀어붙인 양반이니, 경제 전략에서도 나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 양반이 격동의 90년대를 커버한다면, 정말이지 최고의 선택이 될 것 같았다.
“허허, 그래요. 솔직히 우 회장님이 지지 선언을 해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찔러보지도 않을 순 없었으니,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역시 대통령님다운 말씀입니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비어버린 그의 찻잔을 채웠다.
“그리 말씀하시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군요. 그래요, 이미 탈당도 한 마당에 선거 운동을 할 것도 아니고 한소 경협이나 챙겨야겠습니다. 최대한 재정 차관을 지원하면 되는 거겠지요? 우 회장님이 열배, 백배로 대가를 챙겨올 테니 말입니다.”
“대신 욕을 좀 들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소련의 압박에 굴복해 혈세를 갖다 바쳤다고 야당에서 정치 공세를 해댈 것은 당연했다.
“그야 제 특기 아닙니까? 하하하.”
역시 정치 9단 다운 대답이었다.
흔쾌히 정치 공세도 받아넘기겠단다.
그 뒤론 우린 정치 얘기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정계 은퇴하시면 뭐할 거냐부터 시답잖은 개인적인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1989년 늦가을의 하루가 그리 흘렀다.
***
며칠 뒤,
「서독, 사실상 동독 흡수통일 절차에 돌입」
「독일통일, 남북통일의 모델이 될 수 있나?」
「동독 붕괴, 동구권 도미노 효과 촉발」
「정부, 한소 경협 기조는 변함 없을 것」
언론은 독일의 통일을 보고 남북통일도 가능한 것 아니냐며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독일통일은 남북통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동독 붕괴를 기점으로 소련 해체는 가속화되었고, 결국 러시아가 소련을 이어받으면서도 사실상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되거든.
중국의 개혁 개방을 지켜보던 북한이 소련의 패망을 보고는 완전히 문을 걸어 잠갔다.
김씨 일가 입장에서야 북한 인민의 삶보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백만배는 더 중요하니까.
물론 기업가 입장에서 북한을 통한 파이프라인으로 시베리아의 풍요로운 천연가스를 값싸게 들여오고 싶지만, 북한의 김씨 일가는 절대 믿을만한 놈들이 아니다.
“이것만큼은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지.”
“예, 회장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
“아, 예. 그러셨군요.”
빌 베인이 정리해준 각 언론의 머리기사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빌 베인은 내 입에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자 깜짝 놀랐던 모양이다.
“SMR이나 하이브리드 프로젝트 건은 각종 보고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 외 내가 따로 챙겨야 할 일이 있습니까?”
나는 빌 베인이 내민 두툼한 계열사 사업 보고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구두보고를 먼저 듣고 서면 보고를 챙겨보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빌 베인은 그룹 전체를 꼼꼼히 챙기는 말 그대로 살림꾼이다.
“그룹 전체의 누적 매출 실적과 앞으로의 예상 실적도 모두 양호합니다. 그런데, 약간의 변수가 생겼습니다.”
“약간의 변수라니, 어디에서 말입니까?”
변수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지.
그 변수가 위기 상황을 만들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 경영진이 해야 하는 일이다.
“대세석유화학에서 변수가 생겼습니다. 이란에서 수입하던 콘덴세이트(초경질유)에 대해서 미국이 경제제재 항목으로 지정할 예정이란 정보가 있습니다.”
“… 그래요?”
솔직히 놀랐다.
올해 여름 뀌년에서 5인방이 모여 얘기할 때도 그런 조짐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아니지, DJ와 면담을 했을 때도 이런 말은 없었다. 미국 정계에서 전격적으로 발표… 아니지, 이 정도 사안이면 미국 대통령이 직접 명령했다고 봐야 하는 수준이었다.
설마… 그래서 장인어른이 그리 급하게 한국으로 날아온다고 하셨던가?
부쩍 유진이와 수진이를 찾으시기에 두 녀석이 눈에 밟히시나 했는데.
근데 뭔가 좀 이상하다.
조지 부시 대통령… 아니, 부시 집안 자체가 석유 재벌이기에 장인어른과도 무척 가까운데.
그래서 장인이 선거 자금 모금을 주도했을 정도다. 그런 양반이 이렇게 뒤통수를 친다고?
내가 록펠러 가문의 사위인데?
“한국과 이란은 미국의 이란산 원유의 수출 제재로 콘덴세이트에 한해 연간 1200만 배럴로 수입을 제한하기로 한 바가 있습니다. 헌데, 이 협정을 미국 상공부가 불법 우회 수입으로 간주하고 내년 6월 이후로 중지할 거라는 게 주된 요지입니다.”
“생각해둔 대응 방안은 있습니까?”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 금지는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대응하고자 합니다. 다만, 미 정부가 굳이 이 문제를 도마 위에 올리려는 현 상황에서 먹혀들지 의문입니다.”
빌 베인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콘덴세이트는 원유를 정제하여 얻은 부산물이기에, 수출 금지 품목인 이란산 원유와는 별개의 물품으로 간주해 왔었다.
누구 들어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논리이긴 했지만, 장인이 미 정계에 로비를 해서 얻어낸 일종의 특혜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받은 특혜에 칼을 휘두른다?
나에겐 상당히 아픈 칼이었다.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나프타 추출률이 80% 가량이나 되는 양질의 유종이거든.
내가 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등등 온갖 석유화학 제품을 싸고 품질 좋게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