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442)
“이 사건은……?”
노형진은 자신에게 배당된 사건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3심 중.
기존 변호사가 변호사 비용을 받지 못한 걸 이유로 사퇴.
평등재단을 통해 들어온 사건.
흔한 사건이기는 하다.
“이거 지난번 그 사건 같아서 내가 가지고 온 거야. 그때 네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그렇지. 내가 담당한 사건이 아니었으니까.”
다른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상당히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설사 한다고 해도 그다지 효과도 없고.
그래서 모른 척한 것이었는데, 이 사건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이게 다시 나왔다고?”
“보다시피.”
1심 재판에서 진 변호사는 2심을 신청했다. 그리고 거기서도 졌다.
그 결과 3심까지 간 건데, 문제는 부모들이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는 것.
그러자 변호사는 변론을 포기하고 사퇴해 버린 것이다.
“국선을 붙인다고 부랴부랴 알아보다가 평등재단을 알게 된 모양이야.”
“그래서 그쪽에 의뢰한 거구나?”
“그래.”
“3심까지 간 사건은 참 오랜만에 들어오는데? 그런데 3심이라…… 이거 완전 골 때리는데.”
“왜?”
“3심은 법률심이잖아.”
1심과 2심은 사실심, 3심은 법률심이다.
즉, 1심과 2심에서는 이게 사실적 사건인지, 죄가 되는지를 따진다.
그런데 3심은 그게 아니라 이 죄목이 맞는지를 따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다른 증거를 내밀어도 3심에서는 의미가 없어. 이게 해당되느냐가 관건이지.”
“아, 그랬지.”
자신이 배웠던 걸 생각해 낸 손채림은 얼굴을 찌푸렸다.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건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법적인 싸움만을 해야 한다.
“이것, 참…… 원래 변호사가 누군데?”
“왜?”
노형진은 자료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사건 자체가 되게 허술한데.”
“응?”
“나라면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어.”
그런데 그는 그걸 뒤집지 못했다.
아니, 제대로 변론도 못했다.
평균적인 실력만 있었어도 놓치지 않았을 이상한 점이 여러 가지 있는 사건인데 말이다.
“이건 무능을 떠나서 아예 사건 자체를 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인데.”
“설마?”
“설마가 아니야. 제대로 일하지 않는 변호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노형진은 사건 기록을 살피면서 전임 변호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법무 법인 태양이네.”
“응? 뭐라고?”
“법무 법인 태양이야. 너희 아버지 회사.”
“허?”
그렇다면 실력이 없어서 졌을 리는 없다.
손채림의 아버지 손하균은 상당한 실력파일뿐더러, 무능한 사람을 자신의 회사에 둘 만큼 느긋한 사람도 아니다.
“안 봐도 뻔하네. 그냥 버린 사건이야.”
“아…… 내가 미안해지네.”
“네가 미안할 건 없는데.”
버린 사건.
변호사들이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후순위로 미루는 사건이 종종 있는데, 말이 후순위지 사실상 버려지는 셈이다.
태양 같은 거대한 로펌에는 사건이 엄청나게 들어온다.
한데 인력은 한정되어 있고 일은 많으니 당연히 우선순위가 높은, 돈이 되거나 정치인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 사건에 인력이 먼저 배정된다.
당연히 뒤로 밀린 사건은 제대로 준비할 수가 없다.
그러면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호사는 출석만 하여 대충 말장난만 하고 오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버려진 사건’이다.
“그러니 돈이 없지.”
법무 법인 태양쯤 되는 곳이 가격이 쌀 리 없다.
하지만 부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방에서 돈을 구해서 가져다줬을 것이다.
‘하지만 버려졌을 테고 말이지.’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어차피 버려진 사건이다.
그런데 돈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
부자들에게 10억은 돈도 아니겠지만, 이 부모들에게 1억은 전 재산일 것이다.
그러니 3심까지 가기엔 변호사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을 테고.
‘썅놈의 새끼들.’
노형진의 그런 의심은 맨 뒤에 있는 출석 변호사 명단을 보고 확신으로 굳었다.
출석 변호사의 명단이 무려 열세 명이었다.
이런 사건에 태양쯤 되는 변호사가 열세 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할 리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단 하나.
