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6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69화(69/589)
< 069 : 오직 정면돌파 >
나는 마더 쉽 예약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마더 쉽의 선복(船腹, 선박 화물 적재) 예약이 이미 100%인데다, 대기 예약마저 꽉 차 있었다.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일본 업체들로 말이다.
“자이츠 통상? 유리통상? 에이실업? 김주임, 박주임, 여태 이런 업체 들어본 적 있어요?”
“아뇨,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몇 주 전부터 한두 건씩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요새는 선복 리스트에 없을 때가 드물더라고요.”
“그 업체들이 북미/동남아/구주/호주 할 것 없이 국제 수출항로 선복량을 다 잡아먹고 있습니다. 미치겠습니다.”
‘이런…’
느낌이 안 좋았다.
원래 해운 쪽은 21세기 초반까지도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갔을 정도로 돈 놓고 돈 먹기 판이다.
소비자 가격이 따로 없는 해운 운임 특성상, 우리 같은 화주들은 해운사를 직접 만나 가격을 조정한다.
북미로 수출하려면 직접 해운사의 북미 항로 담당자에게 연락해 선복(船腹)을 확인하고, 화물 종류와 물량에 따라 운임을 협의한 뒤, 계약서를 작성하고 정해진 일정에 화물을 항구에 갖다 두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물건을 싣고 출항할 수 있다.
해운사는 여러 고객의 화물을 제시간에 운반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화물이 정해진 시간까지 항구에 도착하지 않으면 해당 화물을 기다리지 않고 떠나 버린다.
따라서 수출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제때 세관을 통과하여 미리 화물을 항구 야적장에 갖다두는 거다.
그래서 가뜩이나 가난했던 60년대의 한국은 어려운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미국으로 수출품을 보내려면, 부산항을 통해 일본 고베/오사카/도쿄항으로 물건을 실어 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적 상선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 화물이 몇 번이나 배를 놓쳤죠?”
“고베에서 2번, 오사카에서 1번, 총 3번입니다. 모두 일본 세관에 묶여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도쿄로 보냈는데, 거기서도 세관 통과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12월 내내 만들었던 물건이 배를 타지 못했다. 세관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귀책 사유가 우리 회사에 있기에 해운사는 손해볼 것이 없다. 대기 예약이 되어 있는 화주의 물건을 싣고 가면 되니까.
배를 놓치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연달아 놓치는 경우는 없었다.
내 화물이 계속 밀려서 미국에 3월 내에 못 들어가면 큰일이었다.
내가 미국에 7000만 달러치 현물을 가져가야 단기 외채를 장기 국채로 바꿀 수 있다. 그게 내 능력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증명하는 방법이다
“여태 1월 초에 선복량이 풀로 차 있는 경우를 본 적 있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김주임, 원래 북미는 1월 초면 물동량이 훅하고 줄어요. 크리스마스 대목 전이 미친 듯이 바쁘고 그 직후엔 크리스마스 연휴라고 부두 노동자마저 다들 논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풀로 선복량이 차고 대기 명단까지 풀로 찬다고요? 이게 정상이냔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전 회사에서 대부분 수입과 내수만 했었기에…, 박 주임, 경험 있어?”
“아,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경력직이라고 해도 수출에 대해선 초짜나 다름없네. 하긴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렇게 계속 배를 놓치면 국제 정기선을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해운 동맹에 찍히는 꼴이에요.”
계속 이러면 해운사들에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세관을 통과해도 선복 계약에서 배제될 빌미 말이다.
“헉! 정말입니까?”
“우리 회사 잘못이 아닙니다. 일본 세관이 놔주질 않는데요.”
“사장님, 저를 일본으로 출장보내주십시오. 세관이건 해운사건 바짓가랑이 잡고 어떻게 해서든 수출 내보내겠습니다.”
“아뇨,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야죠. 지금 이 일은 절대 입 다물고, 이삼복 이사에게만 바로 보고하세요. 다른 사람은 모르게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사장님.”
“가서 일 봐요. 일단 우리 물건은 부산항에만 두도록 해요.”
“예, 사장님.”
이게 의도적인 일이라면, 일본에 가서 바짓가랑이라도 잡았다간 더 강하게 우리 물건을 잡아놓을 거다.
아니, 아예 한국으로 반품시키겠지.
21세기에도 비슷한 일을 하던 놈들이다.
***
‘청와대의 도움이 필요해.’
나는 결국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60년대 한국에서 청와대는 대기업 본사 회장실이나 마찬가지다.
<청와대 비서실입니다.>
“비서실장님.”
<예, 우 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먼저 연락을 다 하시고 말입니다.>
예전에 조금 서먹서먹했다가 요즘은 분위기가 좀 나아졌다.
내가 워낙 열심히 일을 하는데다, 그 목적 자체가 단기 외채를 갚기 위함이니 누가 봐도 난 애국자가 아닌가.
