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7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76화(76/589)
< 076 : 남자라면 쿠바산 시가 >
“그런 결론에 도달한 근거는요?”
“추론이죠.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 덕분에 전세계 물동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는데, 미국은 무역뿐만 아니라 베트남에도 군수품을 실어날라야 하니 죽을 맛이겠죠.”
“죽을 맛까진 아니에요. 후훗.”
“과연 그럴까요? 일본이 도와준다면 그런 허풍이 통하겠지만, 일본도 자기네 물건 수출한다고 바쁠 텐데요. 미국으로선 아시아 항로보다 대서양 항로에 집중하는 게 열배 백배 낫지 않나요? 태평양엔 싼값에 원하는 곳에 따박따박 물건을 옮겨줄 해운사가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이죠.”
“이를테면, 대세 해운같은?”
어쭈, 대세 해운 이름으로 포틀랜드 항에 입항한 걸 알고 있네.
역시 내가 제대로 짚은 거다.
“저 혼자만의 망상인가요?”
“아뇨, 아니에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분석이에요.”
플랜트 종사자든 조선이든 중공업 관계자라면, 60년대 말 해운업이 어땠는지 모를 수가 없다.
1973년도 1차 오일쇼크가 닥치기 직전까지 조선업은 컨테이너선을 필두로 극도의 호황기를 맞이했고, 용선료와 해운 운임도 미치듯이 올랐었다.
심지어 이와 같은 일은, 리먼 사태를 전후해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똑같이 재현되었다.
“대세 해운을 선택하신다면,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드리죠.”
“좋아요. 파격적으로 싼 물류비용으로 한국이 중동, 동남아시아, 대만까지 커버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러고도 힘이 남아서 북미까지 커버해준다면 금상첨화죠. 아, 물론 월남을 빼놓으면 안 되죠. 거긴, 우리 미군이 있으니까요.”
위험하고 돈이 안 되는 일은 남의 나라에 시킨다는 전형적인 미국인다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좋은 일이다.
파격적으로 싼 물류 비용이라고 해도 원유 수입, 미군 군납, 뀌년, 북미 수출을 생각하면 무조건 남는 장사다.
무엇보다 내가 운용할 해운사가 생기는 거다.
앞으로의 성장을 생각하면 꼭 필요한 일이다.
“파격적이라면?”
“국제 해상 운임의 70% 어때요? 대신, 태평양 해운 동맹에 가입시켜주죠.”
“70%라…. ”
운임을 30% 깎아주면 자신들의 해운 카르텔에 넣어주겠다는 뜻이다.
“신생 해운사를 해운 동맹에 끼워주는 것부터가 파격적인 일이라고요.”
“제가 진짜로 파격적인 조건을 말해보죠. 현재 글로벌 운임으로 10년간 유지. 어떻습니까?”
지금 가격으로 장기 계약하면 결국은 이득이다.
오일쇼크로 물동량과 해운 운임이 급락하거든.
괜히 지금 제값을 받겠다고 우겨봐야, 항구에서 물건을 받지도 못하고, 화물을 하역하지도 못하고 위약금만 잔뜩 물어줘야 하는 초짜용 참교육만 냅다 받게 될 것이다.
“현재 운임으로 10년 계약이라, 얘기가 잘 통하는군요.”
“제일 중요한 게 남아있습니다. 일을 시키려면 배는 주고 시키는 게 순서 아닙니까?”
“뭔가 착각하는군요. 한국에 1억 달러나 융통해줬는데, 의당 돈을 주고 배를 사야죠.”
“배를 사라고요?”
“이럴 때 돈을 써야지, 언제 쓰겠어요? 실버스타인 가문에서 특별히 5만 톤급 중고 탱커(유조선) 한 척에 1500만 달러, 1만 톤급 일반 화물선은 350만 달러에 팔아주죠.”
역시 유태인다운 계산법이다.
돈을 빌려줬으니 자기들 물건을 사라는 거다.
