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8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87화(87/589)
< 087 : 소문난 잔치 >
“예, 두 가지를 부탁드리려 합니다.”
“말해봐, 들어줄 테니.”
대통령은 흔쾌히 답했다.
“먼저 울산 앞바다를 탐사하고 싶습니다. 허가가 필요합니다.”
“탐사? 설마, 울산 앞바다에서 석유라도 나온다는 건가?”
“유전은 아니고 가스전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입니다. 이왕 항구를 만들면서 중장비를 들이니, 시도는 해봤으면 합니다.”
항구 만드는 중장비와 탐사 장비는 전혀 틀리지만, 대통령이 그따위에 신경 쓰진 않을 것이다.
“가스전은 또 뭐야? 그것도 돈이 된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석유화학단지가 가까이 있어서 작은 규모라도 가스가 나오기만 하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크든 작든 나오기만 한다면, 구멍이야 파고 싶은 대로 파. 나머지 하나는 뭐야?”
“종합제철소엔 인재가 필요합니다. 대한…”
“그야 당연하지. 아무리 우 사장이라도 혼자서는 무리야. 안 그래도 종합제철소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놓고 똑똑하다는 이들은 다 모아놓았어. 거기를 접수해. 부탁이랄 것도 없군.”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대한중석 박태진 사장을 영입하려 했더니, 대통령이 먼저 추진위 얘기를 꺼냈다.
위원회가 꾸며져 있다면 박태진 사장 영입은 나중으로 미뤄도 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부담스러웠는데 말이다.
여하튼 곳곳에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놓다니, 돈이 없어서 그렇지 인력은 충분한 모양이다.
한국 종합 주식회사다운 면모였다.
“명심해. 종합제철소가 실패하면, 임자에게 넘기는 인천제철… 그거 법을 바꾸는 한이 있어도 다시 돌려받겠어. 알겠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내 손에서 환골탈태할 인천제철소를 무사히 먹기 위해서라도 종합제철소는 잘해야겠군.
***
며칠 뒤, 서울 종로 청운각.
“아이고, 김상. 어서 오십시오.”
“하하, 야쓰이 선생. 오랜만입니다.”
일본 국회의원 야쓰이와 김중필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한일 양국은 공식 외교 루트 대신 막후 협상을 주로 했는데, 그 장소는 대부분 이런 고급 요정이었다.
김중필 의원과 야쓰이는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거물급 정치 브로커였다.
“아이고, 이건 또 누구십니까? 조기영 부총리님과 도병철 사장님도 오셨군요.”
“우지야마 경제기획청 장관님이 참석하신다면서요. 그럼, 오늘이 실질적인 한일경제 각료 간담회인데 제가 빠지면 되겠습니까?”
“저는 미쓰이의 니시지마 지부장님 참석 소식을 듣고 온 겁니다. 하하하.”
“어서 안으로들 드시지요.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일 막후 인맥이 죄다 모인 날이었다.
한국에선 김중필 의원, 조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도병철 수성 사장이 참석했다.
이에 화답하듯 일본에서는 야쓰이 의원, 우지야마 경제기획청 장관, 미쓰이 상사의 니시지마 극동 지부장이 내한했다. 이들은 여태까지도 수많은 일을 같이해온 사이였다.
야쓰이 일행은 조만간 개최될 ‘한일경제 각료 간담회의’의 사전 준비를 위해 들어왔다지만, 실제론 인천제철 소식을 입수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드디어 일본 철강 업계가 한국에 진출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었다.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일단 위스키부터 한잔하셔야죠.”
“향이 좋군요.”
“김 의원님이 좋아하시는 발렌타인 17년 산입니다. 미쓰이에서 찬조했습니다.”
“맘 놓고 즐기십시오. 밀수 아닙니다. 하하.”
미쓰이 상사의 니시지마는 대놓고 밀수를 언급했다. 여기 모인 이들의 특기였다.
6명의 한일 막후 인맥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렸다. 청와대에서 마시는 막걸리보다 백배 천배 맛이 있었다.
