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119)
“아, 확실히 네가 가방이나 그쪽에 관심이 많지.”
그녀는 원래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가방 쪽에 관심이 많아서 그녀도 관심이 많다.
물론 지금은 명품 가방을 살 여건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번 사건을 해결한 적도 있고.
“그런데 왜?”
“저 여자 가방, 한정판이야.”
“그게 뭐 이상해?”
“아니, 그래서 내가 기억한 것뿐이야.”
“그런데?”
“그런데 저 여자, 벌써 40분째 립스틱 코너에서 고르고 있거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아. 직원이 눈치를 주니까.”
“응?”
“그리고 한정판 가방을 사는 사람이 저런 립스틱 코너에서 40분 동안 고를 리 없지. 저 브랜드는 10~20대를 겨냥한 저가 브랜드라고.”
“그래?”
“그래. 지하철역에 고가 브랜드가 들어올 리 없잖아?”
노형진은 그 상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자신이 아는 한 사회 초년생들이 많이 가는 저가 브랜드다.
립스틱이라고 해 봐야 1만 원 정도 할 것이다. 고가 브랜드의 립스틱은 6만 원을 넘으니까.
“비싼 거라면 저렇게 고르는 걸 이해라도 하지, 1만 원밖에 안 하는 걸 저렇게 비싼 가방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오래 고르겠어?”
“응?”
그러고 보니 그렇게 여건이 된다고 하면 더 비싼 곳으로 가지, 저가형 브랜드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관심이 몽땅 가방으로 쏠려서 가방만 좋고 다른 건 저가형을 쓴다고 해도 그냥 한두 개 사서 나가지, 40분씩 고를 리 없다.
“저 정도 버티고 서서 고르면 직원들 눈치가 얼마나 보이는데.”
다른 화장품을 고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립스틱만 40분째라니.
“하지만 저 여자, 아직도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요? 반대 방향 아닙니까?”
“그러네.”
보관함에서는 정반대 방향을 향해 서 있는 그 여자.
노형진은 문득 매대 위에 붙어 있는 뭔가를 바라보았다.
카메라에는 각도가 안 맞아서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기다란 뭔가였다.
‘광고판도 아니고.’
광고판이면 카메라에 보였어야 한다.
그러나 광고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폼으로 달아 뒀을 리는 없고…….
“거울.”
“네?”
“저 기다란 거, 거울 아닙니까?”
의심스러운 여자 옆에 있는 누군가가 립스틱을 바르더니 그 긴 물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좌우로 돌려 보는 것이 보였다.
“립스틱을 바르면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거울이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확실하게 보관함을 감시할 수 있다.
“저 여자군.”
허점이었다.
유괴범이라고 해서 남자만 생각했다. 특히나 이런 조직적 범죄는 남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부분일 뿐, 조직원 중에 여자가 없으라는 법은 없다. 대부분이라는 말은 그저 확률의 문제일 뿐이다.
“헐.”
여자 조직원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강만중.
“이러니 다른 형사들이 모르지요.”
어떤 형사가 정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그녀를 의심하겠는가?
“찾았군요.”
강만중은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잡고 싶은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진정하세요. 지금 잡으면 말짱 황입니다.”
“알아요, 압니다. 하지만…….”
카메라의 각도상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 만일 여기서 놓치게 된다면 추적이 불가능해진다.
그때였다.
-들어갑니다.
다른 경찰의 목소리.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퀵 배달부가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시계를 보면서 다급하게 내려가더니 능숙하게 보관함을 열어 가방을 들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드디어 가는군요.”
아마도 그는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저 여자 봐.”
손채림은 그사이에도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배달부가 올라가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화장품 두어 개를 집더니 계산하고 그곳을 나왔다.
“빙고.”
노형진은 그걸 보고 싱긋 웃었다.
그녀가 카드로 계산한 것이다.
“범인 맞네.”
손채림은 확신하듯 말했다.
“어떻게?”
“지금 봤잖아, 화장품 들고 계산하는 거. 내용물을 확인하고 하자가 있는지 보는 게 일반적인 여자들의 버릇이라고. 립스틱 하나 샀는데 거기에 찍혀 있는 자국이라도 하나 있으면 얼마나 속상한데.”
“헐.”
“그런데 저 여자는 그것도 아니잖아.”
그냥 대충 있는 걸 집어서 계산하고 휙 나가 버렸다.
꼼꼼하게 40분이나 고른 것치고는 이상할 정도다.
“2번 출구. 지금 올라가는 분홍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확인하도록.”
-로저.
잠시 후 2번 출구에서 노점상으로 꾸미고 있던 형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용의자는 올라와서 다른 차량을 타고 움직였습니다.
“다른 차량?”
-그렇습니다. 국산 승용차입니다. 차량 번호가 ○○ 차 ○○○○입니다.
차량을 조회한 강만중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대포차인 모양이군요.”
“네?”
“세금이 2년째 체납되었습니다. 딱지도 무려 마흔 개가 넘구요.”
보통 이런 경우는 구청에서 운행하지 못하고 번호판을 영치한다. 즉, 그걸 떼어 낸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그 차를 찾지 못했다는 뜻, 즉 대포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포차라…….”
치밀하게 준비하기는 한 모양이다.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무전기에서 차량을 추적한다는 말이 나왔다.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절대로 걸리면 안 됩니다.”
“안 걸립니다.”
강만중은 확신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그들을 조사해야겠군요.”
이제 남은 것은 그 여자에 대한 조사였다.
* * *
“이름은 안혜영, 나이는 29세, 직업은 은행원입니다. 예상대로군요.”
노형진은 분명히 일당 중에서 은행원이 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일당이 된 걸까요?”
