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1)
다음 재판에서도, 다다음 재판에서도 노형진의 이상행동은 계속되었다. 두루뭉술한 공격만 한 채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도대체 왜?’
심지어 노형진이라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유민택조차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보다시피 피고는 처음부터 돈을 받을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증언과 관련 증거에서 보다시피 군납 업체의 지속적인 로비로 인해 어쩌다 보니 실수에 가까운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가 부정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거 아닙니까?”
“물론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증거를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정에 관하여 어느 정도 묵인했을 뿐, 특정인에게 손해를 끼칠 목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손해배상은 과실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명백하게 고의의 목적이 확실한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건 직접적인 손해에 대해서만 그렇습니다. 분명 피고가 범죄를 행한 것은 맞습니다만 그 행위 자체를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것은 피고가 아니라 피고에게 상당한 금품을 준 성화입니다. 또한 피고가 그 군화의 질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도 감안하여야 합니다. 피고는 그저 빠른 통관에 대한 지원만 했을 뿐, 불량 자체를 만들라는 지시를 한 적은 없습니다. 즉, 불법행위가 피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청구한다면 대한민국 정부, 또는 국방부가 직접적으로 청구하는 것이 맞지, 피해자라 주장하는 원고들 개개인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법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변론의 순간까지 노형진은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했다.
급기야 노형진이 저쪽에 공격당하는, 입장이 뒤바뀐 듯한 상황까지 오자 송정한이 심각하게 불안해할 정도였다.
“노 변호사, 도대체 왜 그러나?”
“뭐가 말입니까?”
“이번 재판 말일세. 자네, 이번 재판 확실하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그렇게 대충 하는 건가?”
“그거야 당연하지요.”
“당연?”
“이 재판이 우리 목적은 아니잖습니까?”
“뭐?”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승률이 아닌 의뢰인의 승리입니다. 물론 여기서 이기면 제 승률은 올라가겠지요. 이름도 떨칠 테구요. 하지만 그래서 의뢰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뭐, 어차피 오늘 재판은 끝났고 이제 결심만 남은 상태니까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죠.”
“뭘 끝내자는 건가?”
“장난 말입니다.”
노형진은 끝까지 비밀을 말하지 않고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판결문은 노형진 측의 패소로 결정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손해배상에 대하여 청구 권한이 있는 것은 병사 개개인이 아닌 국방부이니, 국방부가 청구하지 않는 이상 그 배상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였다.
“아, 졌네.”
그런데 그걸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노형진의 행동에 다들 어이가 없어서 탄식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게 얼마나 큰 타격을 입은 건지 모르나?”
송정한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번 사건의 의뢰인은 대군회에서 가입한 사람들 전원을 포함해 무려 1만 명을 넘는다.
그런데 졌다.
누가 봐도 대충 하면서 말이다. 적은 금액도 아닌데.
“압니다. 그게 목적이었어요.”
“뭐라고?”
“어차피 이겨 봐야 개털이잖아요.”
“응?”
“이겨 봐야 개털이잖습니까? 그럼 손해만 볼 텐데 이겨서 뭐합니까?”
“그럼?”
“당연히 져야지요.”
“져도 손해 보는 건 마찬가지이지 않나?”
“원래 그럴 때 쓰라고 한국에서는 재판을 세 번 하는 겁니다.”
“뭐라고?”
“걱정 마세요. 지금쯤 아마 돈을 어떻게 확보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을 겁니다.”
* * *
같은 시각, 국방부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이런 씨팔 놈의 새끼!”
국정원에서 장교들과 장군들을 폭풍같이 쓸고 간 게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폭탄이 국방부에 떨어졌다.
“이 은지훈 개새끼.”
이를 빠득빠득 가는 3성 장군.
그의 앞에는 군 검찰에서 날아온 소환장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 사본이고 그 소환장만 해도 무려 이백 장이 넘었다.
“이게 다 검찰에서 나온 거라고?”
“네.”
죄목은 업무상 배임 그리고 뇌물 수수, 횡령.
그뿐만 아니라 이 자료가 그대로 국정원으로 가는 바람에 한창 국방부 길들이기에 여념이 없던 국정원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런 씨팔…….”
최악이었다.
은지훈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동료들을 팔아넘긴 것이다.
그 덕분에 엄청난 자료가 상대방에게 넘어갔고 상대방은 그걸 기반으로 이번 사건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람은 모조리 업무상 배임으로 고발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국방부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문제는 이번에는 대부분의 증거가 넘어가서 아무리 국방부가 노력한다고 해도 손해배상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조직적으로 군납 비리를 일으킨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배상금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예산처의 말로는…… 지금 늘어나는 속도를 생각하면 못해도 2조는 넘어갈 거라고…….”
“뭐? 2조! 장난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워낙 병사들이 많은 데다가 비리가 산적해 있어서…….”
한두 명도 아닌 수백 수천 명 단위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
국방부에서 사건을 덮으라고 압력을 넣어 봤지만 그걸 덮으려고 할 때마다 국정원에서 득달같이 달려와서 잡아갔다.
물론 전이라면 어찌어찌 좋게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사 결과, 군 내부에 퍼져 있는 간첩 집단이 실제로 드러나면서 국정원은 일단 국가에 해가 된다는 판단을 하고 무조건 털어 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국민들에게조차 ‘군납 비리=북한 간첩’이라는 이미지가 생겨 버렸다.
그 바람에 조금이라도 사건을 덮을라 치면 사방에서 업무상 배임과 간첩 혐의로 고발이 들어왔다.
이건 도무지 덮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마 예산처에서 피해를 조금이나마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뭔데?”
