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74)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74화(74/589)
< 074 : 한국인의 정체 >
“만세! 만세! 만세!”
“대한호 만세!”
“대한민국 만세!”
빠빠람빠 빰 빰빠빠. 빠라밤빠 ♩♪♬
포틀랜드 항구에 모인 교민들이 대한민국 만세를 연호하며 우리를 환호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불법 체류자가 대부분일 우리 교민들이 떳떳하게 만세 삼창을 하고 있었고, 포틀랜드 시민과 함께 근사한 악단도 등장해 제대로 환영식을 해줬다.
“어서 오게, CS.”
의아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환영 인파 속에 밴 플린트가 보였다.
“예포에 환영식까지! 영광이군요.”
“한국의 1호 국적선이 처음 입항하니, 총영사급이 오는 거지. 이 정도 환영은 당연해.”
“1호 국적선답게 배부터 좀 고쳐야겠습니다. 배 수리하는 동안, 이곳에 대세 해운 창고도 하나 지어야 할 것 같고요.”
“나보고 도우라는 건가?”
“물론이죠.”
“투자자들을 얼마나 잘 구워삶는지 보고 도울지 말지 판단하지.”
“저 정도 시험이면 충분하지 않아요?”
나는 처참하게 망가진 대세 1호를 가리켰다.
입항할 때는 환호하던 교민들이, 처참하게 금까지 간 배 위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경례하는 해양대생의 모습에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좋아, 좋아. 내가 양보하지. 선박 수리와 포틀랜드에 창고 정도야 힘써보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실상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항구에는 해운사끼리 카르텔이 있어서 카르텔에 속하지 않고선 창고는커녕, 선박 수리나 하역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해운 카르텔에 들어갈 수 있도록 손 써 주겠다는 뜻이었다.
밴 플린트니 가능한 일이었다.
Sea-Land사(社) 주축인 태평양 운임 동맹이면 좋겠는데 말이지.
6, 70년대 태평양을 주름잡던 해운사 아닌가.
“힘써 주시는 김에 단기 외채 좀 해결해주십시오. 7천만 달러짜리 현물입니다.”
나는 선화증권(船貨證券, Bill of Lading)을 내밀었다.
선화증권은 배에 상품을 선적하고 나서 그 품목을 적은 서류로, 은행에 담보로 제출할 수 있는 유가 증권이다.
밴 플린트에게 이 증권을 보여주는 것으로 난 시험을 통과하는 거다.
“급하기도 하군.”
“여기 숨넘어가는 사람이 있거든요.”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등 뒤를 가리켰다.
염원철 차관보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서 있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밴 플린트가 가져올 2억 불짜리 장기 외채 서류였다.
“2억 달러어치 차관 승인 서류야. 맨해튼 은행에 집어넣고 본국에 연락하면 단기 외채는 바로 만기 연장될 거야.”
“고맙습니다.”
1억불은 미국 정부가 대외원조법에 근거하여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AID(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차관이었고, 1억불은 세계은행 소속의 국제개발협회(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가 제공하는 IDA 차관이었다.
미 국방부 소속의 낸시와 정재계의 실력자인 밴 플린트가 각각 자기 영역에서 1억불씩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AID 차관이든 IDA 차관이든 미국 정부가 뒤에 있는 차관이긴 매한가지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서류를 받아 바로 염원철 차관보에게 넘겨주었다. 염 차관보는 급히 서류를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을 참는지 꺽꺽대는 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서류 몇 장에 국가 부도의 위기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꼴을 보니 일단은 좀 쉬어야겠군. 호텔을 예약해뒀으니, 사람 꼴부터 갖추게.”
“하하.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밴 플린트는 호텔 이름이 적힌 쪽지를 건넸다.
정말 나도 쉬고 싶었다.
“한국 음식이 그립거든, 저기 환영 인파들과 얘기해봐. 민박을 제공해 줄 거야.”
돌려서 말했지만, 같이 온 일행들은 교민들의 민박을 이용하라는 소리였다.
