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9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97화(97/589)
< 097 : 모 아니면 도 >
종합제철소 추진 위원회.
“위원장님, 휴가 잘 보내셨으니까?”
“예, 잘 쉬고 왔습니다. 그간 업무는…”
“말씀하셨던 공장부지 확보부터 보고드립니다. 300만평 목표치를 확보하였습니다.”
위원회로 돌아오자마자 석 국장은 내게 서류부터 내놓았다.
“…목표치를 달성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놀랄 일이었다. 아무리 극비리에 땅을 매입했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 일인가?
석 국장마저도 의외의 일이었던지 보고를 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렸다.
“어떻게 된 일이죠?”
“염 차관보님의 힘이 컸습니다. 가장 힘들 거라 예상한 곳이 보육원을 운영하는 수녀원이었는데, 매일같이 그쪽으로 출근하시며 설득하셨습니다.”
“하하하, 별거 아니었습니다. 땅값을 시세보다 좀 더 쳐주고, 보육원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 편한 땅을 소개해드렸을 뿐입니다.”
염 차관보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한 모양이네.
하긴 이 양반은 둥글둥글하니 모난 데가 없어서, 어느새 주변 사람과 동화되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게다가 땅값에 더해 옮겨갈 곳도 알선해 주는 울산 공단의 노하우를 적극 채용했던 모양이다.
“주변에서 존경받던 수녀원이 옮겨가자, 마을 사람들도 한꺼번에 이주를 결심해서 일이 아주 편했습니다.”
영일만 근처의 민간인은 고작 1200명에 불과했다. 투기꾼이 달라붙지 않고 극비리에 처리하니 이렇게도 일이 되는구나.
터전을 옮기는 대가로 땅값을 시세보다 높게 쳐준 정도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거기에 종합제철소가 들어설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은 없었던 거군요.”
“예, 정부가 추진하는 농지 개량 사업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이대로 청와대에 보고하고 착공하면 되겠군요.”
“예, 어떤 설계로 하실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벡텔사와 JG 모두 종합제철소 기술 용역안을 제출했습니다.”
석 국장은 두 가지 안에 대하여 서류를 내밀었다. 역시 두 곳 모두 정식 설계도가 아닌 모식도를 제출했다. 원천 기술을 도입하기엔 고생 꽤나 할 것이 뻔했다.
“추진위의 의견으론 어느 쪽입니까?”
“둘 다 팽팽합니다. 가격은 싸지만, 일본의 기술에 종속될 것이냐? 가격은 비싸지만, 분야별로 서구의 기술을 조합할 것이냐? 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정치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공무원은 위에서 전략을 정하면 밑에선 전술을 구사한다는 개념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예, 그렇습니다. 각하께서 위원장님이 휴가에서 복귀하면 곧바로 독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주식회사다운 말이다.
일본 쪽에서 차관 3000만불이 들어왔군.
그 돈을 누구에게 할당해서 어떤 공장을 먼저 짓게 할 거냐 하는 이권을 논의하고 싶을 거다.
“다녀오겠습니다.”
“예, 위원장님.”
나는 가는 길에 집에 들러서 뵈스트의 설계도 사본을 가지고 청와대로 향했다.
선택지가 두 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자택일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대부분 전혀 다른 세 번째 선택이 최선이다.
**
청와대.
“부르셨습니까, 대통령님.”
나는 청와대에 도착하자마자 부름에 응한 듯 인사를 꾸벅했다.
“그래, 외유를 다녀왔다고?”
“예, 호주에 좀 다녀왔습니다. 인천제철에 쓸 철광석을 싸게 구매하려고 말입니다.”
“일본 종합상사를 통하지, 뭐하러 직접 계약하나? 가격 협상력이 떨어질 텐데.”
“제게 배가 있으니, 운임을 생각하면 직접 구매하는 것이 조금 더 싸기 때문입니다.”
“흐흠, 장사꾼이 한 푼이라도 더 남는다면야 그리해야지. 한잔해.”
대통령은 내게 막걸리를 권했다.
아직 70년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막걸리에 감자전에서 양주에 과일 안주로 넘어가지 않았다.
