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10)
* * *
“이게 얼마 만이야?”
“그러게!”
여자들의 수다에는 끝이 없다고 했던가?
다시 독일에 오자 손채림을 맞이한 것은 당연히 친구들이었다.
물론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갔지만, 일부는 여전히 공부 중이었고 또 일부는 원래 독일인이었다.
“남친, 남친?”
“아니, 직장 상사.”
“진짜 재미없겠다. 상사랑 업무 여행이라니.”
“진짜 재미없어.”
서로 수다를 떨면서 자연스럽게 노형진을 바라보는 손채림과 세 명의 친구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노형진은 어색하게 웃어야 했다.
“하하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노형진은 독일어를 할 줄 모르니 뭐라고 하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아니, 딱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여자들의 수다는 국경을 초월하는구만.’
표정이나 제스처를 봐서는 절대로 업무에 관련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으니 100% 수다였다.
“자, 자! 우리 수다는 이쯤하자. 우리 상사한테 깨질라.”
“하긴 한국은 그런 면에서 좀 빡빡하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친구들을 보던 노형진은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독일은 왜 온 거야? 한국에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 누구를 찾아온 거야.”
“누구?”
“한국에서 범인으로 의심받던 사람이야. 조사 중이었는데 도피성 유학을 와서.”
“이름은 뭔데?”
“만두성이라고, 독일에 있는 구텐베리트 대학에 다닌다고 하던데.”
“구텐베리트?”
서로 바라보는 세 사람.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듯했다.
“몰라?”
“처음 들어 봐.”
“나도.”
“그런 곳이 있던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는 세 사람.
한국처럼 대학이 많은 게 아니라 어지간한 대학은 다 알고 있는데 구텐베리트 대학이라는 곳은 처음 들어 봤기 때문이다.
“그래. 갑자기 유학을 온 거라 멀쩡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응, 우리가 추적하니까 도주하다시피 온 거라니까.”
독일인인 헬가는 이상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유학이 그렇게 쉬울 리 없는데. 게다가 지금은 학기 중이잖아. 당연히 자리 없을 텐데?”
“그래서 멀쩡한 곳은 아닐 거라고 하는 거야. 이름만 대학이라고 표현하지, 대학이 아닐 수도 있어.”
“아!”
원래 독일에 가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돈이 있으면 갈 수 있는 미국과 다르게 독일의 경우는 학비가 전액 무료이며 기숙사비 같은 게 지원되어 생활비가 별로 안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기본적으로 독일어 검정 시험을 치러서 성적이 되는 사람만 한정된 숫자 내로 받도록 되어 있다.
만일 인원이 가득 찬 상태라면 다음 해를 노려야 한다.
“더군다나 그 녀석이 독일어를 그렇게 잘할 것 같지도 않고.”
“흠, 그렇다면…….”
대학 이름도 처음 들어 보는 데다 국가에서 요구하는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을 받아 주는 대학이 있을 리 없다.
“잠깐만.”
그때 헬가가 뭔가 기억난 듯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시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 여기 있네, 구텐베리트.”
“엉?”
한국에서는 그렇게 찾아도 자료가 없더니 독일에 와서는 나타난 자료에 노형진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통역을 통해서 듣고는 더 어이가 없었다.
“대학이 아니라고요?”
“네. 이건 학원이에요.”
“학원?”
“네, 독일어 학원.”
“아니, 독일에서 무슨 독일어 학원을…….”
한국에서 한국어 학원을 다니는 거랑 똑같은 말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몰랐던 거죠. 하지만 친구 중에 한국인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독일어 시험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한국과 독일의 차이가 있으니까.”
한국에는 독일어를 가르치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문법적으로 가르치는 한국의 문화상, 수업을 받아야 하는 독일 대학을 노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공부라고 할 수가 없다.
문법만 알면 뭐하나, 말이 안 통하는데.
“그래서 유학생들을 데리고 독일어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아!”
한국으로 치자면 한국에 귀화하거나 한국에서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셈이다.
학업도 포함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대학인 것처럼 홍보하는 거지?”
자신들이 찾은 정보에 따르면 마치 대학처럼 홍보되어 있었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이거나, 아니어도 최소한 그 비슷한 정도는 되는 줄 알았고.
그런데 학원이라니.
“그 친구의 말로는 질이 안 좋은 곳도 있대요.”
“질이 안 좋다고요?”
“네. 독일은 규칙이 엄하거든요.”
독일의 대학은 점수에 무척이나 짠 편이다.
한국은 대학 입학이 어려울 뿐 졸업은 쉽지만 독일은 반대다. 입학은 어렵지 않은데 졸업이 어렵다.
심지어 어떤 곳은 2년 정도 지나면 학과생의 50%가 자퇴할 정도로 빡빡하게 교육한다.
당연히 점수가 안 되면 통과도 안 되고 낙제시켜 버린다.
“더군다나 독일은 토론식 수업을 진행해요. 제가 듣기로 한국은 강의식이라고 하더군요.”
“네.”
“그래서 말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한국에서는 강의식 수업이니 알아듣기만 해도 교과를 따라갈 수 있지만 독일은 그게 아니다. 그래서 학원도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엄청나게 빡빡하게 수업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 친구 말로는 도피성 유학? 그런 걸 오는 애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곳이 있대요.”