“긴급히 협조를 구할 일이 있습니다. 일본이 국제 무역선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 같습니다.”
“장난이요?
“제 물건이 일본 세관을 빠져나가지 못해 미국행 상선에 실리질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행 상선의 선복량을 모조리 가져가고 있어요. 제가 수출물량을 아무리 찍어내도, 미국으로 실어 보낼 방법이 없어지는 겁니다.”
“외람되지만 과민반응은 아니실까요? 정말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한국 민간 회사의 수출을 방해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저도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지켜보다가 일부 물건이라도 미국에 도착하지 못하면, 자칫 단기 외채가 부도날 수 있어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상황을 알아봐 주세요.”
“당장 일본 대사관에 알아보죠. 일단 청와대로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비서실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아는지 일단 청와대로 들어오길 권했다
***
“어서 오십시오. 우 사장님.”
청와대로 달려갔더니 누군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예, 반갑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염원철이라고 합니다. 상공부 차관보입니다. 우 사장님을 돕는 것이 제 업무입니다.”
“예? 아… 예.”
내가 비서실장에게 수출 업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몇 번 얘기했었는데, 오늘에서야 사람을 배정해줬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고마웠다.
이 양반이 말로만 들었던 염원철이었나 싶었다.
70년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우리나라 중화학 공업을 이끈 양반이 아닌가.
보기 드물게 화학과 출신의 관료라 석유화학 쪽에 영향을 많이 미쳤던 양반인데, 현재 내 사업을 고려해 딱 적합한 인물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일 중독자로 업계에서 유명한 인물인데, 생각보다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유하게 생겼다.
‘지금은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야.’
난 내심 고개를 저었다.
“가시죠, 차관보님.”
“예.”
나는 염원철 차관보와 곧바로 접견실로 향했다.
***
“어서 와, 임자.”
“무턱대고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대충 들었어. 일본 애들이 배를 안 빌려준다고 했나?”
“심증만 있는 상황입니다.”
“하긴, 동남아 수출과 미국 수출은 차원이 다르지. 충분히 방해할만해.”
우리나라가 수출입국으로 들어섰을 때 가장 크게 난감했던 일이 해운업이었고, 대일 무역적자가 심각하게 쌓였던 분야 또한 해운업이었다.
동남아까지는 어찌어찌 우리나라 배로 실어 날랐지만, 태평양을 건너려면 일단 큰 배를 사야 했고 국제 해운 동맹에도 가입해야 했다.
해운 동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화주(貨主)를 찾기도 힘들고, 항구 물류 창고나 하역 지원도 받기 힘들었다. 원래 해운사가 태생부터 카르텔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임자, 일본 쪽에 조사해보라고 한 거는 어찌 됐어?”
대통령은 훅하니 비서실장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급히 대사관에 접촉해 본 결과, 일본 정부에서는 북미로 향하는 상선에 대하여 한국 우선 배려를 지속할 수 없다는 계획을 회신받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임자, 말 좀 쉽게 할 수 없나?”
“여태 일본 정부는 한국 기업을 배려해 수출 업무를 적극 돕고 있었는데, 이제 그 특혜를 거두고 일본 회사와 동등하게 취급하겠다고 합니다.”
“배려? 특혜? 허어.”
대통령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비서실장의 말을 듣고 21세기 우리나라가 당했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역사는 늘 반복되었던 것이다.
일본이 그동안 한국에 특별히 혜택을 베풀어 왔고, 그 혜택이 한국의 잘못으로 인하여 일그러졌다고 협박을 하는 거다.
‘참나, 한일 협상이 비준에 실패하니 이런 식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는군.’
이때부터 시작이었네.
원래 역사에선 이런 식의 압박을 한국 정부가 견디지를 못했던 모양이다.
“특혜를 원복시키고 싶다면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쾅!
“말장난하나! 말 똑바로 못해!!!!”
“예, 각하. 저들의 의도는 한일 협정에서 합의된 어업협정을 즉시 공표하고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일본 대사가 구두로 알려온 내용입니다.”
“합의는 무슨 합의를 했다는 거야. 비준이 되지도 않았는데, 뭘 실행하라는 거야.”
“한국이 주장하는 평화선을 즉각 철회하고, 한국의 전관수역(한국 어민만이 어로할 수 있는 구역)을 12해리로 축소하며, 나머지 해상은 공동수역으로 설정해 일본과 한국의 공동소유임을 명확히 하라고 합니다.”
공동수역이라는 말은 언뜻 좋게 들리지만, 월등히 좋은 어선을 가지고 있는 일본 어민들이 우리 연안을 싹쓸이하겠다는 의미였다.
“이젠 숫제 내정 간섭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대통령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걸 들을 일본인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 한국의 수출물량에 대해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각하.”
쉽게 말해 일본에서 떠나는 국제 항로를 이용하기는 글렀다는 말이다.
일본다웠다.
