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6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63화(63/589)
< 063 : 다 엎자 >
청와대
“임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제철소며 고속도로며 정작 중요한 인프라는 다 빠지지 않았는가?”
박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내민 보고서를 보다 말고 역정을 냈다.
댐 공사와 항만 건설이 있긴 했지만, 그 건은 일본 회사가 설계와 자재를 담당할 것이 뻔했다.
훨씬 더 절실하고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건 제철소와 고속도로였다.
“현재 외교 채널을 통해 협상 중인 안건입니다. 일본 정부로서는 보고서대로의 용도 변경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용도 변경을 하자니 말이 되는가? 국회 비준이 코앞이란 말이야.”
한일협정은 6월에 체결되어 12월에 비준 발효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용도 변경을 하겠다니, 외교적 결례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아무리 한국의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고 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협상이라니, 박 대통령으로선 실망이 컸다.
“일본 정부의 논리는 과거 수탈로 인해 피해가 컸던 농어촌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상 원조 항목에 대해선 일반 의류, 비료, 소형 선박들을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언제는 식민지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축하금이라고 하더니 자기들 유리한 대로 말을 바꿔? 협상이 애들 장난인가?”
“명목상 독립축하금이라는 명칭도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참담했다.
식민지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축하금이란 명칭을 쓴다는 것은, 지난 36년간이 한일합방이 아니라 일제의 강제 국권침탈임을 명시하지 못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일 관계는 선린관계였다’는 둥, ‘한일합방은 한국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는 둥, ‘일본은 한국의 아버지뻘’이라는 둥 온갖 망언이 가능하게 해주는 빌미가 될 것이 뻔했다.
쾅!
“그게 말이 돼! 이건 청구권이란 말이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을 줘야지, 가해자가 주고 싶은 걸 주겠다는 게 배상하는 자세냐 말이야!”
“송구합니다, 각하. 허나, 일본이 이렇게 나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3년 전 김정필 중정부장이 일본 오히라 외상과 했던 협상에서, 유무상 원조는 양국의 협의를 거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빌어먹을, 그놈의 독소 조항! 아주 지긋지긋하구만.”
박 대통령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김정필은 박 대통령의 조카사위이자 오른팔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는 일이 모두 깔끔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외교적인 일에 대해서는 늘 몇 수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김정필… 일본 통이라는 놈이…’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보단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용도 변경을 한다면 상업 차관에서는 다소 양보가 가능하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입니다. 차후에 비료 공장과 기계 공장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차후? 그게 언제가 될 줄 알고.”
박 대통령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입으로 내뱉는 말과 속내가 다른 놈들이었다.
이중적인 작태로는 따를 자가 없었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게 그들의 특기였다.
“합의에 이른다면, 소정의 통치자금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뜻도 전해왔습니다. 물론 비공식 의견입니다.”
박 대통령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 말에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바로 호통을 치지 못했다.
그도 대선을 위해 비자금이 절실했다.
비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론 해외차관 중에 일부를 빼돌리는 것이 가장 쉽고 빨랐다.
쾅!
“소정의 통치자금? …… 그딴 수작할 바에는 다 엎자고 해!!”
박 대통령은 한 박자 늦게 책상을 치며 큰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굳은 표정으로 더욱 허리를 굽혔을 뿐이었다. 이윽고 허리를 편 비서실장이 심호흡을 하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각하, 현재 국고를 들여다보자면 달러가 4500만 불에 불과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국가 경제는 파탄… 한일 협정이 벽에 부딪힌다면 단기 외채의 만기 연장이 불가능합니다.”
박 대통령도 한국 경제가 위기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원금 상환은커녕 월남 특수로 근근이 이자를 내는 수준이었다.
이 위기를 탈출할 방법은 외채 상환 시기를 최대한 뒤로 미루면서 수출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 일본이든 미국이든 원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설 것이 뻔했다.
그런 측면에서 수억 불이 걸린 한일 수교는 한국 정부로서는 사활이 걸린 경제 현안이었다.
“여태 우리가 양보한 게 몇 개야! 민간 청구권은 물론, 한일어업협정에서도 어로수역을 12해리로 줄였어. 독도의 영유권 주장마저 어렵게 되었단 말이야. 거기에 제철소랑 고속도로까지 포기하라니 말이 되냐고!”
박 대통령은 보고서를 던져버렸다.
“허나, 대규모 달러를 조성할 사업으론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여당을 움직여 국회 비준부터…”
비서실장은 말꼬리를 흐렸지만, 박 대통령은 그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쾅! 쾅! 쾅!
“결국, 돈! 돈이 문제야. 우리가 1억 불, 아니 5천만 불만 여유자금이 있었어도 이따위로 밀리지는 않았을 텐데.”