“듣자 하니 한국 철강 업계에 비보가 있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아, 인천제철 말씀이군요. 서독 놈들이 사고를 쳐서… 원…”
“어휴, 그러니 일본과 함께 제철소를 짓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고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누가 그걸 모릅니까? 돈도 없는 주제에 야당 놈들은 한일 협정에 뭔 조건이 그리 많은지. 그깟 독도 따윈 폭발시켜버리면 그뿐인 것을… 쯧쯧.”
타이밍 좋게 일본 인맥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할 줄 아는 김중필이었다.
“경제기획원도 같은 생각입니다. 솔직히 한일 양국 모두 대일청구권 자금을 종합제철소에 사용하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왜 이리 서로 버티는지 모르겠어요.”
조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일본 우지야마 장관을 빤히 쳐다보면서 압박했다.
“한국 정치권에서 매듭을 풀어줘야 저희도 내각을 설득하고, 기업인들을 한국으로 보내지요. 솔직히 야하타 제철, 후지 제철, 일본강관 등 한국을 돕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수두룩합니다.”
우지야마 장관은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연거푸 술잔은 기울였다.
말로는 정치권을 탓했지만, 어서어서 일본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라는 뜻이었다.
“과거에 묶여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니 답답할 뿐입니다. 솔직히 우리 미쓰이도 여태껏 수성에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까? 원자재도 대주고 판로도 뚫어주고 했지요. 이제는 일본철강기업 연합(JG, Japan Group)도 한국에서 수성 같은 믿음직한 파트너를 구할 때가 되었습니다. 같이 세계로 나가야죠.”
니시지마 지부장도 열변을 토했다.
도병철 사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은 얼핏 들으면 틀린 말이 없었다.
일본 정부도 내부적으론 종합제철소 수주에 대일청구권 자금이 쓰일 거라 여기고 있었다.
단지 그걸 공식화하지 않는 것은 한일 협정에서 우위를 점해 일본 기업들이 설계, 원부자재, 플랜트 시공, 차후 유지보수까지 깡그리 일괄 수주를 받기 위한 전략이었다.
즉, 일본 정부는 계속 발을 빼는 척하고 막후 정치 브로커는 주야장천 우호적인 메시지를 던져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조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도록 몰아가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다.
뺨 때리며 어른다고나 할까?
“그런 세부적인 문제보다, 각하께서 계속해서 한국 주도의 종합제철소를 밀어붙이시는 것이 문제입니다.”
“뭔 각하가 문제입니까? 협력체로 일본이 아니라 계속 이상한 데만 찔러대는 상공부 놈들이 문제지요.”
“다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제일 큰 골칫거리는 꺼져가는 불길에 우찬수 그놈이 다시 장작을 쑤셔 넣었다는 것 아닙니까?”
셋은 제각기 다른 말을 내뱉었다.
그런 정보들은 고스란히 앞에 있는 일본인들의 머릿속에 기억되었다.
“우찬수라면 대세 실업 사장 아닙니까? 우리 비료공장 프로젝트를 망가뜨린 그 개새끼!”
니시지마 지부장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땅도 미리 다 사놓고 건설자재도 다 뽑아놓고 이리저리 정치헌금도 해놨는데 프로젝트 자체가 날아가 버렸다.
되기만 했으면 한국 비료 시장을 다 접수할 거였는데 막판에 가서 우찬수 그놈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니시지마 지부장님. 그놈이 이번에도 종합제철소를 짓는다며 추진위원장을 맡았더군요. 또 어떤 양아치 짓을 할지 모릅니다. 부총리님, 그놈 좀 어찌 안됩니까?”
“크흠, 각하께서 지켜보는 자라…”
조 부총리는 술을 마시는 척하며 답을 피했다.
그의 관심은 한일 협정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 대일 청구권 자금을 종합제철소로 돌리는 것을 자기 성과로 포장하는 것이었다.