숙식을 저렴하게 해결할 방법이었다.
이래저래 한국인을 이해하는 세심한 양반이었다.
“투자 설명회는 어떻게 준비하면 됩니까?”
“자네가 준비할 것은 없어. 내일모레, 포틀랜드 오리건 컨벤션에서 보지. 더 쉬게 해주고 싶지만, 투자자들이 보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어.”
밴 플린트가 파티 초대장을 내밀었다.
파티라고 적어놓고 투자 설명회라고 부르는 일이었다.
“좋아요, 거기서 보시죠.”
“옆에 친구는 같이 올 건가?”
“아, 소개도 안 했네요. 원철 염, 상공부 차관보(Deputy Minister)입니다.”
“호, Deputy Minister였던가?”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염원철 차관보도 밴 플린트를 알고 있었다.
하긴, 이때 고위 공무원들이 밴 플린트를 모를 리 없지.
“좋군요. 두 분 모두 파티에서 봅시다.”
그 길로 우린 서로 헤어졌다.
오늘이 3월 31일이니 당일로 처리할 일이 산더미였다.
우리 일행들은 출입국 사무소, 세관, 은행 일을 다 보고 오후 늦게서야 겨우 호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객실로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욕탕에 몸을 담궜다. 말 그대로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기름때와 땀에 쩐 옷도 다 벗어버리고, 가운 하나 걸치고 침대에 뛰어드니 구름 속에 빠져든 느낌이었다.
***
이틀 뒤,
포틀랜드 오리건 컨벤션 홀.
깔끔하게 머리도 손질하고 신사복도 갖춰 입고 컨벤션 홀로 들어섰다.
솔직히 신기했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60년대에 컨벤션 홀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이 있다니 말이다.
이때의 컨벤션 홀은 럭셔리 비즈니스 호텔의 개념인지, 로비에는 와인잔으로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에 와인 분수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이런 호사스러운 분위기는 그리 길게 가지는 못한다. 올해부터 월남전이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인 걸 알아채기 시작하니까.
뀌년 덕분에 조금 편해지긴 했어도 말이다.
“CS Woo, 환영합니다.”
“고마워요.”
“어서 오게, 친구. 소개할 사람들이 많아.”
밴 플린트가 호스트였고, 이미 파티장엔 잘 차려입은 양반들로 북적였다.
못해도 30명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이쪽은 유니온 오일사(社) 굿맨 부사장이야.”
“반갑습니다. CS Woo라고 합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제가 극동 아시아를 맡게 되어 꼭 뵙고 싶었습니다.”
“자, 이쪽은…”
밴 플린트는 정신없을 정도로 날 이 사람 저사람에게 소개했다.
유니온 오일, 벡텔, 다우 케미컬, 웨스팅 하우스, 블로녹스, 포드자동차, 비트로 비료, 하노버 신탁, 센트루이스 제지, 피트모어 제강, 듀폰 등등 알만한 기업은 다 모은 것 같았다.
‘이들이 밴 플린트를 믿고 한국에 차관보증을 해준 기업이다, 이거네.’
여기 참석했다는 말은 한국에 투자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 정부와 바로 접촉하기보다는 밴 플린트라는 중개인을 끼워,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한다고 하겠다.
상황이 생각과 다르면 밴 플린트를 대리인으로 내세우거나, 그를 핑계로 꼬리를 자르겠다는 말이었으니까.
“우 사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왜, 어디 불편하세요?”
염원철 차관보가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내게 물었다.
“불편한 게 아니라, 이런 분위기는 긴장이 되어서 말입니다. 죄다 한 끗발 하는 기업들 아닙니까.”
아무리 60년대라지만, 차관보 같은 고위 공무원이 사기업 앞에서 이렇게 쫄다니.
“차관보님, 긴장이라뇨. 우리가 갑입니다.”
“예? 우리가 갑이라고요? 우린 지금 돈을 빌리고 투자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갑이죠. 은행에서도 돈을 빌리는 사람을 고객이라고 하지, 빚쟁이라고 부르지는 않잖아요.”
