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268)
“확신하십니까?”
“네?”
“그 직원이 시키는 대로 했다는 확신 말입니다.”
그제야 곽정아는 낌새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을 일반적인 손님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노형진은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
아무래도 그녀가 잘 모른다면 일단 뒤흔들어 볼 생각이었다.
“법무 법인 새론에서 나왔습니다. 노형진 변호사라고 합니다.”
“변호사요?”
“네. 이곳에서 명의 도용을 도와주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서 왔습니다.”
사색이 되는 곽정아.
그 모습을 보고 노형진은 그녀가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녀의 표정은 뭔가 찔리는 일이 걸린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알게 되었을 때 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리 없어요. 전 그런 건 절대로…….”
“그러면 다른 사람은요? 아까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설마 하는 표정이 되는 여자.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의심이 가는 것은 그 사람뿐이었다.
일하는 사람이라고는 본인과 그녀, 둘뿐이니까.
“누굽니까? 정확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까딱 잘못하면 수십억을 물어 주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수…… 수십억요?”
“네.”
다리가 풀린 듯, 그녀는 힘겹게 의자로 휘청거리면서 가서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말씀해 주세요.”
“그…… 한수양이라고…….”
“한수양?”
“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노형진은 입안이 씁쓸했다.
전형적인 착한 사람의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쯧쯧.’
곽정아는 한수양이라는 직원이 오갈 데가 없어서 받아 줬다고 했다.
나이도 어리고, 집안의 구타를 피해서 나와서 밥도 못 먹고 배회하는 걸 보고 도와주려고 손을 내민 건데…….
‘등에 칼 맞은 셈이군.’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세상은 결코 바르지만은 않다. 남을 속여 빼앗는 놈들이 허다하다.
구타를 당해? 밥도 못 먹어?
말뿐인 거짓말, 누군들 못 하겠는가?
“혹시 그 사람 주민등록번호 아십니까?”
“네? 아, 네네.”
“한번 알려 줘 보세요.”
“하지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조사해 보면 나오겠지요.”
그녀는 잠깐 주저하다가 한수양의 주민등록번호를 알려 줬다.
노형진은 고문학에게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는 2시 넘어서 출근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곽정아가 일찍 출근해서 오픈하고, 한수양은 늦게 출근해서 문을 닫고 퇴근하는 시스템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고문학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수양이라고 하셨지요?
“네. 뭐가 나왔나요?”
-스물두 살?
“네.”
-이거 완전히…… 하아, 소액 사기만 벌써 전과 22범입니다.
곽정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전과 22범이라니.
“아니, 그게 돼요?”
“가능합니다.”
소액 사기라는 것은 처벌이 애매하다.
미국처럼 삼진 아웃제가 있으면 모를까, 한국은 잘해 봐야 몇십만 원으로 벌금 또는 집행유예니까.
실제로 소액 사기로 전과 130범이 넘어가도 감옥을 가 본 적이 없는 놈도 존재할 지경.
‘삼진 아웃도 골칫덩어리지만 이쪽도 골칫덩어리지.’
미국의 삼진 아웃 제도도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사소한 잡범들이 삼진 아웃에 걸려서 장기수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어차피 막나가게 될 거 그냥 흉악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교도소는 교도소대로 가득 차서 통제되지 않아 인권이라는 것을 시궁창에 처박아 버리는 결과를 낳았으니까.
하지만 한국도 소액 사기를 치면 처벌을 받지 않으니 그냥 대놓고 버티는 놈들도 많았다.
사실 전과가 10범을 넘어가면 그건 갱생의 여지가 없는데도 그냥 이런저런 이유로 풀어 줘 버리는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곽정아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너무 착한 것도 탈인 법입니다.”
노형진은 그 말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겠는가, 그게 사회인 것을.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제가 그 애가 저지른 걸 다 물어 줘야 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다만 도와주셔야 합니다.”
“도와주다니요? 제가 무슨 수로요?”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시는 게 제일 좋겠네요.”
“네?”
가능하면 곽정아가 속이는 데에 동참해 주면 좋겠지만 파리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연기 쪽으로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섣불리 거짓말을 하게 하느니 차라리 다른 거짓말로 현장을 벗어나는 게 정답.
“저희가 여기에 카메라를 설치할 겁니다. 적당한 핑계를 대고 여기를 맡기세요. 분명히 곽정아 씨가 없는 사이에 일을 저지를 테니까요.”
“그……게…….”
“그 사람이 사기친 것에 따라서 엄청난 배상금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셔야 책임을 면합니다.”
곽정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수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어…… 수양이니? 나야, 정아 언니……. 지금 시골에서 시아버지가 위독하다고 연락이 왔거든……? 그러니까…… 나 며칠 못 올 것 같아……. 네가 그사이에 가게 좀 봐줄래……?”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누가 봐도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상대방은 별 의심 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노형진은 주변에 있는 업체에 가서 카메라 설치를 부탁했다. 회사에서 가지고 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걸 렌트해 주는 업체도 있으니 차라리 빨리 설치하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두 시간쯤 있다가 온대요.”
“지금 바로 설치해 주십시오. 곽정아 씨는 설치가 끝나면 바로 문 잠그고 가시구요.”
“네.”
