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256)
가족의 범죄를 은폐하려 든 것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지만, 합의를 목적으로 수십억의 위조지폐를 만든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 * *
“개판이군요.”
“그러니까요.”
노형진은 바깥으로 나와서 담배를 문 무태식을 보면서 말했다.
그는 착잡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만세 사건은 어떻게 되어 간답니까?”
“서로 떠넘기기 바쁘죠.”
양만세는 현금을 줬는데 두칠이 바꿔치기를 했다고 하는 반면, 두칠은 애초에 양만세가 준 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요?”
“아마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지 싶은데요.”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진상은 알고 있었다, 이미 기억을 읽었으니까.
양만세는 20억 중 10억을 위조지폐로 채웠다. 그리고 두칠은 그중 다시 5억을 위폐로 바꿨다.
애초에 위조지폐를 준비한 게 두칠이었다.
10억은 현금으로, 나머지 10억은 위폐로 준비한 두칠은 슬쩍 위폐를 더 준비했다가 현금인 10억 중 5억을 다시 위폐로 바꿔친 것이다.
‘그거야 검찰이 알아서 하겠지.’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파멸뿐. 더 이상 노형진이 신경 쓸 일은 없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여기, 이제야 판결문이 나왔어.”
뒤늦게 나온 손채림의 손에는 판결문이 들려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유출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이번만큼은 황인수에게 부탁해서 얻은 것이었다.
“이걸로 과연 기분이 나아질까?”
손채림은 그걸 보면서 씁쓸하게 말했다.
이 판결문은 한수린의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워낙 언론이 많이 몰려오는 바람에 정작 피해자들이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전혀.”
노형진은 약간 표정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우리가 어떤 걸 가지고 간다고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을 거야.”
“그러면?”
“그냥…… 핑계지.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그리고 우리의 동료를 잊지 않는다는.”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이고, 자신들이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였다.
“복수는 씁쓸하지만 살아남은 자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니까.”
노형진의 말에 두 사람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바지 사장 (1)
사람에게는 저마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노형진은 믿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회귀를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 운명이라는 것은 요상해서, 누군가 그걸 잠깐 떠난다고 해도 결국은 그곳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유소미였다.
“요즘 잘나가네?”
“재능이 있으니까.”
한때 새론의 정보 팀 직원으로 마스코트 같았던 유소미는 연일 방송에 나오고 있었다.
아직 주연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연급으로는 상당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다.
“조만간 주연급 자리 하나 차지하지 않으려나?”
“그렇겠지?”
유소미는 연기력이 뛰어나고 예능에 적합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몸치에 음치라 지원한 소속사마다 떨어지고 새론에 들어왔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녀를 찼던 기획사 사건을 맡게 되면서 그녀의 재능을 늦게나마 알아본 사장이 읍소하다시피 해서 데리고 간 것이다.
“성공하면 우리 광고 모델 한번 안 해 주려나?”
“채림아.”
“응?”
“넌 과로사하고 싶다는 말을 참 요상하게 표현하는구나.”
손채림은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
안 그래도 일이 너무 많아 과로사할 판국인데 광고를 생각하다니.
“아, 맞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국이니.”
“너 주주총회 오라고 그랬다면서?”
“맞아. 하아, 조금이라면서? 도대체 언제부터 주식의 15%가 조금이 된 거야?”
“그 정도면 조금이지.”
의뢰인이었던 조말영이 죽으면서 자신을 도와줬던 손채림에게 세건유통이라는 곳에 대한 주식을 일부 남겼다.
그런데 세건유통은 생각보다는 큰 회사였다.
15% 정도면 시가로는 무려 30억대의 자산이 될 만큼.
‘뭐, 나중에야 알았지만.’
조말영의 도움을 받아 세건유통을 세운 창립자는 이후 조말영에게 15%의 주식을 증여했다.
일종의 투자를 받은 보답인 셈이었다.
하지만 주식에 아는 바가 없었던 조말영에 의해 변호사에게 맡겨졌다가 그대로 빼돌려질 뻔한 것을 노형진 덕에 돌려받은 것이다.
“그렇게 큰 곳인 줄 알았나.”
“알았으면 안 받았을 것 같아?”
“그럴 리가.”
피식 웃는 손채림.
“그래도 능력 있는 사장이 구입한 모양이네.”
“그러니까.”
사실 세건유통을 지금 운영하는 사람은 창립자가 아니었다. 그 후에 주인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바뀐다고 해서 주식이 날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주주총회에 가면 뭐 하는 거야?”
“뭐, 뻔하지. 실적을 보고하거나, 이런저런 회사의 내부 이야기 같은 걸 하는 거지.”
“재미없겠지?”
“재미야 없지. 하지만 잘 봐야 해.”
“응?”
“그 새끼들이 장난치는 경우가 많거든.”
법적으로 몇몇 운영 사항은 주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 회장들이나 사장들은 주주의 힘을 빼려고 한다. 그래야 자신이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서는 주주총회를 통해서 감사를 하든가 아니면 내부 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런데 주주들이 동의해 줘?”
“가끔은.”
“응?”
“우호 지분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야.”
“그런가?”
“그래.”
노형진은 보던 서류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주주총회 주제도 보니까 좀 예민하더라. 아마 대판 싸우게 될 거야.”
“어째서?”
“주식의 증자에 관한 이야기잖아.”
“그게 문제가 돼?”
“되지.”
주식을 증자한다는 것은 그 주식을 팔아서 외부에서 돈을 가지고 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단순히 투자를 받는다는 것이 아닌 권리의 문제이다.
