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85)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85화(85/589)
< 085 : 난 고쳐 쓰지 않아 >
“우 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본이 실적을 원한다고요?”
염 차관보가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일본이 아무리 약진했다고 해도 여전히 서독과 미국에 비하면 기술 선진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야 양놈들 생각엔 그렇겠죠. 하지만, 실력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일본은 스스로 실력이 대단하다지만,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질 않는 거죠. 그럼 필요한 게 뭘까요?”
“… 헉…”
그제야 염 차관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 제철소가 실적이군요. 100만 톤급 공장을 지지하는 것도, 큰 공장을 지을수록 자기들 기술 수준이 높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되는군요.”
“그뿐일까요? 기술 용역비는 물론, 설비와 건설 원자재가 죄다 일제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열연 설비와 제선 설비는 미쓰비시, 제강 설비는 가와사끼, 기술 용역은 야와타제철, 초기 운영은 후지 제철… 끝도 한도 없군요.”
“게다가 우리 기능공들이라면 엄청난 속도로 제철소를 지을 겁니다. 아마 3년 남짓이면 다 지을걸요? 엄청난 실적이 될 겁니다.”
“서… 설마요… 최소 5년 이상 걸릴 겁니다.”
“50만톤 급 제철소를 짓는데 브라질은 6년, 인도는 9년 걸렸죠. 외국 애들도 국가별로 3년이나 차이 나는데, 우리나라는 얼마나 단축할까요?”
“……”
원 역사에서 우리나라는 딱 3년 3개월 걸렸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외국은 제철소 건설 후 가동률을 80%까지 올리는 데 1년 이상 걸렸지만, 우리는 고작 4개월 만에 가동률 100%를 달성했다는 거다. 모든 일이 기네스북감이었다.
“그게 다 일본 실적이 되는 거군요.”
“그렇죠. 그 실적을 바탕으로 일본은 세계 철강 플랜트 시장을 휩쓸기 시작할 겁니다. 남미, 중동, 동남아, 터키 할 것 없이 미국과 서독 기업을 따돌리고 대형 수주를 독식할 겁니다.”
실제로도 그랬다.
심지어 우리나라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내세워 일본이 기술 이전을 체계적으로 해준 덕분이라며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그래서 일본이 미국의 의견에 반하면서까지 100만톤 제철소 건립을 지지하는 거군요. 한일 협정까지 들먹이면서 말이죠.”
일본이 한일 협정에 제철소 차관을 스스로 집어넣었다는 건가? 이야, 역사가 좀 바뀌었네.
역시 곳간을 좀 채웠더니, 우리가 협상 우위에 있는 모양이군. 끌려갈 필요가 없다.
“지금이 일본으로선 기회니까요. 미국의 대외 차관 지원 정책이 유효할 때 일본 기업이 대형 수주를 따내려는 겁니다.”
우리도 급하긴 매한가지다.
오일 쇼크로 철광석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기 전에 제철소 건립을 완료해야 한다.
“미국이 돈을 풀고, 일본이 먹는 셈이군요. 일본의 속내를 여태 짐작도 못 했다니…”
염 차관보가 신음성을 토했다.
이 양반은 진짜 일본 기업인들이 한국에 우호적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돈 앞에선 얼마든지 가면을 쓸 수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고 싶다느니, 같은 아시안끼리 돕겠다느니, 함께 미래를 열자느니 무슨 소린들 못하겠습니까?”
“그래도 한일협상을 잘 이끌면, 유무상 차관에서 1억불 가량을 제철소에 투입할 수 있을 겁니다. 저들 속내야 어떻든, 우린 실리를 얻으면 되죠.”
“현물 차관까지 포함한 1억불 따위가 어찌 실리죠? 100만톤급 종합제철소라는 실적을 주려면 10억불은 받아야죠.”
일본이 이 실적으로 돈을 얼마나 버는데!