우찬수가 맘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지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아니, 부총리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어찌합니까? 김 의원님, 계속 두고만 보실 겁니까? 동일준 사장도 그놈 때문에 옷을 벗은 것 아닙니까!”
인천제철 동일준 사장은 김중필에게 정치 자금을 대는 물주였다.
인천제철 사고로 어쩔 수 없이 꼬리를 잘랐지만, 김중필에겐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당장은 두고 봐야지요. 어차피 지금 우찬수 놈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린 일본과 함께 제대로 된 제철소를 기획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필귀정 아닙니까?”
“김 의원님 말씀이 맞습니다. JG(Japan Group, 일본 철강기업 연합)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일단 종합제철소 기술 용역 계약만이라도 맺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야쓰이 의원이 훅하고 나섰다.
한일 협정에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물밑으로는 실무적인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 일본의 전략이었다.
“쩝, 그런 일에는 뭔가가 좀 필요한데…”
“그래서 미쓰이 상사가 참석한 것 아닙니까. 미국 몰래 밀가루도 날랐는데, 뭐든 못할까요? 하하!”
야쓰이 의원은 껄껄 웃으며, 미쓰이 상사의 니시지마 지부장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쓰이 상사는 한일 정치 브로커의 물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3년 전에도 캐나다에서 밀가루 10만 톤을 수입해 한국으로 빼돌렸다.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일을 꾸미면 그뿐이었다.
“뭐, 어렵지 않습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뭐든 실어다 드리지요. 말씀만 하십시오.”
“사카린, 전화기, 표백제… 아, 수세식 변기를 부탁합니다. 요즘 수입금지 품목 중에 제일 돈이 되는 것들입니다.”
“원가로 한배 가득 실어다 드리겠습니다.”
“허, 3배 장사하는 품목인데 원가로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끼리 아무렴 어떻습니까? 종합제철소 건설만 어찌해주시면 되죠. 그럼 미쓰이 상사는 제철소 건설자재에서 좀 남겨 먹으면 됩니다. 하하하.”
“하하하, 수성도 열심히 로비하겠습니다.”
도병철 사장은 대놓고 정치인들에게 로비하겠다며 껄껄 웃어댔다.
“리베이트는 10%가 기본인 것 아시지요?”
“하하하, 그럼요. 그럼요. 저희야 늘 기본보다는 더 하죠.”
조기영 부총리는 손가락 열 개를 펴 보이며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종합제철소 건설비가 최소 1억불은 될 터이니, 리베이트가 못해도 1000만불은 될 것이다.
미쓰이 상사가 무슨 물건을 싣고 들어오냐에 따라 그 돈은 몇 배로 뻥튀기가 될 것이고 말이다.
“미래를 위하여!”
“한일 우호 증진!!”
“간빠이!”
“간빠이!”
6명은 신나게 발렌타인을 마셔댔다.
이 시대 일본인이 한국 시장에게 돈을 뽑아가는 것쯤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이렇게 한국 막후 인맥을 데려다 콩고물을 미끼로 살살 구슬리면, 먹음직한 프로젝트가 척척 만들어졌다.
죄다 한국의 국고나 차관에서 떼먹는 돈이라 밝히기도 어렵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뒤탈이 없는 알짜배기 장사였다.
***
종합제철소 추진위원회.
「오직 종합제철만 생각하고 불철주야 노력하라. 노력해도 안 되면 한강에 빠져 죽어라.」
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했더니, 섬뜩한 표어가 벽에 떡하니 붙어 있었다.
과하다 싶었지만, 위원들이 뿜어내는 열기를 표현할 더 적합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석 국장님, 예비설비 품목 자료 좀 주세요.”
“예, 위원장님.”
나는 며칠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자료 검토를 했다.
종합제철소 같은 큰 프로젝트를 하려면 ‘일반 기술 계획서(General Engineering Plan, GEP)’부터 작성해야 한다.
그걸로 타국 정부나 온갖 기업들에 제출하여 투자금을 끌어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60년대 공무원들에게 크게 기대가 없었는데, 여기 와서 정책 추진이나 업무 능력을 보니 이런 내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오히려 청와대의 업무 형태가 즉흥적이었고, 무능한 조직은 국회였다.
