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6화(6/589)
< 006 : 공장과 사무실 >
“내가 당신들 밀린 월급 정산해주고, 공장 인수하면 원단 뽑을 수 있습니까?”
“헉! 다른 공장 사장님이신가요?”
“아까 말한 대로 원단 수출업자입니다. 여하튼, 중요한 건 여기 공장을 돌릴 수 있나 없나 하는 겁니다. 이전 사장이 설비부품마저 빼돌렸으면 말짱 꽝이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희들이 얼마나 부지런한데요. 설비에 기름칠 몇 번하고 손 좀 보면 당장이라도 짱짱하게 공장 돌릴 수 있습니다.”
청년들은 자신 만만했다.
다행이 이전 사장이 설비를 빼돌릴 새는 없었던 모양이다. 야반도주라도 했나본데?
“이보슈! 공장을 인수하다니. 경매에 나온 공장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경매꾼이 대화를 듣다 말고 소리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헐값에 공장을 낙찰 받으려고 은행원과 경찰까지 끌고 온 것이다.
방해되는 직원들만 쫓아내면 기계 값이며 땅값이며 후려칠 심사로 말이지.
“이봐, 수출 역군한테 이 놈 저 놈 하면 높으신 영감들이 가만 안 있어. 그렇지 않아요, 경찰관님?”
나는 여권을 휙휙 보여주며 북쪽을 가리켰다.
이때는 여권을 가지고 해외에 나갔다 왔다는 것은 신원이 확실하며 재력도 있다는 뜻이었다.
나야 전 재산을 몰빵해서… 아니, 이 육체의 전 주인은 유학을 위해 여권을 마련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청와대 쪽을 가리키며 여권을 휘두르면 60년대 한국인이면 백이면 백 쫄게 되어 있었다.
수출 역군이란 단어도 ‘나 빽 좀 있다’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허헉. 그… 그렇죠. 높으신 분들이 가만있을 리 없지요.”
경찰관은 내 여권에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눈치 빠른 양반이었다.
“빽… 빽 있다 이거야? 빽이라면 나도 있어.”
“그럼 데려오시던지. 이봐요, 은행직원이죠? 여기 공장 채무가 얼마에요?”
나는 경매꾼은 무시하고 은행직원에게 물었다.
“전체 채무를 합치면, 2천만 원 정도 됩니다.”
“2천만 원? 뭔 그 정도로…”
2억도 아니고 꼴랑 2천만 원에 이렇게 과격하게 싸운다고?
아니지, 21세기 기준으론 대충 곱하기 100 하면 되니까… 20억? 헉! 큰돈이네.
60년대 물가에 익숙해지려면 꽤 걸릴 것 같았다.
실시간으로 곱하기 100을 하는 게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어느 순간 은행원이 국밥을 내려놓고는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내가 순간적으로나마 ‘고작 2천만 원 때문에 이렇게 싸워?’하는 표정을 지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돈 가치를 깨닫고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착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2천만 원 정도면 경매보다 새 주인을 찾는 게 낫지 않겠어요? 경매에서 유찰 몇 번 되면 은행도 이자는커녕 본전도 못 건질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이봐요. 말이 틀리잖소. 오늘 중으로 은행에서 차압딱지 붙이고 공장을 경매에 붙이… 웁…”
“가만있어! 높으신 분이 말씀하시잖아.”
경찰관이 경매꾼의 입을 막고 어디론가 끌고 가버렸다.
경찰관은 괜히 자리를 지키다 높으신 양반들로부터 불똥이라도 튀면 어쩌나 했을 것이다.
그는 은행원마저 공손한 자세를 하는 걸 보고 내게 빽이 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60년대에는 빽이 있을지도 모르는 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은 결코 현명한 짓이 아니었다.
“어디 은행이에요? 이 공장 인수하는 거 협의할 사람을 보낼 테니까.”
삼복이 녀석을 보내면 될 거다.
똘똘하게 돈 계산을 잘 하는 녀석이니까, 나보다 협상을 잘할 거다.
“조홍은행 고여신 과장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세실업 우찬수 사장이에요. 잠시 일보러 나왔던 터라 명함을 안 챙겼군요. 조만간 은행장님 뵈러 한번 들를게요. 그때 같이 봅시다.”
