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430)
재판이 시작되자 노형진은 바로 두 증인을 불러왔다.
그러자 두 명의 증인은 잔뜩 긴장된 얼굴로 재판정으로 나왔다.
백화양이 처절하게 당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뭔가 있군.’
노형진은 잔뜩 긴장한 두 사람을 보면서 속으로 확신을 가졌다.
어떤 방식인지 모르지만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 않았다면 저들이 저렇게 긴장할 이유가 없다.
지난번 재판에서 백화양이 무지막지하게 깨지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후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게 아니고서야 그녀가 깨진 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SNS? 아니야. 그렇게 걸릴 수 있는 것은 쓰지 않을 거야.’
노형진은 그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소식을 주고받았을지 궁금했다.
‘뭐, 깨다 보면 나오겠지.’
노형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사가 하는 말을 느긋하게 들었다.
“이러한 증언으로 볼 때, 과거 증인의 주장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피고인 소진성의 강간 행위를 입증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검사는 여전히 강간을 주장하는 쪽으로 밀고 가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데, 참 씁쓸하네.’
원래대로라면 검찰은 공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당연히 지난번에 위증의 혐의가 보였으니 정식으로 위증죄로 고발하고 이번 사건에 대해 중립적 자세로 재수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귀찮으니 그냥 계속 강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
‘그래, 자기 인생 아니다 이거지.’
노형진은 한심스럽다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었다.
“피고인 측 변호인, 변론하세요.”
그러는 사이 검사의 주장이 끝나고 공격의 칼날은 노형진에게 넘어왔다.
노형진은 변론하는 대신에 증인을 요청했다.
“재판장님, 증인을 요청합니다.”
“또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검사가 눈을 찌푸리자 노형진은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차피 이번 싸움의 카드는 증인이니까.’
검사와 아무리 치고받고 싸워 봐야, 모든 사건의 발단은 증인이다.
증인만 무력화시키면 되는데 왜 귀찮게 검사와 싸운단 말인가?
“으음…….”
검사는 약간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사건의 고발자적 입장에서 치열한 싸움을 해 왔지 지금처럼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갈 길 간다는 식의 방어 전략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증인으로 박세하 양을 신청합니다.”
“인정합니다. 박세하 양은 증인대 앞으로 나오세요.”
박세하는 소진성이 진세영을 모텔로 끌고 가는 것을 본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주장이 먹혀서 강간으로 인정된 것이고 말이다.
“증인, 선서하세요.”
박세하가 선서하고 난 후에 노형진은 싱긋싱긋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증인, 증인은 소진성 씨가 피해자를 끌고 모텔로 향하는 것을 봤다고 했지요.”
“네.”
“그렇군요.”
노형진은 거기까지 묻고 잠깐 침묵을 지켰다.
연이어 공격할 거라 생각한 그녀는 그러한 침묵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질문 때문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사람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손채림의 안내를 받으면서 미리 준비된 방청석의 맨앞으로 나왔다.
그 두 사람은 다름 아닌 박세하의 부모였다.
‘왔구나.’
노형진은 힐끗 그쪽을 바라보고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자, 그러면 너희 우정을 한번 시험해 보마.’
그 잘난 온라인 우정이 어디까지 갈지, 노형진은 참으로 궁금했다.
“증인이 두 사람을 관심 있게 본 이유가 뭔가요?”
“네?”
“증인이 관심 있게 두 사람을 본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요? 술에 취해서 모텔로 들어가는 커플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그건…….”
당연히 있을 만한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증인, 대답하세요.”
“그게 그러니까…… 뭐랄까, 여자가 휘청거리는데 강제로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달까?”
그녀는 애써 미리 준비한 대답을 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제로 끌고 간다라…….”
“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그냥 두고 보고 있었나요?”
“다른 사람?”
“설마 새벽에 혼자서 모텔촌을 배회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거기에다가 지금 사시는 곳은 경기도던데. 남자 친구나 다른 사람이 함께 있었던 것 아닌가요?”
박세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힐끔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예민하지.’
부모가 있는 앞에서 남자와 모텔을 들락거렸다는 이야기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마도 원래는 남자 친구와 있었다고 할 생각이었겠지만…….’
자신이 부모를 모셔 왔고, 그들 앞에서 그걸 이야기하면 집에 가는 순간 그 남자에 대해 캐묻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거짓말했다고 해 버리면 빼도 박도 못하고 위증이 된다.