“좋습니다. 배를 대여해주실 생각이 없으신 모양인데, 다른 쪽에도 좀 알아보고 연락드리죠.”
“알아보는 건 자유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용선료가 미친듯이 오르고 있는 와중에 여타 해운사가 CS를 도울 리 만무해요. 그렇다고 CS가 신규 배를 발주할 돈도, 시간도 없을 테고 말이죠.”
낸시는 내가 실버스타인 가문의 배를 사게 될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날 위해주는 척 말하고 있지만 실상 정교하게 계획된 일이다.
최고위 유태인 가문인 낸시는 1, 2년내 이스라엘이 중동전쟁을 일으킬 것이고 수에즈 운하가 막힐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거다.
그때가 되면 수에즈 운하를 지날 수 있는 8만톤 이하의 유조선은 똥값이 된다.
이왕 수에즈 운하를 건널 수 없다면, 20만톤 이상의 대형 유조선으로 희망봉을 돌아가는 것이 월등히 이득이거든.
실버스타인 가문은 지금 열심히 비싼 값에 기존 배를 팔아치우는 중일 거다. 어딘가에 20만톤 이상의 거대 유조선을 발주 낸 상태일 거고 말이다.
원래 해운업은 도박판과 비슷해서 정보를 먼저 아는 자가 큰돈을 버는 법이다.
‘이봐요, 낸시. 그 정보를 당신만 아는 게 아니야. 난 당신보다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안다고.’
여하튼, 내가 지금 배를 사면 한마디로 완전 호구 중의 호구가 되는 꼴이다.
“10년 운항에 태평양 해운 동맹에 가입하는 계약부터 하시죠. 배를 구매할 때 같은 값이라면 실버스타인의 배를 우선하여 구매한다는 특약 조건을 삽입해도 됩니다.”
“훗, 구태여 헛고생하겠다니 말리진 않겠어요. 단, 오래 기다리지 않을 거라는 거 명심해요.”
낸시는 최후통첩이라도 하듯, 내가 작성한 계약서에 쓱쓱 서명하고는 귀빈실을 훌쩍 떠났다.
벼랑 끝에 딱 몰아세우고 원하는 계약서를 얻어가는 것이 실버스타인 가문다웠다.
이런 식으로 일본을 몰아붙여 대일 민사청구권에 대해 배상금을 뽑아내기 시작하면 정말 볼만할 것 같았다. 일은 적임자에게 잘 맡겼네
역시 남의 칼날이 나를 향하지 않고, 경쟁자로 향하는 것은 아주 큰 즐거움이다
“속이 탈 거 같은데, 한잔하라고.”
낸시가 떠나가자 밴 플린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에서 잭콕을 만들어주었다.
“고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내가 배 값의 20% 정도는 깎아줄 수 있으니까. 사실 그렇게 위험하고 이익도 박한 항로에 취항하겠다고 나서는 해운사는 거의 없으니까 말이야.”
미국이야 대서양이 훨씬 이득이겠지.
하지만, 아시아에 있는 한국은 그런 항로도 감지덕지지. 땅을 옮길 수는 없잖나.
“배를 마련하긴 해야죠.”
진심이다. 이번 기회에 배를 마련해야 한다.
대세 1호를 수리해서 타는 것 이외에도, 중동에서 북미까지 가는 장거리 항로를 운항하려면 최소한 4척 이상은 있어야 물류 순환이 될 거다.
뀌년에서도 빼돌리는 물건이 꽤 되니, 따로 한 척은 배정해야 할 테고 말이다.
사실 지금이 기회이기도 하다.
원래 역사에서도 현산의 울산 조선소는 크게 성공한 반면, 건설이 겨우 몇 년 늦은 옥포 조선소는 폭삭 망했던 것이 공사를 마치고 배를 찍어내려는 순간 오일쇼크가 닥쳤기 때문이거든.
이왕 해운업을 필두로 조선소까지 짓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월남전이 치열해지고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확고할 때 항로를 뚫어놔야 큰돈을 벌 수 있다.
