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138)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두리번거리는 노형진.
“그냥 한번 시작해 볼까 해서요. 아버지가 이런 걸 한번 해 보라고 해서…….”
“아버님?”
“이 사람 아버님이 수천억대 재산가라네. 그런 집안이니 그런 걸 한번 배우고 싶은가 보더군.”
“아아…….”
유치환의 눈에 한순간 부러움과 동시에 경멸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돈이 많아서 골동품을 시작하는 놈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소에 생각해 본 거 없습니까?”
“음…… 평소에는 피규어를 좀 모았습니다.”
유치환은 순간 이 병신은 뭔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아주 찰나였지만, 그걸 읽지 못할 노형진이 아니었다.
‘아니, 피규어가 어때서?’
결국 뭘 하든 자기만족이 중요한 것이다.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라는 말은 그냥 장난삼아 하는 말이 아니라 정상적인 삶의 방식이다. 남에게 오지랖을 떨어 대는 것은 서로에게 피곤할 뿐.
“음…… 그런 거라면 조각상은 어떠신가요?”
“조각상요?”
“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관리가 쉽거든요. 처음 입문 하시는 분이라면 관리법도 잘 모르실 테니까요.”
“그런가요?”
“네, 서적이나 그림은 종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썩어 버립니다. 하지만 조각상은 부서지는 경우만 조심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책이나 그림은 부서지지 않잖아요? 제습기 같은 거 틀어 두고 보관하면 안 되나?”
“절대 안 됩니다. 책이나 그림은 오래된 종이라 그 자체로 상당히 말라서, 잘못하면 바스라질 수도 있고요. 너무 습기가 없어도 말라서 자연스럽게 바스라집니다.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런가요?”
노형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사실 모르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러니 조각상 같은 걸 한번 모아 보시죠.”
“네.”
노형진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구경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건 만지시면 안 됩니다.”
“네.”
노형진이 설치고 다니자 불안한 듯 따라다니는 유치환.
이준식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그중에서 하나를 스윽 가리켰다.
“이 불상 어떤가? 제법 좋아 보이는구만. 역사도 오래되어 보이고.”
“어, 그러네요. 좋아 보여요.”
노형진이 말하자 유치환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건 안 되는데요.”
“왜?”
“아, 그건…… 진품이 아닙니다.”
“응?”
“데코용으로 가져다 둔 가짜여서요.”
“그래? 진짜 같은데?”
이준식은 품에 칼 하나를 품고는 그대로 푹 찌르듯이 말했다.
“내 눈도 삐었구먼. 이딴 가짜를 진짜로 보다니.”
“하하하…… 누구든 실수하는 날이 있는 법이지요.”
왠지 찔끔하는 얼굴로 고개를 스윽 돌리는 유치환.
노형진은 그를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떠올렸다.
‘웃기고 자빠졌네.’
자신이 없었다면 아마도 진품으로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있으니 진품으로 팔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사 가면 분명히 아버지가 알아보려고 할 테고, 그러면 걸릴 테니까.
“그럼 이건 진짜인가?”
“이건 진짜입니다.”
“그래?”
작은 불상을 이곳저곳 바라보는 노형진. 확실히 진품으로 보이기는 했다.
“이거 얼마예요?”
“카드로 하시면 3,400만 원입니다.”
“카드? 아부지가 현금으로 하라고 했는데요?”
“네? 현금요?”
조용히 듣고 있던 이준식이 헛기침하면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크흠…… 아무래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자네도 알지? 좀 사정이 있어서, 기록을 남기는 게 좀 곤란해서 말이지, 크흠.”
나지막한 이준식의 말에 유치환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곤란하다는 그런 게 아니라,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아깝네.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적지 않게 털어 냈을 것 같은데. 하는 짓도 호구 같고.’
하지만 이제 와서 사기를 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만일 사기를 쳤는데 가짜인 것이 알려진다면 주변에서 다들 달려들 것이다. 일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데 그렇게 되는 것은 절대로 사절이다.
