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232)
황 이사는 그런 그를 보면서 혹시나 용서를 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용서라고 할 게 뭐 있나요?”
“그…… 그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에이, 용서라니요. 제가 뭘 한 게 있어야 용서를 하지요.”
사색이 되는 황 이사.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수작질이?’
대놓고 녹음이 잘되는 위치에 놓여 있는 핸드폰.
‘나는 지금 녹음 중입니다.’라는 눈치로 힐끔힐끔 핸드폰을 바라보는 모습.
그걸 노형진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다.
변호사들의 세계에서 채증이라고 불리는 증거 확보 작업은 눈치 싸움의 결과다. 그러니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리 없다.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노형진은 슬며시 그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살다 보면 때때로, 불교식 표현을 빌리자면 업보라는 게 있는 것 같더군요. 뭐, 인과응보라고 할 수도 있고.”
“업보라니요?”
“요즘 힘들어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남한테 하지 못할 일을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저희는…….”
황 이사는 차마 ‘우리는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딱 잘라서 말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뒤에서 수작질을 해서 잘라 버린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니까.
그게 이 바닥의 생리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자신들이 당하는 입장이 되자 하루하루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이유도 모르고 출연이 막혀서 뒤에서 소송하던 소속사 사장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뭐,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요.”
노형진은 싱글거리면서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희 새론 직원들이 실수한 게 있던데.”
“실수요?”
혹시나 이번 일에 대해서 말할까 해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황 이사.
그런데 그런 황 이사에게 들려온 말은 그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황 이사님, 이직하실 생각 없습니까?”
“이직요?”
“아무래도 그쪽 가수들이 이쪽으로 넘어오면 총괄할 사람이 필요해서요. 이사 직함은 못 드려도, 총괄 본부장 자리 정도는 드릴 수 있거든요.”
“총괄 본부장요?”
“네, 그러니……. 아,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무리겠군요. 없던 일로 합시다.”
노형진이 말하다가 말자 황 이사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지금 라손은 침몰하는 배다. 출연도, 행사도 막혀 있는 상황에서 누가 그들을 불러 준단 말인가?
게다가 커다란 덩치 탓에 유지비도 많이 드는데 그 돈이 나올 곳이 없다.
그러니 노형진이 하는 말이 참으로 군침 도는 요청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계속 말씀해 주세요.”
“아니에요. 괜히 말씀드렸네요. 저희가 그 정도 성장하려면 몇 년 더 있어야 하니…….”
“네?”
“아시다시피 다른 가수들은 계약이 끝나야 저희 쪽에 오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관리할 인원이 부족하니까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대룡은 거대한 규모이기는 해도 경험자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자격 조건도 까다롭고…….”
“자격 조건?”
“대룡이 제일 높이 사는 가치가 상생과 바름 아닙니까, 하하하. 그런데 이 바닥에는 생양아치가 참 많더라고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황 이사 역시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실, 뭐 사업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는데 말이지요.”
나지막하게 말하는 노형진.
이미 탐욕으로 눈알을 번들거리는 황 이사를 보면서 마치 최면을 걸듯이 느긋하게 말하는 노형진.
“그런데 아무래도 이사님을 스카우트하려면 3년은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가수들이 계약이 끝나서 저희 쪽에 올 수 있으니까요. 아, 혹시 모르죠, 갑자기 가수들이 계약이 해지되어서 프리로 모조리 튀어나올지? 하지만 그럴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황 이사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었다.
* * *
“여보, 안 자요?”
“응, 먼저 자.”
자신의 아파트에 온 황 이사는 서재에서 몇 번이고 노형진과의 대화 녹음을 반복해서 들었다.
약점을 잡을 만한 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 스카우트라는 말.
‘이런 씨발.’
다른 매니저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고 했을 때 배신한다면서 분노했던 그다.
하지만 당사자가 되고 나니 입장이 또 다르다.
더군다나 두 배의 조건이 붙은 것도 아니지만, 당장 기업이 망해 가는 상황이니…….
‘하아…… 씨발.’
그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고 있다.
만일 이겨 내지 못한다면 이직해야 하는데, 대룡과 척을 지고 있던 라손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아무도 데려가려고 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고 말이다.
하급 직원도 아니고 이사급인데 누가 그를 데려가겠는가?
거기에다가 어지간한 사람들에게는 다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갔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어 버려졌다는 느낌이 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3년이나 기다려 한다니.
-그런데 아무래도 이사님을 스카우트하려면 3년은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가수들이 계약이 끝나서 저희 쪽에 올 수 있으니까요. 아, 혹시 모르죠, 갑자기 가수들이 계약이 해지되어서 프리로 모조리 튀어나올지? 하지만 그럴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핸드폰에서 녹음된 노형진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는 그 말이 마치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아니지. 용기가 아니라 최후통첩이겠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플레이되던 녹음 파일을 끄고 어디론가 전화했다.
“김 과장, 날세. 매니저들 다 집합시켜. 시간? 어차피 애들 활동할 때면 이 시간에도 다들 움직이던 거 아니었어? 잔말 말고 모이라고 해. 한 명도 빠짐없이.”
그는 전화를 끊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 *
“예상한 거야?”
