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64)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64화(64/589)
< 064 : 돈을 받아줄 사람 >
“저 또한 흥분해서 변명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전쟁을 앞둔 선봉장께서 싸움도 하기 전에 백기 투항부터 생각하시니 말입니다.”
“백기 투항이라니, 누군 배알도 없는 줄 알아? 싸우고 싶어도 무기가 있어야 싸우는 거야. 우리가 자원이 있나? 기술이 있나? 뭐가 있나? 아무리 더러워도 미국 놈들에게 원조를 받아야 하고, 일본 놈들에게 기술을 받아야 해.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닌가!!!”
박 대통령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데까지는 성공을 했다.
조심히 나아가자.
“그 방법이 한일 협정이란 말씀입니까?”
“보고서를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나! 우린 돈이 필요해, 돈이.”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돈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뭐라고? 돈을 받아줄 사람?”
박 대통령이 언뜻 이해가 안 가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세상의 모든 일을 혼자 다 하려면 그만큼 힘든 법이다. 어떤 일을 특히 잘하는 사람에겐 수수료를 주고서라도 그 일을 맡기는 게 현명하다.
“우리가 일본과의 협상에서 얻어 낼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받아낼 권리입니다. 실제로 돈을 받아내는 것은 미국의 변호사들이 할 겁니다.”
“미국의 변호사들?”
“당장 받아낼 필요도 없습니다. 월가에 가서 해당 권리를 채권처럼 팔고 달러를 가져오면 됩니다.”
수수료가 비싸겠지만, 그만큼 더 뜯어내라고 하면 그뿐이다.
“서… 설마, 기만전술인가?”
박 대통령은 군인답게 기만전술을 알고 있었다.
“군사적으론 기만전술이겠지만, 경제적으로는 삼각무역이라고 부릅니다. 중계 무역이라고도 하죠. 제게 맡겨주시면 미국 변호사들에게 데이터를 던져주고 우리 국민이 바라는 혈채(血債)를 톡톡히 받아내겠습니다.”
“하하하.”
대통령은 도리어 큰 소리로 웃었다.
내 아이디어가 어이없어서일까?
아니면, 맘에 든 걸까?
일분일초가 1년처럼 느껴지는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게 가능할까? 미국 정부는 우리 한국보다 일본 편을 들 가능성이 커!”
맞는 말이다.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부나 마찬가지니까.
전후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 전략을 세우면서 일본을 미국의 전진 기지로 삼고 경제적 군사적으로 적극 지지했다.
일본을 패전국이 아니라 강력한 동맹국으로 대우하는 정책을 펼치며, 아시아에서만큼은 일본이 정치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끔 뒤를 봐줬다.
한일회담이 청구권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그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이 최적기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적기?”
“한일 협정에 임하지 않으면 원조를 끊겠다고 했던 아이젠하워도 물러났고, 대통령께 통 큰 정치가가 되라는 친서까지 보내며 대놓고 일본을 두둔했던 케네디도 죽고 없습니다.”
“!!!!”
“월남전의 승리가 절실한 존슨 대통령만 있을 뿐이죠. 수십 년이 지나도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역사적인 사실이었다.
“파병이 걸려 있으니 미국 정계가 섣불리 나서지 못할 거란 거군.”
“예, 전쟁이 길어질수록 정계보다 재계가 득세하겠지요. 돈에는 국경이 없고 국적도 없습니다. 특히 달러는 말입니다.”
우리는 탐욕스러운 월가에 수수료만 후하게 주면 그뿐이다. 더욱이 이때부터 유태인이 월가에서 득세하기 시작하니 상황도 좋다.
“정말 할 수 있겠나? 그냥 한번 해 보는 소리라면, 나 가만있지 않을 거야.”
내가 할 소리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에게 무슨 허튼소리를 하나?
자칫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간 제명에 죽지도 못할 텐데.
“이 일이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다. 제 목숨을 걸 만큼 자신 있다는 뜻입니다. 대통령님과 제가 함께한다면, 이 전쟁 이길 수 있습니다. 수억 불의 외채도 갚고, 경제 발전도 하고, 민족적 자존심도 되찾을 겁니다. 우리 강산 곳곳에 박힌 쇠말뚝은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 보자고요, 이 양반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자자손손 후회해요.
나도 웬만하면 나서고 싶지 않았다고요.
나도 이 짓 안 하고 잘 먹고 잘살 수 있는데도, 이것만큼은 너무 아쉬워서 그런단 말입니다.
“……”
대통령은 나를 물끄러미 보며 침묵했다
뭘, 생각하는 걸까?
뻔히 눈앞에서 보는데도 속내를 알기 힘든 양반이었다. 이러니 몇십 년이 지나도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지.
“내가 뭘 해주면 돼?”
“배상 청구권 대신 민사 청구권이라는 단어로 대체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 생각해보지.”
응? 뭐지? 생각해본다고?