내가 대통령이라면 그따위 차관은 절대 받지 않을 거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차관보님, 제가 볼 때도 1억불로 퉁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설계 용역은 물론, 건설 원자재와 제철소 설비가 죄다 일제입니다. 현물 차관이라는 핑계로 일본의 재고까지 처리해주는 꼴입니다.”
“그렇게까지 주도면밀하게… 하…”
염 차관보는 나와 석 국장을 번갈아 보더니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하아… 참담하군요. 한 나라의 차관보라는 사람이 이리 어리숙하다니.”
염 차관보는 한숨까지 내쉬며 자책했다.
이게 염 차관보의 장점 같았다.
뭐든 진솔하게 털어놓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참담할 필요 없습니다. 일본이 우리의 눈을 가려왔던 거니까.”
나는 염 차관보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60년대엔 속칭 해외통이라고 하는 이들도 죄다 일본을 통해 세계 동향을 살폈다.
세상이 제대로 보였을 리 없다. 일본 입맛에 맞게 세뇌되고 호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 밤이 늦었습니다. 다들 주무시죠.”
“예. 이만 가보겠습니다. 참, 우 사장님. 내일 인천제철 도착 전에 이건 꼭 읽어봐 주십시오.”
석기훈 국장은 서류 뭉치에서 보고서 하나를 맨 위로 올려놓더니 꾸벅 허리를 굽혔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석 국장이 염 차관보를 부축해 건넛방으로 갔다.
염 차관보는 이미 거나하게 취한데다, 자격지심이 겹쳤던지 영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봐, 석 국장… 내가 그동안 바보였나봐…’
벽 너머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로 봐서, 염 차관보가 석 국장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반대편 벽에 기대어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사위가 조용해질 때까지 개요 정도는 파악할 생각으로 말이다.
「인천제철 서독 루르기사(社) 차관 협력 과제」
– 입철식 제철안 (粒鐵式 製鐵案)
– 차관 920만불, 차관 이자 394만불, 합계 1314만불 정부 지불보증 완료.
“입철식 제철안? 입철이 뭐지?”
내가 제철소 출신은 아니지만, 중공업 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인데도 생소한 용어였다.
첫 장만 읽으려고 했는데…
“뭐야? 이거 사기잖아?”
읽을수록 가관이었다.
무슨 원시시대도 아니고 철광석과 무연탄으로 해면철(Sponge Iron, 海綿鐵)을 만들어 그걸 다시 전기로로 녹여 제강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따위 제철 기법은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군부가 궁여지책으로 썼던 공법이다.
역사 교과서에나 나올 기법을 기술 도입이랍시고 자그마치 920만불이나 빌렸어?
이자까지 해서 1300만불이나 갚아야 하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다.
이런 차관을 빌려온 놈은 바보이거나, 자기 주머니나 챙기는 저질 기업가일 가능성이 100%다.
이런 기술을 제안한 루르기사도 양아치긴 매한가지였다. 서독이 이런 양아치 짓을 했다고?
와중에 기술 분야에선 자부심이 대단한 놈들 아닌가?
나는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당장 인천제철로 가서 루르기니 뭐니 하는 놈들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
다음날,
짝.짝.짝.
“어서 오십시오.”
염 차관보와 석 국장을 대동하고 인천제철을 방문했다. 미리 연락을 해둬서인지, 직원들까지 나와서 우리를 환영했다.
“반갑습니다. 인천제철 동일준 사장입니다.”
“대세 실업 우찬수입니다.”
“먼 걸음 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동일준 사장이 제철소 안쪽으로 향했다.
“우리 인천제철은 국내 최대인 70톤급 평로를 보유하고 있어 연간 14만톤 제강이 가능하고, 가역식 열간압연기를 가지고 있기에 후판 열간강판을 연간 10만톤 가량 생산할 수 있습니다.”
“!!!”
후판 열간강판을 만든다고?
생산량은 연간 10만톤에 불과하지만, 여기 경험자들이 있다는 소리잖아.
