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76)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버스에서 내리는 김규호를 보면서 손채림은 혀를 내둘렀다.
노형진이 김규호가 올 거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찾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편지 때문이지요.”
“하지만 거기에 적혀 있는 주소는 가짜였잖아요?”
완전히 엉뚱한 주소를 찍어서 보냈는데 찾아오다니.
김소라는 씩 웃었다.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요즘은 우편을 전자로 보내잖아요.”
“전자?”
“네. 그래서 주소가 거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걸 추적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우표를 붙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우체국에 가서 직접 보내면 우표 대신에 전자로 출력된 증지를 붙인다.
그러니 그걸 추적하면 어디서 보냈는지 알아내는 것은 아주 쉽다.
“헐.”
“요즘은 우편을 잘 안 쓰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요. 우표를 쓰던 시절하고는 많이 바뀌었지요.”
“그래서…….”
노형진이 굳이 우편으로 보내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손채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네요. 저런 지능형 범죄자가 그걸 추적하지 못할 리 없으니까.”
“그러니까요.”
더군다나 이런 타입의 범죄자는 종범, 그러니까 종속형 범죄자를 상당히 깔보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런 게 함정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람들이 세 사람이 있는 걸 알아볼 수는 없잖아요?”
한국이 좁은 땅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구가 많다.
아니, 그래서 더 사람을 찾는 게 힘들다.
우체국이 있을 정도라면 최소한 읍내라고 불리는 수준인데, 그런 곳에서 세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진짜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협박장이 필요한 거예요.”
“협박장요?”
“범죄자의 성향은 범죄자가 아는 법이니까요.”
실제로 김규호가 물어보고 다니는 건 세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이 있을 만한 곳, 그러니까 시내에서 좀 떨어진 별장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그런 곳을 알기 마련이지요.”
김소라는 씩 웃으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미끼를 물었어요. 곧 그곳으로 갈 것 같네요, 후후후.”
* * *
“나가도 된다고?”
활짝 열린 문을 보면서 안필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나갔다.
주인이 되는 사람은, 이제 서로가 믿을 수 있다면서 바깥으로 나가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신나게 놀라면서 무려 1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줬다.
무려 ‘용돈’이라면서 말이다.
즉, 월급에서 까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거저 주는 돈.
‘전에 놈이랑 엄청 비교되잖아.’
딱 입에 풀칠할 만큼만 주던 김규호와 다르게 이번 주인은 엄청나게 잘해 줬다.
초반의 만남이 약간 안 좋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행복했다.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빌라가 아니라 개개인에게 주어진 원룸은 그의 삶을 보장했고, 넉넉한 삶은 그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어.”
밖으로 나온 안필영이 만난 것은 다름 아닌 같이 끌려왔던 두 사람이었다.
“너희들은…….”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누구도 돌아가자고 하거나 김규호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너희도 돈 받았냐?”
“그래.”
“그러면…….”
잠깐 고민하던 그들의 눈에 바닥을 나뒹구는 종이가 보였다.
‘러시아 아가씨들의 화끈한 쇼’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사방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걸 본 세 사람의 눈에 불이 켜졌다.
“갈래?”
서로 간의 눈빛의 교차는 짧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그동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쌓일 대로 쌓인 성욕.
그 감금된 방에는 심지어 야동 하나 없었다. 받고 싶었어도 인터넷이 안 되니 그럴 수도 없었다.
“가 보자.”
“그래.”
서로 마음을 나눈 그들은 미소를 지으면서 전단지에 적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이런 시골에 왜 이런 전단지가 뿌려져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당장 여자를 품에 안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주소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사람을 만났다.
“사……장님…….”
김규호는 무서운 눈빛으로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이쪽에 뜨내기들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다.
사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 특히나 단기간 머무르는 사람들은 이곳 말고는 있을 곳이 없다고 했다.
‘사실 함정이지만.’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망원경으로 그들의 만남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숙소는 여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기를 이야기해 준 이유는, 여기가 모텔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모텔촌에는 뜨내기들을 위한 유흥 주점이 많다. 노형진은 그 유흥 주점 중 한 곳의 전단지를 가져다가 뿌려 둔 것이고 말이다.
