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475)
“뛰어난 학생이었지요.”
허형욱의 담당 교수는 그를 그렇게 표현했다.
“세심한 데커레이션 실력이 인상 깊었습니다. 요리 실력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데커레이션은 정말 세심하고 정교하게 했어요. 데커레이션 실력 자체는 무척이나 좋았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성향을 보면 그쪽으로 성향이 충분히 있으니까.
“그가 다른 이야기를 한 적은 없나요? 좋아하는 여자라든가, 다른 문제라든가.”
게이라고 했지만 그걸 주장하는 것은 허삼욱 한 명뿐이다.
그러니 게이라는 것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 확인은 해야 한다.
그런데 교수는 그 질문에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답했다.
“전혀요. 그는 여자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네? 없었다고요?”
“네. 여기는 요리 학교입니다. 상대적으로 여성 학우가 많지요.”
그중에서 일부는 허형욱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여성 학우들과 친밀하게 지내기는 할지언정 이성으로서 관계를 맺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는 것.
“젊은 남자들, 알지요? 혹시나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한다는 거요.”
교수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 듯 말했다.
하긴, 그 입장에서는 매년 보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미스터 허는 데이트를 신청하거나 하는 경우가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같이 식사하는 경우도 드물었고.”
“그러면 그의 룸메이트는요?”
“그의 말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다고 하더군요.”
“음.”
그렇다면 아마 게이가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개방적인 국가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상대방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다지 흠이 되지 않는다.
‘딱히 허형욱이 유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닌 듯하고.’
결국 학교에서는 그와 관련된 다른 뭔가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혹시 사고를 낸 사람도 이 학교 학생인가요?”
“아니요.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그러면 그 당시에 기숙사에서 이탈한 사람이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 부분은 우리가 확실하게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숙사는 상당히 자유롭지 않나요?”
“다른 곳은 모르지만 우리는 상당히 통제합니다. 더군다나 다음 날 중간 실기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날 대부분의 학생들의 위치를 파악했지요.”
“중간 실기 시험요?”
“네.”
그러면 더 말이 안 된다.
멀쩡하던 사람이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돌변해 가택 침입, 강간을 시도한다?
“경찰은 뭐라고 하던가요?”
“뭐, 시험 스트레스로 인한 범죄 같다고 했죠.”
“그 시험이 그렇게 중요한 거였습니까?”
“전혀.”
어깨를 으쓱하는 교수였다.
단순한 테스트일 뿐이라서, 혹 떨어진다고 해도 낙제시키거나 방출하는 등의 불이익은 없다고 했다.
“거기에다 그다음 날 시험 과목은 데커레이션이었습니다. 미스터 허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였지요.”
그럴 정도면 그가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았지만 딱히 의미 있는 내용은 없었다.
그가 바깥으로 나왔을 때, 기숙사로 갔던 손채림과 엠버도 나오는 중이었다.
“뭐가 있나요?”
“전혀.”
“허형욱에 대해 나쁜 감정은 없는 듯했습니다.”
“혹시 나쁜 일을 꾸미거나 할 만한 사람은?”
“전혀요. 우리가 만나 본 이들 중에 그런 사람은 없어 보이더군요.”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강간을 시도했던 놈이라면 이렇게 여성 학우가 많은 상황에서 자신을 감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미 사고를 치고 쫓겨났어야 정상이다.
‘물론 자신을 감추는 데 능한 놈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런 놈은 필연적으로 범죄가 상당히 조심스럽고 계획적인 스타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게 아니다.
그냥 다짜고짜 쳐들어가서 강간하려 들었다는 식의 사건.
띠리링.
때마침 울리는 엠버의 휴대폰 벨 소리.
엠버는 문자가 온 것을 확인하고는 노형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스터 노, 사건 기록을 얻는 데 성공했답니다. 바로 들어가시겠어요?”
“아, 그래요?”
아무리 변호사라고 하지만 관련이 없는 사건의 자료를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허삼욱의 의뢰를 받았다는 걸 증명하고 자료를 요청했는데, 드디어 나온 모양이었다.
“일단 그걸 확인해 봐야겠군요, 이곳에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듯하니.”