“예, 우 사장님. 절 찾아주시면 영광입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한 것 같지만, 나는 은행원으로부터 이 공장의 채무가 2천만 원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공장 인수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었다.
은퇴한 OB들이 떠들어대길, 60년대에 공장인수는 전셋집 얻는 것이랑 비슷했다고 했다.
이 공장 빚이 2천만 원이라면, 대충 5백만 원을 보증금으로 공탁하고 매달 30만 원 정도를 은행에 이자로 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것도 일반 대출금리인 25%를 적용해서 그런 거고, 수출업체로 등록해서 금리 우대를 받으면 이자를 더 작게 내도 될 것이다.
“가면서 차비해요. 차압 서류는 더 이상 필요 없으니, 찢어버립시다.”
“헉!”
나는 은행원이 쥐고 있던 차압 서류를 찢어버렸다. 경매꾼들이 일을 뒤집으려고 해도 차압 서류를 다시 마련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그 전에 내가 이 공장을 인수하면 그뿐이었다.
나는 은행원에게 오백 원짜리 지폐를 쥐어주고 골목 밖으로 밀어냈다.
은행원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람을 보내 공장을 인수한다고 했으니, 일단 기다리긴 할 거다.
유찰될 게 뻔한 경매 건에서 매입자를 찾아온 격이니, 일이 성사만 되면 인사고과에 크게 도움 이 될 테니까.
***
철컹. 철컹.
나는 절단기를 가져와서 청년들이 감고 있던 쇠사슬부터 끊었다.
벌겋게 녹슨 쇠사슬이라 피부에 쇳독이 올라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으이그, 얼마나 견딘 겁니까?”
“사흘 쯤 된 것 같습니다.”
“참나, 큰일 날 뻔 했네.”
날 만난 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 하루만 더 지났어도 생채기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공장부터 보고 받든지 말든지 할게요.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예, 사장님.”
청년 세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 앞으로 훅하니 나서서 공장 문을 열었다.
공장안엔 먼지만 수북이 쌓였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깨끗했다.
“생각보다 깨끗하군요.”
“예, 매일 청소를 했습니다.”
“먹고 자는 곳은 깨끗해야 한다고 부모님이 그러셨습니다.”
“응? 여기서 먹고 잤어요?”
“예, 저희들은 모두 마산 공고출신인데 서울 오자마자 이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숙식 제공을 한다는 말에… 속아서 말이죠.”
셋은 마산공고 동기였던 모양이다.
기름투성이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자세히 보니 앳된 얼굴이었다. 갓 20살쯤 됐나 싶었다.
“고향으로 안내려가고 잘 버텼네.”
“……”
“그 선택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요. 그럼, 설비부터 돌려볼까요?”
“예, 사장님.”
설비 기사들답게 손동작이 거침없었다.
빈껍데기 실타래를 걸고, 이곳저곳에 윤활유를 칠하고 서로 눈빛만으로 제직기(직물 짜는 기계) 헤더를 열고 덮기를 반복했다.
레버를 잡아당기자 윙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신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실타래에 원사가 감겨 있었다면 원단이 척척 뽑혀져 나왔을 것이다.
위위이이잉…
“왜 멈추죠?”
“원사가 걸리지 않으면 자동으로 멈춥니다.”
“아, 그렇군요.”
60년대 제직기도 나름 자동 기능이 있었구나.
하긴 실이 끊어지거나 없으면 기계가 멈춰야지, 계속 돌아가면 불량원단만 계속 뽑는 꼴이니까.
“이런 설비가 9대는 더 있다는 거죠?”
“예… 더 보시겠습니까?”
“아뇨, 공회전 시키면 기계나 상할 뿐이죠. 정상 가동시키려면 필요한 게 뭐가 있나요?”
“일단 끊긴 수도와 전기부터 연결해야 합니다.”
“전기가 끊겼어요? 그럼, 방금 기계는 어찌 돌렸어요?”
“비상용 발전기로 돌렸습니다. 이 동네는 정전이 잦아서 비상용 발전기가 필수입니다.”