“음……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잘 부탁하네.”
이준식은 슬쩍 말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유치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래 거래한 사람이니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다. 어차피 그래 봤자 얼마 못 해 주지만.
“그런데요.”
“응?”
“이런 거 경험 있어요?”
“무슨 경험요?”
“이런 장물들 처리하신 경험요. 아부지가 그런 거 할 줄 모르는 사람하고 거래하면 나중에 뒤가 찝찝하다고 그랬는데.”
노형진은 슬쩍 유치환에게 바짝 붙어서 물었다. 그러자 유치환은 순간 당황했다.
“어허, 그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야.”
“아, 그런가요?”
“아무리 철이 없다지만, 이러면 곤란하네. 내가 어련히 알아서 소개시켜 줄까.”
“죄송해요.”
슬쩍 몸을 떨어뜨리는 노형진.
이준식이 나서서 유치환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네. 자네도 보다시피…… 알지?”
“하아, 네. 알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개념 없고 세상모르는 갑부의 아들이다. 철이 없어서 미래가 깝깝한 무능한 모습.
“에잉……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아닌 것 같군. 내 나중에 다시 데려옴세.”
“네?”
“이런 거 하려면 최소한 기본 소양은 있어야지. 이런 천둥벌거숭이를 끌고 다니다가 뭐라도 하나 깨 먹으면 어쩌나?”
“그렇기는 하지요.”
“미안허이. 내가 좀 가르친 뒤에 다시 데리고 오겠네.”
어리둥절한 표정의 노형진을 끌고 바깥으로 나온 이준식.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 가자 무서운 눈빛으로 매원을 노려보았다.
“개자식.”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에 자신이 가서 살펴봤을 때 아까 본 그 불상이 가짜라는 이야기는 해 주지 않았다. 그때 안 샀으니 망정이지, 샀으면 뒤통수를 맞을 뻔했던 것이다.
“노 변호사, 자네가 봐서는 어떤가?”
좀 전까지의 어벙한 모습을 모조리 지워 버린 노형진은 그런 이준식을 보며 씩 웃었다.
“확실히 거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지는 알 수 있고?”
“여기저기에 작은 마이크를 붙여 놨으니 통화 내역이 나올 겁니다.”
“나올까?”
“나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마이크는 없었다. 하지만 아까 그가 움찔하는 그 순간에 노형진은 그가 거래하는 사람들 중 일부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
‘제법 많네.’
그리고 그 기억에 따르면 상당히 큰손이 많았다.
좋게 말하면 큰손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부정 축재를 하는 나쁜 놈들.
“그들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할 건가?”
“에이, 그럴 리가요.”
“응?”
“도와 달라고 한다고 그 녀석들이 호락호락하게 도와주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 녀석이 왜 부정 축재를 하는 놈들을 노렸겠습니까? 당연히 검증을 못 할 걸 알고 노렸지요.”
“아하!”
자신들이 가서 당신이 가지고 간 골동품이 가짜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들 그 사람들이 순순히 인정하면서 그걸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구입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어쩌자는 건가?”
“그들을 빡치게 만들면 됩니다.”
“빡치게 만들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죄목이 뭔지 아십니까?”
“살인?”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적인 부분. 진정으로 큰 죄목은 법적인 게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목은 다름 아닌 괘씸죄입니다, 괘씸죄. 후후후.”
노형진은 그 괘씸죄에 유치환을 엮어 볼 생각이었다.
일석이조 (1)
노형진은 그날부터 기억 속에 있었던 작자들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다.
아주 찰나의 기억이라 많지는 않았지만 이름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었다.
애초에 찔끔하는 순간에 생각날 정도로 힘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니 찾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노형진은 그중에서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
자신이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모를 테지만.
노형진은 반가운 나머지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김세악 현 충북경찰총장이라.”
아주 끗발 날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자 재산을 아주 많이 빼돌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노리는 최재철의 일파인 녀석이다.
