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428)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회사는 어쩔 수 없이 합의를 청해 왔다.
그것도 과거에 그들이 제시했던 금액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상황이 다급하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업은 기다리는 걸로는 피가 안 말라. 하지만 손해를 보기 시작하면 주주들의 피가 마르지.”
이미 주주들은 수십억대 피해 사실을 알고 거품을 물고 따지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는 사실이고.
“우리는 딱 그들이 했던 것을 반대로 돌려준 것뿐이야.”
저들은 유가족의 피를 말리면서 자신들에게 시간을 유리하게 쓰려고 했다.
그리고 노형진은 그들이 하던 대로 돌려줬을 뿐이다.
“이제는 저런 짓을 그만둘까?”
“그만둘 리 없지. 기업이 한 번에 고쳐진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
저들은 이미 몇 번이나 산재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계속 일어난다.
“지금이야 고개를 숙이지. 하지만 우리가 이 사건에서 손 떼는 순간 똑같은 짓을 할걸.”
“그러면 어떻게 해?”
“간단해. 무기는 휘두르라고 있는 거야.”
노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야 안 휘둘렀지만.”
“안 휘둘렀다고? 그럼 지금까지 그 사람들이 당한 건 뭐야?”
“뭐긴, 그냥 맛보기 수준이지. 창선이 지금 망하면 우리 의뢰인들이 돈을 못 받잖아?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돈을 받았으니 더 이상 볼일은 없다.
창선이 망한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공장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테고, 나라는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제 난 무기를 휘둘러야지.”
노형진은 전화기를 들었다.
“로버트 씨? 접니다. 네, 전에 말씀드린 거 이제 실행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은 노형진은 차갑게 말했다.
“개싸움이 끝나면 싸움에서 진 개는 원래 잡아먹는 법이니까.”
끼리끼리 뭉치는 법
“강간 사건요?”
“그래.”
김성식은 약간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자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네? 김 변호사님이요? 김 변호사님 정도면 어지간한 건 다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딱히 전관의 힘을 쓰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 상당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중수부장 출신인 그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진짜 강간 사건이라는 건데…….”
“차라리 그런 거면 내가 이러겠나.”
“그렇지요.”
김성식이 바보도 아니고, 진짜 강간 사건을 해결하자고 노형진을 끼워 넣을 리 없다.
도리어 그런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직접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강간 사건이기는 한데 말이지,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야. 그런데 또 증인은 많단 말이지.”
“증인이 많다면 끝난 거 아닙니까?”
강간 사건은 증거를 모으기가 상당히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증인을 기준으로 조사가 진행되며, 증인이 많으면 당연히 범죄가 인정된다.
“그래서 곤란하다는 거야. 남자 쪽은 억울하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흠…….”
노형진은 머리를 긁었다.
“그거 단순히 범인이 억울하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말씀 드리긴 그렇지만, 강간범들이야 일단 억울하다고 지르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건 그런데 말이지, 내 오랜 검사로서의 촉이 그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단 말이지.”
“사건 자체가 이상하다는 거군요.”
김성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최종 직위가 중수부장인 것뿐이지 그가 다른 사건은 아예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즉, 그도 검사로서 적잖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일단 사건을 한번 보죠.”
“이야기는 안 들어 보고?”
“예단이라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노형진은 아무래도 자신이 사건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하는 입장인 김성식의 말을 들으면 당연히 그쪽으로 생각이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않고 사건 자료를 살피기 시작했다.
‘홍대에서 벌어진 강간 사건이군. 전 남자 친구가 전 여자 친구를 강간한 사건이라……. 흔하기는 흔한데, 사건 장소는…… 술을 먹이고 모텔로 유인해 강간이라…….’
너무 흔해서 이상할 게 없다.
‘증인은 세 명이나 되는군. 술을 마시던 술집에서 한 명, 모텔로 데려가는 장면을 본 사람이 한 명에, 도망치듯 나오는 남자를 본 것이 한 명이라…….’
조용히 자료를 살피던 노형진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뭔가 걸린다.
증인도 있는, 확실한 사건이다.
다만 강간 이후에 시간이 지나서 현장을 검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지만…….
‘뭔가 이상한데.’
노형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상당히 단순하고 흔한 사건인데 뭔가 어색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어떤가?”
“상당히 평이한 사건이기는 한데…….”