비상용 발전기도 있고 나름 갖출 건 다 갖췄네.
“수도나 전기는 쉬운 일이죠. 그것뿐이에요?”
그것뿐 일 리 없다.
공장을 정상적으로 돌릴 수 있었다면 사장이 왜 야반도주를 했겠나?
60년대는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때다.
구매력이 높았다는 뜻이 아니라, 무슨 물건이든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인플레가 연 16%를 넘던 때다.
즉, 물건을 만들어 쌓아놓기만 해도 가격이 올라가는 이상한 나라였다는 뜻이다.
“솔직히 설비 중에 성한 놈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모터를 바꿔 끼워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 놈이 물주들한테 보여준다고, 허접 중고 장비를 마구 들여놓는 바람에…”
물주에게 보여줬다고?
어쩐지 공장 크기대비 설비 대수가 많더라니.
전 사장은 공장 운영보다는, 중고 설비 가져다가 은행 대출 잔뜩 당겨서 한방을 노렸던 것이다.
십중팔구 사채놀이나 주식 도박을 했겠지.
60년대에는 사채 금리가 연 50%나 되던 때였고, 주식 시장은 폭탄 돌리기 노름판에 가까웠으니까.
그러고 보니 주가가 반 토막도 아니고 80%나 날아간 증권파동이 이때쯤 일어났지?
주식 파동으로 대한민국 주식 시장은 1965년 전후 3년 동안 단 한 건의 기업공개(IPO)도 없을 정도로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지.
한마디로 금융 시장 자체가 개판이었다.
“부족한 게 모터뿐이에요?”
“… 편향 롤러와 핸드 휠을 몽땅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합니다. 지금 있는 게 거의 마모되어서 이대로 가동시키면 십중팔구 원단 찢어집니다.”
솔직하네. 믿을 만한 이들이었다.
“더 필요한 부품은 없고요?”
“… 각종 베어링, 헤더 핀, 공구같은 소모 부품도 없습니다. 사장 놈이 원단이며 소모품을 모두 싣고 도망치는 바람에… 제길…”
그럼 그렇지.
야반도주하는 놈이 돈 되는 것을 두고 갔을 리가 있나. 그 와중에 이들이 공장에서 숙식하고 있었기에 설비는 빼돌리지 못한 것 같았다.
시중에 사기꾼이 넘쳐나던 때라 도망친 사장은 빼돌린 물건 처리하고, 공장이 경매 처리되고 빚잔치가 끝나면 슬슬 세상 밖으로 기어 나올 거다.
예전의 죗값을 치르겠네 어쩌네 하면서 1년쯤 옥살이 치르고 나오면 빼돌린 돈은 목돈이 되어 있고, 또다시 한탕 하러 회사를 세울 거다.
그런 놈은 죄책감도 없으리라.
스스로 사기꾼이 아니라 사업가라고 여기겠지.
21세기 대한민국이 사기 공화국이 된 게 60년대의 솜방망이 법이 고쳐지지 않은 탓이 크다.
여하튼 소모 부품까지 얘기가 나왔으면, 얼추 문제점은 다 나온 모양이다.
“모터, 롤러, 휠에다 소모성 부품까지 대충 계산하면 얼마쯤 들겠어요?”
“… 적어도 백만 원은 들 겁니다.”
백만 원이라면 내 기준으로 1억 수준이다.
작은 돈은 아니네.
그렇다고 공장을 정상화시키는 비용이라고 하기엔 그다지 큰돈도 아니었다.
“뭐, 감당할 수준이네. 좋아요… 어째, 나랑 돈 좀 벌어보겠어요?”
나는 척하니 악수부터 청했다.
이들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밀린 월급을 받아내겠다는 각오가 우선이었겠지만, 어쨌든 공장을 지켰고, 이렇게 청소도 꾸준히 했던 걸 보면 이곳에 애착을 가진 이들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책임감 있는 직원들은 보물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건설과 플랜트 중공업에 특화된 내가 섬유 기술을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나?
60년대 엔지니어라고 해도 나보다는 경험치가 나을 것이다.
물론, 이들도 나처럼 정상적인 사장이 필요할 테고 말이다.