기껏 내 말에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흔쾌히 같이해보자고 말하지는 않는다.
젠장… 그건가? 비자금 때문인가?
한일협상의 대가로 6000만 불이 넘는 돈을 받았다는 CIA 보고서도 있었지.
정말 그 문제만큼은 건드리기 싫은데 말이다.
그래도 이 산을 넘어야 한다.
아직은 그 돈을 받기 전이잖아.
꽃신을 신기 전에 방향을 틀어야 한다.
한 번 신으면 죽어서야 벗을 수 있는 게 꽃신이다.
“혹시 비자금 때문에 그러십니까?”
“임자, 말조심해.”
박 대통령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강력한 부정은 긍정이기도 하다
“비자금이 왜 필요하십니까? 혈채를 톡톡히 받아내기만 해도 내후년 대선은 불 보듯 뻔하게 승리하실 텐데요.”
“임자는 정치를 몰라. 끝없이 경쟁을 시키고 당근을 흔들어야 하는 곳이 정치판이야. 결코, 깨끗할 수가 없는 곳이라고. 지옥에 가서도 온탕이 낫니 냉탕이 낫니 할 놈들이 판치는 곳이란 말이다.”
끝없이 비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이네.
그래도 뒷배가 일본 자금줄이 될 필요는 없지 않나? 국산 비자금도 돈이긴 매한가지다.
여하튼 냉탕, 온탕이라니 박 대통령의 말투가 조금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말에 가시가 있긴 하지만 농담이 섞였다.
내 말을 들어볼 용의는 있는 거다.
“그 정도 자금이라면 앞으로 문제없을 겁니다.”
“자네가 비자금을 대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전 비자금이 아니라 세금을 낼 겁니다. 여타 재벌과 달리 탈세하지 않을 테니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내겠지요. 그 돈에서 비자금을 조성하는 거야 정부의 능력이지 않겠습니까?”
“세금을 몇십 배 내겠다면, 매출은 수백 배라도 하겠다는 얘긴가?”
설마 못 믿는 건가?
월남전 군납만으로도 벌써 다른 회사 몇 배는 한 것 같은데 말이지.
수백 배 매출이야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제가 창업한 후로 1000만 불 이상을 벌었고 계약한 공사대금만 해도 2000만 불이 넘습니다. 수출할 물품을 따지면 그것의 두 배는 족히 됩니다. 그 돈을 고작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벌었는데, 능력증명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경제도 넓게 보면 정치야. 이렇게 성향이 두드러지면 온갖 놈들이 뒷다리를 잡을 텐데, 계속 잘 할 수 있겠어?”
“돈이 모이는 곳엔 온갖 사람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피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돈은 모든 힘을 압도한다.
21세기엔 돈이 없는 나라는 미사일도 못 쏜다.
“일본은 결코 만만찮아.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제가 어이없는 일을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독일은 승전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배상했고, 일본도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심지어 월남에도 수억 불씩 보상했습니다. 그것도 배상의 뜻을 밝히면서 말입니다. 유독 우리에게만 그러지 않고 있는 겁니다.”
“36년이나 수탈했으니까! 700만 명이나 강제 동원했으니까! 그 모든 걸 배상하면 일본이 흔들흔들하니까!”
“그러니까 배상이 가능한 겁니다. 미국은 일본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로지 미국을 위해 물건을 만드는 노예가 되길 바라지요. 동맹이니, 자유 수호니 다 허울입니다. 우린 명분을 제공하고,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는 겁니다. 그럼 돈이 떨어진다, 이 말씀입니다.”
“!!!!”
“첫 단추만 잘 끼우면, 시작만 잘하면… 월가는 주야장천 일본에서 돈을 뽑아 우리에게 줄 겁니다. 수수료가 짭짤한데다, 미국 정계도 잘했다고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겠지요. 해 볼 만합니다.”
일본은 조만간 G2로 올라선다.
미국으로선 ‘뭐야, 일본이 언제 이리 컸어?’ 하면서 견제 심리가 발동되기 마련이다.
나는 플라자 합의를 보고 온 21세기 인간이다.
우리의 대일 민사 청구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일 압박용으로 강력한 카드가 될 거다.
미국이 언제나 내세우는 게 인권 아닌가.
대의적 명분과 정치적 실익이 완벽하게 부합되는 흔치 않은 무기다.
“… 좋아, 어디 한 번 믿어보지. 대신 임자는 큰소리친 만큼 돈 많이 벌어야 할 거야.”
농담 같지만, 박 대통령은 진심일 것이다
내 효용 가치는 벌어오는 돈에 비례한다.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현재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미래에 벌어오는 돈은 더 많을 것이라는 암시도 줘야 한다.
그래야 폐기되지 않는다.
‘이런 살얼음판을 14년이나 걸어야 하나···.’
정말로 길다.
순간 괜히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아니라고 스스로 답했다.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돈 버는 데는 자신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가봐. 원하는 것은 비서실에 다 요청해.”
