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75)
“으음…….”
안필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종이를 보고 신음을 흘렸다.
거기에는 김규호의 범죄 사실을 적으라는 문제가 적혀 있었다.
“이건…….”
답을 쓰면 확실한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다른 ‘확실한’ 보답.
“하지만…….”
김규호의 범죄 사실을 적어 내면 그건 자신의 죄도 인정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물론 그걸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옆에 놓인 새로운 숙소의 사진을 보면서, 안필영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밀폐된 공간이기는 하지만 창문도 있고, 샤워도 할 수 있는 샤워실 겸 화장실도 딸려 있었다. 심지어는 텔레비전까지 있다.
그야말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시설.
“후우…….”
안필영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짧았다.
“어차피 바뀌는 건 없으니까.”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처음의 그 순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거기에다 이제는 주인으로 보이지 않는 안필영.
그에 반해 자신에게 확실한 보상을 지급하는 새로운 주인.
“어차피 뭘 선택해도 마찬가지라면…….”
그는 볼펜을 들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 *
“상상 이상이군요.”
김소라는 그들이 적은 종이를 보면서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서른다섯 명이나 자살시켰을 줄이야.”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서른다섯 명이나 자살시켰다.
그들을 감시하고 협박하는 일을 한 세 사람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이름은 확인해 봤습니까?”
“네, 확인해 봤어요. 교회에서 자살한 사람들이 맞아요.”
손채림이 확언하자 김소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섭군요.”
“한국에는 이런 수사 체계가 없으니까요.”
노형진 역시 생각보다 많은 사망자의 숫자에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런 계획은 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건 불법이니까요. 하지만…….”
김소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계획이 아니었다면 이런 범죄는 절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시간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의 숨이 다할 때까지 앞으로 백 단위, 아니 이백 단위가 넘는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정보를 얻은 건 좋지만 이걸 증거로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아시죠?”
“압니다.”
이걸 얻은 건 그들을 가둬 둔 상황에서다.
증거로 내놓으면 자신들이 처벌받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증거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들의 심리 상태와는 별개로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불법적인 감금으로 얻은 증거라 효력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로 증거로 내놓으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정보 수집도 목적이지만, 배신을 준비하는 거죠.”
“역시나.”
김소라도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리를 두는 것과 심적으로 배신하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요.”
아무리 그들이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 사람을 배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 지금 가서 증언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극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배신은 했지요.”
“배신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 않아?”
손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고작 효과도 없는 종이에 죄목을 쓴 것뿐이니 확실히 배신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그의 죄를 누군가에게 알려 줬지. 즉, 지금까지는 신체적으로 김규호와 단절되어 있다면 이번에는 심적으로 단절된 거지. 이런 말이 있잖아, 원래 처음은 어렵다.”
“아! 하긴, 부자들이 공무원들을 길들일 때 많이 쓰는 방법이네.”
“그렇지.”
부자들이 처음부터 수억씩 뇌물을 준다면, 과연 공무원들이 그걸 넙죽 받을까?
의외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뇌물의 액수가 크다는 것은 그 이후의 반동도 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뇌물을 주려고 하면 안 받거나, 심한 경우 고발해 버린다.
“하지만 아주 작은 금액에서부터 시작하면 잘 모르지.”
처음에는 사과 한 박스 정도, 또는 건강식품 하나 정도에서 시작되면서 금액을 늘려 나가면 상대방은 그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간이 커진다.
“원래 개구리는 찬물에서 천천히 물을 끓여서 가면 거기서 죽는 줄도 모르고 가만있는다고 하죠.”
김소라는 씁쓸하게 말했다.
“종이에 쓴 건 아무런 효과도 없지만 확실히 심리적으로는 배신한 상황이에요. 그러면 이제는 그걸 가속시키는 것만 남았네요.”
그리고 그때가 김규호가 파멸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슬슬 김규호가 실수할 때이기도 하지요, 후후후.”
노형진은 핸드폰으로 날짜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 * *
“젠장!”
김규호는 요즘 들어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애써 키운 세 놈이 사라졌다. 한순간 사라져서 어디로 갔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의 구해 준 숙소도, 주변도 아무리 찾아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염병할! 배신한 건가?”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한꺼번에 세 놈이 다 사라졌다? 그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사장님.”
“뭐야!”
문을 열고 들어오던 비서는 그의 말에 움찔했다.
그리고 김규호는 순간 아차 싶었다.
방금 그가 보여 준 모습은 무골호인 김규호가 아닌 살인마 김규호의 모습이었다.
살기가 넘치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서는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미안해, 김 비서. 내가 세 사람 걱정 때문에 좀……. 알지?”
“아, 네…….”
갑자기 사라진 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던 비서는 애써 납득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자신을 노려보던 사장의 살기 어린 눈빛은 왠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기, 우편물이 왔는데요.”
“우편물?”
“네. 그런데 사장님 개인 우편물이라서요.”
“개인 우편물?”
봉투를 받아 든 김규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주소다.
“뭐지? 이름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정확하게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있을 수 없는 이름이다.
홍길동이라니.
“알았어. 나가 봐.”
비서를 내보낸 김규호는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자신이 죽인 사람들, 자신과 실종된 세 녀석이 저질렀던 범죄가 낱낱이 나열된 종이.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인쇄된 종이 한 장.
네가 저지른 모든 죄를 알고 있다. 현금으로 30억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
‘이런 개…….’
김규호는 그걸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세 놈과 손잡고 자신을 협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해 놨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배신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조작?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일단 이 모든 일을 아는 사람은 그들뿐이다.
거기에다 누가 봐도 이 글씨체는 그들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배신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30억.’
터무니없는 말이다.
30억이면 자신의 전 재산이다.
공장과 공장 부지까지 모조리 팔아야 구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그 돈을 요구한다?
물론 살인이 드러나면 다 잃을 돈이기는 하지만…….
‘웃기지 말라고 해.’
김규호는 입술을 깨물면서 편지를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