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7화(7/589)
< 007 : 혜성 그룹 >
“잠시 서류 좀 살펴볼 테니, 내려가서 일 봐요.”
“예, 사장님.”
아직 인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장 대접이다.
회사 장부를 찾아야 했다.
이전 사장이 아무리 공장 운영을 개판으로 했어도 장부는 있을 것이다.
원자재를 얼마에 사왔고, 전기세 같은 고정 경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야 공장 운영을 하지.
사장이 기본적인 운영비를 계산 못하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빙고!”
서류를 뒤지다보니 장부가 보였다.
와중에 단단한 하드커버로 되어 있어서 찢어진 곳도 없었다.
나일론/면 혼방 12,000야드 수주
– 원사 4,000파운드 수급.
– 가보네 120데니어 원사 : 60센트/파운드(지게)
– 고려나이롱 120데니어 원사 : 80센트/파운드
“파운드? 실을 무게 단위로 사오나보네. 12000야드를 뽑는데 4000파운드가 드니까, 파운드당 원단 3야드를 뽑을 수 있나보네.”
원사란 실을 가리키니 내 추측이 맞을 거다.
그리고 납품처는 두 군데였던 모양이다.
가보네라는 곳과 고려나이롱이라는 곳 말이다.
‘가보네라면 일본 회사인 모양인데, 120데니어는 소재 스펙인가?’
데니어, 데니어…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했다.
실의 굵기가 아닌가 싶었다.
‘지게라니… 설마 원사로 밀수품을 썼던 건가? 가지가지 했네, 양아치 놈.’
지게꾼은 미군부대나 항구에서 몰래 물건을 빼돌렸던 밀수꾼을 일컫는 말이었다.
어렸을 때 철공소 골목에서 들었던 은어를 수십 년 만에 다시 보았다.
하긴 이때는 국산품보다 밀수품이 값싸고 품질마저 좋았을 때였으니, 양아치들이 선호하긴 했지.
그런데 원사 값이 일제가 60센트고 국산이 80센트였어? 원가가 자그마치 25%나 싸다면 목숨 걸고 밀수를 했을 법했다.
“이봐요, 구 반장!”
“예!”
“예, 사장님.”
“부르셨어요?”
벽에 뚫린 작은 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구 반장을 불렀다. 성구/용구/동구 셋 중 아무나 대답하라는 뜻이었는데, 셋 다 나를 쳐다봤다.
아주 편했다.
“여기 120데니어 실을 썼어요?”
“예. 파자마나 셔츠용 원단은 120데니어로 짜야 합니다. 촉감이 부드럽거든요.”
“몇 년 전엔 300데니어를 썼다는데 너무 거친데다, 원사 값마저 비싸서 이젠 안 씁니다.”
오케이, 데니어가 실의 굵기가 맞네.
“이 근처에 원사 납품 업체가 있어요?”
“건너편 신작로에 다 모여 있습니다. 대로변에 나가시면 쉽게 찾으실 겁니다.”
“여기선 대부분 가보네 원사를 썼어요?”
“예, 당연합니다. 이태리제 실은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어째 반장들이 수입 원사를 당연시 하는 느낌이 들었다.
“국산 원사는 안 썼어요?”
“그… 그게, 쓰고는 싶은데 자꾸 끊어지고 보풀도 많이 날리고 해서 품질이 영 별로입니다. 단가도 외산보다 비싸고요.”
반장들이 다들 국산이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걸 보니, 정말 품질이 안 좋은 모양인데?
“그래요?”
내가 직접 품질을 비교해봐야겠다.
영 안 되겠다 싶으면 일단 일제라도 써야지, 별 수 있나.
지금 당장 원단을 생산해야 하는데 원사 국산화부터 시작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여하튼 이 공장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내 공장에서 직접 원단을 뽑아보면 하청을 맡길 때 납품 단가와 품질 스펙까지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렵지만 차근차근 문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
「가보네 대리점」
공단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나왔다. 원사 대리점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가보네가 뭔지 모르는 놈은 꺼져라, 이거네.”
간판이라면 상호 밑에 ‘무슨 무슨 전문점’ 이라는 설명을 적어놓기 마련이다.
헌데, 이곳 간판에는 그런 설명 따윈 없이 큼직한 글씨로 가보네라고만 적혀 있었다.
딸랑. 딸랑.
“계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어디서 오셨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직원이 나를 맞았다.
잡상인이면 여사원 선에서 거르는 모양이다.
우습게도 슈퍼 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기껏해야 원사를 파는 회사인데 말이다.
“대세 실업에서 나왔습니다. 나일론 원사를 구입하려고 왔습니다.”
아까부터 명함이 없어서 자세가 안 나오네.
오늘 당장 명함부터 파야지 싶다.
“나일론 원사 어떤 거요?”
