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98)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98화(98/589)
< 098 : 울부짖는 용해로 >
“2번, 3번, 4번! 연속 점화!”
“뵈스트! 베드 버너 최대 출력으로!”
“우 사장님, 위험합니다!!!!”
“최대 출력!! 타깃 온도 900도! ”
뵈스트가 멈칫하며 날 쳐다봤지만 난 냅다 고함을 질렀다.
파이넥스 공법은 공정 설계가 다람쥐 쳇바퀴처럼 서로 물고 물려 있다.
용해로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유동로의 원료이기도 하기에, 한쪽의 반응속도가 높으면 다른 쪽도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
안 그러면 쇳물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어느 한쪽의 배관이 터져 나간다.
콰르르르릉.
유동로가 연달아 크게 울어댔다.
“1번 유동로 압력!”
“1번 24, 26, 28, 29psi!”
“1번 아울렛 오픈!”
“오픈!”
“2번 유동로 압력!”
“2번! 27, 28, 29, 30! 위험합니다.”
“2번 열어! 3번까지 미리 열어!”
“4번 유동로 압력!”
“4번! 24, 25, 26, 27psi…”
“기다려!!! 4번 아울렛 기다려! 용해로 무연탄 투입 중지! 석회석 투입! 분당 4톤!”
원래는 이렇게 과하게 석회석을 투입하지는 않지만, 반응속도가 너무 빠르다.
슬래그를 과하게 만드는 한이 있어도 일단 반응속도를 좀 낮춰야 한다.
“석회석 투입! 분당 4톤!”
콰콰콰콰콰.
“4번 유동로 밸브 오픈!”
“오픈!”
“유동로 부근, 전원 안전 위치로!”
“전원 안전 위치로!”
펑! 퍼펑!
“우 사장님! 용해로에서 폭발음이 들립니다.”
“괜찮아! 괜찮아! 안전 위치 유지해!”
유동로에서 반쯤 환원된 철가루가 용해로로 쏟아지니 작은 폭발음이 연이어 들렸다.
오히려 좋은 신호였다. 적게나마 쇳물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스팀 밸브 온! 타깃 증기압 19psi!”
“스팀 밸브 온! 타깃 증기압 19psi!”
21세기 공장이라면 스팀 대신 압력 조절용으로 불활성 가스를 넣겠지만, 현재로선 스팀 투입 설비조차 감지덕지했다.
콰르르릉. 콰르르릉.
철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광석에서 떨어져 나온 이물질을 석회석과 반응시켜 슬래그로 만들어서 뽑아내야 한다.
흘러나오는 모습이나 생긴 게 똥처럼 더럽게 생겼기에 작업자들은 그냥 쇠똥이라고 부른다.
슬래그가 만들어질 때 다량의 가스가 터져 나오기에 스팀을 분사해 반응속도와 용해로 내부의 압력을 조절해야 한다.
이런 자잘한 노하우를 얻기 위해 기술용역비로 10여 년에 걸쳐 수천만 불씩 지급하는 거다.
나는 그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
“29, 28, 27, 26, 용해로 압력 정상으로 복귀합니다.”
“출선구 오픈!”
“출선구 오픈!”
콰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출선구를 열자 슬래그와 함께 불꽃이 터져 나왔다. 염 차관보와 일부 인원들은 환호했지만, 대부분의 기술자는 숨죽여 용해로를 쳐다보았다.
기다리는 것은 슬래그도, 불꽃도 아닌 시뻘건 쇳물이었다.
‘제길, 슬래그가 너무 많아!’
80mm 대형 출선구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슬래그만 토해낼 뿐 쇳물을 뿜어내지 못했다.
1초가 한 시간 같았다.
“뭐해, 막혔잖아. 달려!”
“출선구 뚫어!!!”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일부 직원들이 쇠판을 방패처럼 들고 쇠 파이프를 창처럼 들고 뛰쳐나갔다.
“뭐 하는 짓입니까! 돌아와요.”
