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41)
“아…….”
그렇다. 이 상황에서 문제는 바로 부모다.
일단 그녀가 피해자로서 고소를 넣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률상 그 법정대리인은 부모다.
즉, 그녀가 소송을 넣는다 해도 법정대리인인 그녀의 부모가 소송을 취하해 버리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잖습니까?”
“젠장.”
아동 범죄자들은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을 잘 노린다. 가난해서 부모가 아이에게 잘 신경 쓰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설사 걸린다고 해도 돈으로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마저도 상대의 돈을 봐 가면서 저지르는 것이 현실.
“방법이 없지.”
송정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법정 미성년자들에게 아무런 권한도 없는 게 문제야.”
“맞습니다. 이번에는 미안하지만 진짜 방법이 없습니다. 강간당한 아이들을 왜 집으로 돌려보내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싯팔.”
무태식은 분노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의를 열자고 했던 민시아는 실망했다.
“이런 상황이니 어쩌겠어.”
다들 부정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한국에서 재판하다 보면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는 후안무치한 사건들도 벌어진다.
문제는 재판을 한다고 해도 다른 부모인 어머니가 가정을 위한다는 이유에 대리인으로서 소 취하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재판부조차 어쩔 수 없이 법정대리인이자 보호자인 그 강간범에게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그 아이가 다시 돌아갔을 때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확고하다.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거리낄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음…….”
하지만 노형진은 말하지 않고 고민만 하고 있었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방법이 있다고?”
“이건 불가능해, 노 변호사. 아무리 노 변호사라고 해도 없는 법을 만들지는 못한다고.”
성추행으로 신고한다고 해도 신도인 부모가 취하하면 그만이다.
“그 부모의 자격을 없애 버리면 그만이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잠시만요.”
노형진은 일어나서 컴퓨터로 다가가 뭔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기억이 맞는다면 올해쯤 생기는 법이 있을 것이다.
‘올해인 건 맞는데……. 이게 지금인지 나중인지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나중에 생기는 거라면 가출이든 뭐든 해서 시간을 끌어야 할 테고, 생겼다면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형진은 눈을 크게 떴다.
“여기 있군요.”
“있다니?”
“여기 보세요. 친권 상실 청구 제도.”
“친권 상실 청구 제도?”
낯선 말에 변호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변호사들이라고 모든 법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한 해만 해도 수백 개의 법이 생기고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 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법은 법이 만들어지고도 무려 2년간이나 실무자들이 몰라서 피해자들을 강간범에게 돌려보냈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다.
“어, 진짜네?”
후다닥 달려온 송정한은 깜짝 놀랐다.
“언제 이런 법이 생긴 거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이런, 이런…….”
남상주 변호사조차 몰랐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이거면 가능할까요?”
“아마도요.”
친권 상실 청구 제도란 말 그대로 친권자들이 그 보호자로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 법원에서 그들의 친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가령 위와 같은 경우라면 과거에는 어찌 되었건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 법이 생기고 난 후에는 강간한 아버지라는 인간, 아니 쓰레기는 아동 강간으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취하서를 써 준 엄마라는 존재는 사건의 종범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일단 신고하면…….”
“안 됩니다.”
“에엑! 왜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있잖습니까?”
“아…….”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란 동일한 범죄로 두 번 처벌받지 않는다는 법률 용어다.
“지금 고발하면 분명 부모들이 소송을 취하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일단 친권 상실 청구부터 할까요?”
“그것도 무리일 것 같은데요?”
강간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약혼자끼리의 관계 요구이다 보니 그걸로 상실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그걸 청구할 수 있는 건 검찰을 비롯한 일부뿐이다.
“즉, 성폭행이나 그에 준하는 범죄가 성립되었음을 입증하고 부모들이 그걸 고의로 방치했음을 알아야 검찰 쪽에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 청구를 하기 위해서 성폭행을 당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으음…….”
이게 법의 맹점이다.
청구하는 사람이 사건을 인지하기 전에 청구 대상인 범죄자들, 아니 부모들이 먼저 소송을 취하할 수 있다는 것.
“젠장! 뭐가 이따위야!”
정작 그 피해자인 아동들은 그런 청구를 할 권리가 없다. 그러니 남이 구해 주기만을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
“노 변호사님.”
민시아는 노형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방법이 없느냐는 시선이다.
“휴우.”
그런 시선을 느낀 노형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요.”
이대로 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한 일.
“이번 사건 수임료는 아마도 대룡재단에 지원 요청을 하면 줄 거야.”
대룡은 지난번 소송 사건에서 피해자들을 도와준 것이 회사의 이미지에 극도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확실하게 피해자가 있는 데다 그 피해자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불쌍하게 여길 만한 어린아이이니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이걸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검사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도 있기는 한데…… 솔직히 말해서 그 사람들이 말을 들어 처먹을 인간들이 아닌지라.”
“으잉?”
그들이 나서서 해 줬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노형진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 * *
“확실한 거니?”
“네.”
노형진은 강수련을 불러서 정식으로 물어봤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은 어찌 보면 열여섯 살 아이에게는 잔혹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옥 같은 집단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애들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그 정도야?”
“네.”
강수련에게 들은 만구파의 현실은 참혹했다.
