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2)
법원이란 조직은 무척이나 굳어 있는 조직이다. 끼리끼리 뭉쳐서 자신들의 이권을 지킨다.
법원에서 가장 큰 범죄는 뭘까? 잘못된 판결?
아니다. 그럼 뇌물?
아니다. 법원 내부에서 가장 용서받지 못할 일은 내부 고발. 흔히 말하는 투서라는 것이다.
투서란 익명으로 정보를 제공해서 특정 상대방을 날려 버리는 행위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법원 내부의 결속력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범죄자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지금.
부장판사는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어떤 새끼야!”
얼마 전 벌어진 투서 사건.
경찰과 검찰 그리고 방송국으로 날아온 세 통의 편지.
검찰과 경찰에 날아간 투서는 어떻게 해서든 막을 수 있었지만 방송국으로 날아간 투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젠장.”
투서의 내용은 치밀했다. 누가 얼마를 얼마만큼 언제 어디서 받았는지 정확하게 나와 있었던 것이다. 대충, 설렁설렁 그런 것 같다는 것도 아니고 장소부터 금액, 날짜, 심지어 계좌 번호와 숨겨 둔 방법까지 모조리 까발린 덕분에 경찰과 검찰은 수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대충 수사하다가 덮으려고 했지만 워낙 확실하게 증거가 나온 터라 그걸 미처 감출 시간이 없었기에 재판부는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어떤 새끼야? 찾았어?”
당연히 법원에서는 투서, 즉 내부 고발을 한 사람을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그들의 레이더에 걸렸다.
“부장판사님, 제3재판부의 곽 판사 아닙니까?”
“그 녀석?”
“네, 그 판사의 동기들 중에서 안 걸린 사람이 없는데 그 녀석의 이름만 쏙 빠져 있습니다.”
“으음…….”
그 말을 듣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의심. 수많은 판사들이 걸려들었는데 그만 쏙 빠진 것이다.
“심지어 곽 판사의 바로 전 기수들도 모두 걸렸습니다.”
“설마…….”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것 같습니다.”
“쿠데타?”
여기서 말하는 쿠데타란 진짜 전쟁이 아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날려 버리고 그의 자리를 차지하는 행동을 말한다. 아무리 봐도 신고 내역에서 곽 판사의 이름만 쏙 빠져 있는 것을 보면 그가 내부 고발자인 것 같았다.
“이런 미친 새끼 같으니라고.”
부장판사는 기가 막혔다. 안 그래도 그 녀석이 자기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거, 아무리 봐도 그 녀석의 글씨체 아닙니까?”
“그건 그래.”
노형진이 비싼 돈을 줘 가면서 글씨 위조범을 고용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투서를 자필로 작성해서 던져 버리면 알아볼 사람은 알아본다.
물론 이건 불법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문서를 위조하거나 법적인 효력이 있는 문서를 위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조 범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걸 알게 된 재판부는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야, 곽 판사 불러!”
다짜고짜 그를 불러들이는 부장판사. 잠시 후 곽 판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에게 불려 왔다.
“너 이 새끼, 뻔뻔하구나.”
“네?”
“네가 미쳤구나? 감히 투서를 해?”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 미쳤구나, 진짜로. 감히 투서를 하고 모르는 척하다니.”
“전 모르는 일입니다.”
“몰라, 진짜?”
다짜고짜 복사된 종이를 들이미는 부장판사.
“이렇게 네놈의 글씨가 있는데 모른다? 하! 그리고 여기 있는 내용. 이거, 어떻게 알았어? 네가 감히 내 뒤를 캐고 다녀?”
“모…… 모릅니다. 진짜로 모르는 일이에요!”
곽 판사는 억울했다. 자신은 투서 비슷한 것도 보낸 적이 없었다.
“이 새끼가! 발뺌하려면 확실하게 하든가.”
자기 이름만 쏙 빠진 투서를 자기 글씨로 보낸 상태에서 누가 믿는단 말인가? 물론 곽 판사는 억울했다.
“진짜로 모르는 일입니다. 이건 모함입니다!”
“모함? 개소리하지 마, 새꺄!”
다른 것도 아닌 자신들에 대한 정보다. 외부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닌 것이다.
“너 이 새끼, 뒈질 줄 알아.”
부장판사의 말에 곽 판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 * *
“진짜 머리가 좋군요.”
갑자기 판사가 바뀌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갑자기 판사가 바뀌었다.
“도대체 왜 직접 신고하지 않은 거예요?”
민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정보가 있다면 투서가 아니라 직접 신고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불리해집니다.”
“불리해진다니요?”
“일단 정보가 있지만 증거는 없죠.”
그렇게 되면 분명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것이다. 도리어 자신들이 고발했다는 이유로 재판상의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하다.
“그러니 우리가 전면에 나서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현실이야 어떻든 간에 실질적으로 현직 판사를 고발한다는 건 추후 재판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니까요.”
“아!”
그렇게 되면 이 재판뿐만 아니라 다른 재판들까지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둘째 치고 우리에게 재판을 맡기는 사람들이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과연 그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을까요?”
“음…….”
잠시 고민하던 무태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봐 온 법률계의 모습에 따르면 결코 그럴 리 없었다.
“맞습니다. 기껏해야 가벼운 견책이나 경고로 끝날 겁니다.”
“그래서 투서로?”
“네.”
법원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내부 고발자다. 더군다나 증거가 있을 만한 내부 고발자와 라이벌 자리에 있는 사람은 더욱 싫어한다.