말릴 새도 없었다. 십여 명의 직원들이 용해로의 출선구 주변을 마구 쑤셔대고 두들겨댔다.
텅! 텅! 텅!
“방패로 막아, 너무 뜨겁잖아.”
“뚫어요, 어서!”
“쑤시지 말고 내리쳐!!!”
돌아오라는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철판을 방패 삼아 열기를 막고, 쇠 파이프로 출선구를 마구 두들겨댔다.
플랜트 종사자라면 배관을 점검하거나, 설비가 뭔가 말을 안 들을 땐 쇠 파이프로 일단 두드려 보는 법이다.
텅! 텅! 텅!
돌아오라고 목청껏 외쳐도 해도 출선구를 두드리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할 수 있어. 녹여! 녹여 버려!!!”
“용광로야! 녹여라!!!”
“녹여라!!!”
급기야 펜스 뒤쪽에서도 쇠 파이프로 송풍 파이프와 안전 펜스를 마구 두들기기 시작했다. 다들 살짝 맛이 갔다.
그게 신호가 되었을까?
용해로가 꾸르륵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압력이 올라갑니다. 24, 25, 26, 26.3psi.”
“시발, 대박아악!”
누군가 용해로의 압력 게이지를 읽었고, 26psi를 오락가락하는 게이지에 찌릿한 뭔가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압력이 올라가다 멈춘다면 그건 반응속도가 평형을 이룬 거다. 첫 번째 시도에 용해로와 유동로가 다람쥐 쳇바퀴처럼 맞물렸다.
펑! 퍼펑! 펑!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해돋이를 하다 보면 분명히 계속 동쪽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주홍빛이 하늘을 가득 채울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우와아아아!”
눈앞에서 수백 수천 갈래의 불꽃이 출선구에서 터져 나왔다. 출선구를 뚫던 십여 명의 직원들은 쇠판을 방패로 삼고 펄쩍펄쩍 뛰었다.
“만세!!! 만세!!!”
700여 명의 직원도 용해로 주변으로 달려가 만세를 외쳤다.
수백 수천의 주홍빛 불똥이 터져 나갔지만 뜨겁다는 느낌마저 들지 않았다.
우리에겐 축하의 폭죽이나 매한가지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밤샘 작업의 고통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만세!! 만세!!”
“으아아아아악!”
“인천제철 만세!!”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사람들이 끝없이 만세를 외쳤다.
이까짓 소형 용해로가 이런 감동을 줄 줄이야.
21세기 최고의 파이넥스 공법을 60년대에 재현했다는 건 칭찬할 만하다.
세계 최초이자 21세기에도 쓸 첨단 제철소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완벽한 순환을 이루는 플랜트는 예술에 가깝다.
“우 사장님… 사장님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뵈스트 가문이 옳았음이 증명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뵈스트가 다가와 내 손을 꾹 붙잡고 울먹였다.
3대에 걸친 꿈을 이룬 자의 얼굴이었다.
“찬수야! 한마디 해야지! 이런 날 어떻게 그냥 넘어가냐! 하하하.”
삼복이와 직원들이 달려와 나를 무동을 태웠다.
여전히 불꽃이 사방에 튀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마디 해주십시오.”
“한 말씀 하십시오!”
사방에서 손을 번쩍번쩍 들며 재촉했다.
“이 용광로처럼 우리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다같이 외쳐요! 우린 전설이 될 거다!!!”
“우린 전설이 될 거다!!!”
“우아아아아아!”
700여 명의 전설들이 한꺼번에 환호했다.
“이제, 포항으로 갑시다!”
“포항으로오오오!!”
우리의 전설이 지금 막 시작되었음을 세계만방에 알릴 때가 왔다.