“허영이지요.”
“허영?”
“네. 그 가방 보셨습니까?”
은행원은 매일매일 엄청난 돈을 관리한다.
대부분의 멀쩡한 사람들은 그걸 돈이 아니라 그저 종이 쪼가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돈도 아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돈을 만지면서 허영이 드는 사람들.
그들은 그 허영을 채우기 위해서 자금을 횡령하거나 범죄에 빠져든다.
“그녀는 은행원이니 가입자들의 정보를 보는 게 어려운 건 아니겠군요.”
“그럴 겁니다.”
그녀가 대상을 고르고, 다른 녀석들이 유괴할 것이다.
“그런데 왜 감시는 그녀가 할까요?”
“상대적인 겁니다.”
“상대적?”
“네.”
유괴범은 대부분이 남자다. 여자 유괴범들은 남성 유괴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가 적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의심을 해도 남자를 의심하지, 젊은 여자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다 화장품 가게에 있는 그녀를 누가 의심할까요?”
“그런가요?”
고개를 갸웃하는 강만중.
그런 강만중에게 손채림이 첨언해 줬다.
“해당 브랜드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어요. 어지간한 상가와 연결된 지하철에는 거의 그 브랜드가 있지요.”
“그렇군요.”
“그러니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여자들만 바글바글한데 누가 의심하겠어요?”
“하긴.”
자신들도 의심하지 않아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으니.
“도착 장소는 어떤 곳이던가요?”
중요한 것은 퀵이 도착한 장소다.
“퀵은 남양주 쪽으로 빠졌습니다. 다른 배달 퀵들도 찾았는데, 다들 남양주 쪽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본거지는 찾은 셈이군요.”
강만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양주로 가서 약속된 장소에서 그걸 건넸답니다.”
“얼굴은 기억을 못 하던가요?”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음.”
동, 호수도 아니고 그냥 정해진 장소에서 받아 가다 보니 의심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퀵은 남양주에 있는 가가마트라는 대형 마트 앞에서 받아 갔습니다.”
“가가마트라.”
인터넷으로 보니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마트다.
“그 후에…….”
다음 일을 하려고 하는 찰나에 울리는 전화벨.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강만중은 전화기를 들고 잠시 통화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현이가 돌아왔답니다.”
“하아…….”
손채림은 다행이라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군요.”
일단 돈을 주면 아이는 안전하게 돌려준다.
“아이는 어떤가요?”
“비몽사몽이랍니다.”
“비몽사몽?”
“네. 수면제를 계속 먹인 모양입니다.”
“음…….”
그러니 범인을 찾을 수 없으리라.
유괴된 아이는 아무런 기억이 없을 테니까.
“아이는 찾았다고 해도 녀석들에 대한 추적은 멈추면 안 됩니다.”
“압니다.”
강만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은 안혜영의 전화를 조사 중입니다만,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이렇게 치밀한 녀석이라면 분명히 대포폰으로 통화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가요?”
“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 사건을 천천히 되짚어 봤다.
상당히 능숙하게 구성된 작전, 그리고 전략적 선택.
한국에는 대포폰이 있지만 미국은 선불폰이 있다.
물론 신분증을 보여 줘야 팔기는 하지만, 암시장에서 싼 가격에 구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이건 누군가 배운 거야.’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런 식의 범죄는 없었다.
이건 미국에서 갱단이 먼저 시작한 방식으로, 돈을 주면 확실하게 돌려준다는 이유로 인해서 대부분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돈을 주는 것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추적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주변에서 미국에 갔다 온 사람은요?”
“네?”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건 미국에서 발생한 방식입니다.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능숙해요. 만일 자생적으로 발생한 거라면 아마도 초반에 걸렸을 겁니다. 하지만 수십 번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몰랐습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그러니 누군가 미국에서 배워서 온 녀석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녀석이 이 방법을 짠 리더일 테고요.”
“미국이라…….”
“보통은 남자 친구인데…….”
“남자 친구는 없습니다.”
안혜영은 남자 친구가 없다.
“아무리 허영이 심해도 이런 위험한 짓에 쉽게 끼어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모르는 사람이 접근한다고 해서 유괴에 끼어드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서로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가족 중에서도 없는데요.”
“이상하군요.”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사건을 접할 이유가 없다.
“혹시 말이야, 우리가 너무 먼 데서 찾는 거 아냐?”
“응?”
“은행이 있잖아.”
“은행에서 만났다고? 하지만 남자 친구는 없는데?”
“남자 친구라는 보장은 없지.”
“보장은 없다고?”
“그래.”
“무슨 뜻이야?”
“남들이 모르는 관계라는 게 있잖아.”
“남들이 모르는…….”
노형진은 눈을 지푸렸다.
“불륜 말이야?”
고개를 끄덕거리는 손채림.
“그런 관계가, 우리가 턴다고 나올까?”
“하긴…….”
만일 대포폰으로 대화한다면 그들의 관계가 드러날 리 없다. 그리고 서로 불륜의 관계라면 상당히 믿음직한 사이이기도 하다.
“다른 지점에서 만났을 리는 없으니 해당 지점에서 유부남에 미국을 갔다 온 사람이면 확 줄지 않을까?”
“확 줄겠지.”
어쩌면 진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몰랐다.
* * *
“그거 김단수 과장 같은데요?”
극비리에 점장을 만나자 점장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냈다.
“김단수 과장?”
“네.”
“불륜 관계인가요?”
“그건 모릅니다. 하지만 김단수 과장이 확실히 유부남이기는 하지요. 그리고 우리 지점에서 미국에 갔다 온 사람은 그 사람 한 명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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