“증인, 누구와 있었나요? 그곳에 있었던 시간이 새벽 3시인데요.”
“그건…….”
“남자 친구랑 있었던 게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와 있었나요?”
“네? 아, 네네.”
“그러면 그 다른 사람이 누군가요?”
“그건…….”
엉겹결에 그렇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없었으니까.
‘어…… 어쩌지?’
박세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계획대로 말하자니 부모님이 난리가 날 테고 아니라고 말하자니 자신들의 계획이 틀어진다.
더군다나 무고와 위증까지 한꺼번에 들어온다.
“증인, 왜 말을 못 하나요? 같이 있었던 사람이 누군지 말하지 못할 사정이라도 있나요?”
“사실은 혼자 있었어요.”
“그 시간에요?”
“네.”
결국 최선은 혼자 있었다는 말뿐이었다.
그렇게 하면 양쪽 다 가능하니까.
‘내 그럴 줄 알았다.’
노형진은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이라고 해도 저런 답변을 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게 내가 굳이 부모님을 데리고 온 이유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진실을 말하게 하기 위해서?
그럴 리 없다.
이런 짓을 하는 녀석들에게 양심이라는 게 있을 리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
불이익을 주면 된다.
“그러니까 새벽 3시에, 경기도에 사시는 분이 혼자서 서울에 있는 모텔촌을 배회하고 있었다는 거군요.”
“네.”
“이유는요?”
“그냥 산책 삼아서…….”
“산책을 좀 멀리 가네요? 그것도 아주 위험한 곳으로?”
“…….”
모텔촌은 필연적으로 유흥가와 인접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이면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 버린 술꾼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안 되지만, 그런 작자들 중 일부가 발정이 나서 지나다니는 여자들에게 찝쩍거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걸 알면서 왜 그 시간에 거기서 배회하고 있었지요?”
“그건…….”
“거기에다 본인은 경기도에 살면서 딱히 수익 활동을 하지 않고 있네요.”
“네?”
“백수라는 소리입니다.”
“아, 네…….”
노형진이 뒷조사를 해 보니 박세하는 백수였다.
물론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졸지에 백수가 된 것이지만.
‘그건 불쌍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인생을 망쳐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보아하니 백수가 된 스트레스를 그렇게 함으로써 풀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새벽 3시에 유흥가를 혼자 돌아다닌다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
“질문을 바꿔 보죠. 증인, 증인의 현재 직업이 뭡니까?”
배심원들의 얼굴에 불신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부모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혼자 있었던 게 아니라, 같이 있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요? 누구인지 모르니까?”
“허억!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대로 있다가는 졸지에 술집 여자나 매춘부로 몰릴 것 같다는 생각에 박세하는 기겁하면서 두 손을 흔들었다.
“그렇다면 그날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최소한 그날 만난 친구들이라도 말씀해 주셔야지요.”
“그건…….”
박세하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진짜로 있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증인, 진짜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박세하는 점점 당황해서 땀을 뻘뻘 흘렸다.
입을 다물자니 졸지에 부모님 앞에서 창녀가 될 판이고, 사실대로 말하자니 자신에게 벌이 떨어질 게 뻔하다.
“재판장님! 지금 피고인 측 변호인은 증인에게 모욕적 언사를 하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검사가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외쳤지만 노형진은 그런 그의 말을 막아 버렸다.
“재판장님, 이것은 모욕적 언사가 아니라 증인의 신빙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거기에 있었다고 하면서 본인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증인을 어떻게 믿습니까?”
“인정합니다. 이건 개인적인 질문이 아니라 증인의 신빙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증인, 질문에 답변하세요.”
박세하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설마 일이 이렇게 굴러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과연 우정이냐, 가족이냐?’
여기서 계속 거짓말하면 부모 앞에서 그녀의 인생은 박살 나는 셈이다.
아마도 부모는 자취하고 있는 그녀를 강제로 본가로 끌고 내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박세하는 전과를 달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사탕을 좀 던져 줄까?’
모든 일에는 채찍과 당근이 있는 법이다. 너무 몰아붙이기만 하면 저들이 도망갈 구석이 없게 된다.
“재판장님, 증인이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한 듯하니 우선 다른 증인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뭐라고요? 다른 증인을요?”
판사는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질문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증인을 바꾸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보통 증인의 심리가 흔들릴 때 더욱 몰아붙여서 무너진 상태에서 진실을 끌어낸다. 지금 현재, 누가 봐도 증인은 무너지기 직전이다.