강수련처럼 어린아이들을 교단의 지도층에 선물하는 목적으로 맺어 주는 것은 흔한 경우이고, 심지어 열네 살짜리 남자아이를 마흔 살 먹은 미망인과 약혼시키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가 돈을 주고 멀쩡한 아이와 결혼시켜서 자기 자식의 인생을 떠넘기는 등 심각한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음…….”
노형진은 직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그 아이들이 모두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올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이들은 부모 인생의 부속물이 아닌 것이다.
“그럼 넌 이 소송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니?”
“아마도 부모님은 평생 못 보겠죠. 그건 약과이고 그쪽에서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생각보다 냉철하게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 강수련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변태 녀석 녀석이랑 결혼 못 해요. 죽더라도 곱게 죽겠어요.”
“변태?”
“원래 저 말고 다른 약혼자가 있었어요.”
“뭐?”
그건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자살했어요. 듣기로는 그 녀석이 변태 성욕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버티지 못했다고…….”
“끄응…….”
그럼 이건 심각한 문제다.
“자주 찾아오니?”
“거의 매일요.”
“어떻게 버티는 거니?”
그 말에 강수련은 자신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걸 본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차라리 죽겠다고 했죠.”
그녀가 꺼낸 것은 서슬 퍼런 과도였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인간에 대항하여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리라.
그것도 부모님이 완전히 그의 편인 상황에서 말이다.
“알았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의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면 된다. 당장은 이 아이의 문제가 급하다.
아무리 저번 일의 여파로 만구파가 수많은 사람들이 떠난 상황이라고 하지만 골수 광신 집단은 여전히 남아 있기에 괜찮아질 거라 방심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통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브레이크 역할을 하던 일반 신도들이 다 나가서 눈치를 볼 사람도 없어졌으니 말이다.
“돈은…….”
“제가 졸업하면 알바를 해서라도 갚을게요.”
“아니다. 그것 때문에 오라고 한 거란다. 대룡이 세운 대룡평등재단이라는 곳, 아니?”
“아니요.”
“몰라?”
“외부 정보는 극도로 제한하거든요. 솔직히 여기에 온 것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한 말을 듣고 무작정 온 거예요. 그런 소송 중이라는 것도 일반 신도들은 알지도 못했어요.”
“끄응…….”
그렇다면 생각보다 심각하게 통제된 사회라는 것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외부를 보게 되면 당연히 거기에 물들게 되어 광신하던 상태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대룡평등재단은 말이다. 법률 과정에서 돈이 없어서 정당한 재판을 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이란다. 그곳에서는 너같이 돈이 없어서 직접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송 비용을 지원해 주고 있지. 그래서 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흔쾌하게 내주겠다고 했단다. 결국 남은 건 너의 선택이야. 네가 결정하면 정식으로 소송을 시작할 거란다.”
그녀는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사실 올 때만 해도 자신에게 돈이 없어서 도움받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들을 위해서 돈까지 내주는 집단이라니.
“어떻게 생각하니? 만일 여기에 동의한다면 너는 고아원, 아니 요즘은 보육원이라고 하지. 그곳에 가야 한다.”
“하겠어요. 고아원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이라도 이곳보다는 나을 것 같네요.”
그녀는 강단 있게 마음을 결정했다.
* * *
“심각한데.”
깨진 창문. 제대로 수리되지 않은 실내. 텅 비어 있는 냉장고.
“광신도라 이런 건가요?”
“그럴 겁니다.”
강수련의 말에 따르면 부모님이 벌어 오는 거의 대부분의 돈을 교단에 바치는 터라 최저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윽.”
화장실에 들어간 민시아 변호사는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제대로 청소되지 않은 화장실에서 심각한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살죠?”
“인간은 미치면 뭐든 합니다.”
민시아 변호사가 이번 사건을 담당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하여 이번에는 그녀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쌀이…….”
쌀통을 열어 보니 거의 바닥을 보이는 쌀들.
그나마 일부 남은 쌀 위로는 바구미, 즉 쌀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용케도 이런 집에서 살았네요.”
“강수련 학생이 버티고 버티면서 집에 최대한 안 온다는 이유를 알겠네요.”
강수련이 몰래 들어가서 확인해 보라면서 집의 열쇠를 준 덕분에 노형진은 민시아와 함께 그녀의 집에 와서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도대체가…….”
무슨 깊은 산골 속의 집이나 달동네도 아닌 도시 한복판에 있는 멀쩡한 빌라다. 잘사는 사람들의 집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인 것이다.
“집 안을 건사하는 게 그녀라는 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네요.”
학교에서 갔다 오면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알바를 통해 돈을 벌어서 학교에 내야 하는 비용을 내고 급식을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노력해도 제대로 된 도구 없이 청소하는 것은 힘든 일. 당장 화장실도 제대로 된 청소 도구가 없어서 냄새가 나는 상황이다.
“이거 참.”
창문만 해도 그렇다. 깨진 유리창을 고칠 만도 하건만 거기에 비닐을 대고 테이프로 붙인 다음, 다시 음식물용 랩으로 막아 둔 것이 전부였다.
“부모님한테 뭐라고 안 해 봤대요?”
어이가 없어서 민시아가 물어봤다. 물론 노형진도 물어봤다. 들을수록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선지자님께서 모든 걸 챙겨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그랬답니다.”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