“헐.”
손채림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노형진은 바로 알아들었다.
‘비자 장사군.’
도피성 유학을 올 때 가장 힘든 게 뭘까? 바로 비자다.
여권이야 범죄만 저지르지 않았으면 나오지만, 장기 체류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를 만들어 주는 곳이군요.”
“그런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일단 이쪽에서 돈을 내 가면서 공부한다고 하면 비자는 나오니까. 그리고 그 후에 공부를 하든 말든 그건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그런 게 있어?”
“그런 거 많아. 동남아에서는 학위도 장사하는데, 뭘.”
“뭐라고?”
“학위 장사라고, 있어.”
대학 건립이 자유로운 나라는 일단 이름뿐인 대학을 등록시키고 난 후에 그냥 돈 받고 학위를 파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런 곳들이 많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믿었다가 사기당하곤 한다.
“이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만두성의 집이 어딘지 알 수가 없으니 그를 찾기 위해서는 그곳을 찾아야 했다.
“그건 어렵지 않아요.”
헬가는 독일어로 되어 있는 주소를 스크린샷을 찍어서 보내 줬고, 노형진은 그걸 확인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잡았다.’
* * *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주소지 앞에서, 노형진은 자신의 소감을 간단하게 말했다.
“확실히 멀쩡한 곳은 아니군.”
학원이라고 하지만 건물도 낙후되었고 규모 자체도 무척이나 작았다. 잘해 봐야 강의실 두세 개 정도 들어가는 규모.
“애들이 참…….”
“넌 여기 있을 때 저런 애들 못 봤어?”
“볼 일이 없었지. 솔직히, 사는 세계가 다르잖아.”
“하긴.”
빡센 독일에서 공부하다 보면 저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놀 시간이 없다.
애초에 학원 주변에 술집이 몰려 있다는 것도 말도 안 되고.
“거기에다 간판이 한글이야. 개판이구만.”
척 봐도 저곳에 이름만 올려 둔 애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찾을 수 있겠어?”
“내가 봐서는 있을 것 같은데.”
“응?”
“너처럼 열심히 배우는 애들이 흔하지는 않거든.”
독일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보호자도 없이 독일에 던져지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첫 번째가 독일어를 배우면서 현지에서 적응하려고 하는 것, 두 번째는 자기에게 익숙한 공간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만두성은 두 번째야. 저기 보이네.”
“헐, 양반은 못 되는 놈일세.”
그사이에 친구를 만든 건지 우르르 술집에서 나오는 녀석들. 그 사이에서 만두성이 휘청거리면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귀신같네.”
“뻔하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뻔하다. 특히나 안주하려고 하는 성향은 더욱더 그렇다.
“거기에다 그는 범죄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어. 그러니 제대로 공부할 생각이나 있겠어?”
“하긴.”
그저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려고 할 게 뻔했다.
“문제는, 저 녀석을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가게 하느냐는 건데…….”
자신들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독일의 변호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한국으로 강제송환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증거를 잡아서 한국에서 살인죄로 기소받게 해야 하는데, 그건 또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를 자극해서 실수하려고 한 거였지, 도피하게 하려고 한 게 아니니까.
“한국으로 어떻게 보낸다…….”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로 만두성을 노려보았다.
결국 한국에 가야 힘을 쓸 수 있는데 말이다.
“음…….”
손채림은 만두성을 보다가 문득 과거 자신의 친구가 생각났다.
물론 자신의 친한 친구라기보다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전해 들은 거지만.
“독일 경찰에게 쫓기게 하는 건 어때?”
“독일 경찰? 아니, 웬 독일 경찰?”
“독일은 한국보다 상당히 처벌이 강해. 한국에서는 불법이 아니거나 가볍게 보는 죄들이 독일에서는 상당히 강한 처벌을 받거든.”
실제로 전해 들은 친구 이야기는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서 일본 성인 망가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그는 독일에 와서도 아무 생각 없이 일본에 해당 망가를 주문했는데, 하필이면 그게 학생을 주제로 한 망가였던 것.
독일은 성매매가 합법일 정도로 어떤 면에서는 자유로운 부분이 있지만 단 하나, 아동과 청소년에 관련된 성 상품에 대해서만큼은 최고 종신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그게 독일 경찰에 걸렸고, 독일 경찰은 그의 집을 급습했다.
그 결과 백 권이 넘는 일본 망가가 발견되어 하마터면 독일에서 감옥에 갈 뻔했는데, 다행히 독일 문화에 대해서 모르는 점이 정상참작되어 추방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망가라.”
“그래. 함정 하나 파 두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런 걸 어디서 구하는데?”
“아…….”
그런 걸 그렇게 철저하게 통제하는 독일에서 그런 걸 구해서 심어 둘 수는 없다.
물론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증거를 조작해서 보내는 것은 자신들이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독일 경찰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대상은 아니니까.
“독일 경찰을 끼워 넣는 건 좀 위험한데.”
“그런가?”
약간은 아쉬운 표정이 되는 손채림.
그러다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손뼉을 딱 쳤다.
“독일 경찰이 끼어들게 하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독일 경찰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만 들게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쫓기고 있다는 생각만 들게 한다고?”
“응. 어차피 중요한 건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