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7)
“흠.”
노형진의 말에 유민택은 다른 생각을 하는 듯했다. 사실 사업가인 그가 이런 사건에 나서 봐야 의미가 없다.
물론 노형진의 이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 건 의미가 없는 행동일 뿐이다.
“그거야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왜 날 찾아온 건지 모르겠군.”
“계약을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계약?”
“지난번에 증인을 빼돌려 주는 조건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 도움을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그 도움을?”
“그렇습니다.”
“왜?”
“제가 그 아이를 도와주는 것은 법률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재기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요.”
“돈을 달라는 건가? 그게 나한테 무슨 이득이 된다는 거지?”
“돈이 아닌 지분이 필요합니다.”
“지분?”
“그렇습니다. 이번에 대룡에서 우유 사업 쪽에 손을 내민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까?”
“그렇지.”
성화가 하는 우유 사업과 싸우기 위해서 대룡은 우유 산업에 발을 내디뎠다.
원래 역사에서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야였지만 오로지 성화를 죽이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점유율이라는 것이 쉽게 뒤집히는 것은 아니다.
점유율을 믿고 대기업들이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것은 그 점유율이 미래의 소비율과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우유 사업에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지?”
“이번 사건에 대해서 가장 분노하는 사람이 누구인 것 같습니까?”
“응?”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는 유민택.
온 국민들이 분노하기는 하지만 딱히 누군가 분노한다고 특정하기는 힘들다. 그쪽으로는 아는 게 아니니까.
“잘 모르겠군.”
“이런 사건들이 터지면 가장 두려워하고 분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님들입니다.”
“어머니라……. 하긴 그도 그렇군.”
특히나 딸을 가진 어머니들은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엄청나게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여자이기에 여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이 나라가 강간범에게 얼마나 관대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걸 노리는 겁니다.”
“그걸 노린다고?”
“네, 어차피 우유 사업을 홍보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우유 사업은 개인적으로 파는 양보다 매일같이 공급되는 것이니 대량 공급을 노리는 게 유리합니다.”
“그렇지.”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모든 국민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려 있지요.”
“그거랑 우유 산업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적의 적은 아군이니까요.”
“적의 적은 아군?”
낯선 말에 유민택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노형진의 설명을 듣고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런 방법이 있군!”
“어떻습니까?”
“이번에도 자네에게 놀아나는 것 같기는 하네만…….”
“놀아나는 게 아닙니다. 기브 앤드 테이크죠.”
맞는 말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 노형진은 확실한 홍보 전략을 알려 줬고 유민택은 그 대신에 노형진이 하고자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준다.
대룡으로서는 성화에게 엿을 먹일 수 있어서 좋고 노형진은 대기업이 자신을 밀어 주니 유리해진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더더욱 필요한 힘이다.’
그의 기억이 맞는다면 저쪽은 지역 연합이라는 이름하에 해당 지역 유지들, 심지어 구청장의 아들까지 끼어 있는 집단이다. 원래 사건에서도 그러한 뒷배경 때문에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막말로 해당 지역에서 피해자 편이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라는 인간조차 버리고 도망쳤다가 나중에 나타나서 다짜고짜 합의금을 받은 뒤에 도망쳤기 때문이다.
물론 합의금을 준 범죄자들은 친권자에게 돈을 줬다는 이유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좋네. 기브 앤드 테이크.”
퍼주는 것도 아니고 주고받는 게 확실하다면 유민택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 *
다음 날.
유민택, 아니 대룡우유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정책을 발표했다.
“대룡우유에서는 안전한 세상을 위한 기부금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대룡우유에서는 우유 판매금의 일부를 우리아이안전기금으로 만들어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한 정책의 운영 자금으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즉, 평소 대룡우유를 소비해 주신 소비자가 어떠한 사건으로 인하여 억울한 처지에 처했을 경우, 대룡에서는 안전 기금을 이용하여 법률적인 지원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그런 발표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노형진의 어드바이스였다.
지금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공포가 가득한 시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걸로 자극을 주면 상당한 수의 사람들의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 거라는 계산이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 대룡에서는 이번에 새론 법무법인을 고용하여 이번 사태의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비록 우리 우유를 소비해 준 적이 없다곤 하나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는 대룡우유에서 작은 사항에 연연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선임이 이미 끝난 상황입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새론에서는 보호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유 홍보라고 하면 기껏해야 자전거나 장난감을 주는 것이었다. 성화에서는 그 방법으로 빠르게 성세를 확장해서 순식간에 타 기업의 자리를 빼앗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대룡의 방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불처럼 일어나게 했다.
“여보! 우리, 우유 바꿀까 봐.”
“응? 왜?”
남편은 아내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그냥 요즘 너무 불안하잖아. 그래서 성화우유에서 대룡우유로 바꾸려고.”
“뭔 차이가 있다고?”
“차이야 크지.”
“아니, 우유는 그게 그거잖아.”
“우유야 그렇다 쳐도 우리 딸의 안전은 걱정해야 하잖아.”
“하긴…… 요즘 뒤숭숭하더라.”
워낙 일이 큰 데다가 대놓고 해당 지역에서 처벌할 생각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에 경찰과 정부에 대한 심각한 불신에 빠진 어머니들은 조금이라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니 만일의 사태 발생 시 소송을 도와주겠다는 대룡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차피 자전거 그거, 타고 다니기나 해?”
“끄응…… 그건 그래.”
자전거를 준다고 해서 성화우유로 바꿨지만 그렇게 사은품으로 받은 자전거는 진짜 말도 못 할 정도의 불량품이었다. 그래서 자리만 차지한 지 오래.