‘시간 되는 놈이 아무나 가라 이거지.’
일단 이름만 올려 두고 재판 당일에 시간이 남는 사람 아무나 가라는 것이다.
이 중 한 명만 출석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걸 잘 모르지.’
그냥 변호사 이름이 여럿 올라가니까 최선을 다해 준다고 생각할 뿐.
‘에라, 이 썅놈의 새끼들.’
노형진은 절로 욕이 나왔다.
“그러면 이거 해 주면 안 되나? 내가 너무 미안한데.”
“해 줘야지. 다른 사람이 해도 되긴 하지만.”
하지만 3심은 어떻게 보면 쉽다면 쉬운 싸움이다.
일단 법의 적용에 대한 부분을 따져야 한다는 것은 발로 뛸 필요 없이 법전만 파고들면 된다는 소리니까.
“이거 가능하겠어? 사흘 후면 변론이야.”
“뭐, 가능하지. 그나저나 진짜 썅놈의 새끼들이네.”
그만두려면 차라리 빨리 그만두든가, 재판을 코앞에 두고 그만둬서 변호사도 구하지 못하게 하다니.
“하지만 가능하기는 해도…… 쉽지는 않을 거야.”
노형진은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 * *
1심과 2심은 지방법원에서 하지만 3심은 대법원에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다음 재판 장소는 서울이었다.
노형진은 출석을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왜?”
“그래도 태양이라서 3심까지 간 거잖아.”
“그래?”
“그래. 3심을 개나 소나 다 받아 주는 게 아니라서.”
교육할 때는, 대한민국은 3심제도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3심은 선택적으로 들어간다. 워낙 사건이 많아서 다 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완전한 3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2심에서 3심을 신청해도 대부분은 그냥 기각 처리되고 만다.
“하지만 상대방이 태양이잖아.”
그러니 일단 기각 처리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게 그나마 유일한 위안거리다.”
“왠지 씁쓸하네.”
“그런 게 세상이지, 뭐.”
재판정으로 들어가자 모든 재판 준비는 끝나 있고 재판관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3심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가족들도 오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지칠 대로 지친 가족들이 쉬어야 하는 타이밍이다.
“재판장님 들어오십니다. 일동, 기립해 주십시오.”
재판장이 들어오고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장님, 이번 사건에서 검사는 법을 완벽하게 잘못 해석했습니다.”
3심은 아무래도 구조적으로 변호사가 공격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검사가 법을 잘못 적용했다고 주장해야 하니까.
그러니 방어하던 변호사와 공격하던 검사의 입장이 반대가 되는 셈이다.
“재판장님, 피고인은 명백하게 현조 건조물 방화를 저질렀습니다. 그로 인해 해당 건물에서 자던 다섯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조사 결과로도 나온 명백한 사실입니다.”
검사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사실 법무 법인 태양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건 3심까지 올 수 있는 사건도 아니었다.
누가 봐도 현조 건조물 방화인데 이거 말고 무슨 죄목을 적용하란 말인가?
‘기껏해야 지능 수준을 따지고 들겠지.’
방화를 저지른 범인, 그러니까 홍태섭은 지능이 낮다. 그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능이 낮다고 해서 처벌을 다 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해도 교도소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피고인의 방화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 사실은 명확하고, 해당 법률 적용 과정에 있어서 법률의 부정확성이나 법률적 오해는 일절 없었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확인한 사항이다.
이런 사건에서 적용할 수 있는 법조문은 그것뿐이다.
‘법률심은 사실심과 다르다.’
검사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불리는 노형진이라 할지라도 적용된 법 조항에 대해서는 따지고 들 수 없다는 것이 검사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견 노형진의 주장은 그런 그와 비슷해 보였다.
“재판장님, 하지만 피고인 홍태섭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입니다. 실질적으로 그의 지능은 10세 이하 수준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일반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가혹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
지능이 낮다. 그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형법상 지능에 다른 차별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그는 현재 나이인 24세를 기준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재판장님, 피고인의 지능이 낮은 것은 익히 알고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성인인 피고인을 미성년자로 보아 풀어 줄 수는 없습니다.”