“감사합니다.”
나는 비서실은 나중에 들르기로 했다.
‘결국, 내 숙제는 내년 3월까지 2억 불이 넘는 단기 외채를 어떻게 메우냐 하는 거군. 솔직히 비서실 도움이 필요하긴 한데…’
아쉽지만, 지금 비서실장을 만나봐야 좋은 소리 듣기는 글렀다. 사나흘 뒤에 연락하면 되리라.
***
짝짝짝짝.
“사장님, 무사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몸 성히 잘 왔네, 좋군. 좋아.”
성수동 공장에서 조촐한 환영회가 열렸다.
직원들이 모여서 단팥빵을 산처럼 쌓아두고 콜라와 사이다를 한 잔씩 들고 나를 환영해 주었다.
화기애애한 상황이었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3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2억 불이 넘는 단기 외채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결국 악성 단기 외채를 장기 저금리 외채로 바꿔야 한다는 건데, IBRD든 뭐든 세계은행 계열을 끌어들여야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대한민국 국채를 다 끌어안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뭐해, 사장님이 건배사 한 번 하셔야지.”
“와아아아, 잔 들어! 잔 들어. 사장님, 건배사 하신데.”
삼복이가 내 옆구리를 툭 치며 생각을 멈추게 해줬다.
정말 바쁘긴 바쁜 모양이다.
오늘 같은 날엔 삼겹살에 소주 파티를 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내년부턴 강제로라도 여름휴가, 겨울 휴가를 보내야겠다. 올해는 설 연휴 보너스라도 두둑하게 챙겨주는 걸로 대신해야겠다.
“덕분에 월남 잘 갔다 왔습니다. 다들 많이 드시고, 부자 되십시오.”
“캬하, 내 친구 건배사가 한결같네.”
“건배!”
“건배!”
삼복이는 콜라만 마셔도 취한 것 같았다.
회사에 오니 마음이 푸근해지는 모양이다.
원래 집에 있으면 왠지 불안해서,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면 임원을 다는 거다.
“여하튼 황 영감님, 큰일 하셨습니다.”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 아니 미안해.”
“뭐가 미안하시다고 그러세요.”
“흐흐, 내가 모를 줄 아나. 청와대 간 거… 그 일 때문이지?”
“아니에요, 영감님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황 영감님은 내게 고맙다고 했다가 미안하다고 했다가 콜라 한 잔에 다시 미안하고 고맙고를 되풀이했다. 괜찮다. 내가 하고자 한 일이다.
2억 불이 넘는 단기 외채를 해결해야 할 줄은 나도 몰랐지만 말이다.
으, 다시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사장님, 저도 좀 봐주십시오.”
“하하, 황혜성 사장님, 언제 올라오신 겁니까?”
“사장님 귀국하신다는 소문에 새벽에 출발했지요. 마침 폴리우레탄 샘플도 나오니 겸사겸사해서 말입니다.”
“울산은 문제없죠?”
황 사장이 있는 한 대세 화학은 문제없을 것이다. 소규모 공장이지만 경영을 한 경험이 있고, 무엇보다 거의 망했다가 재기했기에 경비 절감은 물론,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니까 말이다.
“그럼요, 오늘 샘플을 확인하고 울산에서 폴리우레탄 원사를 언제 양산할지를 가늠해보려 합니다. 문제가 되었던 촉매 벗기는 공정도 구 반장들이 해결했다고 하더라고요.”
“오, 그래요?”
“사장님께 자랑한다고 구 반장들이 준비가 한창이던데요. 하하.”
내가 온다고 공장장을 맡은 구 반장들이 죄다 여기로 모인 모양이다.
“그래요? 어서 가서 보시죠.”
삼복이도 같이 보는 게 좋을 텐데 하며, 녀석의 옆구리를 찌르려다 말았다.
녀석이 넉살 좋게 막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이야, 월남에 내리자마자 사장님을 찾았거든? 그런데, 메콩강에 끌려갔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온 특사라고, 내 친구 당장 데려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지.”
“헉! 미군을 혼낸 거예요?”
“들어봐. 그랬더니 웬걸? 척하고 경례를 하더니, 이따시만한 헬기를 가져오더라고. 바람개비 두 개 달린 거 알지? 헬기 바람이 어마어마하더라고.”
“우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어떻게 되긴! 당장 메콩강으로 날아가자고 냅다 소리쳤지. 그랬더니…”
삼복이의 무용담에 점점 살이 붙었다.
헬기를 타고 반나절을 날아갔는데, 지평선 끝까지 논밖에 안 보였느니, 거대 전함이 폭포를 넘었다고 하니, 이곳저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래서 사람이 말을 할수록 허풍이 느나 보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잘하는 일부터 차근차근해보자.
세상을 뒤흔들 스포츠 웨어와 방탄조끼를 만들어 미국 가서 한탕 크게 해야지.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황혜성 사장과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 064 : 돈을 받아줄 사람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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