***
며칠 뒤,
<긴급 속보입니다. 정부는 대한민국 종합제철소를 포항에 건립하기로 전격 결정하였습니다. 곧 대통령 각하의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와아아아아!>
<가칭 포항제철소에는 우리 정부가 오스트리아 정부와 비밀리에 기술 합작한 유동로 기술이 쓰일 예정입니다. 이 기술은 미국과 일본에 뒤지지 않는 첨단 기술로 알려졌습니다. 우리 정부의 외교 역량의 총합이자 역사적인 개가라 하겠습니다. 지금! 대통령 각하께서 단상에 오르십니다.>
<와아아아!>
어떻게 이게 정부의 외교력을 증명하는 일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TV와 라디오에선 연신 속보라며 뉴스를 내보냈다.
<국민 여러분! 본인은 이 땅에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 지 4300년 만에, 우리의 손으로 종합제철공장을 짓게 됨을 공식 선언합니다. 철은 국력과 군사력, 그리고 과학기술력의 상징이며…(후략)>
대통령이 사뭇 열정적으로 연설문을 읽어내려갔고 낭독 중간중간에 관중들이 환호성으로 답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몇 달 후에 치러질 대선을 의식해서인지 한동안 대통령의 발표 장면이 신문, 라디오, TV에서 지루하리만큼 반복되었다.
***
추진위원회 사무실.
우당탕탕.
“위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아니, 다들 무슨 일입니까? 어째서 다들 여기 서울에… 공사 현장에 무슨 사고라도 났습니까?”
대통령의 공식 발표 후에 있을 독대 준비를 위해 포항에서 올라와 있었는데, 석 국장을 비롯한 추진위원들이 우르르 내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사고가 아니라 기공식! 조기영 부총리가 포항제철 기공식을 한답니다.”
“뭐… 뭐라고요? 기공식? 누구 맘대로요?”
어이가 없었다.
대통령이 포항제철을 공식 발표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이다.
추진위원회에서 대통령의 일정에 맞춰 기공식을 할 건데, 부총리가 왜 나서?
특히, 기공식에는 미국 투자자들도 불러야 하는데 말이다.
“경제기획원 주관으로 일본철강연합 JG와 기술용역을 체결하는 조건으로 기공식을 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저희 추진위원들보고 합의 각서에 서명하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미친 새끼!”
대체 얼마를 처먹었기에 제멋대로 합의 각서니 기공식이니 한다는 건가?
급하긴 엄청 급했나 보다.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대통령에게 재가를 받겠다는 식이군. 허가보다 용서가 쉽다 이건가?
보나 마나 추진위가 밀고 있는 유동로 기술 따위를 믿을 수 없으니, 검증된 일본 기술로 종합제철소를 세워야 한다고 밀어붙일 심산일 것이다.
“당장 포항으로 내려가셔야 합니다.”
“내려가긴 왜 내려갑니까?”
“내려가서 기공식을 막으셔야죠.”
“막으러 간다고 거기에 가면 기공식에 참여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포항에 있는 추진위원들 모두 철수시켜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에? 모두 철수요?”
석 국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손등을 두드려 긴장부터 풀어주었다.
“괜히 불협화음을 만들면 오히려 놈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꼴입니다. 이럴 땐 깔끔하게 무시하고 언론 플레이를 하면 되는 겁니다.”
“언론 플레이를 하신다고요?”
“그럼요. 추진위에서 공식 발표다운 발표를 하면 기공식은 바보짓이 될 뿐입니다.”
공식 발표라는 말에 석 국장이 눈을 크게 떴다.
“각하와 독대를 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아뇨, 그에 앞서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국 투자자들과의 공식 합의문을 발표해야죠. 그래야 대통령님도 자세가 나오죠.”
“헉!”
허튼짓하는 놈들에겐 처벌할 근거를 줘야 처벌을 할 것 아닌가.
“지금 당장 미국, 영국, 독일 각 투자자들에게 설비 구매 주문서를 발송하고 텔렉스도 같이 보내요. 그리고 BR사엔 내가 곧 국제 전화하겠다고 텔렉스 먼저 보내주세요.”