당연히 그들이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 개새끼들.”
김규호는 무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으으으…….’
안필영은 공포에 떨었다.
사람을 협박하면서 즐거운 미소를 흘리던 주인의 모습이 기억났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하면 죽여 버린다고 하던 그의 말도.
“사, 사장님…… 이게…… 그러니까, 저희는 배신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이대로는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입 닥쳐!”
하지만 김규호는 그들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너무 많이 알아.’
그도 안다. 그 종이는 신고해 봐야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아니다.
더군다나 죄는 이미 새어 나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따라와.”
“…….”
그들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하지만 몸은 마치 마법처럼 김규호를 따라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역시나 그 짧은 시간 내에 김규호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 낼 수는 없었나 보네.”
다른 망원경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손채림이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겠지. 그런 게 그렇게 쉬웠으면 벌써 도망갔게?”
“우리 쪽도 상당히 포섭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없잖아.”
“없다고?”
“저들도 인간이야. 자리에 없으면 나라님도 욕한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고.”
“아…….”
당장 김규호를 만났으니 지금은 그의 통제력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주인은 이 자리에 없으니까.
“결국 그들은 김규호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지. 뭐, 거부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지만.”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제 피날레를 장식해 보자고. 과연 누가 이기는지 말이야.”
* * *
“이 개새끼들.”
“사장님…… 이건 그러니까…….”
“저희도 그동안 납치되어서 감금되어 있었어요!”
“진짜예요!”
그들은 애써 변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규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못 본 사이에 신수가 훤해졌기 때문이다.
살이 찌고, 피로해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옷도 좋은 것을 입고 있다.
누가 감금해서 정보를 캐냈다고 믿어 주기에는, 이놈들의 꼴이 너무 멀쩡하다.
그리고 어떤 멍청한 놈이 감금한 놈을 풀어 주고 여자가 있는 술집에 자기들끼리 가게 하겠는가?
“이 개자식들, 인생을 구해 줬더니 뒤통수를 쳐?”
“그게 아니라…….”
일전에 김규호에 대해 적어 낸 종이가 그에게 갔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하는 세 사람은, 지금 김규호가 단순히 도망간 것 때문에 화가 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정을 잘 이야기하면 분명히 용서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은 그런 생각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 사장님.”
김규호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커다란 회칼.
그걸 본 세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직접 손을 더럽히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김규호는 바짝 얼어붙은 세 사람을 바라보며 천천히 칼을 치켜들었다.
“네놈들이 먼저 날 배신했으니 각오는 했겠지?”
“사, 사장님…….”
세 사람은 잔뜩 얼어붙은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손채림은 실로 어이가 없었다.
“바보 아냐? 자기들은 세 명이고 저쪽은 한 명이잖아? 같이 덤벼들어도 이기겠다.”
“하지만 이미 심리적으로 종속된 대상이야 노예들이 왜 몇 안 되는 관리자들에게 대항하지 못하겠어? 심리적으로 종속되면 저항이라는 게 쉽지 않아서야.”
“그거야 이해는 하는데, 저건 너무 위험한 거 아냐?”
회칼을 들고 노려보는 김규호의 눈빛은 보통이 아니었다.
직접 손을 쓰지 않았다 뿐이지, 그는 명백하게 연쇄살인범.
그러니 세 사람을 죽이는 데 아무런 주저함도 없을 게 뻔했다.
“알아. 그리고 그걸 위해 내가 지금까지 시간을 끈 거야.”
“시간을 끌었다고?”
“그래. 김규호에 대해 진술한다는 것, 그건 단순히 배신을 넘어서 그에게 저항한다는 거야. 하지만 글을 적는 수준의 배신도 그렇게 힘들어하던 저들이 저항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래서 목숨을 위험하게 해서 저항하게 하겠다는 거야?”
“일부는.”
“일부?”
“그래. 그것만 가지고는 저런 타입은 저항하지 못해. 아, 저기 올라가네.”
