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14)
노형진의 말에 조금씩 물러나는 피해자 가족들.
“훌쩍, 여러분 마음이 어떤지는 압니다만, 이럴수록 흥분을 가라앉히셔야 합니다. 그러다가 진짜 범인을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진짜 범인…….”
유가족들은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알고 나면 그 후에 다시 수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은 노형진에게 와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감사할 건 아니고요. 뭐, 논리적인 거니까.”
시신을 자기 자가용으로 가지고 오는 사람은 없으니까 당연히 어딘가에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접수 담당이 실수로 기록을 누락시킨 것이다.
하지만 119에는 기록이 있어서 그 덕에 그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것.
“저기, 아까 변호사라고 하시는 걸 들었는데,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네? 하지만 해결된 거 아닌가요?”
“해결된 게 아닙니다. 저희가 의심받고 있는 게 이것만은 아니라서요.”
“훌쩍, 그건 정식으로 접수해 주셔야…….”
“제발요. 지금 다급해서 그럽니다.”
노형진은 훌쩍거리면서 그들과 피해자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피해자 가족들의 얼굴도 푸르죽죽하니, 시신 찾으려다가 자기들이 먼저 죽을 판국이었다.
“뭐, 일단은 들어 보죠. 하지만…… 훌쩍, 진료부터 좀 받고 싶은데요? 감기로 죽지는 않겠지만요. 훌쩍.”
* * *
‘초고속이네.’
‘당연히 그래야지요.’라고 하는 순간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새치기임이 분명하지만, 노형진은 그냥 슬쩍 넘어갔다. 아무래도 그만큼 병원이 다급한 모양이니까.
“시신을 도둑맞았다고요? 훌쩍.”
“네, 벌써 18구째입니다. 돌겠어요.”
“허.”
노형진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지난 6개월간 이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 중 무려 18구에 달하는 시신이 도난당했다.
물론 병원에서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나 매장지에서 사라졌으며 그들의 공통점은 이 병원에서 장례를 치렀다는 것, 젊은 여자라는 것 정도가 다다.
‘그래서 가족들이 그렇게 흥분한 거군.’
사실 생각해 보면 시신 1구 여기서 발견되었다고 그렇게 흥분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관련된 사건이 여러 건이니 그렇게 흥분한 것이리라.
“저희 쪽에서는 돌아 버리겠다니까요.”
안에서 사라진 거면 추적이라도 해 보겠는데, 멀쩡하게 장례 치르고 매장까지 한 후에 시신이 사라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훌쩍, 죄송합니다. 감기가…….”
노형진은 또다시 코를 풀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젠장, 한겨울 다 지났는데 감기라니.’
슬슬 더워지는 판국에 걸린 감기라서 더 억울했다.
“그러면 신고해 보시죠.”
“경찰에 신고야 당연히 했죠. 그런데 아시지 않습니까, 경찰의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거?”
“음…….”
시체의 실종은 일반적인 사건보다 훨씬 순위에서 밀린다. 당장 피해자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국에서 피해자가 발생한 건이라.”
“아…….”
장례를 여기서 치렀다고 해도 고향이나 장지는 대부분 다른 곳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사건이 전국으로 분산되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남이 수사하겠거니 하는 거지.’
사건을 추적하다 보면 관외로도 나가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기 귀찮으니까. 딱 자기 관내에서만 수사하고 그 이상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전국 수사방을 가진 광역수사대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사건은 광역수사대에서 순위가 많이 밀리죠.”
“네.”
“특이한 사건이네요.”
뜬금없이 모조리 시신이 사라지는 사건, 그것도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의 시신만 사라진다니.
“특이하다 못해서 어이가 없습니다, 지금.”
“흠…….”
그 나이대의 여성이 사망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다. 대부분 사고로 사망하는데, 당연히 사고인 만큼 언제 시신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니 의심을 받았구만.’
여기서 장례를 치르면 시신이 사라지니 당연히 이 병원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조사 결과 나온 건 없고요?”
“네. 사실 진짜 내부에 누가 있어도 방법이 없구요.”
“하긴.”
경찰이 의심한 건 간단하다. 누군가 젊은 여성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을 외부에 알린다는 것.
문제는 그걸 그냥 전화나 문자로 딸랑 알려 버리면 추적할 수가 없다는 거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고, 장례식장에 출입하는 사람 역시 한두 명도 아니다.
매일 수천수만 단위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 장례식장인데 그중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장 일반인으로 가장하여 들어와서 사망자의 정보를 보고 연락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왜 저한테 맡기시는 건가요? 경찰도 못하는 걸 변호사가 해결할 수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사실은, 아까 보니까 통찰력이 대단하시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조언을 받을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유명한 분이시라…….”
‘아아아…….’
노형진은 이 병원에 환자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니 그의 이름 정도는 알 수 있었을 테고, 그 정도면 충분히 변호사라는 직업 내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새론에서 일하시더군요. 새론은 지금까지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건들을 많이 해결했잖습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법적인 부분에서지…….”
이건 아예 수사를 해 달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건 자신들이라고 해도 해당 사항이 없다. 변론이야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수사가 아니라 조사죠.”
