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18)
“네.”
누나라는 사람이 나가고 난 후 노형진은 바닥에 손을 대고 천천히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사건이 벌어진 시간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거군.”
시간을 정하고 읽기 시작하자 빠르게 흘러들어 오는 기억.
‘역시 동생의 기억이군.’
기억은 비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손에 들려 있는 케이크와 설렘, 행복감. 그 감정은 문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졌다.
“꺄아악!”
방 안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동생, 아니 노형진은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누나!”
문이 벌컥 열리면서 보이는 집 안의 풍경. 방 입구에 쓰러진 누나와 그 앞에 서 있는 스키 마스크를 쓴 남자의 모습. 그걸 본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칼이…….’
흔한 형태의 칼이 아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서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 하지만 그는 동생을 제압하기 위해 재빠르게 다가왔다. 칼을 들고 다가오는 그 모습은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크윽.’
노형진도 한번 느꼈던 것이었기에 그 감정이 더욱 거북스러웠다. 자신이 죽던 그날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
그렇다고 사이코메트리를 그만둘 수는 없을 노릇.
‘젠장.’
그는 계속 감정을 추스르면서 기억을 읽었다.
태권도를 배웠다는 이양식은 남자가 달려오자 엉겁결에 돌려 차기를 시전했다. 느껴지는 감정으로 미루어 볼 때 엉겁결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런 어설픈 돌려 차기에 걸려 칼이 이양식의 뒤쪽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거 완전히 소가 뒷걸음질하다가 쥐 잡은 꼴이네.’
노형진은 범인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리는 걸 느꼈지만, 이양식은 그걸 모른 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범인이 마음을 추스르고는 이양식에게 달려들었다. 이양식은 다급한 마음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물건, 즉 빨래 걸이를 잡아서 휘둘렀다. 사실 강하게 민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공격에 범인이 쓰러졌다. 그러자 이양식은 빨래 걸이를 집어 던지고는 그대로 누나에게 달려갔다.
“누나!”
누나의 안위를 확인하는 순간 노형진은 긴장했다. 만일 추가적인 공격이 이루어졌다면 지금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응?’
이양식의 시선이 범인에게 향했다.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누나, 도망가자.”
이양식은 그대로 누나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관문을 넘지도 못하고 누나가 쓰러지자 이양식은 누나를 안아 들고는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이게 끝인가?”
이 현장에서의 기억은 이걸로 끝이었다. 그다음 기억이 경찰의 것이니 이는 즉, 이 사건 이후에 이양식이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거짓말한 건 아니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했지만 이양식이 거짓말한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사건이 좀 이상한데?”
이양식의 행동은 그렇다 치고 범인의 행동은 여러모로 이상했다.
“결국 알아보는 것은…… 내가 하는 수밖에 없겠군.”
* * *
“이게 판결문입니까?”
“네.”
최 부장에게 부탁해서 받은 1심 판결문 복사본.
“기가 막히군요.”
“제대로 된 수사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측 주장만 거의 다 들어 줬다고 봐야 합니다.”
판결문에는 이양식이 칼을 날려 버린 것까지는 인정하지만 그 상황에서 도망치는 범인을 폭행함으로써 과도한 방어 행동을 했다고 되어 있다.
‘이 새끼들…… 현장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게 분명해.’
기억에 따르면 날아간 칼이 떨어진 방향은 정확하게 이양식의 뒤쪽, 그러니까 입구 쪽이었다.
게다가 노형진이 봤을 때 범인은 도망치기 위해 그쪽으로 뛴 게 아니라 떨어진 칼을 회수하기 위해 달려든 듯했다.
만일 도망치려고 했다면 잡힐 걸 대비해서 거리를 두고 돌아서 나가려 하지, 주먹을 쥐고 정면으로 달려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 안 되는군요.”
상대방이 칼을 놓친 상황에서 위험은 해소되었고, 상대방이 도주하는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위험물인 빨래 걸이를 이용하여 가격.
결과적으로 심장마비를 발생시켜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입힌 점이 인정되어 과잉 방어로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떻습니까?”
“정당방위가 확실합니다.”
“역시 그렇군요.”
최 부장은 솔직히 미심쩍어 했다. 하지만 재단 설립 초기에 노형진이 이상한 사건이 있으면 바로 말해 달라고 했기에 말한 것이다.
“하실 겁니까?”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지키는 건 자기 자신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가 억울해진 사람은 우리가 지켜야지요.”
“힘들 거다.”
옆에 있던 송 변호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건들은 그나마 설득이라도 할 수 있지, 이건 판사들이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이 많은 사건인 탓이다.
탁!
노형진이 판결문을 덮으면서 씨익 웃었다.
“언제는 쉬웠습니까?”
또다시 새로운 도전이 노형진을 불타게 만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피해자인 이양식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했다. 누구도 자신을 믿어 주지 않았다. 심지어 국선변호인조차 알아서 하겠다더니 결과적으로는 자신에게 실형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노형진은 이미 결판이 났다고 생각되는 사건을 직접 변호해 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감사할 건 없습니다. 변호 비용은 다 받는 거니까요.”