“……”
“푼돈을 빌릴 때나 쪼는 거죠. 큰돈 빌릴 땐 배짱 부리는 겁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염 차관보의 어깨를 주물러 긴장을 풀어주었다.
명색이 대한민국의 고위 공무원인데 쫄면 쓰나.
“저랑 얘기 좀 하시겠습니까? 듀폰의 토니 에드워드라고 합니다.”
“얼마든지요.”
나는 즉석에서 잭콕을 만들어 건넸다.
“잭콕 좋죠.”
에드워드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잭콕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격식보다는 실리를 따지는 사람들이다.
버본 위스키는 스트레이트가 원조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스키는 달콤한 콜라와 섞으면 맛이 좋아진다고 하는 사람들이니까.
“제가 원하는 걸 먼저 말씀드리죠. 한국 공장에서 연간 4800톤을 생산하기로 하고 건설비는 900만 달러를 지원하겠습니다. 지분은 51대 49로 하시죠. 물론, 라이선스는 영구 대여하는 것으로 하죠.”
툭하고 치고 나왔지만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있었다. 카블라 라이선스를 얻는 대가로 한국 공장 건설에 투자하겠다는 말이었다.
내가 이미 밴 플린트에게 듀폰과 거래하겠다고 텔렉스를 보냈으니 탐색전 따위는 없었다.
“차관 보증을 900만 달러까지 하셨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이 제의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지급 보증을 철회해야겠지요. 그럼, 900만 달러에 대해선 다른 투자자를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나의 기선을 제압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강하게 나왔다.
저 멀리 밴 플린트가 날 보며 싱긋 웃더니 입 모양으로 ‘He, Vice President! (그 녀석 부사장이야)’ 라고 천천히 읊어주었다.
밴 플린트가 나서지 않는 걸 보니, 이게 메인 거래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긴 900만불 정도로 이 파티의 메인 물주가 될 수는 없지. 내 선에서 알아서 하라는 거다.
“투자자를 알아보기 전에 제의부터 해보죠. 연 생산량 15000톤에 건설비 2000만 달러로 하죠.”
“뭐라고요?”
“생산량은 3배가 넘고, 건설비는 2배 조금 넘으니 서로에게 이득이지 않습니까.”
플랜트는 공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건설비가 훅하니 줄어든다.
내 경험상, 60년대 환율로 계산하면 합성섬유든 플라스틱이든 생산량 5000톤당 600만 불 정도로 계산하면 된다.
15000톤에 2000만 불이면 자그마치 200만 불이나 더 여윳돈을 가져가는 꼴이다.
공장을 짓고도 남는다.
“카블라를 15000톤이나 생산하겠다고요? 그걸 다 어디다 씁니까?”
“카블라는 강철보다 5배나 강하고 500도에서도 견디는 소재입니다. 피탄 사망률을 수십%나 낮추죠. 군인뿐 아니라 경찰도 방탄복, 방탄 헬멧은 필요하죠. 방화복에도 최적이고요. 우습게도 최첨단 패션 원단이기도 하고요. 옷 말고도 용도야 무궁무진하죠. 타이어 코드, 항공기 날개, 전선 피복, 안전띠를 비롯한 자동차 내장재, 트랜스미션 벨트…”
내 말이 이어짐에 따라 에드워드 부사장의 표정이 점점 변해갔다.
일단 듣고 보니 활용도가 무궁무진하지?
“그래도 2000만 달러는 과하군요.”
“5년간 법인세와 영업세 면제. 공장 용지도 2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토록 하죠.”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 우 사장님….”
옆에 있던 염원철 차관보도 내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런 세제 혜택이 어디 있냐는 뜻일 거다.
왜 없나? 그 유명한 조세감면규제법 아닌가.
외국인 투자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만큼 무분별한 차관을 들여왔다며 두고두고 욕먹은 법이다.
이상한 놈들이 차관 들여와서 빌딩 사기 전에 차라리 내가 저지르는 게 낫다.