노형진은 학교 건물을 힐끔 보면서 중얼거렸다.
* * *
“끄응, 이건 말도 안 되는데?”
자료에는 현장의 사진과 진행 상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기록에 따르면 허형욱과 다른 범인 두 명이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서 강간을 시도한 정황이 보인다는 것이다.
현관으로는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갔고, 그 후에 2층 침실로 도망가 숨은 피해자를 끌어내기 위해 커다란 소방용 도끼로 문을 부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피해자가 총을 쏴서 허형욱이 쓰러지고, 다른 가해자들이 그걸 보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방에 허형욱과 다른 사람들의 족적이 찍혀 있다는 것.
“엠버가 보기에는 어때요?”
“전형적인 사건이네요. 이게 문제인가요?”
“일단 현장에 가서 이야기해 보죠.”
노형진은 엠버와 손채림을 데리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미리 이야기를 들은 경찰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별말씀을요.”
“피해자는 어떤가요?”
“현재 모처에서 쉬고 있습니다. 이곳은 오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당연한 마음이니까.
“그러면 안을 살피는 건 문제가 없지요?”
“없을 겁니다. 대부분의 증거는 수집했으니까요. 하지만 혹시 모르니 건드리지는 마세요.”
“그러지요.”
노형진은 안으로 들어가서 주변을 살폈다.
전형적인 2층집, 미국의 중산층 집이다.
‘슬럼화되고 있는 중하위권 지역.’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피해자.
‘거기에다 여기는 허형욱이 살고 있는 곳과는 거리가 좀 있다. 왜 여기로 온 걸까?’
노형진은 천천히 안을 살폈다.
그러다가 우뚝 멈췄다.
“1층은 볼 게 없을 것 같네.”
“네? 어째서죠?”
“너무 깨끗해요.”
족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양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군다나 그 흔적은 바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강간이라 생각한 모양이군요.”
도둑이라면 뭔가를 훔치기 위해 이곳저곳 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바로 침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잠깐 위에 올라가 봐도 될까요?”
“그럼요.”
경찰의 허락을 받아서 위에 올라갔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도끼에 의해 반쯤 부서진 문이었다.
노형진은 그곳에 난 구멍으로 안쪽을 스윽 살폈다.
“안쪽이 잘 보이네.”
거기에 문을 부수려고 그런 건지 발로 찬 흔적도 있고 말이다.
“잠깐 안으로 들어가 보죠.”
노형진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옷장으로 향했다. 옷장 안에는 가지런하게 옷이 들어차 있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노형진은 한숨을 쉬었다.
“이거 아무래도 사건이 이상하군요.”
“이상해요?”
“일단 간단한 실험을 해 봅시다.”
“무슨 실험이지요?”
“엠버, 문밖에 서 주세요. 채림이는 안에 들어와서 소리를 질러 봐.”
“소리?”
“그래, 뭐든.”
“알았어.”
엠버는 바깥에서 멀뚱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손채림이 방으로 들어오자 노형진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손채림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잠시 후 노형진은 문을 열고 엠버에게 물었다.
“어때요? 뭐라고 하는지 들리던가요?”
“미국 햄버거는 무식하게 커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 된다고…….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리 지르는 게 잘 들린다는 거지요?”
“네.”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받은 자료 중에는 911에 신고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명령에 따라서 발포했다고 하고요. 그런데 강간범들이 그걸 듣고도 도망가지 않고 문을 부수고 있었다고요?”
“아!”
엠버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건 말도 안 된다.
분명히 여자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당장 경찰이 오고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망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부수느라고 듣지 못했을 수도 있잖아? 흥분 상태면 더 그렇고. 아니면 자기 얼굴을 봤으니 죽이고 도망가려고 했을 수도 있고.”
손채림은 노형진의 말에서 정확하게 문제점을 지적해 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다른 걸 보자. 이 방 안이 사건 이후에 바뀐 게 없다고 했지?”
“그렇지.”
“그러면 그 당시 피해자가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
“응…….”
두 사람은 주변을 보다가 침대를 가리켰다.
그곳이 시트가 흐트러진 채로 있었으니까.
“여기네. 전화기도 여기에 있고.”