“저희는 빈 사무실을 빌려야겠군요.”
몇 군데 빈 사무실을 감시초소로 써야 하기 때문에 노형진은 다급하게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설치가 끝나고 곽정아는 힘들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 버렸다.
“여기서 할까?”
“그렇겠지.”
한수양을 잡을 수 있다면 그 뒤에 누가 있든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그놈들은 튄 후니까.”
사무실에 가 봤지만 사무실은 빠진 지 오래다.
당연히 그들이 내걸었던 전화번호도 다 가짜였고.
경찰이 추적하고는 있겠지만 시간은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아니지.”
노형진은 씩 웃었다.
“자, 이 망할 사기꾼들을 잡아 보자고.”
아프니까 청춘? 아프게 하면 범죄 (1)
감시가 시작된 지 사흘 후.
손채림은 감시 기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무실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방탄석과 함께 사무실에 온 방현수는 사진에 나타난 남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놈입니다, 이놈! 저랑 다른 두 사람을 면접을 봤던 인간!”
“역시나 그렇군요.”
한수양을 만나러 왔던 남자.
그 남자의 사진을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경찰도 못 찾았는데 어떻게……?”
경찰이 현장에 갔을 때 이미 사무실은 빠졌고 사람도 없었다. 전화번호도 대포폰이었고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희만의 노하우가 있지요.”
노형진은 씩 웃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현재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피해액이 적지 않습니다.”
“피해액이 적지 않다구요?”
“네. 방현수 씨는 혼자서 6천이지만요.”
문제는 이런 사기를 치는 놈은 결코 한 번만 치고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무실 임대료부터 중고 물품 구입 등등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게 이런 사기다.
“현재 저희가 예상하기로는 피해액이 최소 20억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입을 쩍 벌리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손채림은 안타깝게 말했다.
“생각보다는 적은 거예요. 취업하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잖아요.”
“…….”
“물론 방현수 씨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금액이 크기는 하지만요.”
이미 학자금 대출 같은 것이 있어서 대출 금액이 적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방현수는 아버지가 어찌어찌 학자금을 대 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신용 등급이 높아서 고액 대출이 되어 버린 것.
“당장 이놈을 잡아 오면 안 됩니까?”
방현수는 마음이 다급했다.
이놈만 잡으면 6천이라는 빚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잡기는 해야겠지요. 그렇지만 여기서 잡으면 다른 놈들이 안 잡힙니다.”
“다른 놈들?”
“네. 이런 사건은 절대로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일종의 팀처럼 움직여야만 취업 사기가 가능하다.
만일 지금 두 사람을 체포하면 나머지 놈들은 도망칠 것이다.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건가요?”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죠.”
“네?”
“상대방은 사채 회사입니다.”
만일 지금 저들이 도망쳐 버리면 어떻게 해서든 방현수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못 이기지는 않겠지만, 여러모로 골치 아프겠지요.”
“아…….”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잠깐 기다리세요.”
이미 범인들은 눈앞까지 다가왔다. 남은 것은 저들에게서 증거를 뽑아내는 것뿐이다.
“조만간 이 모든 게 끝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 *
한수양은 요즘 영 기분이 이상했다.
사장이 안 나오는 것도 그렇고, 전화 한번 없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영 켕기는데.”
아무리 시아버지가 위독해서 급하게 갔다고 해도, 이후에 뭔가 연락을 더 해 와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전화 한번 없다니.
그녀는 아무래도 불안한지 다급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야, 난데, 개통할 거 있으면 빨리 가지고 와.”
-왜? 갑자기 뭔 일이야?
“낌새가 이상해. 사장이 연락이 안 돼. 전화도 안 받고.”
-그게 이상한 거야?
“눈치 깠으면 어쩔 건데? 다른 쪽을 뚫어 봐야겠어.”
상대방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
확실히 조심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그렇게 한참의 침묵이 지나고 나서 들려오는 목소리.
-최대 얼마까지 되는데?
“가지고 있는 거 몇 개인데?”
-스물세 개.
“다 털어서 가지고 와.”
-동시 작업은 위험한데.
“개통만 하고 나중에 작업하면 되지.”
-그게 좋겠네. 알았다. 바로 가지고 갈게.
그렇게 짧은 통화가 끝나고 난 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내일 중으로 개통하고 튀어야겠다.”
그녀는 안전을 위해서 그러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내일 튄다고요?”
“네.”
직원의 보고에 노형진은 씩 웃었다.
참으로 나이스한 타이밍이 아니던가?
“알겠습니다. 그냥 두세요.”
“네? 하지만 도망치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데요?”
“아, 잡을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아, 네.”
직원은 꾸벅 인사하고 나갔다.
노형진은 옆에 있는 손채림을 바라보았다.
“다 확인한 거야?”
“그럼, 내가 누군데. 다 전화해서 이야기 끝내 놨지. 내일 아침에 여기에 오기로 되어 있어.”
손채림은 지난 며칠간 바쁘게 돌아다녔다.
곽정아의 아이디를 빌려서 개통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에게 개통한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물론 개통한 전화기는 저들이 가지고 있을 테지만 개통할 때 주소 등을 올리도록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그 사본에 있는 주소로 가서 사기당한 피해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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