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411)
그동안 쌓인 사건이라니?
사건을 진행도 안 하고 가만뒀단 말인가?
‘그럴 리 없는데.’
그랬다면 자신이 이미 알았어야 한다.
애초에 의뢰인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고.
“도대체 몇 건이나 되는데?”
“일단 사건 수는 마흔 건인데 사건 자체는 한 건이야.”
“뭔 소리야?”
“영강건설 사건 기억해?”
“아…… 그 사건? 기억하지. 하지만 그건 해결된 거 아니야?”
노형진이 기억하는 영강건설 사건은 간단한 것이었다.
건설사 하나가 온천이 있는 대형 리조트를 만든다고 투자를 받았던 사건.
하지만 그 땅은 애초에 남의 땅이었고 리조트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온천이라는 것도 좀 떨어진 곳에 보일러를 숨겨 두고 물을 데워서 뽑아낸 것이고 말이다.
워낙에 확실한 사기 사건이었고 또 그 피해 금액이 컸기 때문에 송정한이 나서서 담당했다.
그러나 그건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설혹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벌써 끝났어야 하는 사건인 것이다.
“사건 자체야 끝났지.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야.”
“문제?”
“돈을 받지 못하게 되었거든.”
“응? 왜?”
“뻔한 거 아냐? 그 정도 사건을 심심해서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
“아아.”
사건 규모에 비해서 워낙 사기의 증거가 명확했기 때문에 노형진이 나서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그 이후에 문제가 된 것이다.
“돈이 없구나.”
“그래. 그 짧은 시간에 돈을 모조리 빼돌렸더라고.”
“음…….”
“승소하기는 했어, 형사도, 민사도.”
형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나와서 사기를 친 가해자는 이미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상황이다.
그리고 민사 역시 피해액인 60억과 정신적 위자료, 이자까지 해서 80억을 토해 내라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후에 우리 쪽에 의뢰가 없었지만…….”
“하긴, 그렇기는 하지.”
자신들이 채권 회수 팀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이런 쪽으로는 아니다.
소액 기준으로 해 주는 것이 보통이고, 이런 큰 금액은 다른 기업이 해 준다.
“문제는 그 녀석에게 돈이 없다는 거야.”
“음…….”
사기를 치자마자 잡혀 들어간 녀석에게 돈이 없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감춘 것.
그렇게 돈을 감추고 주지 않는 경우, 법률적 한계로 인해 피해자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걸 찾아 달라고 의뢰가 들어온 거야?”
“그래.”
“어이가 없구먼.”
피해자만 마흔 명이고 피해액은 60억, 배상액이 80억짜리 사건인데 한국 법원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고작 징역 2년 6개월을 살고 나오고 끝이라니.
“그 돈을 진짜로 다 썼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빚을 갚는 데 쓴 것도 아닐 테고.”
“작심하고 어딘가에 감춰 둔 거지.”
“개자식이네.”
사실 상식적으로 징역 3년쯤 살고 난 후에 60억이 넘는 돈을 챙길 수 있다면 누가 사기를 치지 않겠는가?
“악착같이 받아 내야 하는데 말이지.”
“문제는 그게 안 된다는 거잖아.”
채권자가 따라다닌다고 해서 순순히 내놓을 것도 아닐뿐더러, 이쪽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따라다니면서 채권을 회수하는 것은 현행법상 위법이다.
“와, 이거 골 때리기는 하네.”
“그러니까. 사건이 우리한테 배당되고 난 후에 사건 기록을 찾아봤는데, 이건 방법이 없더라고.”
사기꾼인 홍준태는 철저하게 자신의 재산을 처분했다.
살던 집도 빼고, 차량은 팔아 버리고, 계좌는 해지했고, 심지어 보험도 해약했다.
남은 것은 법적으로 압류할 수 없는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수준.
그나마도 최소 금액을 넣은 상황이다.
“사기를 칠 생각으로 이미 모든 재산을 빼돌린 이후였어.”
“가족은? 보통은 가족 명의로 돌리잖아.”
“가족으로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리고 아내가 있는데, 셋 다 재산이 없어.”
“음…….”
보통 사기꾼들은 재산을 빼돌려서 가족 명의로 해 둔다.
그렇게 해서 배상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해도 법원에서는 사기의 이익으로 봐서 압류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현금으로 감춰 놨다 이거군.”
“그런 것 같아. 사건 전후를 보면 전액 현금으로 찾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모든 재산을 빼돌리고 난 후에 느긋하게 감옥에 갔다 왔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떵떵거리면서 잘살 테고.
“지금 사는 곳은?”
“지방의 펜션이야. 듣기로는 현금으로 선불로 내고 있다고 해.”
“확실히 돈이 없는 건 아니군.”
보증금을 내면 분명히 압류가 들어올 걸 아니까 아예 선불로 펜션을 빌리는 것이다.
여름이고 하니 휴양하는 셈 치고 말이다.
“피해자들 말로는 모든 걸 다 현금으로 계산한대.”
“신용카드나 계좌는 전혀 없고?”
“당연하게도.”
“음…….”
노형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이건 사실 방법이 없다.
추심 업체에서 작심하고 달려들어도 애초에 주지 않을 생각으로 버티고 있으니, 그쪽도 방법이 없다.
“아마도 어딘가에 금고를 숨겨 두고 거기서 몰래 빼 오는 모양이야.”
“집 안은 아닐 테지.”
“그렇겠지.”
그랬다면 이미 빼앗아 왔을 테지만.
“그래서 피해자들이 다시 회수를 맡긴 거야?”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 가도 방법이 없다고 했대.”
“그건 사실이니까. 채권 추심 업체는?”
“그곳도.”