노형진이 노리는 것이 지능을 문제 삼아서 미성년자 관련 법률을 적용하려는 거라 생각한 검사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법률적으로 성인이고 또한 자의에 의해 불을 지름으로써 무려 다섯 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그 재산 피해만 무려 5억이 넘고 이재민만 스물여덟 명에 달했습니다.”
불이 난 장소는 오래된 3층짜리 빌라였다.
그곳 입구에 불을 내는 바람에 불이 크게 번지면서 제대로 대피도 하지 못해 그렇게 큰 피해가 난 것이다.
‘그래, 그게 문제야.’
노형진도 처음에는 집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화재로 번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구에 불을 내서 화재가 나게 만들었다는 것. 그게 이상한 것이다.
물론 입구에서 불을 내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문제는 그 행동이다.
‘증거가 문제지.’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있었다. 홍태섭이 입구에 박스를 쌓아 두고 불을 붙이는 장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불이 번지는 걸 보고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그러면 장애인이 아니지.’
노형진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행동이다.
지능이 10세 미만인 장애인이 박스를 입구에 쌓아 두고 불을 지른다?
더군다나 그 빌라는 그의 집도 아니었다.
그런데 전혀 상관없는 남의 집 빌라에 가서 상자를 쌓아 두고 불을 지른다?
‘일반적인 장애인들의 행동 패턴은 아니야.’
결국 이유가 있다는 건데, 아직 그걸 알 수가 없다.
‘문제는 3심이다.’
사실 3심까지 간 후에 사건을 뒤집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추가 증거를 모은다고 해도 법원은 판례를 뒤집는 것을 무척이나 꺼리기 때문이다.
하물며 3심은 더 그렇다.
3심에서 판례가 된 걸 뒤집으려면 최소한 5년에서 6년은 걸린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그가 그 기간을 감옥에서 버틸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결국 최선은 2심으로 파기환송 시키는 것.’
그러면 2심에서 다시 재판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시간을 좀 벌 수가 있다.
“재판장님, 인간의 지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더군다나 피고인 홍태섭의 경우는 지능이 10세 미만인, 장애 전문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7세에서 8세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성인으로 판단하고 처벌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재판장님, 피고인의 정신적 나이만을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피고인이 이 범죄를 저지르면서 그것이 올바른 일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는 사회적 지능이 있는지를 봐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피고인 측 변호사가 주장하는 대로 7세에서 8세 정도의 나이의 지능지수라면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할수 있는 나이대입니다.”
검사는 홍태섭의 실질 나이를 보면서 주장했다.
“재판장님, 검사 측은 피고인이 육체적으로 성인이라는 점만을 보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14세 미만은 소년법상의 처벌 대상입니다. 그리고 10세 미만은 형사 범죄를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범법 소년으로 취급되며 형사처벌의 대상조차도 되지 않습니다. 원고는 정신적으로 8세이고 그 기준으로 본다면 범법 소년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즉, 그의 범죄행위는 안타깝지만 그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입니다. 더군다나 원고는 이미 법적으로 금치산자 판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형사처벌에 대해서만 성인의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은 명백하게 규정을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민법상 장애인은 금치산자, 그러니까 성인이지만 법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이런 경우 민법상 계약은 모두 무효화된다. 그를 완성된 성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원고는 민법상의 금치산자 결정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그 이후 사회적 지능이 발달하거나 또는 정신적 장애가 치료되지는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사건 이후에도 정신적 장애에 대해서 담당 검사관들 역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형법 10조에 심신장애자에 대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단순히 육체적 나이로 판단하는 것은 명백하게 법 적용의 오류입니다.”
“가해자는 심신장애로 볼 수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7세에서 8세 정도의 지능이면 충분히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장난을 넘어서 이 정도의 불을 지를 정도라면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장님!”
“물론 정상적인 선과 악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심신장애의 기준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그로 인해 파급될 수 있는 문제를 예상할 수 있는지로 봐야 합니다. 불을 지른 것이 사실이나 그로 인한 피해 여부를 예상할 정도의 지능은 없습니다!”
“모든 걸 예측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지요.”