박 대통령은 책상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이런 식이면 세간에 친일파, 민족 반역자라는 소리가 나돌아도 할 말이 없었다.
“각하… 외람되지만, 대세 실업을 부르시는 건 어떨지요?”
“대세 실업? 우찬수, 그 녀석 말인가?”
“예. 그가 월남에서 들여온 원목은 물론 미군에서 불하받은 잉여 물자도 꽤 된다고 합니다. 그걸 외국에 내다 판다면 수천만 불은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럼, 잠시나마 숨통이…”
비서실장의 말에 박 대통령의 머릿속이 번쩍했다. 그래, 진해 해군 기지에서 감당 못 할 정도로 원목이 쌓여있다고 했지.
“좋아, 우 사장보고 하던 일 멈추고 잠시 들어오라고 해, 지금 당장!”
“예, 각하. 헌데, 마침 우 사장이 김포로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비서실에서는 우찬수의 동향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비어버린 달러를 벌충하기에 우찬수만한 인물이 없었다.
“녀석이 들어오고 있다고.?”
“각하께서 메콩강 작전을 적극 지원하라고 하셨지 않으셨습니까? 거기서 우 사장이 큰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뭐? 큰 성과? 1년은 족히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 작전을 벌써 끝냈다는 건가?”
“예. 그랬다고 합니다. 덕분에 한국산 군납이 늘어났고, 미군이 우리 해군에게는 LST 두 척을 양도하겠다는 의사도 밝혀왔습니다. 제반 사항을 준비하러 잠시 귀국하는 모양입니다.”
놀라웠다. 대체 어떤 성과였기에 군납 확대에 LST까지 추가로 얻어낸단 말인가?
‘대단하군, 역시 능력은 있는 놈이야. 밴 플리트가 괜히 지켜보겠다고 한 게 아니야.’
비서실장이 이런저런 말을 더 늘어놨지만, 박 대통령의 귀에는 그 말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좋아, 다 좋으니까 빨리 우찬수부터 데려와. 공항에서 바로!”
“예, 각하.”
***
김포 공항,
“우와, 아빠!!! 아빠!!!”
“어이쿠, 우리 아들. 못 본 새 많이도 컸네.”
“여보, 저는 안 보여요?”
“아이고, 난 모르는 사람인가 했네. 우리 마누라가 언제 이렇게 예뻐졌어? 크하하.”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직원들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이름을 부르고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찬수와 삼복의 마음도 같이 뭉클해졌다.
척 보기에도 다들 영양 상태며, 입은 옷이며 훨씬 나아 보였다. 다행히 살림이 나아진 모양이다.
수개월 전 부산항에서 마른버짐이 핀 얼굴로 배웅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어디에 집을 샀고, 그동안 저축은 얼마나 했으며, 애 학교 성적이 어떻고, 시골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고, 그 동안의 근황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반겨주는 사람이 없냐?”
“성수동 직원들에게 좀 잘하지 그랬냐. 밥 사준다고 하면 나왔을 텐데.”
“아서라, 지금 바빠서 숨도 못 쉴 지경일걸?”
“하, 하여튼 한국에 들어오니 좋다. 일단 떡국은 제대로 먹긴 할테니 말이야.”
삼복이와 내가 괜히 뿌듯한 마음에 농담을 주고받고 있자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우찬수 사장님.”
“어쩐 일입니까, 비서실장님이 마중까지 다 나오시고.”
내가 반가워서 나온 건 아닐 테고, 대통령이 볼 일이 있겠지. 빠르네.
“각하께서 부르십니다.”
“갑시다.”
“뭣 때문이진 묻지 않으십니까?”
“한일협상 때문이겠죠, 비준이 얼마 안 남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비서실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데자뷔인가?
“가시죠.”
“이래도 되는 겁니까. 사장님은 지금 방금 도착했다고요. 회사에도 일이 잔뜩 밀려있습니다.”
삼복이가 한마디 했지만, 비서실장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회사보다 국가가 우선입니다.”
60년대다운 말이었다.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해야 한다면서 늘 국민을 옭아맸지.
독재정권이 내세우는 최고의 무기이자 방패였다.
국민을 위하긴커녕, 국민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바라는 것들. 징글징글했다.
오늘 나는 박 대통령이 진짜 그런 인간인지, 아니면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는지 시험하러 갈 거다.
위험하지만 해야 했다.
이 정도를 두려워해서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금방 성수동으로 갈게, 먼저 가서 기다려.”
“찬수야…”
“아무 말 말고 회사 들어가. 어서.”
나는 삼복이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비서실장의 반대쪽으로 밀어냈다.
난 몰라도 삼복이는 이들에게 밉보이면 절대 안 된다. 나는 오늘 도박을 하러 가는 거다.
내 신변이 어찌 될지 나도 확신할 수 없다.