“트리코트용 나일론 면 혼방 원사를 구하고 있습니다. 120데니어로 말이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삼복이가 원단을 트리코트 계열이라고 확언했고, 구 반장들이 셔츠나 파자마용으론 120데니어 원단을 쓴다고 했으니 말이다.
싱가포르에 내 원단을 수출하면 셔츠, 파자마 등을 만들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사장님!! 손님 오셨어요. 사장님!”
“미스 김, 왜 그래?”
“손님께서 트리코트용 120데니어 나일론 면 혼방 원사를 구하신답니다.”
내 주문이 그럭저럭 초짜 수준을 넘었던지 여 사원은 곧장 사장을 불렀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대세 실업 우찬수 사장입니다. 나일론 면 혼방 원사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샘플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예, 이쪽으로 오시죠. 저희 가보네에는 면 5%에서 65%까지 다양한 혼용률을 가진 제품이 있습니다.”
매대 뒤쪽으로 돌아가니 긴 테이블 위에 원사 샘플이 줄줄이 놓여 있었고, 촉감을 느낄 수 있게 샘플 천도 그 곁에 놓여 있었다.
나름 격을 갖춘 것이 가보네사(社)의 한국 지점이 맞는 모양인데?
“이 모델들을 샘플로 구매했으면 합니다.”
몇 개 모델의 촉감이 내가 원하는 원사와 비슷했다. 샘플로 가져다가 원단을 짜보고 최적 혼용률을 찾아내면 될 것 같았다.
21세기면 그냥 국가 시험연구원에 라자크가 고른 샘플 원단을 보내서 면과 나일론이 몇%로 섞여 있는지 분석해달라고 하면 그뿐인데 말이다.
시험연구소는커녕 전자 현미경 같은 기본적인 분석 장비도 없을 때니, 무슨 문제든 시행착오를 해가며 풀 수밖에 없었다.
“샘플이라면 얼마든지 공급해드려야지요. 헌데, 필요하신 양산 물량은 얼마나 되시는지…”
“원단 기준으로 50만 야드니까, 원사 기준으론 대략 20만 파운드 정도 필요할 것 같군요.”
“허헉! 20만 파운드라고요?”
“단가는 얼마나 됩니까? 파운드당 60센트 이하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파운드당 60센트라고 하니 가보네 지점 사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내가 최종 납품가를 알고 왔다는 걸 눈치챘다.
“크흠, 미스 김. 커피나 한잔 타 와. 고객님과 긴히 할 말이 있거든.”
“예, 사장님.”
여사원을 칸막이 너머로 보내버리고 나를 개인 사무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작은 탁자와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었기에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했다.
“우 사장님, 바터권은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바터권이라고요?”
뭐지? 뜬금없이 바터(barter)권이라니?
바터라면 물물교환을 의미하는 단어 아냐?
아무리 60년대라지만 18세기 대항해시대도 아니고 무슨 거래를 물물교환으로 해?
“엥? 바터권이 없으십니까? 설마 20만 파운드나 되는 물량을 모두 지게꾼을 쓰자는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이야? 바터권이란 게 뭔데?
여기가 무슨 중고품 거래하는 오이마켓도 아니고 무슨 물물교환권이 필요하냔 말이야!
정식 납품을 하면 되지 무슨 밀수 얘기를 해?
“뭐, 지게꾼까지 쓸 생각은 없고, 20만 파운드에서 가보네 납품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은 고려나이롱에서 납품 받으려고 합니다.”
“… 나머지를 고려나이롱에서 납품받으신다고요? 그런 손해를 감수하시겠다고요?”
“뭐, 어쩔 수 있나요?”
“휴우, 바터권을 이미 다 쓰신 모양이군요. 하긴 그 놈의 수출입 연동제를 사방팔방에 다 적용하니 바터권이 남아나질 않죠.”
‘수출입 연동제!’
수출입 연동제라는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선배들이 말하길 6, 70년대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외환 부족으로 무역업자조차 달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일례로 석회석같은 시멘트 재료는 지천에 깔려있는데, 시멘트 공장을 지을 시멘트를 수입하지 못해 시멘트 자급자족을 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이 수출한 만큼 원자재를 수입할 수 있게 한 거다.
예를 들면, 직물 원단을 수출하면 그만큼의 원사를 수입할 수 있는 거다.
문제는 내가 이만큼의 원단을 수출할 테니 이 만큼의 원사를 수입하게 해달라는 말이 안 통한다는 거지. 일단 수출 실적이 있어야 했다.
‘이야, 이제 알겠네. 수출입연동제 때문에 수출을 못했던 영세 화섬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고 품질 낮은 국산 원사를 쓸 수밖에 없었던 거네. 그게 싫으면 원사를 밀수했던 거고!’
이 바닥에 밀수가 성행하는 이유를 알겠다.