“그런데?”
“너무 평이한데요?”
노형진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특색이 없어요, 특색이.”
모든 사건은 다 자기만의 특징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저 너무 무난하고 평탄하며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도 없는 게 아니긴 한데, 왠지 어색한데요?”
“그렇지?”
재판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 중의 하나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각 사건은 그 사건 자체로 존재하며, 다른 사건과 절대 같을 수가 없다.
이 말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각 사건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노형진이 새론에서 시스템화시켰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구조를 기준으로 만든 것이지, 그 후에 각 변호사들은 케이스에 맞는 자기만의 경험을 녹여 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그런 게 없네요.”
특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
“평균적인 모습이기는 한데요.”
문제는 사람들이 ‘평균’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맞추기 힘든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이걸 가지고 사건이 이상하다는 건 아니실 테고……. 제가 모르는 게 있나요?”
사건은 봤으니 이제 변론을 맡긴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봐야 한다.
물론 그는 구속 수감된 상황이니 그의 말은 김성식이 전해 줘야 하지만.
“헤어진 커플이기는 하지만 이별을 고한 건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네?”
“남자 쪽에서 이별을 고한 거라고.”
“남자 쪽에서요?”
“그래.”
“이상하네요.”
노형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언론이나 인터넷에서는 흔하게 헤어진 커플 어쩌고 하면서 강간 사건을 이야기하지만 남자가 이별을 고한 것과 여자가 이별을 고한 것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가요?”
“그래, 그건 확실한 것 같아.”
“그러면 강간의 가능성이 확 낮아지는데요?”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하는 걸세.”
기본적으로 헤어진 커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강간은 일방의 집착에서 시작된다.
특히 여자가 남자를 차 버리는 경우, 집착을 버리지 못한 남자가 결국 강간을 벌이는 사건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찬 후에 다시 강간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하는 걸세.”
여자는 힘으로 남자를 찍어 눌러서 강간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여자가 차였을 때는 강간 사건이 벌어질 확률이 거의 없다.
“물론 남자가 나중에 변심하기도 하지만…….”
“하지만 그 경우 대부분 포기하지 강간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요.”
자기가 찼다가 마음이 변해서 매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여자가 거절하면 대부분 포기하지, 강간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치닫지는 않는다.
“그리고 의뢰인을 보니 돌아선 것 같지도 않고.”
“돌아선 것 같지도 않다고요?”
“그래, 돌아섰다면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나?”
자기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이건 오해라고 한 번만 만나서 이야기하면 오해는 풀린다.
그런 것이 이런 경우 강간범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은 전혀 하지 않더군.”
“전혀요?”
“그래, 분노만 보여.”
“자기를 받아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인가요?”
“아니. 그런 거라면 이해라도 하지.”
자신에게 거짓말한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 것에 대한 분노.
그런 분노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받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구요?”
“자기가 미쳤다고 그년을 받아 줘야 하냐고 따지던데?”
“흠…….”
노형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의 행동은 과거 연인 사이였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강간 사건 범인들의 그것과는 여러모로 거리가 있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그래서 자네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야.”
“음…… 그러면 피해자 쪽은 어떤가요? 혹시 함정을 판 거 아닙니까?”
남자들이 차이고 난 후에 강간으로 복수하려고 한다면, 여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함정을 파서 복수하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과거의 남자 친구를 강간범이라고 무고해서 고소하는 옛 여친들이라는 존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쪽 카드가 없으면 저쪽 카드만 남아야 정상이다.
“그게 문제인데…….”
“문제?”
“전혀 접점이 없어.”
“네?”
“피해자 측에서 고소할 때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 말이야, 전혀 접점이 없어.”
“끄응…….”
여자가 함정을 파서 남자를 파멸시키기 위해 접근하는 경우, 당연히 주변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증인들이 너무 친밀한 경우, 도리어 그걸 반박하기도 쉽다.
“하지만 전혀 접점이 없다는 거군요.”
“그래.”
그렇다면 문제가 된다.
전혀 관련이 없는 제삼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남자를 공격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찰이나 법원에서도 그들의 신빙성에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곤혹스러운 상황이군요.”
뭔가 이상하기는 한데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다.
거기에다 증인들은 접점도 없다.
그러니 경찰은 그들의 증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테고 말이다.
“자네가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왠지 뒤가 재미있을 듯한 사건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