“설비 주문을 해도 되는 겁니까?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승인하지 않을…”
“내겐 종이 마패가 있어요. 맘 놓고 구매 주문서 날려요.”
“와아아아아!”
추진위원들이 대통령의 종이 마패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대통령 친서를 내밀면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석 국장님, 기자들에게 4시간 뒤에 미국 대사관 앞으로 오라고 하십시오. 중대 발표가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위원장님.”
추진위는 정식 발표를 할 권한이 있다.
경제기획원이 설비 구매 승인권을 가지고 있다고 저리 나대는 모양인데, 어림없지.
“잊지 마시고 지금 당장 추진위 철수시키세요.”
“예. 염려 마시고 가십시오, 어서요.”
추진위원들이 내 등을 떠밀었고, 나는 서둘러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
장충동 도병철 자택.
“뭐 하는 건가? 시동도 안 걸어 놓다니.”
기공식 참석을 위해 포항으로 향하려던 도병철 사장은 운전 기사에게 짜증이 났다.
이런 한겨울에 자동차를 미리 데워놓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닌가.
“그… 그게… 도련님께서…”
“아버님, 차를 데울 동안 제게 시간을 좀 내주십시오.”
“권희,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어디선가 도권희가 불쑥 튀어나왔다.
도권희는 셋째 아들로 평소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도 모자라 시간을 달라고 하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포항제철 기공식에 참여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지금 출발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정 급한 일이 아니면, 다음에 얘기하자. 부총리와 여당 의원들도 죄다 참석하는 큰 행사다.”
“참석하시면 안 됩니다, 아버님.”
권희는 도병철 사장의 팔을 잡았다.
“네 녀석, 뭐 잘못 먹기라도 한 것이냐?”
“그 기공식은 폭탄입니다. 부총리 혼자 자폭하도록 두시고 아버님은 따로 살길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이놈아!”
“제가 근무하는 중도일보 기자들에게 알아보니, 포항의 추진위원들이 죄다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 사장이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상합니다.”
“그놈이 미국 대사관엘 간들 기공식과 무슨 상관이더냐? 제철소는 누가 봐도 일본 철강업체가 맡는 것이 합리적이야.”
“울산의 비료 공장 건을 잊으셨습니까? 그 사업 또한 매우 합리적인 사업이었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따위 소릴 해.”
도병철은 셋째 아들을 타박했지만, 실상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자칫 이번 일도 실패로 끝나면 일본 쪽 물주들이 수성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이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이나 사업 추진에 실패한 사업가에 돈을 댈 물주는 없을 테니까.
실패할 바엔 차라리 초장에 사업을 접는 편이 물주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유리했다.
“우찬수에겐 모종의 계획이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기영 부총리가 밥상을 통째로 뺏어가는 데 이리 느긋할 리 없습니다. 독배는 조 부총리 혼자 마시게 두십시오.”
“네 생각에 이건 독배다… 이거냐?”
“독은 쓰기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합니다. 아버님은 지금 김중필 의원에게 가셔야 합니다. 김 의원에게 기공식에 참석할 게 아니라 청와대로 들어가, 각하께 조기영 부총리를 해임하라는 직언을 하라고 종용하셔야 합니다.”
듣자 듣자 하니 가관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넌, 신문사로 돌아가!”
도병철은 아들을 밀치고 집을 나섰다.
일 배우라고 신문사에 들여보내 놨더니, 소설을 쓰고 있었다.
“아버님, 김 의원을 살리고 두 분 모두 납작 엎드리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이 있습니다.”
도권희는 차에 오르는 도병철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말을 이어갔다.
“출발해.”
“예, 사장님.”
운전기사가 차를 출발시켰다.
도병철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셋째 아들의 말대로 우찬수에게 한방이 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김 기사, 그쪽 아니야. 청구동으로 가!”
“아, 예. 사장님.”
도병철의 다급한 목소리에 기사가 휙하니 차를 돌렸다.
< 098 : 울부짖는 용해로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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