“뭐 해요. 가시죠.”
“예, 이쪽입니다.”
관용차를 타고 곧바로 청와대로 향했다
솔직히 샤워부터 하고 싶었는데, 그런 얘길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
청와대
“임자 왔는가?”
“예. 부르셨습니까?”
“오는 데 힘들진 않았고?”
“공항까지 차를 보내주셔서 편하게 왔습니다.”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하네만, 국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해. 이리 앉아.”
“감사합니다.”
박 대통령은 손수 내게 자리를 권했다.
“내가 왜 자네를 찾은 줄은 아나?”
“한일 협정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 우리 외교관들이 영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어.”
“외교관 문제가 아니라, 곳간이 비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거 아닙니까?”
내 말에 대통령이 움찔했다.
내가 너무 직접적으로 말한 걸까?
상관없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너무 직접적이라 민망하구만.”
“송구합니다.”
“아니, 자네는 원래 그랬어. 내가 이해해야지, 어쩌겠나.”
말로만 듣던 박 대통령의 장점일까?
무소불위의 권력자임에도 전문가는 인정했다던데,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내 밑에서 일하는 놈, 기라도 살려줘야지’ 하는 권력자의 아량인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제가 한일 협정에 어떤 도움이 될지요.”
“자네의 원목이 필요해. 외국에 내다 팔아 달러를 좀 벌어와야겠어.”
“원목을 그대로 내다 팔면 손해입니다. 공장부터 세우고 가공해서 파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 당장 달러가 필요해. 일본과 협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말이야.”
단호한 말투였다.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전 시간이 충분합니다. 제게 보고서를 보여주십시오. 현재 국고 상황이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우찬수 사장, 감히… 각하 앞에서.”
비서실장이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상대는 대통령이지, 비서실장이 아니었다.
“대통령님, 그걸 봐야 제가 도움이 될지 말지 알 수 있습니다.”
“임자, 뭐해. 가져다 놔.”
“가… 각하.”
“갖다 놓으래도!”
대통령이 날 두둔하니 비서실장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를 옆방으로 데려갔다.
대통령 집무실이었다.
책상에 수북하게 서류가 쌓여 있었고, 한가운데 재정 보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보고 싶은대로 봐.”
“감사합니다.”
일목요연하게 세금과 외채 상황이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보면 볼수록 정말 난감했다.
1년간 걷은 세금은 고작 1800억원에 불과했고 그중 28%가 넘는 돈을 국방비에 썼으며, 경제 개발엔 불과 16%밖에 쓰지 못했다.
심지어 무역상황은 더 개판이어서 경상수지 적자가 10억 4000만불, 즉, 2800억 원에 달했다.
한 나라의 1년 세금보다 무역적자가 크다니.
거기에 더해 2억 6800만 불에 달하는 단기 외채는 내년 3월이 만기였다.
단기 외채는 대부분 일본 자금으로 이율이 자그마치 6.5%에 달했다.
이땐 6.5%가 고금리가 아니었던 건가?
고금리든 저금리든 무역적자를 보는 와중에 이런 단기 외채를 운용하다니 정신이 나간 거다.
아니면 내가 60년대를 모르는 건가?
만기 일정을 미루기 위해서는 이율을 다만 0.1%라도 더 높여줘야 하며, 그것도 만기 3개월 전에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이 일본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수밖에 없겠네.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런 경제 상황에서 디폴트를 선언하지 않은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단기 외채가 2억 6800만 불이라니. 이리 금액이 클 줄은 몰랐는데…’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도 정도가 있다.
이러니 한국 정부가 한일협정에 그렇게 굴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
게다가 한국 정부는 정치 비자금까지 구걸했을 테니, 일본 놈들이 기고만장했겠군 싶다.
“어째, 해볼 만하겠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한일협정은 우리 목숨줄인 걸 이제는 알겠나?”
“목숨줄이라뇨, 변명이십니다.”
“변명?”
내 말에 대통령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했으면 당장 끌려갔겠군 싶다.
“우찬수!!!!”
“비서실장, 당신은 좀 나가주십시오. 대통령님과 독대를 해야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내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단박에 뿌리쳤다. 월남에서 근육이 많이 늘었다.
“이 자식이!”
“나가! 당장 나가!”
“각하!”
“당장 나가라는 소리 안들리나!”
박 대통령이 크게 소리쳤다.
“충성!”
대통령의 호통에 비서실장이 재빨리 경례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우… 찬수… 자네, 지금… 선 넘었어. 다음 말은 아주 선택을 잘해야 할 거야.”
예상한 때가 왔다. 침착해야 한다.
이 양반을 자극해야 하지만, 절대로 선을 넘어선 안 된다.
대통령의 전략이 친일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지금부터 절대 친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고 갈 테니까.
< 063 : 다 엎자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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