쓸만한 회사였다.
“여기에 정부의 단계적 철강공업 증진 정책에 따라, 우선 적은 투자비로 해면철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그 해면철을 전기로에서 쇳물로 만든다면 종합제철소에 근접한 형태가 될 걸로 기대합니다.”
“해면철로 용광로에서 나오는 선철을 대신한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해면철 또는 입철이라고 부르는 중간재입니다.”
동일준 사장이 자랑스레 손바닥에 해면철을 올려놓았다.
지름 1.5cm 정도 되는 구멍이 뽕뽕 뚫린 스펀지 형태의 구슬이었다.
구멍마다 시꺼먼 석탄 가루가 끼어있어 이게 쇠 구슬인지 석탄 구슬인지 구별조차 힘들었다.
이따위 해면철을 전기로에서 가열하면 미세한 석탄 가루가 환원반응을 일으켜 전기로 내부의 온도가 1500도까지 올라가게 된다.
용광로면 몰라도 전기로는 견딜 수가 없다.
한마디로 대량 생산을 해본 적도 없는 녀석이 책상 앞에서 공정을 짠 것이다.
‘동일준 이 새끼, 차관 해 처먹었네.’
제철소 사장이라는 놈이 이따위 기술에 920만 불을 쓴다고? 뒷구멍으로 차관만 챙기고, 기술 검토는 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루르기사에서 이 해면철 기술을 이전해주기로 했다 이거죠? 920만불 차관으로 말입니다.”
“예, 서독에서 유명한 마스터들이 우리 회사에 나와 있습니다.”
“갑시다.”
“예에?”
“가서 보자고요. 입철식 제철법을 내 눈으로 봐야겠습니다.”
내가 가보자고 하니 동 사장이 움찔했다.
“뭐 해요, 동 사장? 우 사장님이 보고 싶다지 않습니까. 청와대에 보고드려야 하는데!”
“아, 예. 예.”
염 차관보까지 나서자 동일준 사장이 그제야 앞장을 섰다.
***
“멈추시오. 여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
덩치 큰 독일인이 막아섰다.
“비켜요. 한국 정부에서 나왔소. 마스터를 좀 봐야겠소.”
“관계자 외 출입 금지요. 돌아가시오.”
독일인 덩치는 분명 알아들은 것 같은데, 못 알아먹은 척 손을 휘휘 저으며 사람들을 몰아냈다.
기술을 이전하는데 직접 경비를 데려왔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우 사장님, 독일인 친구들이 워낙 기술 보안에는 완고해서 이럽니다. 제가 일단 보고서부터 드리고 참관은 나중에…”
동일준 사장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리기 마련이다.
“이봐, 비키라고 했어.”
난 독일인 덩치에게 또박또박 경고했다.
어디 감히, 남의 나라에서 양아치 짓을 해?
뻑.
“관계자 외 출입… 커억!”
“시끄러.”
내 눈짓에 지켜보고 있던 기 비서가 그대로 놈의 낭심을 걷어찼다.
뻑.
“크어억!”
“어디서 우 사장님 앞길을 막아?”
기 비서가 덩치의 명치에 또 한 번 정확히 구둣발을 꽂아 넣고는 길 밖으로 끌어냈다.
“갑시다.”
“예, 예.”
내가 앞장서자 다들 당황한 얼굴로 따라붙었다.
동 사장은 물론 인천제철 직원들도 바짝 얼어붙었다.
드드르륵.
기 비서가 닫혀있던 창고 문을 열었다.
“누구요? 여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어?”
마스터라고 하기엔 꽤 젊은 보이는 독일인이 내 일행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이 루르기사의 마스터인가?”
“누구야? 당신?”
“저 드럼통으로 기술 이전을 하겠다는 건가?”
실제로 보니 어이가 없었다.
레미콘에서 떼온 것도 아니고, 지름 2m에 높이 4m쯤 되는 전기로를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가?