그런데 증인을 바꾸고 정신을 차릴 시간을 주겠다니?
“안 되나요?”
“안 될 것은 없지만, 검사 측은 아직 증인신문을 못 했습니다.”
증인이 나오면 한쪽 이야기만 듣는 게 아니다.
노형진이 먼저 불렀으니 노형진이 먼저 질문하고 다음으로 검사가 질문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검사는 질문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
“저는 동의합니다. 아무래도 증인이 제정신이 아닌 듯하니까요.”
검사는 냉큼 동의했다.
이렇게 증인이 무너진 상황에서 질문해 봐야 자신에게 불리한 대답만 나올 테니까.
‘후회할 텐데?’
노형진은 그런 검사의 속셈이 뻔하게 보였지만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양측 다 동의했으니 증인에게 잠깐 쉬는 시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증인으로 김아령 양을 부르겠습니다.”
호명당한 김아령의 얼굴은 아예 시체처럼 창백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당했는지 너무나 뻔하게 봤기 때문이다.
“증인, 앞으로 나오세요.”
법원 경비의 재촉에 앞으로 나오던 그녀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휘청하고 쓰러질 뻔했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님과 남자 친구였기 때문이다.
‘나이스 타이밍.’
세 사람을 데리고 오던 손채림은 노형진을 보고 엄지를 척 세웠다.
그러나 김아령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자, 어쩔 건가?’
공포라는 건 단순하다. 자신이 당하는 것보다, 때로는 남이 당하는 것에 더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걸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더욱 두려움을 느낀다.
거기에다 박세하와 다르게 김아령의 경우 이미 그녀의 인생을 위협할 만한 사람이 자리에 있다.
남자 친구가 왔으니, 여기서 그녀가 아까처럼 대응한다면 볼 것도 없이 파멸이다.
부모야 혈연을 끊지 못한다고 하지만, 애인이 몸을 파는 여자라고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남자가 계속 만남을 이어 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우선순위로 박세하를 앞에 두고 김아령을 뒤에 둔 거지.’
지킬 게 많아질수록 사람은 더욱 절박해지기 마련이니까.
“증인, 선서하세요.”
창백한 얼굴로 나온 김아령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선서했다.
그러자 노형진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증인.”
노형진이 부드럽게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움찔했다.
“재판장님, 증인에게 법률적 조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법률적 조언?”
“그렇습니다.”
노형진의 말에 판사도 검사도 어이없어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김아령은 피고인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법률적 조언을 해 주겠다니?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지만, 법률적 위협은 안 됩니다.”
“법률적 위협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세요.”
사실 하고 싶다고 해도, 검사와 판사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데 위협할 노형진이 아니다.
‘하지만 위협과 조언은 한 끗 차이란 말이지.’
노형진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증인, 아니 김아령 씨.”
“네.”
“지금 당신은 무죄입니다.”
“네?”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노형진을 바라보는 그녀.
“간단하게 말해서, 지금 당신에게 해당되는 죄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요.”
“죄가 없다고요?”
“네. 무고죄라는 것은 고발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죄입니다. 당신이 고발한 건 아니잖습니까?”
한 가닥 희망을 잡은 표정으로 고개를 번쩍 드는 김아령.
“다만 위증죄가 문제인데…….”
“그게…….”
“당신은 아직 위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네?”
“아, 사람들이 잘못 아는 게 있는데, 검찰이나 경찰에서 말한 것만으로는 위증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위증죄의 대상은, 오로지 법원 증인석에서 선서하고 한 말뿐입니다.”
노형진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시간을 줬다.
머릿속을 정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자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당신은 아직 증언하지 않았지요.”
김아령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똑같은 질문이 날아오겠지만 답변할 방법도 없었고, 그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기사회생할 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원래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법이지.’
즉, 노형진은 김아령에게 지금 사실을 말하면 넌 무죄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떡밥을 던진 것이다.
이걸 위해 노형진은 순서를 짜고 주변 인물을 데리고 오고 질문을 준비했다.
“증인, 더 할 말이 있습니까?”
노형진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순간, 김아령은 자신이 살 수 있는 동아줄이 내려오자 볼 것도 없이 잡으려고 덤벼들었다.
“이거 다 거짓말이에요. 이거 다 짠 거예요. 강간한 적 없어요. 저도 거기에 간 적 없어요.”
“뭐라고?”
“잠깐! 그게 무슨 말이야!”
검사는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다.