그 순간 저 아래에서 한 사람이 김규호 일행을 향해 달려가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뭐 해, 이 새끼들아! 그 새끼 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아니, 피하고 있어, 이 새끼들아!”
“네?”
“뭐?”
김규호는 산 아래에서 달려오는 남자를 보고 움찔했다.
‘저 새끼가 그놈인가?’
하지만 그가 자신을 협박한 녀석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웃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너까지 모조리 처리해 주마.’
그리고 모든 것은 어둠 속으로 묻어 둘 생각이었다.
“너희부터 처리하고…… 어?”
산 아래 저 멀리 있는 놈은 나중에 처리해도 된다고 생각한 그는 세 사람부터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김규호를 포위하는 세 사람.
“이 새끼들이!”
“누가 호락호락하게 죽어 줄 줄 알아!”
“죽는 건 너야!”
“내년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다!”
갑자기 돌변한 세 사람을 보고 당황하는 김규호.
전에는 자신이 두들겨 패든 발길질을 하든 꼼짝도 못 하고 무릎 꿇고 앉아 있던 놈들이 명백하게 반기를 든 것이다.
“이 미친 새끼들이!”
김규호는 다급하게 마구 회칼을 휘두르면서 한 명이라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대상이 된 안필영은 주변에 잔뜩 쌓여 있는 낙엽을 뿌리면서 옆으로 피해 버렸다.
“이런 개자식! 죽어!”
그리고 그제야 김규호는 상황이 이해가 갔다.
지금 저들은 새로운 주인의 말에 따라 자신을 포위하고 도망치지 못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남자가 가까워질수록 알 수 있었다, 놈의 손에는 기다란 쇠사슬이 들려 있다는 것을.
그 정도 길이라면 회칼을 든 자신이 아무리 저항해도 무의미하다는 것도.
“으아아! 비켜, 이 새끼들아!”
김규호는 어떻게 해서든 도망가기 위해 발악했지만 세 사람은 그를 철저하게 포위하고만 있었고, 그사이에 도착한 남자는 옴짝달싹 못 하는 그에게 쇠사슬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손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아까 전만 해도 조용히 죽을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세 사람이 저항하다니.
“새 주인이 나타났으니까. 저들은 살기 위해 저항한 게 아니야. 새 주인이 나타나서 저항하라고 명령하니까 한 거지.”
“뭐 그런 개떡 같은……. 자기가 죽을 게 뻔한데도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애석하게도 그런 셈이지.”
“그러면 전 주인보다 새로운 사람이 통제력이 더 강하다는 뜻이야?”
“그건 아닐걸. 사실 시간을 봐서는 강할 수가 없지.”
하지만 김규호는 세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그들이 심리적인 억압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게 아니었다.
다만 맹수 앞에 선 사람처럼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을 뿐.
“하지만 새로운 주인의 등장은 그런 심리적인 위축을 끝낼 수 있지.”
“그건 이해하겠는데, 실패하면 어쩌려고?”
“우리가 손해 볼 거 있나?”
노형진은 피식하며 옆에 있는 카메라를 툭툭 두들겼다.
망원렌즈까지 붙어 있는 카메라는 김규호의 행동을 모조리 찍고 있었다.
“어차피 세 사람도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데 협조한 공범이야. 그들이 칼에 찔린다고 해도 우리가 손해 보는 건 없지. 도리어 우리는 이걸 증거로 삼아서 김규호를 신고할 수 있어.”
그리고 김규호는 살인미수로 처벌받을 것이다.
그 와중에 한 명이라도 살아남는다면 그는 김규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입을 열었을 테고 말이다.
“사실 김규호가 세 명 다 한꺼번에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야.”
김규호는 지능형 범죄자일 뿐, 직접 사람을 죽이는 타입이 아니다. 당연히 세 사람을 한꺼번에 죽일 수는 없다.
설사 한 명을 찌른다고 해도 눈앞에서 실제로 그 장면을 보게 되면 본능이 감정을 이겨서 도망갈 수 있을 테니까.
“결국은 어떤 답이 나오든 김규호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
쇠사슬에 묶여서 끌려 나오는 김규호를 보면서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