“그러니까 대룡으로 바꾸자.”
“그럴까?”
안 그래도 아이를 키우다 보면 걱정이 많아지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소송 한번 하려면 수백만 원은 우습게 나가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많아지는 것이다.
물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일 경우에만 도와준다는 조건이 있지만 그건 어차피 당연한 말이다. 누구도 가해자를 도와주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대룡의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게 아니다. 어차피 피해자의 입장에서 변호사가 해 줄 건 별로 없다. 하지만 경찰의 입장에서는 대룡이 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쪽이 유리하게 장난치지 못한다.
즉, 대룡에서 막대한 변호사비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 바꾸자.”
그렇게 우유를 바꾼 그녀는 다음 날 어머니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는 다름 아닌 우유 공급 업체의 변경.
“학교에 건의해 우유를 성화에서 대룡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따로 우유를 먹이는 가정도 있지만 학교를 통해 먹이는 가정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후자를 선호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게 훨씬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룡에서는 그런 아이들 역시 보호의 대상으로 넣는다고 했기 때문에 어머니회에서는 강력하게 우유 회사를 대룡으로 바꾸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저기, 우유는 그게 그거라서 딱히…….”
성화우유에서 막대한 뇌물을 받아먹던 교장은 어떻게 해서든 이걸 막고 싶었다. 하지만 요구하는 학부모가 한두 명도 아닌 상황에서 일일이 설득할 수도 없는 데다 명분에서 밀렸다.
성화는 그에게 뇌물을 줄 뿐 학생들에게는 혜택을 일절 주지 않았는 데에 반해 저쪽에서는 그에게 뇌물을 주지 않을 뿐 학생들에게는 혜택을 주니까.
“왜 거부하시는 거죠?”
“네?”
“요즘 인터넷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더군요. 학교에서 우유를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성화우유에서 교장과 교감에게 뇌물을 줘서라고. 설마 교장 선생님, 뇌물을 받으신 겁니까?”
공격이 들어오자 교장은 할 말이 없었다.
“그…… 그럴 리가요?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일단 부정했지만 한번 시작된 의심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바꾸지 못하시겠다는 거죠?”
“아니, 바꾸지 못한다기보다는…….”
“그럼 바꿔 주세요.”
“맞아요! 바꿔요!”
교장은 그 말에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바꾸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네, 바꾸겠습니다.”
같은 시각, 노형진은 차를 타고 경찰서로 향하고 있었다.
“대룡에서는 아주 대박 났다고 좋아하더라.”
“그래요?”
“그래, 벌써 점유율이 15%까지 치고 올라갔다던데?”
송정한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노형진이 뭔가를 가지고 딜을 했다고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접근한 대룡 덕분에 이제 막 론칭해서 고작 2% 미만이던 대룡우유의 점유율이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성화우유 주식 한번 보세요. 나락입니다. 나락.”
대룡의 주요 타깃이 성화인 걸 모를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결국 떨어지는 것은 성화우유의 주식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노형진은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나저나 진짜로 우리가 할 게 있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피해자 측을 철저하게 배제시켜 버리잖아요.”
“재판 없는 변호사라……. 거참, 생소한 일이네.”
심지어 송정한까지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노형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는 국선변호인도 있고 또 수많은 인권 단체가 보호해 줍니다. 심지어 얼굴 공개조차도 인권에 반한다고 못하게 하는 게 한국입니다. 그런데 피해자 인권을 챙기는 곳은 어디에 있습니까?”
“음…….”
없다, 단 한 곳도.
물론 정부에서 어느 정도 챙겨 준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실제로 범죄 피해자가 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국가에서 일부 피해를 보상해 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유명무실한 제도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거니와 그걸 신청하면 나가는 예산이 많아진다는 이유로 경찰이나 검찰도 안내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들은 피해자죠.”
“그렇지.”
가해자가 아무리 억울해 봐야 피해자보다 억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우리가 피해자에 대한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송정한은 엄청난 사건이 몰려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른 생각을 했다.
“우리가 과로사하겠지.”
순간 흐르는 침묵. 그리고 송정한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네. 우리가 과로사하겠네.”
“하하하하.”
노형진은 웃었지만 그 말을 꺼낸 사람인 남상주 변호사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 * *
“거참, 이런 건 그냥 조용히 처리하지. 내 고향이 여기인데 너 같은 년이 우리 고향 물을 흐리는 거야. 알아?”
경찰의 말에 조사받던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은 피해자다. 그런데 경찰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발랑 까져서는……. 먼저 꼬리를 쳤으면서 무슨. 솔직히 말해서 그렇잖아? 너도 즐겼으면 된 거지.”
경찰이 더욱 노려보면서 말하려는 찰나, 작은 소녀의 등 뒤에 나타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
“오케이. 여기까지 하죠.”
“뭐야?”
경찰은 갑자기 나타난 무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노형진은 그에게 변호사증을 내밀었다.
“새론에서 나왔습니다.”
“새론?”
“벌써?”
주변 경찰들이 깜짝 놀란 것 같았는데 정작 그 본인만 모르는 모양이었다.
“몰랐어? 대룡에서 새론을 고용해서 소송을 대리해 주기로 한 거?”
“뭐라고?”
수사하던 담당 수사관은 깜짝 놀랐다. 새론은 모를 수 있지만 한국에 살면서 대룡을 모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태식 변호사, 당장 소장을 작성해서 접수하세요. 죄목은 업무상 배임 및 모욕과 명예훼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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