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63)
“으음…….”
장만허의 사건을 담당하는 우서만은 모니터를 보다가 눈을 문질렀다.
“변호사님, 그러면 소송으로 가는 건가요?”
“후우……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법이 바뀌었습니다. 아니, 바뀔 겁니다. 그 변호사, 똑똑하군요. 외통수예요.”
“외통수요?”
“네.”
그는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가 한 말을 확인해 보니 진짜더군요.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법은 확실하게 바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강간죄로 처벌받는 걸 피하실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는…… 아무래도 실형은 못 피할 겁니다. 그것도 상당히 길게요.”
장만허는 공포로 다리가 풀렸다.
강간죄로 처벌을 받는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자신은…….
“저기…… 저는…… 여자는…… 손을 댄 적이 없습니다.”
장만허는 떠듬떠듬 변명했다.
하지만 우서만은 그런 그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그가 경고한 겁니다.”
“경고요?”
“네. 말씀드렸다시피, 법이 바뀝니다. 그러면 그때는 법적으로 인정되는 ‘강간’의 피해자가 부녀자가 아닌 ‘사람’이 됩니다. 남자를 강간해도 처벌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네? 방법이 있어요?”
“네. 사실 법적으로 본다면 법이 바뀌기 전에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법이 바뀌어도 적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거든요.”
얼굴이 환해지는 장만허.
실제로 법이 바뀌거나 생기기 전에 벌어진 일은 이후에 처벌하지 못한다.
지금은 올바르거나 평범한 일이, 갑자기 법이 바뀌어 소급 적용되어 모조리 범법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원칙이다.
그러나 장만허의 밝은 얼굴은 채 10초도 가지 못했다.
“대신에 사회적으로 매장될 겁니다.”
“매장요?”
“네. 그래서 저들이 우리를 압박하는 겁니다. 아마도 저들이 가진 증거는 다른 피해자들의 강간 사실에 대한 증언뿐일 겁니다.”
“대상이 안 된다면서요? 그런데 왜요?”
“대상은 안 되겠지만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겁니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동성에 대한 강간, 이게 법이 바뀌고 나서 뉴스에 나가지 않을 리 없지요.”
“매장…….”
“네.”
만일 저들에게 증거가 있다면 한두 건에 국한되는 사건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동성 강간 사건의 첫 번째 사례로 신고될 것이다.
“당했네요.”
이런 상황이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자신들이 불리하다.
버티면 자신들에 대한 응징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노형진이 기회를 줬다는 것 자체가 확실한 증거니까.
변호사는 법이 바뀌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노형진은 굳이 그걸 알려 줬다. 자신이 유리하게 쓸 수 있는데 말이다.
즉, 경고한 것이다.
원하면 이제 인생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이건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처벌이야 피하겠지만 형사소송을 하게 되면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와 증언 수집이 이루어질 테니, 장만허는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밖에 없다.
‘나 같아도 그러겠지.’
당장 부모만 불러도, 부모는 그와 연을 끊어 버릴 것이다.
“저쪽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매장되기 전에 돈 내놔라.”
“네?”
“확실한 증거를 쥐고 있으니까요.”
처벌이 끝이 아니다.
노형진이 형사를 밀어 넣고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시작하면, 장만허는 재기가 불가능해진다.
“미안합니다. 이번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서만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실로 절망적인 상황에, 장만허는 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 * *
“뭐어? 증거가 없어?”
“어. 없는데?”
노형진의 말에 손채림은 입을 쩍 벌렸다.
“그게 말이나 돼? 증거 있다며?”
“증언이야 넘치지. 하지만 증거는 없어.”
“그런데 왜 있다고 한 거야?”
“합의하려고?”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방금 전 우서만에게서 전화가 왔다, 합의하겠노라고.
그런데 증거가 없다니.
“엄밀하게 말하면 형사에 대한 사건이 같이 있으면 그 배상액은 올라가야 해. 하지만 현재는 형사사건이 없지. 사건도 불가능하고.”
“그건…… 아!”
노형진은 절묘하게 협박한 것이다.