“그래. 그게 두 번째 의문 사항이야.”
“응?”
“이 위치대로라면 피해자는 상대방이 문짝을 부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보면서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가 돼. 피해자의 행동이 심리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그렇군요. 그런 경우는 대부분 몸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게 정상이니까요.”
아무래도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본능적으로 몸을 숨길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옷장 같은 곳을 찾아들어 갔을 것이다.
“그래서 네가 아까 옷장을 본 거구나?”
“그래. 그런데 옷장을 보니까 옷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더라고.”
“그러네.”
“그리고 다른 옷도.”
“응?”
“아니야.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확실하지 않으니.”
“전화선이 거기까지 안 가서 그런 거 아냐?”
고개를 갸웃하는 손채림.
확실히 이 방 안에 있는 것은 유선전화다. 아마도 유선전화와 무선전화기 일체형인 모양인데, 무선전화기는 1층에 둔 듯했다.
“그랬다면 최소한 침대 너머나 침대 아래에라도 숨으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흔적이 없네요.”
엠버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하나 있어.”
“어떤 건데?”
“총.”
“총?”
“난 스미스웨슨이라고 해 그러려니 했거든. 너도 서류를 봐서 알겠지만 거기에 모델이 나와 있어. 그런데 모델이 스미스웨슨 500매그넘이야.”
“그런데?”
“그건 여자는 거의 안 쓰는 모델이야.”
“응?”
“총기도 급이라는 게 있어. 권총이라고 해서 다 같은 권총이 아니라고.”
스미스웨슨의 경우는 권총을 몇 가지 사이즈로 정해 만든다.
제일 작은 게 J프레임, 그다음이 K프레임, 그다음이 N프레임이다.
프레임 단위가 클수록 총도 커지고 위력도 강해진다.
“그리고 500매그넘은 X프레임을 쓰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권총 계열이지.”
“그래서 그걸 쓰지 말라는 법이 있어?”
“물론 그건 아니지. 하지만 권총의 기본 목적은 자위용이야. 자신을 지키는 거지.”
하지만 500매그넘은 자위용으로는 쓰기 부족하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과해 부족하다.
왜냐하면 워낙 강력해, 어지간한 남자들도 연발로 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쏜다고 해도 명중률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방에 적을 박살 내기 위한 물건이 바로 500매그넘 같은 놈들이다.
“그런데 여자가 500매그넘을 자위용으로 집에 둔다고? 정말로 자기를 지키기 위한 용도라면 더 작은 게 좋지. 너무 강력해서 제대로 쏘기도 힘든 총을 자위용으로 쓰기는 그렇잖아? 권총 명중률이 낮은 거야 다 아는 사실이니 연발이라도 가능해야지. 그런데 더 이상한 건, 500매그넘은 리볼버 형태라는 거야.”
리볼버는 스스로를 지키는 자위용으로는 추천받지 못하는 모델이다.
왜냐하면 형태적 한계로 인해 장탄 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00매그넘 같은 경우는 총알이 다섯 발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들이 쓸 만한 콤팩트한 형태의 자동 권총들, 가령 M 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장탄 수가 15개다.
당연히 자동 권총이라 반동도 작고 연사도 쉽다.
탄창 형식이라 탄환의 보급도 편하고.
“500매그넘은 여자가 자기 보호용으로 쓰는 경우보다는 허세용이 더 많지.”
“허세?”
“그래.”
위력이 위력인 만큼 집에서 호신용으로 쓰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휴대용이나 전투용으로 쓰기는 너무 무거우니까.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이 문제다.
500매그넘의 가격은 1천 달러가 넘는데, 더 강력하고 위력적인 샷건이 미국에서는 싼 게 300달러 이하다.
“한 방에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 거라면 샷건을 쓰지. 샷것은 빗나갈 가능성도 낮으니까. 영화에서 자위용으로 샷건을 쓰는 건 그냥 폼 나서가 아니야. 가장 적당하기 때문이지.”
산탄총, 즉 샷건은 실내에서 사격할 때는 절대적인 위력을 자랑한다.
비록 장탄 수가 부족하고 연사력이 떨어지지만 사방이 막혀 있는 실내에서 샷건 탄으로 공간을 도배해 버리면 빗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음…….”
