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20)
“아무래도 경찰에 있겠지요.”
“경찰요?”
“네.”
“아니, 왜요?”
“주거침입이 성립하기는 하는데 피해자가 혼수상태라 사건이 종결된 건 아니니까요.”
“이런.”
웃긴 일이다. 피해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일단 그쪽으로 갑시다.”
“그쪽에 가서 뭘 확인하시려구요? 이번 사건에 관련된 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럽니다.”
노형진은 그걸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다.
“역시.”
열람 신청을 해서 본 피해자의 칼은 역시나 특이했다.
“이건 뭔가요?”
“군용 대검입니다.”
기억 속에서는 너무 순간적으로 지나간 거라 확인하지 못했지만 가까이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 군용 대검이었다.
“군용 대검? 설마 피해자가 군인이라는 건가요?”
“아니요. 이런 형태의 칼은 다른 곳에서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쓸 수 있는 형태는 아니죠.”
군용 대검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이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 쓰기에는 불편하다.
“그런데 이 칼은 우리와 상관없지 않나요?”
“있습니다.”
“왜요?”
“아무래도 이 녀석, 초범은 아닌 것 같아서요.”
“초범이 아니다?”
“네, 칼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행동?”
“아…… 그런 게 있습니다.”
민시아는 노형진이 기억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 행동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것이다.
‘행동을 봐서는 뭔가 있어.’
노형진은 칼의 기억을 읽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봉투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이걸 꺼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차피 기억을 읽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접촉만 있으면 된다. 제대로 잡으려면 꺼내는 게 맞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살짝 구멍을 내도 될 것이다.
“민 변호사.”
“네?”
“가서 담당 경찰관 좀 데리고 와 줄래요?”
“담당 경찰관요?”
“네.”
“알겠습니다.”
민 변호사가 바깥으로 나가자, 노형진은 안쪽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슬쩍 몸으로 가리고는 열쇠를 이용해서 구석에 아주 미세하게 구멍을 뚫었다.
아주 작은 구멍이라 손가락의 가장 끝부분의 일부만 닿는 크기였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그는 그곳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을 찌푸렸다. 그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그 칼에서 읽어 낸 것이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훔칠 것도 없는 가난한 집에 강도질을 하러 들어간 게 이상하다 했다. 하지만 기억을 읽어 보니 그의 목적은 강도질이 아니었다.
‘강간범이었던 건가?’
강간범. 그것도 아주 지능적인 강간범이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항상 엉뚱한 장소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었던 것이다.
‘하긴…… 일반적인 칼보다는 훨씬 위협적이기는 하지.’
애초에 일반적인 칼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만든 군용 대검이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무슨 일입니까?”
그 순간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 담당 수사관이었다.
노형진은 슬쩍 손을 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별건 아니고요. 여기 구멍이 나서요.”
“구멍요?”
깜짝 놀란 그는 황급하게 봉투를 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구멍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네요.”
“왜요?”
“아무래도 저장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봉투가 닳아서 구멍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크기로 미루어 볼 때 그런 것으로 보였다.
“뭐, 별거 아닙니다. 사유서 쓰고 새로 넣으면 됩니다.”
“이 정도는 상관없나요?”
“이 정도로 오염될 이유가 없으니까요.”
“네.”
노형진은 슬쩍 모른 척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 * *
“군용 대검을 이용한 강간 사건을 찾아봤습니다.”
노형진은 오자마자 고문학에게 부탁해서 전국 경찰서의 미해결 사건 중에 군용 대검이 등장한 사건을 찾아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고문학이 찾아왔다.
“전국에 몇 건 있더군요.”
“강원도에서 2건, 전라도에서 2건, 충북에서 3건…… 전남에서 2건.”
“교묘한 놈입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건을 일으켰어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연쇄 강간범이라는 것도 몰랐을 겁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냥 한번 쓰려고 그런 걸 살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그렇군요.”
별 의심 없이 넘어가는 고문학. 하긴 그에게는 노형진의 이런 능력이 뛰어난 통찰력으로 보일 것이다.
“일단 이걸 증거로 삼을 수 있겠군요.”
“증거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필요한 건 아니네요.”
현재 중요한 정보는 피해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유이지, 그가 연쇄 강도강간범이라는 것이 아니다. 감형 사유는 될지언정 풀려날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단순히 놀라서 쓰러진다? 말도 안 된다.
당장 드러난 것만 해도 열 번이 넘게 강도 강간을 해 본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누군가를 만났다고 놀라서 쓰러질 이유가 없다.
“아…… 썅…… 제일 중요한 건데…….”
그에게 심장마비가 온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해결하기 전에는 이양식이 풀려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봐도 판사가 정당방위를 인정할 것 같지는 않았던 탓이다.
‘도대체 왜…… 왜…….’
* * *
늦은 밤.
그의 기록을 보던 노형진은 피곤함에 얼굴을 문질렀다.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오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로 간 노형진은 세수하고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붉어진 눈. 피곤한 얼굴.
“요즘 내가 무리하나.”
하긴 요 근래에 피곤했으니 한번 쉴 때가 되기는 했다.
“일단 이번 사건이 끝나면 무조건 쉰다.”
쉬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렇지만 일단은 해결해야 말이지.”
노형진은 한숨을 푹 쉬면서 화장실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노형진의 눈에 들어온 한 장의 명함.