물론 청와대 막걸리는 쌀막걸리였다.
쌀 부족으로 법으로 쌀막걸리를 못 빚게 하고서는, 청와대는 쌀막걸리를 납품받다니, 발상 자체가 참으로 60년대답다.
뭐든지 억지로 끼워 맞춰 꾸역꾸역 돌아가는 이 시대를 상징하는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로서든 이렇게 맛난 쌀막걸리가 21세기에도 명맥을 이어갈 테니 그건 다행인 건가.
“일본에서 3000만 불을 내놨어. 추진위에서 발주부터 해야지. 설계가 어느 쪽이 되든 말이야.”
“예. 3000만 불은 일단, 정지(整地) 작업과 항만 건설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에 도로와 전기, 공업용수 사업에 쓰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내 말처럼 쓰면 국민 세금을 안 써도 된다.
미국 투자자들을 모집할 때 내걸었던 기본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가 있다.
“임자 의도는 알겠지만, 정치를 미워만 해서는 안 돼. 일본을 멀리해서도 안 되고. 전처리 시설이야 어쨌든 필요할 테니, 고깝더라도 이권은 좀 챙겨주도록 해.”
“대통령님…”
“일본 돈도 돈이야. 임자 덕분에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돈 받았으면 충분해.”
대통령은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잔을 채워주었다. 하긴 객관적으로 보면 이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긴 하지. 전처리 시설이 필요하다면 말이지.
“대통령님, 이건 저와 대통령님만의 비밀입니다. 저에겐 전처리 시설이 필요 없는 최첨단 설계도가 있습니다.”
“… 임자, 뭔 소리야? 막걸리 한 잔에 취했어?”
“정신 멀쩡합니다. 이 설계도대로 하면, 미국 투자금만으로 100만톤급 종합제철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유상차관 3000만 불을 유틸리티에 쓴다면 세금을 지출할 일도 없습니다.”
나는 뵈스트의 설계도를 탁자에 펼쳤다.
전문가가 아니라고 해도 이 정도 설계도는 누가 봐도 느껴지는 게 있는 법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화가들만 감동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이런 설계도를… 어디서 구했어?”
“인천제철을 살리려고 세계 곳곳을 수소문하다가 우연히 얻었습니다. 가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고 있습니다.”
솔직한 내 심정이다.
뵈스트 가문이 종합제철소 설계도를 갖고 있을 줄은 나도 몰랐거든.
“정말 설계도에 전처리 공정이 없군. 이게 구현 가능한 설계도라는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기존의 용광로를 대신한 유동로에서 철광석을 직접 환원시켜 쇳물을 뽑는 방식입니다. 효율이 극단적으로 높기에 건설비, 재료비, 운영경비 측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제철소가 될 겁니다. 첨단이라 떠드는 일본 제철소 따윈 가뿐하게 제칩니다.”
나는 설계도의 각 파트를 손으로 짚어가며 주요 개념을 설명했다.
“흠… 나야 임자를 믿고 싶지만, 그게 만약 실패한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손 털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인천제철에서 사전 검증을 하겠습니다. 허니, 올해 말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삼화제철서 고로를 가져왔으니, 뵈스트의 설계도대로 올해 안에 쇳물을 뽑으면 되는 거다.
“그때까지 검토하는 척만 하자? 그런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인천제철에서 검증한 결과를 보시고 최종 선택하시면 됩니다. 최초로 첨단 제철소를 시도할지, 아니면 기술 종속을 감내하고 검증된 외국의 기술을 받을지 말입니다.”
“음, 기존 방식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가 최첨단 방식을 처음으로 시도한다… 그게 가능한가?”
“빌붙어서 기술을 배우나, 맨땅에 헤딩하나 어렵긴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천지 차이일 것입니다.”
“……”
나조차도 이 일을 백프로 확신할 순 없다.
솔직히 제철소는 나도 해보지 않은 일이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해야할 것이다.
아무도 기술을 쉽게 가르쳐주진 않는다.
텅!
“답이 뻔하게 나와 있는데, 나보고 고르라고 하는 건가!”
내 말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더니 갑자기 술상을 크게 내리쳤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나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역시,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나보고 알아서 고르라는 얘기였다.
