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83)
“쯧쯧쯧.”
노형진은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우리나라 법은 왜 이따위로 느린 거야?”
“내 말이. 우리나라 정치인도 그렇고 법도 그렇고, 너무 느려.”
사실 명예훼손은 그렇다고 쳐도 모욕은 감정에 관련된 법이라 현행 규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실제로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나한테 욕하면 처벌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온라인으로 옮겨 왔다고 무조건 특정이 안 되었다고 처벌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상당히 문제였다.
-너 이 새끼. 그래, 붙자. 내가 거기로 간다.
-네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찐따 새끼야.
-나 박구성이라고 한다. 번화번호 010-○○○-○○○○이고 수원 장지동에서 향가 족발집 한다.
-얼씨구? 지랄하네, 병신 새끼. 그래, 와, 이 새끼야. 우리 동네 네모 공원으로 모레 10시까지 와. 알았냐? 면상을 처발라 버릴게.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대화들.
물론 대화라고 해 봐야 이쪽에서 항의하면 저쪽은 신나서 떠드는 것이 다였지만 말이다.
“몇 명이나 모였죠?”
“현재 백일흔다섯 명.”
손채림은 기록을 확인하면서 말했다.
“쯧쯧, 바보들. 사망진단서에 사인하는 줄도 모르고.”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하여간 넌 어디 가서 참 재미있는 사건만 가지고 온다니까.”
“하하하.”
그때였다. 저 멀리서 서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빠! 그놈이야! 그놈!”
“그놈?”
“카오스 길드 길마!”
노형진은 잽싸게 달려갔고, 화면에는 쓰러진 그녀의 캐릭터와 상당히 강해 보이는 캐릭터 하나가 서 있었다.
지금까지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장면이었지만, 노형진의 입장에서는 살짝 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놈 봐라?”
그녀가 여자인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마구 성희롱을 하는 녀석.
그리고 부모에 대한 패드립까지.
문제는 그녀는 사실상 노형진의 집안에서 같이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패드립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패드립인 셈.
“어쩌지?”
“어쩌긴.”
노형진은 웃었다. 그러나 그건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 미소를 본 손채림은 간단하게 표현했다.
“누구 하나 죽겠구만, 쯧쯧.”
“저 새끼는 내 친히 조져 준다.”
노형진의 눈이 당장이라도 광선이 날아갈 듯 불을 뿜기 시작했다.
* * *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기록은 점점 쌓이고 있었다.
저쪽도 숫자가 많고 이쪽도 숫자가 많기 때문에 모욕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한 사람당 못해도 50건의 모욕죄가 성립되는 양.
“나올까?”
손채림은 공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이야.”
“하긴. 이제 인생 어떻게 살려나.”
“내 알 바 아니지.”
오늘은 현피를 하는 날이다.
곽도성에게 온갖 욕설을 날린 녀석의 집 근처까지 찾아왔는데 과연 나올지 안 나올지가 관건.
“자기 말로는 나온다고 했으니 기다려 봐야지요.”
“뭐, 다들 온라인에서는 쫄리기 싫어서 그렇게 떠들기 마련이지요. 달리 키보드 워리어라고 하겠습니까?”
“흠…….”
“어차피 현피라고 해 봐야 나오는 경우는 1%도 안 되기는 하지만.”
“그 1%가 되는 것 같은데?”
저 멀리 나오는 남자.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그를 보면서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저 녀석일까?”
“그런 것 같은데? 이쪽으로 똑바로 오잖아?”
“그런 것 같지?”
그는 운동을 하는 사람인지 반팔을 입고 있었고 근육으로 온몸이 꽉 차 있었다.
“저러니까 현피에 자신이 있어서 나온 모양이네.”
“그러네.”
저 정도면 누구든 이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데 뇌까지 근육인가 봐.”
“큭큭.”
근육만 믿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지, 그는 오자마자 대뜸 소리를 질렀다.
“엄마백원만이 어떤 새끼야! 빨리 안 기어 나와! 나오기만 해 봐라! 아가리를 찢어서 죽여 버릴 거야!”
곽도성은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노형진이 그를 붙잡았다.
“나가지 마세요.”
“네?”
“나가지 마시라고요.”
“아니, 왜요?”
이번 현피는 서버에 소문이 났다. 주변에 그걸 구경하러 사람들이 많이 왔다.
심지어 인터넷 커뮤니티에까지 퍼져서, 주변에 구경 온 사람만 수십 명이다.
“이거 안 나가면 제가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립니다.”
“압니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걸 보여 주면 되지요.”
“네?”
“기다려 보세요.”
노형진은 히죽 웃었다.
“아오, 어쩐지 이 씨발 새끼, 말만 번지르르하지 결국 안 기어 나올 줄 알았어. 그런 새끼가 무슨 길마라고.”
피식거리던 남자는 아무리 도발해도 아무도 안 나오자 결국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제야 그에게 다가가는 노형진.
“응? 뭐야? 네가 엄마백원만이냐?”
“아뇨. 전 그분의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네.”
“이 새끼가 현피를 하자고 하더니 꼴랑 변호사나 보네?”
비웃음이 가득하게 변하는 그 얼굴.
그러나 그의 비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현피라는 건 현실에서 싸우는 걸 뜻할 뿐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싸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뭔 개소리야?”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노형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 내려다보았다.
하긴,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2미터 좀 넘으려나?’
노형진은 일반적인 성인 평균이다. 모 방송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저급에 속하는 등급.
그에 반해서 이 남자는 척 봐도 2미터는 넘어 보인다. 그러니 위너라고 할 수 있지만…….
‘근육이 위너면 뭐해.’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뒤에서 노형진처럼 루저급 체급을 가진 두 사람이 나타났다.