물론 이양식에게 받는 건 아니다. 그는 명확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기에 대룡에서 만든 재단법인으로부터 대신 받을 것이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아닙니다. 그래도…… 흑흑…….”
다른 변호사들은 1심에서 졌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비용을 높여서 불렀다. 그래서 따로 고용하기에는 돈이 없지만 그렇다고 다시 국선변호인을 사기에는 걱정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노형진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거 쉬울까요?”
민시아 변호사는 입맛을 다시면서 다시 한 번 기록을 확인했다. 정식으로 사건 기록을 확인할수록 수사 기록이 너무 날림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경찰에서 이런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기는 좀 힘들지요.”
제대로 수사해서 넘겨주면 좋겠지만 경찰은 거의 대부분 정당방위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수사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기록 자체가 허술한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심리전이나 언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싸워야 할 것 같군요.”
“과학적으로요?”
“네, 언플을 하기에는 위험한 사건이니까요.”
아무리 이쪽에 정당성이 있다고 해도 범인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따라서 저쪽이 더 심각한 피해를 입어 여론이 갈릴 가능성이 높으니 언플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
“더군다나 수사 자체가 여기저기 허점이 많아요. 특히나 상황에 대해서는 수사관의 개인적 의견투성이입니다.”
정확한 현장의 분석도 없이 ‘이럴 것이다.’, ‘그럴 것 같다.’와 같은 수사관의 의견으로 점철된 내용들. 그리고 그걸 검증도 없이 받아들여서 다짜고짜 과잉 방어라는 이유로 처벌하는 법원.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군요.”
1심에서 판결이 난 내용이고 항고했다고 하지만, 2심이 코앞이라 여러 가지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미드로 공부해야 하는 겁니다.”
“미드?”
“그런 게 있습니다.”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면서 법원을 바라보았다.
‘CIS 시리즈에 통달한 자의 위력을 보여 주마.’
형사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형진이 가진 대부분의 증거는 경찰이 조사한 증거라 대부분 검사에게 유리한 형태로 되어 있었다.
* * *
“친애하는 재판장님, 기존의 증거에서도 보다시피 피고인은 도주하기 위해서 입구로 달아나는 피해자에게 위험물인 빨래 걸이를 휘둘러 심각한 신체적인 상해를 입혔습니다. 칼을 놓친 상황에서 모든 위험이 사라진 것이라 볼 수 있음에도 피고인은 과도한 형태로 폭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결과 피고인에게 심장마비가 왔으니, 현재 혼수상태인 점을 감안하여 엄벌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1심과 다를 바 없는 검찰 측의 주장. 노형진은 그런 검찰의 주장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피고인 측, 할 말 있습니까?”
판사는 시큰둥하게 말을 꺼냈다. 이미 검사에게 심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게 드러나는 상황.
“재판장님, 검사 측은 이번 사건에서 과잉 방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기본적인 내용을 보면 수사 단계에서부터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오류가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과학적 오류?”
“그렇습니다.”
노형진은 증거로 제출된 사진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검찰 측에서 갑제 3호증으로 제시한 사진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피고인이 평소 생활하던 곳으로, 이번 사건의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그 당시 경찰이 바로 찍은 것으로, 현장이 훼손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상황입니다. 검찰 측, 인정합니까?”
자신의 증거를 들이밀자 검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반박하는 증거를 들이미는데 도리어 자신들의 증거를 제시하다니?
“맞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바로 찍은 사진입니다.”
“그럼 한 가지 실험을 해 보겠습니다. 이 집의 공간은 총 10평 정도입니다. 방이 총 3평,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베란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빼고 나면 마루라 할 수 있는 공간은 대략 4평 수준입니다. 검찰 측은 이곳에서 피고인이 빨래 걸이를 휘둘러서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인정합니다.”
“저희는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대학 연구실의 도움을 얻어서 동종의 알루미늄 빨래 걸이의 위험도를 실험해 봤습니다. 이를 을제 1호증으로 제출하였으니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노형진은 노트북으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저기 서 있는 장비는 타격을 측정하는 장비입니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은 해당 대학의 학생으로, 피고인 측과 동일한 체격 조건을 가진 사람입니다.”
동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대화를 나누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빨래 걸이를 전력을 다해서 옆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퍽 소리가 나면서 장비가 흔들리고 잠시 후 120킬로그램이라는 수치가 나타났다.
“보다시피 동일한 조건의 사람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할 경우, 120킬로그램의 수치가 나타난답니다.”
“그 정도면 사람을 충분히 상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검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실험실의 수치입니다. 다음 동영상을 보시면…….”
화면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장면. 그곳은 피해자의 집이었다. 그리고 아까 그 남자, 즉 실험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전력을 다해서 빨래 걸이를 휘둘렀다.
와장창!
그러나 아까와는 다른 시끄러운 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어?”
영상에 보이는 화면은 빨래 걸이가 주변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여러 가지 집기들과 부딪치는 것을 보여 주었다. 싱크대에 걸린 냄비나 집기들, 기타 잡다한 물건들.
그런 것들에 걸린 빨래 걸이의 속도가 급속도로 줄어들더니 최고 속력이 40킬로그램이 나왔다.
“보다시피 현실에서는 저 안에서 위협적인 속력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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