정확히는 뭘 고르든 상관없이 결과가 좋게 만들라는 의미였다. 결과가 좋으면 대통령이 그 안을 선택한 게 되는 거다.
텅텅!
“척하면 척하는 맛이 없어. 시키는 것만 하려고 들지.”
“일이 잘되게끔 하겠습니다. 다만 찝쩍거리는 이들만 막아주시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찝쩍거려?”
“예, 추진위에서 설비 구매든 경비 지출이든 뭐든 하려고만 하면 사방에서 이런 자료 내놔라, 저런 자료 내놔라, 감사하겠다, 지출 내역 조사한다… 등등 딴죽을 겁니다.”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미리 볼멘소리를 했다.
뭐 하십니까? 마패 내놓으십시오.
“하긴 숟가락 얹으려는 놈들이 한둘이겠어?”
대통령은 알겠다는 듯 척척 책상 앞으로 걸어가 뭔가를 휘갈겼다.
「종합제철소에 관한 모든 업무는 추진 위원회에서 책임지고 결정한다. 수의계약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보증한다.」
박 대통령이 해당 메모 아래, 친필서명을 했다.
말로만 들었던 종이 마패였다.
필체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대통령에게도, 나에게도 도박이었다.
“찝쩍거리는 놈들 있으면 이거 보여줘. 임자 소신대로 밀고 나가.”
결과가 나쁘면 난 죽은 목숨이지만, 그전까진 전권을 위임받은 것이다.
마패가 있는 한 맘껏 미친 짓을 해도 된다.
“예, 대통령님. 제철소는 포항에 짓겠습니다. 이름은 뭐로 하면 되겠습니까?”
“뭐, 포항?… 크흠, 그럼 포항제철로 해.”
왜 그런 표정이신지? 소신대로 밀고 가라며.
“예, 대통령님.”
여태 포항을 검토 중이라고 보고한 적 없었지만, 결과만 책임지면 되는 거다.
이미 토지 보상 계약금을 다 집행했기에 물러설 곳도 없었다.
**
나는 청와대를 빠져나오자마자 위원회에 전화부터 걸었다.
“대통령님께서 포항에 비밀리에 토목공사부터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최종 설계는 인천제철에서 사전 검증하고 실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전화기 너머로 환호성이 들렸다.
“석기훈 국장은 기술위원들과 함께 내일부터 인천제철로 출근하십시오.”
<예, 위원장님.>
실력을 증명할 때가 왔다.
***
한 달 뒤,
「종합제철소 입지는 아직도 오리무중?」
「종합제철소, 기술도입은 어디서?」
「갈 길 잃은 단군 이래 최대 사업」
「한국조선공사 최종 부도 처리. 비리 연루자 수백 명에 달해」
세수도 하기 전에 신문부터 살폈다.
1면이 종합제철소 건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아직 설계와 부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아, 사방에서 난리였다.
특히나 김중필을 위시한 여당 의원들이 압박을 엄청나게 하는 와중에도 염원철 차관보가 유들유들하니 잘 대처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인천제철에서 업무에 매진할 수 있고 말이다.
“찬수야, 가자.”
“드디어 오늘이냐?”
“응, 다들 기다리느라 숨넘어가겠어.”
하긴 만전을 기하느라 초도 시험을 2번이나 미뤘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
인천제철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예에에에에!”
“다 같이 외치고 시작합시다. 안전! 안전! 안전!”
“안전! 안전! 안전!”
모두 방열복을 착용했다.
대세 실업에서 카블라를 대량으로 지원했다.
삼복이, 뵈스트, 석기훈 국장, 추진위 기술위원들, 인천제철 직원들 모두 오늘을 기다렸다.
“뵈스트 공장장님, 용해로 내화제 확인하셨죠?”
“예, 사장님.”
가장 문제가 되었던 용해로는 삼화제철의 고로 여분과 망가진 전기로를 재활용했다.
쇳물이 엉겨 붙었던 4대의 삼화제철 고로를 자르고 붙여 밑동으로 삼고, 밑바닥만 녹아버린 전기로를 꼭지로 삼았다.