아니, 명함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내용의 전단지였다. 명함 크기의 지라시랄까?
“하여간 별 쓰레기 같은 게…….”
개방된 건물이다 보니 이런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이 몰래 들어와서 뿌리고 간다.
무심결에 그걸 집어서 쓰레기통에 넣으려던 그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에 뉴스에서 본, 이제는 가물가물한 기억.
‘어쩌면…….’
어쩌면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의 나이를 봐서는 더더욱 말이다.
* * *
“사건을 진행해야 합니다.”
노형진은 마음이 다급했다. 명확한 증거가 나왔는데 그걸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사자가 혼수상태인데 무슨 수로 사건을 진행합니까?”
피해자의 주거침입을 담당하고 있는 검사는 짜증스럽게 선을 그었다. 피해자에 대해서 조사하고 싶어도 그가 혼수상태라는 것.
“그래도 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증거라도 찾아야 합니다.”
“일단 일어나면 이야기합시다.”
그때까지 사건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처벌을 피할 수가 없다. 노형진이 봤을 때 재판부는 아무리 봐도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확실했다.
“그 피해자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요?”
결국 노형진은 최후의 카드를 내밀었다. 불법적으로 얻은 정보이니만큼 공개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의뢰인이 처벌받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
“그렇습니다. 제가 좀 알아보니까 동종 전과로 의심되는 사건이 좀 있던데요.”
“뭐라고요!”
검사는 깜짝 놀랐다. 동종 전과로 의심되는 사건이 더 있다는 건 상습범이라는 소리이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는 해 봤습니까?”
“…….”
말을 하지 못하는 검사. 그걸 본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나.’
그가 혼수상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은 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는 뜻이다.
“보아하니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거 정식으로 제소해도 되는 거죠?”
“크흠, 정당방위로 만드는 건 좋지만 제소까지는 좀…….”
사건을 쥐고 있는 검사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서 형량이 뒤집히는 경우 제소할 수도 있다. 물론 안쪽으로 심하게 굽어 있는 법률계의 구조상 제대로 된 처벌은 못 하겠지만 최소한 승진에 악영향은 줄 수 있다.
“거래하죠.”
“거래?”
“관련 정보를 특정해서 주겠습니다. 대신에 일주일 안에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주십시오.”
“흠…….”
검사는 잠시 고민했다.
“연쇄 사건에 대해서 인지수사하는 게 인사고과가 상당히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한국에서는 구조상 연쇄살인, 연쇄 강간 같은 것을 인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사건에 대해서 열람을 막아 놨기 때문이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그런 상황에서 확실하게 인지하여 수사한다면 인사고과가 갑절이 넘어간다는 뜻이다.
‘거래라…….’
검사는 변호사들에게 일종의 정보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검사인 자신들보다 이런 사건의 인지가 빠른 경우가 있다는 사실도.
“대신에 공은 넘기는 겁니다.”
“그렇지요. 제가 그걸 가지고 있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검사의 말에 노형진은 씩 웃었다.
* * *
“수색영장입니다!”
피해자, 즉 범인의 집. 그곳에 들이닥친 경찰관들.
범인의 가족들이 발악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이고! 억울해! 억울해! 경찰이 사람 잡네!”
노형진은 바닥에 나뒹굴면서 억울하다고 소리 지르는 여자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억울하기는 개뿔.’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범인이 멀쩡하게 자라다가 갑자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말 그대로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저 사람은 억울하다고 외치면서 발악하지만 실제로 범인을 그렇게 키운 것은 그녀 자신인 것이다.
“검사님!”
방을 여기저기 뒤지던 경찰 한 명이 검사를 불렀다.
“역시!”
책상 서랍의 안쪽. 그 안에 붙어 있는 작은 통에서는 고무줄에 묶여 있는 몇 개의 머리카락이 나왔다.
“몇 개야?”
“스물한 개입니다.”
“스물한 개? 그렇게나 많아?”
“강간 사건의 신고율을 생각하면 그렇지요.”
노형진이 알아낸 사건만 열 개다. 그런데 강간 사건의 경우, 의외로 신고율이 낮다. 피해자가 다시 찾아와서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한국 정부 자체가 강간 사건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대한 처벌을 한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심지어 합의를 종용하기도 하지.’
경찰들이 강간 피해자에게 ‘이대로 가 봐야 집행유예.’라는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주입하면서 합의하에 강간한 것으로 강제로 유도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물론 그 이유는 뇌물인 경우가 대다수다.
“스물한 개라. 이거…… 여죄를 추궁해야겠지만.”
검사는 그걸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걸 제대로 털어 내면 엄청난 승진 고과가 나온다. 21건의 연쇄 강간범이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 범인은 혼수상태.
‘어디냐.’
노형진은 그런 검사의 마음에는 상관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열어 볼 수가 없어서 갑갑하기만 했다.
‘어디냐…….’
나이가 쉰이 넘도록 전국을 떠돌면서 일용직으로 일한 범인. 당연히 결혼도 못했다. 그 결과, 계획적인 건지, 우연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떠돌아다니면서 강간을 일삼아 그 덕분에 수사 선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문제는 그건 범인의 형량이 늘어나는 행동일 뿐이지, 의뢰인의 상황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범죄행위가 인정된다고 해도 결국 싸움이 있었고 혼수상태에 빠뜨렸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저기! 여기 좀 열어 봐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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