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176)
“맞습니다. 형사적으로는 그렇지요.”
무전취식은 가벼운 범죄이고, 나중에라도 돈을 냈다면 해당도 안 된다. 그렇다고 갈취로 보기도 애매하니, 결국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민사라면요?”
“민사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는 겁니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민사소송이 대부분 금전과 관련된 소송이기는 하다. 하지만 민사소송이 꼭 금전과 관련된 소송이 아니었다.
“민사소송이란 우리 쪽에서 뭐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국가이니 기본이 돈이기는 하지만, 사과문 정도는 요구할 수 있지요.”
“사과문 하나 받아서 어쩌라고요?”
이미 그들이 안 좋은 소리를 해서 가게 하나가 망한 판이다.
“사과문을 받는 게 아니라 사과문을 공개하는 겁니다.”
“사과문을 공개한다?”
“네.”
노형진의 계획은 어줍지 않은 돈을 받아서 퉁치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파워 블로거의 힘은, 결국 국민들의 믿음이지요.”
사람들이 그를 본다는 것은 그를 믿고 그가 쓰는 글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과문을 그 블로그에 올린다면 어떨까요?”
“사과문을 블로그에?”
“네.”
“아하!”
그들의 권력은 국민에서 나온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면, 국민들은 그에게 실망하고 그를 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의 파워 블로거로서의 생명은 끝나게 되는 거지요.”
“오오!”
글을 연계하여 계속 사과문이 뜨도록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가 써 둔 악평에 대한 믿음도 사라질 테고 말이다.
‘근본적으로 파워 블로거라고 주장하는 거지새끼들의 힘을 꺽어 버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거지 노릇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게 가능한 거요?”
주인들은 어리둥절했다.
민사로 그런 걸 건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민사는 고정된 형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거든요.”
형사는 고정된 형태의 처벌만 가능하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는 도무지 방법이 없다.
하지만 민사는 고정되지 않은 형태의 소송도 가능하고, 이런 식의 강제이행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그럴 때를 대비해서 강제이행금을 부과하면 됩니다.”
“강제이행금?”
“네.”
강제이행금은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을 가능서이 높을 때, 그걸 행할 때까지 배상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들이 기업이 아닌 이상에야 적지 않은 강제이행금이 붙으면 거부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혹시 녀석들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으면…….”
“나요!”
그러자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우리 카메라가 있소! 우리 건 녹음도 된다오!”
한 명이 나서자 다들 잠깐 주저하는 듯하더니 너도나도 손을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뜯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도 하겠소!”
“나도!”
노형진은 그들을 보면서 미소를 떠올렸다.
* * *
“음…….”
판사는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판사 생활 10년 동안 이런 소송은 또 처음이었다.
“원고 측, 원하는 게 배상이 아니라 사과문 맞습니까? 그것도 자신의 블로그에 공지할 것?”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배상에 대해서는 포기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특이하군요.”
확실히 특이한 사건이었다.
돈 대신에 반성문이라니.
“피고 측 변호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과할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상대방 변호사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저들이 하는 건 무리한 요구입니다.”
“어째서 그렇지요?”
“피고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맛없는 집을 맛없다고 표현한 것뿐입니다. 대한민국은 표현의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변호사는 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마치 악에 대항해서 선을 지킨다는 듯한 그런 얼굴.
‘쯧쯧, 보아하니 속았구먼.’
노형진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자신이 유리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아마도 블로거인 피고는 자신이 했던 짓은 쏙 빼고 맛없다고 평을 썼다는 이유로 소송에 걸렸다면서 온갖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사람은 표현의자유를 지키겠다고 당차게 나왔을 테고.’
이상하리만치 당당한 변호사의 얼굴을 보고 노형진은 상황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진짜로 그렇게 믿으십니까?”
노형진은 상대방 변호사를 보면서 말했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는 호기롭게 말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보의 착각이었다.
의뢰인은 그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 때문에 숱하게 졌다.
사실을 말했다면 대비라도 했을 텐데, 이건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하고 허점을 찔렸기 때문에 대비도, 방어도 못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지고 나서야 알았다,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말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감춘다는 것을.
설사 상대가 자신을 지키는 변호사라고 해도 말이다.
‘믿고 지는 것이냐, 아니면 믿지 않고 이기는 것이냐.’
궁극적으로 변호사의 업무는 믿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
그래서 노형진은 일단 의뢰인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노형진은 가볍게 잽을 날리는 기분으로 하나의 영상을 틀었다.
그건 카운터 앞에서 주인과 싸우는 피의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요? 맛이 없다고 항의했던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음식이 맛이 없으면 바른말을 해야 그 음식점이 나아지지요.”
“그래요? 하지만 경찰 기록은 다르던데요.”
“다르다니요?”
“재판장님, 여기 경찰 출동 기록을 제출합니다.”
“경찰 출동 기록?”
그건 생각도 못 해 본 카드였기 때문에 피고 측 변호사는 어리둥절했다.