“가령 우리가 선거하는 건 1인 1투표잖아?”
“그렇지.”
무조건 한 사람당 한 번의 권리. 그게 투표다.
그런데 주식은 조금 다르다. 주식의 지분이 바로 투표권이다.
가령 열 개의 주식이 있다면 열 번의 투표를 할 수 있는 셈.
“그런데 증자를 하게 되면 그 투표권에 대한 가치의 변동이 오거든.”
과거에 1천 개의 투표권의 가치가 10%였다면, 증자할 경우 5%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주주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찬성할 수는 없다.
“음, 그러면 반대하는 게 보통 아니야?”
“그런데 또 반대가 애매해. 증자한다는 것은 둘 중 하나를 뜻하거든.”
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거나, 돈이 다급하게 필요할 정도로 위험하거나.
“이런 경우 만일 증자가 무산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지.”
기업이 성장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해서 막혀 버리면 주식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니 그건 주주로서도 손해다.
반대로 증자를 해서 틀어막아야 하는데 그에 반대해서 실패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주주들이 가진 주식은 휴지통으로 처박히는 거다.
“복잡하네.”
“더 복잡한 건 네가 그 한복판에 던져질 거라는 거야.”
“응?”
주주총회에 참석하라는 말만 들었지, 그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손채림은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자신이 싸움의 한복판에 던져진다는 말인가? 자신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네가 가진 게 15%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정도면 캐스팅 보드를 쥐고 있는 셈이거든.”
“캐스팅 보드?”
“그래.”
유상증자는 상당히 예민한 문제다. 그래서 회사 측도 자기네 우호 주주를 모으고 반대층도 자기네 우호 주주를 모으면서 서로 기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조말영 할머니는 살아생전에 거기에 참가한 적이 없으셔.”
“어? 왜?”
“몰랐으니까.”
조말영 할머니는 주식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에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빼돌린 변호사는, 설혹 참석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군가 대신 참석하려면 주주의 동의서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다는 건 조말영 할머니가 잊어버리고 있는 주식에 대해서 그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니, 변호사가 말을 한다면 자신이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걸 제 입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도 안 갔지.”
“아.”
“그런데 이렇게 예민한 주제에 대한 싸움은 기본적으로 해볼 만하다고 할 때 벌어지거든.”
“해볼 만하다?”
“그래.”
찬성 쪽이나 반대 쪽이 압도적이면 싸움이 안 난다.
하지만 미묘하게 양측 모두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상황에서 15%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짠 나타난다고 생각해 봐.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당연히 그 주주에게 관심이 쏟아질 것이다.
15%면 어느 쪽으로 향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에 충분한 지분이니까.
“아아.”
“머리 좀 터질 거다.”
생각지도 못한 노형진의 조언에 손채림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회사 운영에 대해서는 쥐뿔도 아는 게 없는데 그곳에 갔을 때 벌어질 엄청난 싸움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픈 것이다.
“피할 수는 없겠지?”
“물론 안 가면 되겠지.”
조말영 할머니처럼 안 가면, 그냥 그쪽에서 하던 대로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도리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재수 없으면 가지고 있는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될걸.”
“아…… 팔아 버릴걸.”
“글쎄…….”
지금 그녀가 가진 주식의 가치는 대략 30억.
자세한 정보는 모르지만 회사의 확장을 위한 증자라면 최소 60억까지 뛸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네가 가서 왜 증자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거야.”
진짜로 회사의 확장을 위해서 하는 건지, 기업이 다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주주들의 권한을 낮춰서 운영자가 전횡을 하기 위한 것인지.
“결국은 가 봐야 한다는 거지.”
“그렇구나.”
손채림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스윽 고개를 돌렸다.
“노 변호사님, 개인적으로 의뢰 하나 안 받을라우?”
“싫은데?”
“의뢰비 말고 치킨에 맥주도 사 줄게.”
“내가 그렇게 싸구려로 보이냐?”
“두 번 사 줄게.”
“좋아.”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 * *
“우와.”
노형진과 손채림이 도착한 주주총회장은 외부에서 빌린 회의실이었다.
그다지 큰 회사가 아니니 자체적으로 대형 회의실은 없을 테니까.
“사람 많네.”
“중요한 날이니까.”
노형진은 주변을 흘낏 보면서 들어가던 손채림을 잡았다. 그리고 눈짓으로 주변을 살펴보라고 했다.
“어떻게 생각해?”
“사람은 많은데 분위기 좋다고는 말 못 하겠네.”
사람들은 끼리끼리 뭉쳐서 대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파벌이라도 나뉜 것처럼 서로를 힐끔거리고 있었는데, 그 시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음.”
“왜?”
노형진은 그 시선을 보고 약간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손채림은 그런 그에게 사정을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목적이 주주의 권한 약화를 위한 증자인 모양인데.”
“어? 어떻게 알아, 이야기도 안 들어 보고?”
“분위기가 대립각이잖아.”
“그게 문제야?”
“아주 큰 문제지.”
만일 확장을 위한 유상증자라면 주주들의 분위기가 이렇게 안 좋을 리 없다.
권한은 약화된다 해도 주식의 가격은 오를 테니까.
반대로 다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증자를 하는 거라면 사람들이 파벌을 이루어 각자 떠들 이유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일단 기업을 살려 놔야 자신이 투자한 돈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런데 두 집단으로 나눠서 이야기하면서 서로 견제한다? 그러면 이야기가 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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