“그래도 공장이 너무 큽니다. 그 정도를 운영한다면 초기 운용비가 너무 과다…”
“전기료와 수도료를 정부가 보장하죠. 국제 가격의 60% 수준으로 말입니다.”
“헉!”
이 또한 조세감면규제법의 실행 항목이었다.
에드워드는 황급히 잭콕을 마시는 척했다.
그도 모르게 ‘이거 완전 대박!’이라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고요?”
“발전소가 필요합니다. 100MW급은 되어야 그런 공장을 돌릴 수 있거든요. 저기 백텔사가 있으니, 같이 추진을 해주시죠.”
“끄응…”
좀 일이 복잡해지지? 하지만 해줘야 해.
듀폰 정도가 고객으로 나서줘야 100MW 발전소를 짓지.
게다가, 거기서 나오는 열로 난방도 하고, 터빈 돌리고 남은 수증기는 대세 화학으로 돌려서 써야 한단 말이다.
“전기가 불안정해서 반응탑이 한번 굳으면 조각내서 떼어내는 데만 2주는 족히 걸립니다. 올스톱이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 발전소까지 추진한다면 남는 장사가 될 수 없습니다.”
“좋아요, 어쩌면 남겠습니까?”
“지분은 5대 5로 하더라도 이익 배분은 6대 4로 해주십시오.”
“그거면 되는 겁니까? 그렇게 해요. 그럼.”
“헉! 우 사장님!!! 뭔 말도 안 되는!”
염원철 차관보가 펄쩍 뛰었다.
마시고 있던 잭콕을 쏟을 정도로 흥분했다. 앞선 세제 관련 약속도 과한데, 이익까지 6대 4로 나눌 순 없다는 뜻이리라.
나는 염 차관보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흥분할 땐 하더라도 끝까지 듣고 흥분하시라.
“에드워드, 그 이익 말이에요. 미 상공부 공시 표준에 따라 조업일수 305일에 가동률 85%로 계산하는 거 맞죠?”
“물론이죠.”
“그럼, 초과 생산하는 물량에 대해선 우리 대세실업 몫입니다. 어때요?”
“… 으흠, 그러시던지요.”
듀폰 부사장 에드워드는 시큰둥하게 동의했다.
한국 같은 후진국에서 초과 생산이 가능할 리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
염원철 차관보가 내 말을 듣더니, 눈을 껌뻑껌뻑했다.
‘봤습니까? 이래도 손해에요?’
이때 미국인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떤 민족인지 몰랐다.
한국인은 1년 365일 24시간 교대로 일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동률 110, 120%를 달성하던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종 중의 독종이었다.
더욱이 나는 21세기 엔지니어다.
내가 공정조건 몇 개만 바꿔주면, 초과생산은 누워서 떡 먹기다.
“그럼, 이 조건으로 계약하실까요?”
“지금 계약이 가능합니까?”
“여기 한국 정부의 상공부 차관보님이 계시니 못할 것도 없지요.”
“하하하, 좋습니다.”
파티장엔 이미 미 상공부 표준 계약서가 준비되어 있었기에 당사자가 조건에만 동의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내가 말한 특약 사항을 기입하자, 에드워드는 이게 웬 떡이냐 하며 흔쾌히 서명했다.
염원철 차관보도 대한민국 상공부를 대표해 서명했고 말이다.
염 차관보는 계약하고 난 뒤에도 좀체 긴장을 풀지 못했다.
이런 계약이 가능한가? 하면서 말이다.
“우 사장님,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보시고도 모르시겠어요? 양놈들은 한국인의 정체를 모릅니다. 몇 년 뒤면 이런 계약도 불가능할 테니, 오늘 여기 파티장 싹 쓸어버리죠.”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밴 플린트가 유니온 오일을 끼고 있는 걸로 봐서, 유니온 오일사(社)만 빼고 다 내가 알아서 계약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사방에 돈이 널려있었다.
투자금 한번 거하게 당겨보자!
다들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 074 : 한국인의 정체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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