“애초에 심신장애 규정이 선악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중증 환자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사실상 의미가 없는 규정입니다. 그런 중증의 장애인들은 대부분 거동 자체가 불가능하고 낮은 지능지수로 인해서 스물네 시간 보호자가 동행하지 않으면 생존조차도 불가능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을 위한 규정이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 사람들은 범죄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노형진은 악착같이 홍태섭을 처벌하려고 하는 검사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저래? 돈이라도 먹었나?’
하지만 그가 딱히 돈을 먹을 일도 없다.
누가 봐도 홍태섭이 불을 지른 것은 사실이다. 증거도 명확하고.
‘실적이 다급한 모양인데…….’
승진이 다가왔다면 아무래도 그럴 수도 있다.
노형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실적이 필요하다면 평소에 제대로 일하면 된다.
평소에 탱자탱자 놀다가 승진 시기가 다가오자 실적을 만드는 데에 혈안이 되다니.
‘그래, 길게 가지 말자.’
어차피 이번 싸움은 자신이 이기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형평성의 문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형평성?”
“심신장애라는 것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요. 대표적으로 심신상실이 있습니다. 심신상실이라는 것은 가진 것을 잃어버림으로써 발생하는 거죠. 쉬운 예를 하나 들자면, 술을 마시고 살인을 한 사람의 경우는 심신상실에 해당되지요. 검찰 측의 주장대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으로만 판단한다면 결과적으로 똑같은 살인을 해도 술을 마시고 사람을 죽인 사람은 원래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처벌이 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순간 검사는 말문이 막혔다.
이건 법과 현실의 일종의 괴리다.
법적으로 따지면 당연히 술을 마시고 사람을 죽인 놈이 유리하다. 심신상실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한다.
술 마시고 개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자의적 심신상실은 어떻게 해석하실 겁니까?”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관계입니까?”
“관계가 있지요. 심신상실이 고의적인 것인지, 아니면 타인에 의한 것인지, 정신병적 질병에 의한 것인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으음…….”
법의 오랜 난제를 들고나오자 검사도, 판사도 약간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술을 마시고 전 여자 친구를 강간하거나 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려서 그랬다고 생각하곤 한다.
문제는 진실을 알 수가 없다는 것.
쉽게 말하면,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사고를 친 것인지 아니면 사고를 칠 목적으로 술을 마신 것인지 검사로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거다.
당연히 가해자는 술 마시고 벌인 우발적인 행위였던 거라면서 감형을 요구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악한 목적을 가지고 술을 마셨다면 구분할 수가 없으므로 그들이 유리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선천적 장애인들은 그에 따른 역차별을 받는 거 아닌가요?”
노형진의 말에 검사는 말문이 막혔다.
해석대로라면 더 순수한 사람일수록 도리어 역차별을 당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홍태섭이 심신장애자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10세 정도의 지능입니다. 그 정도 지능이라면 말씀대로 선과 악은 구분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사건의 파급력이나 사망 사고 발생의 가능성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 결과에 나와 있습니다.”
노형진은 몇 가지 논문을 증거로 제시했다.
순간 검사의 얼굴에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 태양이었다면 좋았겠지? 안 그래?’
사실 태양에서 최소한의 변론만 했어도 이 사건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1심과 2심에서 심신장애를 주장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무능한 놈을 보낸 거야?’
상식적으로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준비를 하지 않았어도 이 정도의 법률적 지식은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변론조차 하지 않았다면…….
‘안 봐도 뻔하네.’
이제 막 나온 로스쿨 1기생 중 적당한 사람들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전 경험도 없고 실력도 부족한 사람을 보냈겠지.
그런데 경험이 없으니 재판정에서 어버버하다가 끝났을 테고.
‘돌아 버리겠네.’
사실 노형진은 이 부분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로스쿨 제도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사법시험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채로 변호사 시장에 내던져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경험을 쌓으면 나아진다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사법연수원처럼 제대로 교육하는 것도 아니고 잠깐 각 로펌에서 연수를 하는 게 다다.
그나마도 자리가 확보되지 않아서 변호사회에서 단체 교육을 하고 있으니.
‘그런 놈을 보내서 대충 경험이나 쌓으라고 했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노형진은 정신을 차리고 검찰 측을 바라보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심신장애를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으으으…….”
검찰은 짜증스럽게 노형진을 노려봤지만 사실 어떻게 봐도 노형진의 말이 맞기 때문에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