맡기기는 했지만, 애초에 없다고 딱 잡아떼고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하는데 그들이라고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거기에다가 주소지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3개월 간격으로 현금으로 집을 빌려 가면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형편이니 더더욱 방법이 있을 수가 없다.
“흠…… 이건 사실상 법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손채림의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정치 쪽으로 선이 닿아 있고 포기할 수 없는 뭔가를 하고 있다면 그쪽으로 공략하면 되지만, 아예 배 째라는 자세로 버티면 방법이 없다.
사실 60억이면 그렇게 한량으로 평생을 먹고살고도 남는 돈이다.
거기에다 시간이 지나서 채권자들이 포기할 때쯤 돼서 은행에 넣어 두면 그 이자만으로도 평생 먹고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대표님이랑 이야기를 해 봐야겠는데.”
송정한이 담당했던 사건인 만큼 그에게 사정을 정확하게 물어봐야 할 듯했다.
* * *
“아, 홍준태 사건 말이군.”
“네. 그 사건의 채권 추심이 다시 들어와서 좀 알아야겠습니다. 도대체 왜 고작 2년 6개월이 나온 겁니까?”
“아…… 그 새끼가 머리를 좀 썼어.”
“전관이라도 쓴 건가요?”
“그건 당연한 거지. 뭐, 그 녀석이 머리를 쓴 건지 아니면 그 전관이 머리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사건 당시에 홍준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면서 최대한 배상액을 갚겠다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변제에 대한 공탁금으로 2억을 걸어 두기까지 했다는 것.
“진짜 머리 잘 썼네요.”
“그렇지.”
한국은 화이트칼라 범죄, 그러니까 이런 사기 같은 것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다.
수백억을 해 처먹어도 3년 이상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거기에다가 배상하겠노라고 2억이나 걸어 놨으니.
“뻔하네요. 판사는 뇌물을 받아 처먹었을 테고, 공탁도 걸었을 테고.”
“그렇지. 게다가 그 녀석, 초범이거든.”
“네? 초범요?”
“그래. 그런 놈들 있잖아, 어차피 할 거면 아예 크게 저지르자는 놈들. 딱 그런 놈이야.”
“아……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딱 ‘선처의 삼위일체’다.
초범에, 반성하고, 배상을 위해 노력한다.
거기에다가 화이트칼라 범죄에 자비로운 법원의 성향까지 붙어서 고작 2년 6개월밖에 안 나온 것이다.
“그리고 배상은 더 이상 안 하겠지요?”
“그래.”
형사야 자기가 감옥에 가는 문제이니 최대한 선처를 요청하고 비는 척하겠지만, 민사야 나와도 어차피 갚을 생각이 없으니 막나갔을 것이다.
“결국 이기기야 했지만, 그 이후에 이 꼴이 난 거지.”
송정한은 안타깝다는 듯 서류를 살피며 말했다.
“몇 번이나 그 녀석 뒤를 캐 보고 사람을 붙여 봤지만 어디에 감춰 놨는지 돈을 찾을 수가 없더군.”
“이거 참…… 골 때리는 새끼네요.”
“그런데 이런 놈들 많잖아?”
“그건 그렇지요.”
홍준태야 금액이 커서 상대방이 포기하는 것뿐이지, 사실상 그런 식으로 돈을 주지 않고 버티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제가 체계화하기를 원하시는군요.”
“그렇다네. 이런 사건이 워낙 많아야지.”
사기를 치고 나서 감옥에 갔다 오면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으니 누구나 사기를 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사기뿐만이 아니지 횡령도 있지.”
“아…….”
횡령은 사기보다 더 심각하다.
멀쩡하던 회사가 한순간 망해서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조리 백수가 되고 그 가족들의 생계조차도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범인은 자신의 배를 채운 것뿐일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돈이 없어서 병원비가 없어서 죽는 경우도 있고, 심각한 경우 일가족이 자살한 일도 있다.
개인의 욕심이 사회에는 파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사기에는 워낙 관대해서.”
“그러게요.”
해외에서는 그런 경우 어마어마한 처벌을 내린다.
돈을 찾을 수 없다면 너 역시 돈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
‘당연하지. 사기를 치는 놈들이 그놈이 그놈들인데.’
사기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정치인이다.
그들을 백으로 얻으면 어떤 사기를 치든 금방 나올 수 있는 데다, 정치인 역시 뇌물로 적잖은 돈을 받아 낼 수 있는 상대라 사기꾼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장이라는 작자들조차도 당당하게 횡령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 봐야 법원에 가면 국가의 경제를 위한다면서 집행유예로 풀어 주니까.
‘웃긴 거지.’
그들의 횡령으로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데, 그들이 있어야 국가가 돌아간다면서 풀어 준다니.
“그런 놈들이야 회사에서 보호하니 그렇다고 쳐도, 이런 놈들까지 보호하다니, 원.”
송정한은 짜증이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조용히 듣고 있던 손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차라리 강제로 일하게 하면 안 되나요? 그래서 월급을 받게 하고 그걸 우리가 가지고 온다거나.”
“그건 안 돼.”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직업선택의자유는 단순히 법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의 문제야.”
대한민국의 헌법 15조에 따르면 직업선택의자유가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되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현실은 언제나 법을 무시하지. 특히나 힘이 없으면 더.”
직업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 전에 취업이 가능하긴 한지 걱정해야 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니 직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직업이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처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취업을 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어차피 강제로 취업한 거고 돈을 갚을 생각이 없는 만큼이나 일도 하기 싫을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일도 하지 않아 결국 일하는 회사에 피해만 입힐 뿐이다.
“그러면 진짜 방법이 없나?”
“뭐, 그 녀석의 뒤를 캐서 돈을 숨겨 둔 곳을 찾는 것도 방법이기는 한데…….”
문제는 그도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들켰다고 해서 호락호락하게 넘겨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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