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04)
“이게 무슨 일이야?”
황수언은 자신에게 닥쳐온 손해배상 청구를 보고 당혹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일전에 버린 계집 두 명이 동시에 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내가 뭘 어쨌는데?”
그저 즐기다가 헤어진 것뿐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어떤 생각도, 죄책감도 없었다.
그런데 그걸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다니?
“아무래도 상대가 좋지 않군요.”
그가 다급하게 찾아간 변호사는 한숨을 폭 쉬었다.
“상대가 안 좋다고요?”
“네, 상대방이 좋지 않습니다. 새론이라니……. 안 그래도 그런 소문이 있었는데…….”
“소문이라니요?”
“새론에서 고아들을 위해 소송에 나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고아원에서 나오는 젊은 여자들을 꼬셔서 몸만 취하고 버리는 남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다고…….”
말을 흐리면서 바라보는 변호사의 시선에 황수언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사귀다가 헤어진 건데…….”
그는 애써 변명했지만 변호사는 별말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자신의 의뢰인이니까.
하지만 상대방이 새론이라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건 자체는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겁니다.”
“유리해요?”
“네.”
같이 산 기간은 1년 정도이고, 이 정도면 사귀다가 헤어졌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사이에 돈을 뜯어내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설사 그랬다 해도, 그 돈보다는 먹여 살리는 데 들어간 돈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기간이기도 하고.
“그러니 우리는 무조건 사귀다가 헤어진 걸로 주장하면 됩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황수언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변호사는 이번 재판은 어쩌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 *
“물론 사귀다가 헤어진 건 맞아. 아마 재판부도 이것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일 거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면서?”
노형진의 말에 손채림은 어리둥절했다.
분명히 소아진에게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재판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니?
“받을 수야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재판으로 하기에는 솔직히 좀 무리야. 사실혼하고는 좀 다르니까. 이건 명백하게 동거의 한계 내에 있거든.”
“결혼을 이야기했다고 해도?”
“그게 문제야. 지금은 21세기라고.”
과거에 비해 성적인 순수성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시대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이유로 불륜조차 처벌하지 않는 시대.
그런 시대이니 동거하고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손해배상이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결혼을 생각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적극적인 기망 행위가 있어야 해.”
“적극적인 기망 행위?”
“그래. 가령 피해자를 만나면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든가, 아니면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다든가 하는 거 말이야.”
현재 재판부는 그런 게 없다면 아무리 동거라고 할지라도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애초에 성관계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부분 헤어질 때마다 돈을 내놔야 할걸.”
“동거를 해도 말이야?”
“동거가 흠이 되는 시대는 아니니까. 물론 나중에 결혼할 때 남편이 될 사람이 동거에 대해 알게 되면 문제겠지만 여자가 그 이야기를 할 리도 없고, 동거했던 남자가 찾아가서 이야기할 리도 없잖아? 그러니 사실상 피해가 없는 거지.”
“그럼 피해자 중심주의는?”
“그거 전에도 말했지, 완전 개소리라고? 다른 문제는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헛소리야, 헛소리.”
피해자 중심주의란 피해의 기준을 피해자에게 두는 방식을 말한다.
주로 여성 단체가 남자를 매도하기 위해 쓰는 말인데, 사실 법적으로 도무지 용납될 수가 없는 방식이다.
“어째서?”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자. 이 경우 피해자는 누구?”
“당연히 여성이지.”
“그래, 그렇지? 남자가 여자와 동거하다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데 반대라면?”
“어?”
“반대의 경우 말이야. 동거하다가 여자가 남자에게 이별을 통지했어. 그러면 피해자는 누구야?”
“그건, 남자?”
“그러면 남자가 여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나?”
“…….”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마 그런 소리가 나오면 수많은 여성 단체에서 게거품을 물고 덤벼들 게 뻔하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고 하잖아.”
“뭐가 달라? 남자는 뭐, 감정 없어? 남자는 꼭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지나? 아니, 애초에 법이 바뀌어서 남자도 성폭력의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어. 그러면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거 아냐?”
“으음…….”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욕먹는 건 그거야.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똑같은 사건인데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안 괜찮다고 하니까.”
“그렇기는 하네.”
대룡에서도 여성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엄청 많아서 새론이 그 뒷수습을 한 적이 있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성추행 사건의 빈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성추행 사건이나 성폭행 사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의 기본은 공정성이야. 공정성이 깨진 법은 법이 아니지. 차라리 성폭력뿐만 아니라 범죄 피해자 전반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피해자 인권주의 같은 거라면 문제가 되지 않아. 왜냐면 우리나라가 피해자 인권을 챙기지 않는 건 문제니까. 하지만 성폭력에 한해 여성이 우선시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헛소리야, 헛소리. 이 사건에서 남자들이 잘못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면 안 되지.”
“움…….”
“피해자 중심주의는 이미 법률계에서 논의되고 있어. 문제는 그걸 곡해하는 거지.”
사실 피해자 중심주의의 내용은 대부분의 법률계 사람들이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법률계에서 말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형사사건에서 피해자가 완전 배제당한 채로 하나의 객체로서만 존재하며 어떠한 발언도 할 수가 없어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에 대한 반성인 반면, 일부 여성계에서 말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 사건에서 모든 사건은 여성의 증언만으로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며 여성은 무조건적인 피해자라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일단 법은 안 된다면 손해배상은 어떻게 할 거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이겨야지.”
“하지만 어떻게?”
“간단해. 기망 행위를 했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이 나를 속였다는 거거든.”
“그런데?”
“그런 놈들은 새로운 여자를 찾아다니지. 그래서 내가 두 명을 동시에 소송을 넣은 거야.”
“아하!”
한 명만 찾아서 소송을 넣으면 기망 행위가 될 수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두 명을 넣으면 가해자는 동시에 두 명을 사귀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피해자이자 증인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우군이 있다고 한 거구나.”
“그래.”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저 헤어지고 만나는 것의 연속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남자와 만난 시점이 우연처럼 똑같이 고아원에서 나오는 때였고, 또 1년쯤 지나서 이별을 당했다.
그렇다면 그걸 알고 있는 두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또 재판부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사건의 기본은 상대방이 거짓말한 것을 어떤 식으로 입증하느냐야. 그리고 그걸 입증할 사람은 이미 준비되어 있지.”
남은 것은 싸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