“다른데 알아봐야 실버스타인보다 싸게 팔지는 않을 거야. 돈 욕심이 엄청난 가문이지만, 그렇다고 사기를 치지는 않으니까. 지금 경기라면 배를 빨리 사서 많이 굴리는 게 남는 장사야.”
밴 플린트는 점잖게 내게 조언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내가 여길 몰랐다면 말이다.
“이걸 보고 말씀하시죠.”
난 밴 플린트에게 시가 상자의 속지를 슬쩍 밀었다.
“뭘 보라는 거야?”
“여기 그림과 글귀요.”
「Mothball Fleet, Suisun Bay」
배 그림 위에 네 단어가 적혀 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전시예비함대, 수위선 만’이라는 뜻이다.
“이런… 대체 누가 이런 고급 정보를…”
밴 플린트는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밴 플린트도 속지를 보고서야 뭔가를 깨닫는 것 같았다.
Mothball Fleet는 미국 해군이 폐기한 군함과 수송선을 모아두고 비상 전시 상황이 발생하면 고쳐서 쓰는 예비함대다.
말이 예비함대지 솔직히 폐선박을 모아둔 것에 불과하다.
미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비밀인데, 그게 지금 샌프란시스코 부근 수위선 만에 있다는 거다.
전생에 해외 출장이라 봐야 몇 번 안 되는데 그중 한 곳인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지명이 나오다니 우연치고는 참으로 공교로웠다.
“누구긴 누구겠어요? 고델이죠. 지금쯤 별을 달았을걸요?”
나도 우연히 발견했다.
한국에서 출항하기 며칠 전, 짐을 챙기다가 밴 플린트 장군에게 선물로 줄까? 하면서 열어봤다가 속지를 보게 된 거다.
“그 꼴통 녀석이 어떻게 별을 달았나 했네. 이렇게까지 돕는 걸 보니, 다 자네 덕분이었군. 그럼, 그렇지. 하하.”
“도움은 서로 주고받는 거죠. 장군님이 날 아쉬워할 상황이 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온다면 동맹이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 건, 도와줘요.”
나는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난 배를 사는데 거금을 쓸 상황이 아니다.
잠시 침묵하던 밴 플린트가 입을 열었다.
“좋아. 수위선 만으로 가. 그곳에서… 아, 그게 어디더라? 그래, 라이베리아 국적의 선박이 있을 거야. 그걸 가져가.”
“라이베리아요?”
조세 회피 국가인가?
이상하네. 원래 선박의 조세 회피를 하려면 파나마 국적을 따지 않나?
“그런 게 있어, 가서 찾아. 다른 배들은 엔진은 물론 주요 부품은 죄다 뜯어낸 상태지만, 라이베리아 배들은 쓸만할 거야. 아마도… 그럴 거야.”
뭔가 사연이 있나 보다.
가서 알아보자.
“고마워요. 잘 쓰겠습니다.”
“시청에 고철값은 치러야 해. 물론 고쳐서 쓰는 것은 자네 몫이야. 나머지 처리는 내가 알아서 하지. 모른 척하고 가져가.”
“이번 일, 꼭 갚을게요.”
“됐어. 이 정도 시가면 충분해.”
밴 플린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시가 상자를 챙겨서 귀빈실을 떠났다.
서두르라는 뜻이리라.
오케이, 땡큐. 밴 플린트.
“차관보님!”
“예, 사장님.”
“일 그만하시고, 우리 쇼핑이나 하러 갑시다.”
귀빈실을 나서며 큰소리로 차관보를 불렀다.
이미 파티는 파장 분위기니 비즈니스 미팅은 이걸로 끝이다.
“쇼핑이라뇨. 숙소에서 계약서도 검토해야 하고…”
“미국까지 왔는데 쇼핑은 해야죠.”
나는 염 차관보를 이끌고 훅하니 주차장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빌린 차로 샌프란시스코까지 달려볼 참이었다.
일단 잭콕을 마시지 않은 염 차관보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샌프란시스코, 수위선 만으로 가시죠.”