“어찌 되었건 내부 고발자로 경계당하게 된다면 그는 운신의 폭이 좁아집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보복전이 들어오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법원 감찰부에서 곽 판사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고 그 때문에 곽 판사는 현재 재판 중인 사건에서 모조리 손을 떼야만 했다.
“이렇게 되면 곽 판사는 운신도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사건에 대한 부탁도 하기 힘들어집니다. 배신자로 찍혀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재판에 대한 청탁을 하게 되면 감찰부에 그 말이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헐.”
무태식은 생각도 못했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그냥 감찰부에 알리거나 신고하는 것만 생각했지, 익명으로 투서를 날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걸리지 않을까요?”
“걸린다 해도 누가 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익명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더군다나 필적마저 동일하게 위조 전문가가 했으니 의심할 이유도 없다.
“하여간 곽 판사는 이 사건에서 일단 손을 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당장 자신이 감사의 대상인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재판이 유리하게 되겠지요.”
“어째서요?”
“감사 중이니까요.”
보복성 감사라는 것은 단순히 이 인간이 깨끗한 녀석인지 확인하는 게 아니다. 만에 하나 깨끗한 녀석이라면 먼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보복성 감사다.
“아마 조만간 그 녀석이 그동안 했던 추악한 비밀들이 드러날 겁니다.”
“설마?”
“네, 김광준과 짜고 재판을 한 것도 드러나겠지요.”
그러면 김광준에 대한 신빙성이 무척이나 떨어진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법적으로 우리를 도와주는 두 명의 증인 겸 피해자들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됩니다. 판사가 뇌물을 받고 엉뚱한 판결을 내렸으니까요.”
“아…… 증인들.”
그들은 지금의 사건에만 집중했지, 증인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넓게 봐야 합니다. 지금이야 증인이지만 이걸 아는 순간 과연 재심을 다른 사람한테 맡길까요?”
그럴 리 없다. 이렇게까지 자신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노형진과 새론이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새론에 재판을 맡길 수밖에 없다.
“노 변호사 말이야.”
송정한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일거리를 만드는 자석이라도 몸에 달고 다니나?”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다른 사람들은 일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본인은 사방에서 일을 만들어 오기에 하는 말이야.”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원래 재판이라는 게 없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잘 몰라서, 어려워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사람들이다. 그리고 범죄자들은 그런 것을 노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죽을 만큼 억울한 겁니다. 그걸 풀어 주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사건은 자연스럽게 몰려옵니다.”
“음…….”
노형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새론에 몰려오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아주 크고 무겁고 한 방에 큰돈이 되는 사건들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억울한 마음에 도움을 요청하는 소중한 사건들이다.
“그나저나 다음 재판은 좀 기다려야겠네요.”
판사가 제대로 수사받고 있으니 법원 내부가 시끄러울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새로운 판사가 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일단 기다려 봐야겠네.”
“다음 재판을 기대해도 되겠군요.”
정의의 처단이닷! (1)
새롭게 재판부가 결정되고 난 후 노형진이 재판정에 갔을 때 김광준과 청계 쪽 변호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렇겠지.’
자신들이 손댄 판사가 감사받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을 계속하는 것은 유리할 게 없으니까.
‘새로운 판사에게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겠지.’
더군다나 감사의 대상은 곽 판사뿐만이 아니다. 어찌 되었건 투서 형태로 내부 고발이 잔뜩 들어갔으니 판사들은 몸을 사릴 테고, 다른 판사들에게 공을 들이기에는 시간도 없고 위험도도 높다.
‘그나저나 그 팀장이라는 녀석이 없군.’
갑자기 팀장이라고 불리는 변호사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노형진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왜 사라진 건지 이해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발을 뺀 거로군.’
재수 없으면 진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승률이 떨어질 게 뻔하다. 그러니 재빨리 발을 뺀 것이다.
‘기가 막히는군.’
변호사란 승률이 아니라 얼마나 잘 싸우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자신의 승률을 지키기 위해서 변호를 포기한다니. 노형진이 봤을 때는 완전한 업무 방임이었다.
“재판 시작하겠습니다.”
그사이 새로 배당된 판사는 재판을 시작했고 청계 측 변호사인 방상문은 애써 일어나서 변론을 시작했다.
“……합법적인 사업가로…….”
그는 애써 최대한 방어하려고 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투서가 사건을 뒤흔들어 놓은 덕분에 쉽지 않았다.
“재판장님, 원고 측 변호사는 기존 판사가 인정한 증거에 기초하여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해당 판사는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상황이고 더군다나 원고 측 역시 그 수사 대상 중 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접수된 증거에 대한 철저한 재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음…… 인정합니다.”
노형진의 말에 새로운 재판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받는 판사가 선정한 증거로 재판해 봐야 의미가 없다. 도리어 자신 역시 감사 대상이 될 뿐이다.
“큭.”
방상문은 움찔했다. 아예 증거 자체를 공격당하니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노형진이 말했다.
“기존에 제출한 계약서 내부에 보면 상당히 모호한 문구가 보입니다. 가령 피고, 아니 피고인 을에 대한 투자에 대하여, 갑은 을에 대하여 데뷔에 필요한 것을 지원해 준다고만 표시되어 있지, 얼마나 투자하는지, 또 걸리는 시간이 얼마인지 그리고 그 훈련 내역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배상금 역시 30억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손해배상이란 그 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배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떠한 사유든 간에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액수의 배상을 요구하는 건 일반적 계약이라 할 수 없으니 실질적으로 사람의 인신을 구속하는 일종의 노예 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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