국산 업체인 고려나이롱이 내수용 직물업자에게 배짱 장사를 하고 있는 거네.
어쩐지 수입품 대비 단가가 25%나 높더라니, 장사가 되니까 그리 팔고 있었던 거다.
이전 사장도 이따위로 시장이 개판이니 당당하게 가보네 밀수품을 썼던 거였네.
“지게꾼은 좀 그렇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웬만해서는 가보네 원사를 살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다.
품질 차이를 보고, 견적서를 받아서 국산 원사 값을 깎을 요량으로 들렀는데 상황이 묘해졌다.
“바터권이 없으면 정식 수입은 어렵습니다.”
“정식 수입은 어렵다라…”
뭔가 방법이 있는 모양이군.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죠. 50만 야드를 수출한다고 하셨지요?”
“그랬지요.”
“그럼 수출한 뒤에 바터권을 얻게 되실 텐데, 그 바터권을 제게 넘겨주신다고 계약서를 작성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그렇게 한다면요?”
“그럼 제가 가보네 본사로 연락해서 달러를 빌려보겠습니다. 일단 5만 파운드만 수입하고 우 사장님께서 바터권이 생기는 대로 넘겨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으흠, 바터권 자체가 달러나 다름없는 거네.
아니,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해주는 권리니까 오히려 수출입 신용장이나 다름없네.
바터권을 얻으면 무역업자에게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도 되겠어.
“좋은 생각이네요. 잘 들었고요, 다른데도 좀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유, 그러십시오. 단가 60센트에 달러까지 빌려주는 곳은 없을 겁니다.”
“혹시 모르니 돌아보긴 해야겠지요?”
“설마 고려나이롱을 찾아가실 거라면 그만 두십시오. 조선 놈의 기술은 핫바지라 혼방 원사는커녕 100% 나일론 원사도 제대로 못 만듭니다. 나일론 실은 한번 끊어지면 원단도 다 버려야 합니다. 실은 일제가 최곱니다.”
“쩝. 그래요.”
빌어먹을 놈…
아무리 장사꾼이지만 말이 심하잖아.
국내 기술도 아니고 조선 놈의 기술은 핫바지?
아무리 60년대라지만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 이렇게 자기 비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
“돌아보고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가보네 지점장은 자신이 있었던지 웃는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하는 말이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 시대의 무역이 어찌 돌아갔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70년대 초반까지도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어두웠다는 게 이해가 됐다.
이때 기업가들은 수출하면 밑지기 일쑤라고 여겼다는데, 그 진짜 의미는 수출보다 밀수로 내수 시장에서 한탕치는 게 훨씬 현명한 일이었던 거다.
무역에 쓸 달러도 모자라고, 밀수는 횡행하고, 국내 선발주자들은 내수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수출을 독려해야 했던 정부의 고민도 깊었겠군 싶었다.
역시 개발도상국은 단추하나 잘못 끼면 악순환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이 상황을 헤쳐나간 내 앞 세대가 참 대단하네.
‘결국, 이 상황을 헤쳐나간 혁신 업체가 있었다는 뜻인데… 그게 어디지?’
아마도 고려나이롱은 그 주인공이 아닐 거다.
지금 국내 원사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품질도 나쁘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잘나가는 기업이 혁신을 했을 리 없었다.
혁신 기업은 언제나 절박한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법이니까.
내가 섬유 업계에서 일했더라면, 이때쯤 어떤 회사가 혁신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알았을 텐데 안타까웠다.
원래 역사에선 6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의 섬유 수출이 엄청 늘어나니, 분명 이때쯤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가 있어야 정상이었다.
「혜성 나일론」
“어?”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대로변을 벗어났다.
그런 내 앞에 허름한 건물이 나타났다.
기와집을 개조한 공장 같았는데, ‘혜성 나일론’이라는 간판 문구가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60년대엔 나일론을 나이롱이라 부르지 않았나?
나일론이라는 21세기 표준어를 쓰는 것도 그렇고, 혜성이라는 이름도 왠지 익숙했다.
‘혜성… 혜성… 설마 그 혜성 그룹인가?’
혜성 그룹은 화공 계열의 재벌 아닌가.
21세기엔 주된 사업이 정유산업이지만, 시작은 화학 섬유로 했을 수 있지.
화학 섬유와 정유 산업은 기술적으로 관련성이 짙으니까 말이다.
전생에 대세 건설에서 근무하던 시절, 혜성 그룹의 정유 플랜트 확장 공사에 몇 번 참여했던 경험이 있기에 친숙한 그룹이었다.
드르륵.
“계십니까?”
나는 간유리를 끼운 허름한 미닫이문을 열고, 공장 안으로 빼꼼히 머리를 들이밀었다.
< 007 : 혜성 그룹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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