‘모른 척하기는.’
아마 지난번 일이 끝난 후쯤부터 이미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도 모른 척했으면서 새삼 당했다는 표정이라니.
‘넌 검사보다는 연기자가 나을 뻔했다.’
물론 얼굴이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
“사실은 전 거기에서 본 적도 없어요. 그냥 부탁받아서 거짓말한 것뿐이에요.”
“그래서, 무슨 부탁이었지요?”
“복수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부탁요. 자신을 찬 남자의 인생을 파멸시켜 버리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경찰에 거짓 증언을 한 건가요?”
“네.”
“그러면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데. 어디서 만나서 알고 지내던 사인가요?”
“타기팅요. 거기에서 알고 지낸 지 2년쯤 됐어요.”
“하지만 저희가 조사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던데요?”
“고발하기 전에 싹 다 지웠어요.”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모든 이야기를 다 까발리기 시작했다.
“거짓말이야!”
박세하는 기겁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자신은 이미 위증했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자기만 살자고 모조리 까발리는 김아령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 이 미친년아!”
“닥쳐! 내가 왜 감옥을 가야 해!”
“배신자!”
“배신자? 서로 모르는 사이 아니었나요? 모르는 사이라면서 뭘 배신한다는 겁니까?”
박세하의 비명 같은 말에 노형진이 핵심을 지적하자 그녀는 순간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거봐요!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원하시면 제 타기팅 계정을 복구해 달라고 할게요!”
노형진은 씩 웃었다.
경찰이나 검찰이 복구해 달라고 하는 건 잘 해 주지 않지만 본인이 해 달라고 하면 해 준다.
노형진이 노린 게 그거고.
‘빙고.’
명확한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자 박세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신이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았나요?”
“쪽지요.”
“쪽지?”
“네, 메일 쪽지함요. 새로 계정을 파서, 거기서 쪽지만 주고받았어요.”
“아하!”
사람들은 보통 조사할 때 메일을 많이 조사하지 쪽지 기능은 잘 신경 쓰지 않는다.
“받은 이후에 바로 삭제하면서 흔적을 지웠어요.”
경찰이나 검찰이 증인을 조사하지는 않을 테니, 그러면 흔적은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찾지도 못했을 테고.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지.’
그녀가 자발적으로 복구한 내용을 내놓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노형진은 거기까지 물어보고 물러났다.
“그러면 증인을 다시 바꿔 보도록 하지요.”
“증인을 다시 바꿔요?”
“네. 박세하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검사가 질문해야 하는 순서였지만 그는 당혹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의사를 물어보려는 듯 그를 바라보던 판사는 고개를 흔들면서 박세하를 불렀다.
“증인, 앞으로 나오세요.”
박세하는 혼이 나간 듯 휘청거리면서 증언석으로 나왔다.
완전히 부서지는 자신의 미래를 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노형진은 속으로 실실 웃었다.
“증인, 정신 차리세요!”
“네? 아, 네, 네…….”
그러나 그다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한 모습의 박세하.
노형진은 그녀를 보다가 판사를 바라보았다.
“재판장님, 조언을 좀…….”
“하세요.”
판사도 눈치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형진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박세하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 줬다.
“증인.”
“네…….”
“아직 증인의 증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통 위증은 증언의 종료로 완성되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 수 있는 동아줄이라고 생각한 박세하가 정신을 차리면서 되물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증언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계속 거짓말을 하면 위증이 됩니다. 하지만 종료되기 전에 양심상의 가책으로 진실을 말한다면 정상참작이 됩니다. 정상참작이 뭔지 아시죠?”
그래서 노형진이 아까 증언 도중에 휴식을 따로 주자고 한 것이다.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증언은 바뀔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은 이거 다 짠 거예요! 이거 조작된 거예요! 함정을 판 거라고요!”
자신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오자 바로 붙잡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박세하.
그 말을 들은 검사는 얼굴을 부여잡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재판장님, 여기까지입니다.”
“음…….”
재판장은 갑작스럽게 돌변한 상황에 약간은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극적으로 돌변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검찰 측, 질문할 게 있습니까?”
“네? 아…….”
검사는 당황해서 김아령과 박세하를 바라보았다.
질문해서 그녀들의 증언을 뒤집어야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이쪽은 증거가 나올 테니까.’
거기에다 박세하가 아까 배신자 운운하는 바람에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질문…… 없습니다.”
검사는 입술을 깨물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 기일에 결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