“음…… 애매하군요.”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서 조사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하긴 병원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계속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의 생명을 담보하는 곳인 병원이 이런 식의 구설수에 휘말리면 절대 좋을 수는 없고.
더군다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병원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바로 장례식장이다.
한번 장례를 치를 때마다 대부분 1천만 원을 넘게 쓰게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사흘간 장례식을 치르는 걸 생각하면 병원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오는 셈이다.
‘쩝.’
노형진은 그들의 속셈을 알고는 약간은 입맛이 썼다.
‘하긴…… 여기 장례식장이 20호실까지 있지.’
자신도 이곳 장례식장에 온 적이 있다.
20호실이라고 하면, 반만 찬다고 해도 매주 2억 이상이 들어오는 셈이다. 그것도 현금으로 말이다.
병원비 대부분이 카드로 납부되고 또 의료보험 처리 때문에 탈세할 수 없는 것과 달리, 장례식장의 비용은 대부분 부의금이기에 현금으로 계산한다. 그러니 탈세도 가능하다.
‘하지만 장례를 지내면 시신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있는 곳에 누가 올 리 없지.’
즉, 손해가 커지자 차라리 변호사 비용을 어느 정도 지불하더라도 사건을 무마시키고 싶은 것이다.
“훌쩍.”
노형진은 고개를 돌려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절망에 찬 시선으로 병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일부는 119에 확인하러 간 모양인지 숫자가 많이 줄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좋습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 비쌀 겁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계약하지요, 훌쩍.”
노형진은 코를 훌쩍거리면서 씩 웃었다.
* * *
“너무 털어 온 거 아닙니까?”
무태식은 사건을 받아 들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왠지 범죄의 냄새가 났기 때문에 노형진은 특별히 무태식에게 부탁을 했다. 물론 무태식은 당연히 승낙했고.
하지만 의뢰 내역을 보고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선입금이 5억에, 사건을 해결하면 10억요? 아무리 상대방이 큰 병원이라고 해도……. 거기에다 시신을 찾게 되면 장례비 지원 및 위로금 조로 한 집당 500만 원? 이거 못해도 20억인데요?”
“뭐, 정치인한테 갈 돈을 우리가 조금 빼돌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정식 법률 사건도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흥신소도 아니고…….”
정식으로 고소된 것도 변론하는 것도 아닌, 그냥 조사하고 신고만 하는 거라니.
“그게 잘못된 거라니까요. 우리의 목적이 뭡니까? 의뢰인의 최대 이득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흥신소가 따로 있는 게 비정상입니다. 사건을 담당하면 그걸 조사하는 게 변호사죠. 계속 그렇게 해 왔잖습니까?”
“으음…….”
확실히 새론은 그래서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었다.
다른 변호사들이 말장난으로 쉽게 일하려고 할 때, 스스로 현장을 뛰고 증거를 캐서 말이다.
“딱히 위법도 아니고요.”
“그렇기는 한데…….”
무태식은 입맛을 다시면서 다시 한 번 의뢰서를 살폈다.
수임료만 15억. 거기에 피해자들 가족에게 주는 돈까지 생각하면 20억은 생각해야 하는 의뢰다.
“그걸 그렇게 쉽게 주겠대요?”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지난 몇 달간 못해도 100억 이상 손해 본 모양입니다.”
“100억요!”
입을 쩍 벌리는 무태식.
“무 변호사님은 장례 안 치러 보셨지요?”
“네? 아, 네…….”
“저는 좀 압니다만…… 일단 장례식장은 순수익이 60%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헐.”
절반만 생각해도 매주 2억이다.
그런데 노형진의 경험상 이렇게 크고 유명한 병원은 거의 풀로 장례가 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단 장례식장에 오는 손님들이 찾기 쉬워야 하고 또 주차장이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딱 맞는 공간이 종합병원이다.
“소문이 안 좋게 나서 장례식장이 많이 비었더군요. 그러니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그런가요?”
“네. 그래서 제가 좀 무리해서 부른 겁니다. 그쪽 입장에서는 켕기는 게 많은 걸 뻔히 아니까요.”
“음…….”
장례식에 들어가는 음식은 뻔하다. 하지만 그 가격은 어마어마하다.
한 번에 최소 수십 인분이 들어가고 수백 단위로 팔려 나간다.
음식이 뻔하니 다양하게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인원도 많이 필요 없고, 공정은 단순하며, 원가를 쉽게 낮출 수 있다.
‘사실 60%도 넘을걸.’
거기에다 장례식장은 혐오 시설로 분류돼서 경쟁자도 별로 없으니 이 정도 규모의 장례식장 사업이라면 땅 짚고 헤엄치기였을 것이다.
“뭐, 다 좋은데 전에 말씀하신 게 의뢰인을 위해서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의뢰인을 위한 가격이 아닌데요.”
새론에만 15억이라니. 거기에다 조사만이라니.
“사실은 전 이번 사건의 의뢰인을 그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
“전 그쪽보다는 피해자 가족들을 생각해서 받아들인 겁니다. 보아하니 계속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을까요?”
“아…….”
더군다나 무덤이라는 공간은 매일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아직 모르고 있거나 슬그머니 무덤을 다시 덮어 뒀다면 모를 수도 있다.
‘아니, 후자는 그나마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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