“누구냐고!”
기본적인 영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놈이 마스터라니, 개뿔이다.
“이 전기로에서 입철을 녹여 제강하겠다는 것이 루르기사의 핵심 기술입니까?”
석 국장이 훅하니 나서더니 유창한 독일어로 다시 질문했다.
석 국장의 질문에도 마스터라는 놈은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말이 없겠지. 이건 사기니까.
쐐기를 박자.
“이 전기로부터 가동해 봐.”
석 국장이 독일어로 내 말을 통역했다.
“… 뭐, 뭐라는 거야? 다짜고짜 가동부터 하라니. 너희들이 내 보고서를 보고 차근차근 가동법을 익혀야지. 최적 공정을 잡으려면 1년은 족히…”
“지금 당장 돌려보라고! 920만 불짜리인데 철도 못 녹이나!!!”
이 전기로를 돌려보면 확실해질 거다.
내가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자 녀석이 툭 하고 나가떨어졌다.
“우 사장님, 지금 당장 가동은 무리…”
동일준 사장이 거들고 나섰다.
“무리? 이거 들여온 지 반년째라면서요? 그동안 뭐 했습니까? 가동 한 번 안 해보고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말이 나옵니까!”
내 말에 동 사장이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장님, 여기 보고서가 있습니다. 가동 순서가 적혀 있습니다.”
석 국장이 어디선가 보고서를 들고 왔다.
“No! No! No! 아직 안 돼!”
독일 놈이 매뉴얼을 뺏으려고 덤벼들었지만, 석 국장이 몸으로 막아섰다.
“좋군요. 여기 적힌 대로 가동해 봅시다. 입철을 쏟아붓고, 석회석과 탈산제를 포함한 부원료를 넣고, 전원 넣고, 공기만 불어 넣으면 된다고 되어있네요. 어찌 되나 봅시다.”
나는 크레인을 조작해 전기로에 한쪽에 쌓인 원료를 잔뜩 집어 전기로에 집어넣었다.
“우 사장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곤란? 난 전혀 곤란하지 않은데요? 920만불 짜리 최첨단 전기로에서 철강 몇 톤을 못 뽑으면 그게 더 곤란한 거 아닙니까? 이봐요, 당신들 생각에도 내 행동이 곤란해 보입니까?”
“… 어어…”
인천제철 직원들이 입만 벙긋거리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원 켜고, 공기 불어 넣읍시다.”
석 국장이 내 말에 따라 전원을 켜고 설비를 가동했다.
철컥. 위이이이잉.
“으으으…”
마스터라는 독일 놈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다들 창고 밖으로 나갑시다. 죽기 싫으면.”
“예에?”
내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웅성거리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거기 불도저 기사! 이 창고 앞에 슬러지로 둑을 쌓아요. 여기 죄다 불바다 될 거니까.”
“이보십시오. 보자 보자 하니까!”
동 사장이 얼굴을 붉히며 나섰다.
“닥쳐! 다들 시키는 대로 해! 어서!”
염원철 차관보가 신분증을 꺼내서 사방으로 흔들어댔다.
“뭐해! 이 앞에 모랫둑 쌓으라잖아!”
석 국장마저 나서니 그제야 인천제철 직원들이 부랴부랴 움직였다.
둑을 쌓기 무섭게 전기로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으아악! 쇳물이… 쇳물이!”
환호성이 아니었다. 비명이었다.
전기로 밑창이 녹아 쇳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쓰레기 전기로였다.
쓰레기는 고쳐 쓰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망가뜨려야 돈이 된다.
기술 이전에 실패한 서독 정부는 하자 보상금을 내놓아야 할 테고, 차관을 빼돌린 놈은 먹은 돈을 뱉어내야 할 거다.
무엇보다 만신창이가 된 회사가 매물로 나올 거다.
< 085 : 난 고쳐 쓰지 않아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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