“얼씨구, 패거리 끌고 온 거냐?”
“패거리는 아닙니다.”
“뭐?”
어리둥절한 사이, 두 사람은 그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내밀었다.
“경찰입니다.”
“경찰?”
경찰이라는 말에 눈을 찌푸리는 남자.
“남자가 말이야, 가오가 있지. 현피 장소에 맞짱 뜨러 오면서 경찰을 데리고 와? 어이가 없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상대방을 마음껏 비웃었다.
물론 현장에서는 잘못한 게 없다. 현피를 약속했다고 하지만 진짜로 싸움이 벌어진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경찰서로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뭔 죄목으로?”
“57건의 명예훼손 및 모욕, 성희롱에 대해서요.”
“뭐라고?”
당황하는 남자.
명예훼손 및 모욕이라니?
“난 그런 거 한 적 없다고!”
“인터넷에서 하지 않았습니까?”
“지랄하지 마! 그건 처벌 안 받는다고! 이미 다 들었어!”
‘들었어?’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저 말이 가지는 뜻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누군가 그에게 어드바이스를 해 줬다는 뜻이다.
과연 그런 걸 누가 어드바이스해 줄까? 변호사가?
‘그럴 리 없지.’
결국 길드에서 해 줬다는 뜻인데.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특정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고.”
“씨팔! 상대방이 누군지 알고!”
“당신은 누군지 알지. 상대방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직업과 직급까지 말이야.”
“응?”
“인터넷에서 다 말해 줬잖아.”
경찰은 피식거리면서 웃었다.
“그거야 그런데…….”
“그걸 보통 특정이라고 하지.”
그리고 상대방이 특정되는 순간 명예훼손 및 모욕 그리고 성희롱은 그 위력을 자랑한다.
“그동안 참 바빴네.”
그가 모욕한 것은 곽도성 한 명이 아니다.
전쟁 중이고, 죽이는 대로 매번 그런 식으로 모욕하고 희롱했다. 당연히 그건 다 증거로 남았다.
“각 사건은 다른 시간에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범죄행위이지요. 당연히 개별 사건으로 들어가고 말입니다. 증거도 있으니 현행법상 죄가 성립되는 것은 맞습니다.”
노형진은 그러면서 경찰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전과 57범이라.”
“쯧쯧.”
경찰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과 57범이면 인생 끝난 거지.”
“헐…….”
얼굴이 사색이 되는 남자.
물론 이걸 가지고 실형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벌금은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다.
벌금만이 문제가 아니다.
벌금을 내고 난 후에 취업이라도 할라치면 전과 57범짜리를 누가 고용하겠는가?
결국 미래를 위해서는 합의해야 하는데…….
“아, 합의금은 400만 원 이하로는 생각 안 합니다.”
사색이 되다 못해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남자.
아무리 자신이 운동을 해서 사회적으로 무식하다고 하지만 경찰과 변호사까지 끼어서 하는 일이 절대 자신에게 유리할 수 없을 거라는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자…… 잠깐만요. 전 모르고 그런 거예요!”
“모르고가 아니라 알고 그랬잖아요. 증거가 넘쳐요.”
경찰은 머리를 흔들었다.
“일단은 참고인으로 동행해 주셔야 합니다.”
“참고인?”
“네.”
“그러면 저 안 가도 되는 건가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참고인은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참고인은 경찰이 참고만 할 목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에 대한 호칭이기 때문에 강제로 경찰서에 가야 하는 강제력은 없다.
“맞습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수갑을 차고 갈지도 모르지요.”
“수…… 수갑?”
“도망 다니다 보면 구속영장이 나올지도 모르고 현상금이 붙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물론 이런 걸로 현상금이 붙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어찌 되었건 경찰에서는 당연히 잡아들이려고 할 테지요.”
구속영장은 어쩌면 나올 수도 있다.
구속영장 발부의 기준은 상대방의 죄의 경중이 아니라 상대방이 도주나 범죄 은닉의 가능성이다.
스크린샷으로 다 찍혀 있으니 범죄 은닉은 못 하겠지만 경찰의 동행 요구를 거절한 이상 도주 위험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구속영장이 발부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구…… 구속영장…….”
얼굴이 더더욱 하얗게 질리는 남자.
그리고 그 옆으로 다가오는 한 남자
“이분이 바로 엄마백원만입니다.”
“다…… 당신이…….”
“아, 그러고 보니 죽여 버리겠다고 한 게 있었지요?”
“네? 아, 네.”
곽도성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노형진은 경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명백하게 협박의 현행범이네.”
“음…….”
물론 협박은 현행범으로 보기가 참 애매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건 고발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경찰서로 갑시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결국은 경찰서로 가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한 번만 봐주세요!”
상대방은 바로 돌변했다.
으르렁거리면서 자신의 남자다움을 자랑하며 강함을 어필하려고 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피해가 없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구속영장이라니.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진짜예요! 제가 쓴 게 아니에요! 우리 집 고양이가 썼어요!”
무릎을 꿇으면서 빌기 시작하는 남자.
아까는 내려다보던 남자는 이제는 노형진을 올려다보는 처지가 된 것이다.
“고양이가 썼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그나저나, 그런 고양이가 있으면 합의금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네?”
“그렇게 똑똑한 고양이라면 전 세계에서 몇백억을 주더라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어어…….”
“같이 가시죠.”
경찰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같이 가서 진술하셔야 할 거 많습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애걸복걸을 하는 남자.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노형진이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못 들으셨나 본데 명예훼손 및 모욕과 성희롱, 그건 모두 57건입니다. 저희가 여기서 용서해 드려도 56건이나 남습니다. 뭐, 용서해 드릴 생각도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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