그가 기억 속에서 산 골동품 매매 대금만 무려 13억을 넘어가니 도대체 얼마나 빼돌린 건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이번 기회에 이 녀석에게 한 방 먹이는 것도 좋겠군, 후후후.’
노형진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는 게 있었다.
“그래서, 의심하는 곳은 찾았어?”
당연히 그를 캐는 것은 손채림에게 떨어진 일이었고, 손채림은 얼마 걸리지 않아서 의심스러운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고미술품이라고 했지?”
“응.”
“그러면 이곳일 가능성이 높아.”
그녀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여기는 뭐야?”
“김세악이 꾸민 가족묘.”
“가족묘?”
“응.”
“아니, 웬 가족묘?”
“고미술품이라고 했잖아. 그러면 그가 그걸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잖아.”
“그렇지.”
“그런데 그 사람 집에는 그런 게 없어 보인단 말이지.”
그가 사는 곳은 아파트다.
아파트는 실제로 그다지 넓은 공간은 아니다. 그러니 그곳에 숨긴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주변에 감출 만한 공간을 찾아봤어. 창고 같은 거.”
“그런데?”
“없더란 말이야.”
“차명으로 빌린 거 아냐?”
“그런 생각도 하기는 했는데…….”
하지만 창고의 보안 수준은 뻔하다.
더군다나 그런 곳을 빌려서 보안을 높이기 위해서 공사하면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 남의 건물이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는 건물을 사야 하는데…….
“그러면 또 그 돈이 들어간단 말이야.”
“음…….”
“거기에다가 이름 빌려준 놈이 털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문제도 생각해야 하고.”
“하긴.”
만일 당사자가 그걸 열고 가져가겠다고 하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차명이니 그걸 막을 수 있는 법적 권한도 없고.
“그래서 다른 쪽으로 생각했지.”
“다른 쪽?”
“고미술품은 보관하기 위해서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한다면서?”
“그건 그래.”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미술품은 보관이 쉬운 물건은 아니다. 박물관도 그런 걸 보관하기 위해서 전용 창고를 만들어야 한다.
“김세악이 만일 그런 걸 보관한다면, 매일같이 붙어서 관리하지는 못할 거 아니야?”
“그렇지.”
“그러면 부서지거나 손상이 생길 수 있는데, 내가 듣기로는 손상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며?”
“어마어마하지.”
고서적의 경우 최고 1천만 원에 달하는 책이라도 상태가 좋지 않으면 100만 원 정도로밖에 팔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골동품을 보관하는 사람들이 보존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이고.
“그러면 그런 설비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했어.”
“설비! 아하!”
고미술은 종이로 되어 있다.
노형진이 매원에 찾아갔을 때 유치환은 처음이니 관리가 힘든 고미술이나 서적보다는 조각품을 수집해 보라고 했다. 그만큼 관리가 쉬운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 녀석이 매일 관리할 수는 없으니 전문 장비를 사용하겠군.”
“그래서 좀 알아봤지.”
땅 같은 것은 기록에 오래 남으니 김세악도 신경을 쓰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 카드 결제 같은 것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게 사람이다. 물론 고가라면 몰라도, 상대적으로 고가가 아니라면 무심결에 결제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그런데 제습기를 산 기록이 있단 말이지.”
“그거야 흔하게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한겨울에?”
“호오?”
한겨울은 가습을 해야 하는 시기지, 제습을 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그런데 제습기라니 확실히 이상하다.
“더군다나 그 제습기를 배달한 곳은 그의 집이 아니었어.”
“어딘데?”
“그의 선산에 있는 친척 집. 그래서 그 집으로 간 배달 내역을 좀 추적해 봤지. 쉬운 건 아니었지만.”
그런데 제습기에 가습기 그리고 금고까지 배달되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선산이 표적이 된 거야. 그런데 그가 가족묘를 만들었더라고. 그게 이상해서 알아봤지.”
“뭐가 이상해?”
“가족묘를 만든 시점이 얼마 되지 않았어. 그런데 돌아가신 분은 없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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