나는 차에 놓인 지도책을 펼쳐 짚어주었다.
“쇼핑하러 멀리도 가시네요.”
내가 수위선 만을 가리키니 의아해하면서도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이왕이면 예쁜 걸로 잘 골라보자고요, 하하!”
“예쁜 거요?”
“아, 가는 길에 윤상수 선장도 픽업해서 갑시다.”
“헉! 설마, 상선입니까?”
윤 선장을 데려가자니 대번에 눈치를 채는 염원철 차관보였다.
“아니라곤 못 하겠네요. 하하.”
“으하하, 빨리 가야겠군요.”
염 차관보의 목소리가 갑자기 생기를 띄었다.
그 길로 우린 윤상수 선장을 태워 남쪽으로 달려갔다.
반나절을 넘게 달려 겨우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닿았기에 일단 싸구려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두근두근한 마음에 잠이 쉬이 오질 않았다.
***
다음날, 샌프란시스코 외곽 수위선 만.
새벽같이 일어나,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때우고 차를 몰고 나섰다.
“여기가 수위선 만이군요.”
“샌프란시스코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네요.”
우리가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와 뉴욕 마천루의 실루엣에 익숙해서 그렇지, 실상 미국에도 촌 동네가 많다. 그것도 60년대라면 더더욱.
“그러네요.”
나도 수위선 만은 처음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차갑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아니라, 비릿한 기름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물 색깔도 탁한 황톳빛이었다.
딸랑딸랑.
“실례합니다.”
주변에 건물이라곤 허름한 식당이 전부였기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차피 처음 온 동네에선 식당에서 밥 시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다.
미국이라고 뭐 다르랴.
“누구요?”
문 여는 소리에 덥수룩한 수염에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죽옷만 걸쳤다면 할리 데이비드슨을 몰았을 것 같은 할아버지였다.
주문을 받을 생각 따윈 없는 것 같았다.
손에는 메뉴판 대신 맥주병이 들려 있었다.
아침부터 맥주라니… 멋진데?
“여기 처음 방문한 사람인데요…”
“식당을 찾아온 거라면 잘못 온 거요. 가시오.”
“그 맥주, 10달러에 사죠.”
“뭐, 뭐요?”
“지금 들고 있는 맥주를 10달러에 사겠다고요. 그럼, 질문 하나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미국 할아버지의 윗주머니에 지폐를 꽂아주었다. 이 시대, 10달러면 짭짤하다.
“훗, 잽스 주제에 꽤 딜을 할 줄 아는군.”
“새 맥주를 가져다준다면 20달러에 사겠습니다. 물론, 사람 숫자대로요.”
“좋아, 기다려.”
뚱보 할아버지는 허름한 냉장고를 열더니 한 손으로 맥주병 3개를 꺼내 탁자 위에 ‘텅’ 하니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난 잽스가 아니라 코리안입니다.”
“상관없어. 묻고 싶은 게 대체 뭐야? 이 근처 땅에 투자할 생각이라면 깔끔하게 접어. 농사도, 낚시도 안 되고, 주민들도 다 떠나서 마약상조차 없어. 돈을 벌려면, 저기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가. 여긴 썩어가는 고철 더미밖에 없어. 돈도 명예도 없는 버려진 땅이라고! 빌어먹을!”
맥주 3병 값을 하겠다는 듯 주절주절 묻지도 않은 얘기를 털어놓는 할아버지였다.
“어, 제가 들은 얘기랑은 다르군요. 유령 함대의 영웅들이 있던 곳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죠.”
Mothball fleet, 전시예비함대는 속칭 유령 함대로도 불리지 않나.
“뭐, 유령 함대? 그따위 빌어먹을 소리는 어디서 들은 거야!”
할아버지가 갑자기 화를 버럭 냈다.
뭔가 있네. 제대로 들어왔군.
하긴, 아무것도 없는 곳을 이리 지키는데 사연이 없을 리가 있나.
< 076 : 남자라면 쿠바산 시가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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