결론은, 500매그넘은 이런 사건에서 쓰일 만한 총기가 아니라는 것.
“그러면 뭐야? 진짜로 함정이라는 거야?”
“그런 것 같아.”
노형진은 확실하게 심증을 굳혔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왜 함정을 판 건지, 그리고 누가 죽인 건지가 남지.”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함정을 깨다
결국 사건 자체가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무죄를 끌어낼 수가 없어요. 일단 허형욱이 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은 명확합니다.”
허형욱이 이 집 안으로 들어와서 뭔가를 하려고 했던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자신들이 찾아낸 증거들은 허형욱이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을 논하는 정황증거일 뿐, 그가 무죄라는 증거가 아니었다.
“그러면 일단 피해자에게 집중을 해 봅시다. 함정을 판 거라면 그녀가 관련이 있을 테니까요.”
엠버의 말에 노형진은 일단 다른 쪽으로 조사해 보기로 했다.
“피해자가 메이웨이라는 중국인 여성입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온 사람이고요.”
“유학을 온 지는 얼마나 되었지요?”
“3년 정도 되었습니다.”
“전공은요?”
“전공은 미술입니다.”
피해자를 조사해 봤지만 딱히 특별한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뭔가 있어.’
사실 다른 거라면 모르겠는데 그곳에 남아 있는 흔적을 봐서는 그녀는 절대로 피해자로서 행동한 게 아니다.
상식적으로 도끼질을 하는 걸 뻔하게 바라보면서 통화를 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 주변 인물은요?”
“피해자다 보니 딱히 조사는 하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허형욱과의 접점은요?”
“전혀요. 사는 동네도 다르고, 다니는 학교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고요.”
“다른 곳에서 만났을 가능성은?”
“제가 봐서는 없습니다.”
허형욱은 요리를 전공하고, 하루 종일 학교의 주방에서 연습하던 사람이다.
반대로 메이웨이는 미술을 전공해 그림만 그리던 사람이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마주쳤을 가능성은요?”
“그럴 가능성도 제로예요.”
허형욱이 아르바이트하던 곳은 요리 쪽 학생들이 다 그렇듯이 주방이었다.
그에 반해 메이웨이는 식당도 아니고 여성복 매장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국 접점은 없다는 거군요.”
“네.”
“하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강간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접점이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여자는 몰라도, 남자는 어디선가 그녀를 보고 스토커 짓을 하는 게 기본이다. 처음 보는 여자를 강간하겠다고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기에다 그렇게 접점이 없는 여성의 집을, 누가 있는지 알고 무조건 쳐들어가겠는가?
진짜로 샷건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걸레짝이 되어 버릴 텐데.
“그래서 경찰은 주범은 그 도망간 놈들 중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요?”
그러면 허형욱이 접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때 듣고 있던 손채림이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잠깐만. 그럼 이상하잖아. 네가 전에 강간은 인종별 취향을 좀 탄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런데 주범이라면 그 인종이 동양인이라는 소리 아닐까?”
“음.”
노형진은 생각에 잠겼다.
인종별 선호도.
그건 각 인종별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미적 기준이다.
가령 동양인은 같은 동양인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백인은 같은 백인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건 흑인도 마찬가지.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진화의 내부에 있는 유전자가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다른 두 명은 히스패닉으로 보였다고 했다면서?”
“글쎄, 인종적 취향이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실제로 인종이 다른 사람과 사랑해서 결혼하는 경우도 많잖아.”
“하긴.”
결혼은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강간은 좀 더 말초적이고 좀 더 감각적이다. 즉, 본능에 휘둘리는 거지.’
그런 점에서 보면 히스패닉이 먼저 동양인을 강간하자고 선동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메이웨이의 증언도 신빙성이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엠버는 단호하게 말했다.
“함정인 이상 그 역시 함정을 판 자들과 한통속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수사의 시작점은 다름 아닌 메이웨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녀가 현재 호텔에 묵고 있다고요?”
“네.”
“그러면 그곳으로 가서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아마 그건 힘들 겁니다. 하지만 경찰서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자리를 좀 만들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