‘6, 70년대 경제 발전이 그냥 고스톱 쳐서 얻은 게 아니야. 이 사람들은 정말 일을 열심히, 잘해.’
그 증거가 내 책상 앞에 있었다.
종합제철소 검토 단계부터 완성까지 마일스톤이 일반 기술 계획서(GEP)로 작성되어 있었다.
기술검토, 경제성 검토, 수요 전망, 원부자재 조달 전략, 자금 조달 계획 등등… 온갖 자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공정 설계가 다소 비효율적이라는 건데, 그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21세기 기술로 메꿔야 할 부분이었다.
“우 사장님,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 시간 좀 되십니까?”
“말씀하세요.”
염 차관보가 자리로 찾아왔다.
여기 사무실엔 경제기획원, 상공부,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산업은행 등등 온갖 전문가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부위원장은 염원철 차관보였는데, 이처럼 자리로 찾아왔다는 것은 위원들에게 등 떠밀려서 대표로 질문하러 온 것이다.
“우 사장님, 어째서 서독에 특사로 안 가시고 피츠버그 회의로 가십니까? 각하의 친서도 있고, 인천제철 사고 보고서도 있는데 서독 수상과 맞상대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서독 정부가 우리 종합제철소를 지을 돈을 몽땅 낼 수는 없을 거 아닙니까? 돈이 모이는 곳에 가야죠. 서독 정부도 만나고 다른 회사도 만나고.”
피츠버그 회의는 미국의 쿠퍼스사(社)가 주관하는 일종의 컨퍼런스 회의였다.
60년대라 논문 발표 등은 없었고, 온갖 철강 회사와 투자사들이 모여 내년도 세계 경기를 예측하며 어찌 투자할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사교성 회의였다. 속된 말로 돈 있는 철강 회사들만 모이는 그들만의 잔치였다.
그런 회의에 내가 참석한다고 공문을 날렸다.
한국 정부의 공식 조직인 ‘종합제철소 추진위원회 의장’ 자격으로 참가 의사를 밝혔으니,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그…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그런데… 그 피츠버그 회의의 호스트가 쿠퍼스사(社)인데 저희들이 이렇게 초청장을 보내도 되는지요?”
내가 해당 회의의 초청장을 온갖 군데에 날리자, 소심한 염 차관보가 다른 위원들을 대신해 물어 온 거다.
“상관없습니다. 파티에 손님이 많으면 좋죠. 우리야 그 회의서 만났으면 한다고 각 기업에 초청장을 보냈을 뿐, 참여 여부는 그쪽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죠.”
“외람된 말씀인데, 우리 목표는 서독인데 막상 서독 정부가 안 오면 어쩌죠? 낭패 아닙니까?”
“무슨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전 세계 경쟁 철강사가 다 모인 곳에 사고 보고서를 들고 가는데, 서독 정부가 안 온다고요? 우리가 보고서 공개할까 봐 득달같이 달려올 겁니다. 칼자루 쥔 쪽은 우립니다.”
“아… 그… 그렇군요.”
21세기에는 이런 컨퍼런스가 너무 흔해서 문제지만, 60년대는 흔치 않아서인지 다들 겁을 먹었다.
나로선 오히려 이런 회의가 조만간 열린다니 국운이 따르나 보다 싶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서독 정부가 총건설비의 30%만 내줘도 일이 백배는 쉬워질 겁니다. 미국이든 프랑스든 다른 기업들이 몇 %씩 경쟁적으로 가져갈 겁니다.”
“어, 경쟁적으로 돈을 낼 거라고요?”
왜 고개를 갸우뚱하지?
그러고 보니 내가 설명을 안 했던가?
“우리 종합제철소를 국영기업이 아니라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피츠버그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에요.”
“예에? 주식회사라고요?”
“자자, 일단 모여요. 작전 설명할 테니까.”
< 087 : 소문난 잔치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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