경찰이 출동했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 영상에 찍혀 있는 일시와 출동한 날짜를 보면 동일한 시간과 음식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경찰은 출동한 기록을 남기게 되어 있다. 그게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그 기록을 찾으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기록에 따르면 그날 출동 사유는 음식점에서 발생한 무전취식입니다.”
“맛이 없어서 내지 못하겠다고 했겠지요.”
“그래요. 확신하십니까?”
“확신합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내는데요?”
경찰이 와서 몇 마디 하자 블로거는 거칠게 자신의 카드를 집어 던졌고, 주인은 그 카드로 결제를 했다.
그리고 블로거는 그걸 빼앗듯이 낚아채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일단 무전취식이 맞으니, 마음에 안 들더라도 계산은 해야지요.”
“그래요? 그러면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하실 겁니까?”
“어떤……?”
노형진은 미리 준비한 녹음기를 버튼을 눌러서 재생시켰다.
낯선 두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12 경찰입니다.
-여기 ○○식당인데요, 여기 돈을 안 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돈을 안 낸다니요?
-자기가 무슨 파워 블로거인지 뭔지라고 하면서, 돈 안 받으면 글 좋게 써 주겠다고 하고 있어요.
-파워 블로거요?
-네.
노형진은 거기까지 들려주고 녹음기를 껐다. 그리고 상대방 변호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파워 블로거라서 돈 못 내겠다고 했다는데요?”
“그건…….”
상대방 변호사의 눈동자는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런 이야기는 전혀 들어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 오해가…….”
“그래요? 재판장님, 그 당시에 식당에서 식사 중이던 손님을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손님?”
노형진의 말에 상대방 변호사는 이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설마 손님이 증인으로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단골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거든.’
아무리 유명한 집도 자기 입에 안 맞으면 땡이다.
반대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집도, 자기 입에 맞으면 단골이 된다.
즉, 어떤 가게든 자기만의 취향이 확실한 단골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단골은 보통 가게 근처에 있지.’
아니나 다를까, 그날 기록을 찾아보니 자주 오는 단골이 두어 명 있었고 그중 한 명이 기꺼이 증인이 되어 주겠다고 했다.
“증인, 선서하세요.”
증인이 앞으로 나와서 선서하고 증언을 시작하자 상대방 변호사는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그날 피고가 와서 협박을 하던 것을 봤다 이거군요?”
“네, 분명히 그러더군요. 내가 파워 블로거다, 내가 광고 올려 주면 수십만 명이 볼 거다, 광고비 달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이 정도 광고 해 주면 밥 한 끼 대접하는 건 예의 아니냐고.”
“그래서 식당 주인이 거절하자 그 블로거라는 사람이 뭐라고 하던가요?”
“이딴 가게 망하게 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망하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다?”
“네.”
“그래서 주인은 뭐라고 했지요?”
“당신 말 몇 마디에 망할 가게 아니니까 돈이나 내고 가라고 했지요.”
“그렇군요.”
증거에 증언에, 모든 것이 나오자 상대방 변호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피고 측 변호인, 증인 심문 안 합니까?”
“네? 아…… 합니다. 합니다.”
오죽 정신이 없으면 그는 한참을 부른 후에야 앞으로 나왔다. 그만큼 대책이 없어 보였다.
‘쯧쯧.’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보아하니 변호사가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과도하게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러면서 다들 진짜 변호사가 되어 가는 거야.’
노형진은 속으로 그를 응원했다.
‘변호사는 믿어 주는 게 아니라 이겨 줘야 하는 존재니까.’
아마도 이번 일로 그는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블로거라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들었다는 거지요? 하지만 소란스러운 그곳에서 정확하게 입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나요? 피고는 증인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하던데요.”
“뭐, 사람들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으니까요.”
“쏠렸다?”
“네, 그 당시에 워낙 소란스러워서요. 그리고 제가 보이면 그게 이상한 거죠.”
“하지만 그건 증인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건 아니거든요. 보통 제가 혼자 가서요.”
“그게 무슨 소리죠?”
“아무래도 혼자 가면 미안하니까.”
오는 손님이 많은데 혼자 가서 4인 테이블을 차지하면 다른 단체 손님을 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 집의 음식을 자주 먹는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보통은 카운터 바로 옆에 있는 2인 테이블을 씁니다.”
“2인 테이블요?”
“네.”
그 자리는 화분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또 카운터 바로 옆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단골이고 다른 손님들이 계속 오는 걸 아니까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그 자리에 앉아서 식사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화분이라는 게 방음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바로 옆에서 모든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인이 거기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혹시 카드라도 썼습니까?”
“어…… 현금으로 냈는데요, 그날은.”
“그러면 본인이 거기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네요?”
변호사는 애써 꼬투리를 잡았다.
본 사람도 없고, 주변에 다른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증인이 거기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스스로도 자신은 혼자 가서 먹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단체 손님들이 그를 기억할 이유도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증거를 제출합니다.”
“증거?”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는 피고 측 변호사.
증인은 혼자 왔다는데 증거라니?
“재판장님, 그날 증인의 핸드폰 사용 기록을 제출합니다.”
“핸드폰 사용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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