“구상권 청구입니다.”
“구상권 청구?”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3성 장군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상은?”
“소속되어 있던 장교들과 장성들 그리고 비리 군납 업체입니다.”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나?”
그렇게 된다면 국방부는 대대적인 개혁에 직면하게 된다.
당장 못해도 군납 비리 장교들 중 4분의 1을 쳐 내야 한다.
더군다나 군납 비리 업체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면 그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테니 자신들에게 뇌물을 주지는 못하게 된다.
“하지만 빼도 박도 못합니다. 당장 이 소송에서 지고 나면 장병들의 내년 월급은커녕 군사용품을 돌릴 기름값도 없어집니다.”
“으으윽…… 그건 좀…….”
지금까지 군납 비리와 관련하여 단 한 번도 구상권 청구가 된 적은 없다. 그렇기에 장교들과 장성들은 마음 놓고 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다.
물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 끼리끼리 뭉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률에 대해 무지한 덕분에 구상권 청구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구상권이란 누군가의 범죄로 인해 제3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당사자 중 한 명이 그 피해액을 보상해 주고 대신에 그 당사자가 범죄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에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국방부는 국민, 정확하게는 군 장병들에게 손해배상을 해 줘야 하며 그 피해는 국방부가 장성들과 비리에 연루된 장교들에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
“그거 청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않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게.”
“힘들 것 같습니다. 과거처럼 모르는 상황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군인회라는 곳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구상권 청구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윽.”
그렇게 된다면 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워낙 비리가 큰 데다가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과거처럼 군사기밀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문제다.
“더군다나 국회의원들이 난리입니다.”
“뭐라고? 이 씨팔 새끼들.”
자기 자식들을 군대에서 빼 달라고 할 때 별짓을 다 해서 빼 줬더니 이제는 자신들을 물어뜯으려고 덤비다니.
“이 새끼들, 다음번에 자식 새끼들을 군대에서 빼 주나 봐라.”
이를 바득바득 가는 그의 앞으로 새로운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건 또 누구 건데?”
“그게…… 장군님 앞으로 왔습니다. 구상권 청구 거부로 인한 업무상 배임 조사 관련 소환장이라고…….”
“뭐? 벌써?”
당황하는 장군.
그때 갑자기 소란이 벌어졌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잠시만요!”
“영장 방해하는 거요?”
문이 벌컥 열리면서 들어오는 사내들.
그들은 시커먼 복장을 하고 장군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이구, 장군님.”
“너 이 새끼들, 뭐야!”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랑 말씀 나누실 거 있죠?”
“이런 싯팔…….”
모든 일이 최악의 상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원래 목적은 잊으면 안 된다 (1)
“자네가 말한 큰 거 한 방이 이건가?”
“네.”
“이건…… 큰 거 정도가 아니잖나?”
유민택은 아주 발칵 뒤집힌 국방부를 보면서 기겁했다.
“그래서 져 준 겁니다. 이기면 곤란하거든요.”
“이기면 곤란하다?”
“너무 확실하게 몰아붙이면 저쪽에서 포기할 테니까요.”
노형진은 애초에 은지훈과의 재판에서 이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공격하면서도 고의로 여기저기에 허점을 만들어 냈다.
“어차피 장군이란 직책까지 올라서 국가의 군수품에 대해서 비리를 저지르는 놈입니다. 그런 놈에게 충성심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가뜩이나 엄청난 손해배상금 때문에 쫄아 있던 은지훈은 변호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자 자신의 책임을 벗어날 수 있는 자료들, 즉 비리와 관련된 자료들을 마구마구 가져다가 공개했다. 그 덕분에 노형진은 아주 자연스럽게 엄청난 양의 비리 관련 자료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네, 원래 쥐도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몰아야 하는 법입니다.”
만일 노형진이 평소처럼 철저하게 공격했다면 아마도 그 변호사는 그냥 포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련 증거들을 가지고 올 이유가 없어져 버린다.
‘이길 것 같다.’, ‘조금만 더 하면 이긴다.’라는 희망이 그들을 수렁으로 끌어당겨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노형진에게 군수 비리 관련 정보들을 넙죽넙죽 가져다주게 만든 것이다.
“끝내주는군.”
그 덕분에 수백 명이 고발당했다.
“그리고 말입니다, 어차피 이겨 봐야 그 장군이 줄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증거를 보셔서 알겠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인간이 너무 많아서 손해배상에 대한 배상금 분배 문제도 무척이나 복잡하죠. 솔직히 쉽게 이길 재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져 준 거다?”
“살을 주고 뼈를, 아니 이 경우는 모가지를 친 게 맞겠군요.”
“허허허…… 그래, 부정할 수 없겠군. 모가지를 쳤어. 그것도 제대로 쳤어.”
국방부의 비리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서로 붙어 있는 끈끈한 줄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국방부 비리는 해결하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구상권 문제가 터져 버리자 그 끈은 여지없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국방부에서 비리 관련자에게 구상권 청구를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비리의 행동 대원쯤 되는 하급 장교들이 난리가 난 것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건데 정작 자신은 비리 문제로 간첩 혐의로 조사받은 데다 업무상 배임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군 생활은 물 건너갔고, 재수 없으면 구상권 청구를 당해 온 가족이 길바닥으로 나앉아 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탓이다.
그 결과, 이렇게는 못 죽겠다고 생각한 하위 장교들이 령급이나 장성급 장교들의 비리들을 들고 자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상참작이라도 된다면 처벌은 받을지언정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위에서 시켰다는 것 하나만으로 구상권 청구를 피할 수 있다.
“벌써 장교들의 10분의 1이 잡혀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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