한일 협상이 재협상에 돌입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나오는데, 내가 밴 플린트와 단기 외채 협상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 어떻게 나왔을까?
내 물건이 아예 사라졌겠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일본 세관에 있는 물량을 다시 가져와야겠다.
“일본발 국제 상선을 이용하는 것은 힘들어 보입니다. 혹시 정부에서 제게 빌려주실 수 있는 배는 없습니까?”
“그래! 당장 군함을 지원해 줘. 아무리 태평양이 험난해도 군함이라면 건널 수 있잖아.”
“가… 각하. LST는 군함이라 상선 용도로 쓸 수가 없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LST를 양도했을 때 내걸었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무슨 소리야. 뀌년 항에는 매번 가잖아.”
“그건 파월 장병들에게 전투 보급을 한다는 핑계로 가능한 일입니다. 전시가 아닌 바에야 군함이 타국의 영해로 진입하는 것은 동맹국이라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
그래서 군함은 해적이 난립하는 소말리아 영해에도 진입하지 못하고, 상선 따라 호위도 못 하지.
“!!! 젠장…”
박 대통령도 인상을 찌푸렸다.
자리에 털썩 앉더니, 담배부터 물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며 이 일을 어쩌나? 하는 고민을 시작하는 듯했다. 그리곤 스스로 결론도 내린 것 같았다.
“임자, 지금 일본으로 특사를…”
“안 됩니다, 대통령님. 보내서는 안 됩니다.”
“안되긴 뭐가 안돼? 3월까지 수출 못 하면 국가 부도란 말이야. 그럼 차관도 못 들여오고 식량도 못 들여와. 다 같이 굶어 죽기라도 하자는 소린가?”
“대통령님, 여기서 물러나 한일 협정을 하게 되면 일본에 지는 건 물론, 미국에서도 버림받습니다. 우린 가능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지금 한일 협정에 합의하면 대일 민사청구권도 날아가고, 그럼 밴 플린트나 낸시가 데려온 투자자들은 다신 한국을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다른 방법이라도 있나?”
“일단 태평양을 건널만한 배부터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서실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우리나라에 제가 쓸만한 배가 있습니까?”
내 질문에 비서실장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난처한 듯 옆을 쳐다봤고, 염원철 차관보가 앞으로 나섰다.
“얼마나 큰 배가 필요하십니까? 제가 상공부 시절 배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있게 나서는 걸 보니, 수출입 업무엔 빠삭한 모양이다.
“40피트짜리 컨테이너 100개를 실어야 합니다. 가공 목재도 수천 톤 정도 되니, 대략 1만 톤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 만 톤이라고요?”
60년대엔 만톤이 그리 큰 배인가?
염원철 차관보가 놀라다못해 기절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없습니까? 좀 오래된 배라도 좋습니다.”
“신형 배도 그렇게 큰 배는 없습니다. 1, 2천 톤만 해도 대형 선박이고, 그나마 수천 톤급 배는 일본 선사와 합작한 상선이 전부입니다.”
이 정도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가?
일본 선사와 합작했다면 수천 톤급 배도 못 쓰겠네.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방해할 거다.
방해 공작 하나는 꼼꼼한 작자들이니까.
“이봐, 임자. 아예 해군기지에서 쓰다 남은 군함은 없나? 고쳐서 상선으로 쓰면 될 거 아닌가?”
“그것까진 제가 알지 못합니다.”
‘!!! 군함을 고쳐서? 고쳐서…’
대통령의 말에 불현듯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플랜트를 하다 보면 해기사들이 간혹 합류하는데, 각기 다른 사람에게서 같은 얘기를 들어서 신기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북미 항로를 뚫을 때 일반 상선이 아니고, 해군 사관학교였나? 무슨 대학교였나? 여하튼 거기서 교육용으로 쓰고 있던 배를 고쳐서 태평양을 건넜다고 말이다.
항해술을 가르치던 교관인가 교수가 학생들을 이끌고 고생고생 끝에 북미 항로를 개척했기에, 자기 모교 대강당에는 기념 회화도 걸려있다며 자랑했었다.
“차관보님, 혹시 우리나라 함장들이나 항해기사들은 어디서 양성합니까?”
“당연히 진해나 부산에서 하죠. 헌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들을 교육하는 실습선이 있지 않습니까? 고물이라고 해도 웬만큼 덩치가 될테니 고치면 태평양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헉!”
“그런 생각이!”
“임자, 당장 진해에 연락… 아니, 우 사장이 직접 가봐. 가서 쓸만하면 바로 접수해.”
대통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쩌다 보니 염원철 차관보와 내가 청와대서 바로 진해로 출발하게 되었다.
“배를 마련하면, 이참에 해운사도 세워. 알겠나!”
“예에?”
“네?”
“아…”
셋이 한꺼번에 입만 벌렸다.
“아, 예. 대통령님. 그리 하겠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해운사를 시작하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 069 : 오직 정면돌파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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