“예상한 게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한 거야.”
황 이사는 대대적으로 배신을 때렸다.
회사 내부의 기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직급에 있었던 그는 그렇게 얻은 정보로 사장과 거래를 했다.
이걸 공개할 것이냐, 아니면 우리를 놔줄 것이냐.
김세무는 당황했지만 저항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뇌물 기록과 접대 기록, 그 외에 횡령한 내역 등등이 공개되면 자신의 인생은 끝이었기 때문이다.
“황 이사의 입장에서는 침몰하는 배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겠지.”
황 이사는 기밀을 가지고 매니저들과 협상했다.
정확하게는, 매니저들이 데리고 있는 가수들과 협상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황 이사는 계약을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쥐고 있었고, 가수들과 매니저들은 당장이라도 라손을 벗어나 대룡으로 가고 싶어 했다.
“이런 소송은 평소라면 못해도 2년, 보통은 3년 정도 걸리겠지만 말이지.”
회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소송을 길게 끌면서 출연을 막음으로써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출연은 막혀 있는 상황이니 가수들은 소송을 거리낄 리 없었고, 더군다나 증거까지 가지고 나왔으니 재판은 단시일 내에 끝날 수밖에 없었다.
“아마 6개월 이내에 모든 소송이 종료될 거야.”
계약은 해지될 테고 라손이라는 곳은 그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혹시나 다시 일어나지는 않을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라손이라는 곳이 다시 과거의 성세를 찾을 가능성은 제로라고 보면 돼.”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다 나갔다. 더군다나 이미지 역시 시궁창에 처박혔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대룡과 척을 졌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기존의 연예인들은 대룡과 싸울 각오를 하면서까지 그곳에 가지는 않겠지. 물론 한두 개 정도 개별 팀을 자기들이 키울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말한 노형진은 씩 웃었다.
“그들이 1등 하게 도와준다면 참으로 고마워할 거야. 그치?”
“잔인한 놈.”
그들이 새로운 가수를 키워 봐야 1등 하는 순간 다시 과거의 악몽이 시작될 것이다.
설사 그들이 작업하지 않았다고 해도 색안경을 끼고 볼 테니, 계약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소속 가수들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라손은 이제 쓰러졌다고 보면 돼.”
“참 안타깝네. 그래도 나름 규모가 있는 곳이었는데.”
손채림은 입을 쩝쩝 다시면서 말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코웃음을 쳤다.
“인과응보야.”
그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처절하게 밟지 않았다면, 노형진이 이렇게 독하게 손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돈벌이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작은 소속사나 가수를 가차 없이 밟아 왔다. 그러니 그걸 돌려받는 것뿐이다.
“만일 그들이 이런 조작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운영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그들의 말을 믿어 줬겠지.”
그리고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순위에서 빠지는 건 피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아예 출연 금지가 떨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해 온 대로, 그대로 돌려받은 것뿐이야. 그런 건 불쌍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당연하다고 해야 맞는 거지.”
“당연하다라…….”
손채림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때, 그 당연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한 명이 있었다.
* * *
벌컥벌컥.
김세무는 비싼 양주를 안주도 없이 그냥 병째로 들이켜고 있었다.
텅 비어 버린 사무실. 그 안에서 그는 반쯤 폐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크으.”
그는 턱으로 흘러내리는 술을 닦아 내면서 이를 갈았다.
“개새끼들.”
계약관계 부존재 확인소송이 수십 건이나 걸렸다.
이대로는 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다른 매니저들에게 읍소도 해 보고 애원도 해 보고 겁도 줘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황 이사가 가지고 나간 비밀들은 라손에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변호사들조차 이 상황에서는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씨발.”
벌게진 눈으로 다시 술을 입으로 들이붓는 김세무.
그런 그의 뒤에서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팔자가 늘어지셨어.”
술을 마시기 위해서 들어 올리던 그의 고개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우리 돈 까먹고, 아주 신났구먼.”
김세무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자신을 무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 사장, 이러면 곤란하지. 그 술도 우리 돈으로 산 거 아니야?”
반백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절대로 웃으면서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회, 회장님, 이건…… 아니, 이건 제 돈으로…….”
김세무의 눈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이켠 도수 강한 양주도 그의 정신이 깨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돈도 결국 우리가 준 돈 아닌가? 안 그래?”
회장이라 불린 남자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김 사장, 그래서 우리 돈은?”
“그, 그게…….”
“우리는 투자를 한 거지 돈을 날려 먹으라고 준 건 아니잖아?”
그의 목소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차가웠다.
“우리가 아무리 양지에 나왔다고 해도 지킬 건 지켜야지. 우리 사이에 말이야. 안 그래?”
“회……장님,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충분히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1년, 아니 3개월만 주시면 다 정상으로……!”
“우리 변호사는 다른 이야기를 하던데?”
절대로 3개월 안에 정상이 될 수 없다.
아니, 3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
그게 전문가들의 말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 자체가 박살이 난 상황이니 누구도 오려고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 말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회장이라 불린 남자는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남자 한 명이 그에게 째깍 의자를 가져다 바쳤다.
그 의자에 앉은 회장은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 건물 말이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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