“허헉, 저희를 뽑아 주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뭐든 시켜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순진한 이들이었다.
21세기 직장인이라면 밀린 월급부터 정산 받고 근로 계약서도 확인한 뒤에 악수를 했을 텐데.
역시 낭만 시대다.
“다시 소개하죠. 난 대세 실업 우찬수입니다.”
“저는 김성구 반장입니다.”
“저는 박용구 반장입니다.”
“저는 이동구 반장이라고 합니다.”
각자 반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성은 각기 달랐지만 이름이 묘하게 비슷했다.
우습게도 성구, 용구, 동구라니… 마치 60년대 국어책에서 나올법한 남자애들 이름이었다.
아, 지금 60년대지. 흔한 이름이긴 하네.
“좋아요, 구 반장들. 공장 인수하려면 며칠 걸릴 거니까, 그때까지 공장 정리 좀 해줘요. 필요 부품은 미리 견적 받아 두고요. 잘 할 수 있죠?”
“알겠습니다. 사장님.”
“밀린 월급은 인수할 때 정산해줄게요. 얼마죠?”
공장 인수를 하려면 밀린 월급부터 정산해줘야 한다. 인수 완료는 기존 채무를 해결한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예. 각자 42,300원입니다.”
“그래요? 야근 많이 했나보네요.”
삼복이 월급이 대충 3만 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때 기능공들이 생각보다 많이 받았네.
하긴, 야근하면 1.5배를 버니까…
“예, 석 달 내내 야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6일 휴일 중에 3일은 반납했고요.”
“… 석달 연속? 휴일 반납까지?”
나는 깜짝 놀랐다.
42,300원이 석 달 치 월급이었다고?
야근까지 했음에도 월급이 15000원도 안 됐다는 소리잖아.
심지어 석 달 동안 고작 3일만 쉬었다고?
이전 사장 놈, 완전 양아치 새끼였네.
시골에서 갓 상경한 이들을 세상 물정 모른다고 미친 듯이 부려 먹은 게 분명했다.
“… 예, 석 달 치입니다.”
“한 번에 주시기가 어려우시면 나눠주셔도…”
“언제든 주시기만 하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세 명은 당황했던지 연신 허리를 굽혔다.
주기 어려운 큰돈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생활했다는 게 어이없어서 그런 건데 말이다.
“밀린 월급 정산은 당연하고, 내가 줄 월급은 다시 조정합시다. 걱정 말아요. 최소 15000원에 야근 수당도 제대로 챙겨 줄 테니까.”
“헉!”
아무리 60년대라지만 이정도 월급을 주지 못할 거면 사업하면 안 되지.
국밥이 한 그릇에 100원인데, 월급이 15000원은 되어야 삼시 세끼 해결하고 옷이라도 걸치고 다닐 거 아닌가.
“사장님, 뭐부터 하면 되나요?”
“청소하고 필요 부품부터 파악해야죠. 공고에서 기술 사양서 작성하는 거 배웠죠? 필요부품, 단가, 소요량 등등 잘 정리해줘요. 할 수 있겠어요?”
“예, 사장님!”
“믿어주세요! 잘 할 수 있습니다.”
벌써부터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월급 15000원에 고마움을 넘어 감격한 모양이다.
“그리고 주변에 일 잘하는 친구들 있으면 데려와요. 3명이서 이 공장을 다 돌리긴 힘들 테니까.”
“예, 사장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전 사장이 쓰던 장부나 서류 같은 거 있어요?”
“…. 권한 밖이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 사장이 쓰던 사무실은 이쪽입니다.”
구 브라더스 반장들이 날 2층 다락방 같은 곳으로 안내했고, 온갖 서류며 집기들이 가득찬 방이 나타났다.
“여기도 당신들이 청소한 건가요?”
“예, 전 사장이 돈 되는 건 싹 털어갔습니다. 흩어진 서류만 책상에 쌓아뒀습니다.”
천장이 낮긴 했지만 앉아서 서류 작업을 하기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기분이 좋았다.
공장도 얻고 번듯한 사무실도 생겼다.
< 006 : 공장과 사무실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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