쿠퍼스사의 용광로를 가져오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낸 아이디어였지만, 만들고 나니 잘한 결정이었다.
재료는 국산 철광석과 무연탄을 사용했다.
이런 등급외 수준의 저급품으로 쇳물을 뽑는다면, 호주산 갈철석을 투입하면 대박 터지는 거다.
“사장님, 화입식 전에 휘호 부탁드립니다.”
인천제철의 직원 대표가 내게 큼지막한 붓과 페인트 통을 가져다주었다.
떨리는 손으로 붓을 잡았다.
“해봅시다.”
나는 용해로에 크게 철강보국이라고 썼다.
“와아아아아!”
이 용해로에서 쇳물이 터져 나오면 대한민국은 또 한 계단을 오르는 거다.
‘제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주렴.’
나는 정성을 다해 용해로를 쓰다듬었다.
“불 지핍시다!”
“와아아아아!!!”
“고고!”
삼복이가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응원했다.
녀석도 이제 얼굴에서 검댕이 지워지지 않았다.
직원 대표가 긴 철봉에 횃불을 만들어 왔다.
용해로에 일단 불을 붙이면 이제 1년 365일 가동해야 한다.
화르르륵.
“전 직원, 각자 위치로!”
“위치로!”
한 달 동안 대세 식으로 교육한 보람이 있었다.
내 명령에 전 직원이 한목소리로 복창했다.
“산소 밸브 온! 타깃 압력 20psi!”
“산소 온! 20psi!”
용해로로 연결된 배관으로 산소를 밀어 넣는 것부터 시작이다. 내가 불을 붙였으니 무연탄을 집어넣으면 엄청난 가스를 만들기 시작할 거다.
“로테이션 슈트 온! 무연탄 분당 2톤 투하.”
“투하! 분당 2톤!”
레버를 잡아당기자 덩어리로 성형한 무연탄이 용해로로 쏟아져 들어갔다.
용해로의 압력 게이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압력 게이지 읽어!”
“21psi! 23! 25! 스펙 한계에 도달합니다.”
“아냐, 27까지!”
“26! 27!”
“브리더 오픈!”
28psi, 즉 2기압이 되면 용해로는 위험해진다.
플랜트에선 내부 압력이 2기압을 넘으면 폭발 위험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브리더 오픈!”
“게이지 읽어야지!!!!!”
“26! 24! 22! 급격히 떨어집니다.”
“뵈스트! 유동로 1번! 베드 버너 점화! 타깃 온도 900도!”
“점화! 타깃 온도 900도!”
유동로는 뵈스트 같은 전문가가 다뤄야 한다.
60년대에는 1000도 가까이 되는 초고온을 읽는 게이지가 없기 때문이다.
K-타입 열전대도 잠시는 몰라도, 1년 내내 가동되는 유동로 안에선 못 견딘다.
내열 유리창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보고 산소의 양을 감으로 조절하는 거다.
21세기에도 베테랑은 적외선 카메라 대신 눈으로 판단한다.
콰르르릉…
유동로가 울기 시작했다.
“뵈스트, 정신 차려! 정신!!!”
“헉!”
플랜트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유동로가 울면 대화를 해야 한다.
“1번 유동로 아웃렛 오픈! 2번 유동로 점화!”
“1번 아웃렛 오픈! 2번 유동로 점화!”
콰르르릉… 콰쾅!
“뭐해! 1번 유동로에 철광석 더 퍼부어! 놈이 울잖아!”
“나와! 찬수가 퍼부으라잖아!”
당황한 직원이 어리바리 대자 삼복이가 냅다 달려가서 투입 레버를 확 잡아당겼다.
녀석이 내 말투에서 다급함을 알아챘다.
다행히 철광석이 미친 듯이 유동로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거 모 아니면 도다!’
반응속도가 미쳤다.
내가 예상한 반응속도가 아니야.
파이렉스 공법, 빨라도 너무 빨라.
이건 미니 밀(Mini Mill)용 공법이 아니다.
하이 밀(High Mill), 거대한 고래를 움직이는 공법이다.
“2번, 3번, 4번! 유동로 연속 점화!!!”
< 097 : 모 아니면 도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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