노형진이 과거의 사건은 법이 바뀐 후에도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일단 고소가 들어가면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은 피할 수 없어. 꽃뱀들이 노리는 거지.”
그래서 대부분은 사건을 무마하고 만다.
사회적으로 강간범이라고 확정되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고로 고소한다? 어쨌든 사건 자체는 존재하니 그것도 불가능해.”
“헐.”
결과적으로 그들은 외통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보다 몇 배나 많은 배상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물론 민사로 가면 좀 더 깎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형사소송으로 인한 피해도 감당해야 해.”
깎을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1천만 원 정도.
그 정도 때문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뭐,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비로는 충분할 것이다.
“사실 외부로 나온 사람들은 고민할 게 없는데…….”
노형진은 서류를 덮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이미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내부다.
제대하고 나온 사람이야 더러운 추억이라고 덮어도 그만이고 지금처럼 고소 고발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직 폭력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면 그 건으로 고발을 해도 된다.
문제는 지금 군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위로부터 억압당하고 있어. 그래서 소송도 불가능하지.”
“하긴, 소송한다고 하면 위에서 엄청나게 찍어 대겠네.”
“그래.”
당장 소송 당사자를 폭행하거나 강간한 범죄자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승진이 막히게 될 게 뻔한 장교들 역시 게거품을 물면서 찍어 누르고 괴롭힐 게 뻔했다.
“그러면 어쩌지?”
“어쩌긴. 그런다고 소송 안 해?”
“하지만 자기가 당할 걸 알면서도 하려고 할까?”
대한민국의 수백만 군인들, 그들 중에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
그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소송을 해야지.”
“응?”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법이야.”
“그거야 아는데, 지금 상황에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노형진은 손가락을 흔들면서 두툼한 서류를 꺼내서 손채림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 든 손채림은 읽어 보다가 눈을 꿈틀했다.
“이게 소장이라고?”
“그래.”
“이렇게 소장을 작성하려고?”
“맞아.”
“그리고 소송을 한다고?”
“정답.”
“미친 거야, 아니면 똑똑한 거야?”
노형진이 내놓은 소장. 그건 손채림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사실 손채림은 노형진이 그 범죄자를 대상으로 소송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노형진은 그런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았다.
“아까 스스로 말했잖아, 범죄자를 대상으로 소송해 봐야 어차피 장교가 사건을 은폐할 거라고.”
“그렇지. 그건 당연한 거긴 한데…….”
“그러니까 장교를 대상으로 소송을 하는 거야. 정확하게는, 같이 하는 거지.”
“같이? 가해자랑?”
“그래.”
“그런다고 안 괴롭힐까?”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안 괴롭히지는 않겠지. 하지만 못 괴롭히기는 할걸.”
“응?”
“누구나 너랑 같은 생각을 할 테니까.”
부하가 장교를 고소한다면 그 장교가 그 부하를 가만둘 리 없다.
그건 손채림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거지.”
소송 당사자가 상급자로 있는다는 것은 군 조직의 붕괴를 의미한다. 당연히 노형진은 법원을 통해 그에 대한 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
“법원을 통해 부대 이동을 요구할 거야.”
“아!”
아무리 군대라고 해도 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물론 정보나 군 내부의 문제는 군사기밀과 같은 것을 이유로 감추면서 철저하게 은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내부의 정보를 캐 오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와 소송 당사자인 장교가 같은 부대에 있다는 사실뿐이다.
“이런 소송은 내부의 정보가 중요한 게 아니지.”
“그렇구나.”
국방부 입장에서는 이걸 가만둘 수도, 취하시킬 수도 없다.
군 법원의 소송도 아니거니와, 이걸 강제로 취하시킨다는 것 자체가 국방부가 가해자를 보호한다는 뜻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징병제야. 대부분의 군인들이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끌려가지.”
노형진은 서류를 다시 정리하면서 말을 이어 갔다.
“반대로 말하면,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교고 뭐고 다시 볼 일이 없다는 거야.”
“그러네, 후후후.”
손채림은 노형진이 뭘 노리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과연 국방부에서 뭐라고 할지 두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