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77)
-얼마 전 협박 자살 사건에 대해 경찰은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피해자를 더 밝혀내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지금, 그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협박으로 인해 인생을 마감했는지…….
노형진은 뉴스를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김규호가 잡히고 난 후에 나머지 사람들에게 자수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자수하지 않으려고 발악할 텐데.”
“저들은 그런 게 없어. 심리적으로 기대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어 있거든. 물론 이쪽에서 제시한 당근도 유효했지만.”
일단 살인의 종범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적으로 살인에 가담하거나 폭행을 한 적은 없다.
그들이 한 최고의 위협은, 피해자나 협박 대상의 주변을 알짱거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뿐이다.
“그 정도면 길어 봐야 10년이겠지.”
거기에다 새론에서 변론해 준다면 그 기간은 더 짧아질 것이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불쌍한 건 경찰이지.”
“그렇지. 뭐, 그것도 자업자득인가?”
“글쎄……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경찰에는 수많은 자살 사건에 대한 전수조사 명령이 떨어졌다.
정확하게는 유가족들이 이상하다고 주장하는 자살 사건에 대한 조사이지만.
“가족이 자살했다는 말보다는 자살당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유가족들의 심리거든.”
결국 상당수의 사건들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되어, 대충 자살로 밀어붙이고 수사를 덮었던 경찰로서는 코피 터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진짜로 사건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잖아.”
“그러니까.”
재수사를 시작하면서도 경찰들은 뭐 얼마나 나오겠느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협박에 의한 자살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사건들까지 후두둑 튀어나왔다.
물론 협박에 의한 자살은 대부분 이득을 노린 경우가 많았고, 김규호 같은 연쇄살인범이 추가로 나온 건 아니었다.
“이번 사건으로 제대로 일하는 분위기가 정착될까?”
“그럴 리가 있나.”
노형진은 한숨만 푹 나왔다.
거대한 악순환. 그 안에 갇혀 버린 느낌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학교 폭력을 박멸하려고 해도 그게 박멸이 되니?”
“아…….”
새론 초기부터 학폭을 박멸하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여전히 학폭 사건은 수시로 터지고 여전히 경찰과 학교는 사건을 덮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결국 돌고 도는구나.”
“법은 발전하지만 범죄도 발전하지. 불법은 부지런하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야.”
노형진은 씁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대로 일을 해야지.”
“하지만 우리는 변호사지 탐정이 아니잖아.”
노형진은 벽에 걸려 있는 자신의 변호사 자격증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살당하다
변호사들끼리는 라이벌이며 또한 사업적 경쟁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로 돕는 동업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의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도 한다.
아주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안 되는 사건을 쥐고 있어 봐야 해결되지 않으니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곤 하는 것이다.
“형사사건요?”
노형진은 질문하면서도 의뢰인보다는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손민후. 사건을 가지고 온 여자의 변호사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의뢰인을 바라보았고, 의뢰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네. 아들이 죽었는데 자기는 억울해서 못 살겠답니다.”
“흠…….”
의뢰인은 장애인이었다. 그래서 말이 아니라 수화로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는데, 다행히 수화를 할 줄 아는 변호사가 그녀의 의뢰를 받았다.
정확히는, 부탁을 받았다가 자신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새론으로 가지고 왔다.
“그런데 그걸 왜 저희에게 가지고 오신 겁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노형진을 콕 집어서 부탁했기 때문에, 접수처를 통하지 않고 동종 업계 사람으로서 그를 만나고 있는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의뢰인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손민후는 그의 손을 잡고 진정시켰다.
어차피 모든 사건은 이미 다 들었다. 힘들게 그녀가 수화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분은 아드님이 죽은 게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살이 아니라고…….”
노형진도 알고 있는 사건이다.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던 사건이니까.
한 아파트에서 열다섯 살 먹은 중학생이 자살했다.
이유는 학교 폭력.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고, 새론과 노형진이 박멸하려고 그렇게 노력하지만 쉽게 박멸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 누가 죽였다는 건가요? 하지만 CCTV에 혼자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도 찍혔고, 누가 밀었다는 증거도 없는데…….”
누가 봐도 자살이다.
경찰에서 조사한다고 하지만, 어차피 자살로 결론이 날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얼마 전에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
“네. 자살로 위장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셨다고.”
“아, 네. 그건 그런데…….”
경찰이 은근슬쩍 자신들의 공적으로 포장하면서 새론과 노형진의 이름을 빼 버리기는 했지만, 법조인들 사이에서 나는 소문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몇몇 사람들은 그 소문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걸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살인이 아닐까?”
“네?”
“사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대부분은 학교 폭력으로 처벌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이런 사건은 매년 발생한다. 그것도 한두 번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이라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협박을 통해 자살을 유도한다면, 엄밀하게 말하면 살인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래서 문득 생각이 든 겁니다. 이건 학교 폭력 같은 게 아니라 살인이 아닐까 하고요.”
“흠…….”
노형진은 침묵을 지켰다.
손민후 변호사가 하는 말이 뭔지 알아차린 것이다.
‘살인이라…… 확실히…….’
얼마 전에 있었던 협박 살인 사건. 그건 노형진이 해결한 게 맞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즘 학교 폭력은 상상을 뛰어넘죠. 아실 겁니다. 사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인데요.”
“하긴.”
요즘 학교 폭력은 성인 범죄와 같다. 아니, 더 악독하다.
학교 폭력이라고 하면, 어른들은 그저 욕하고 때리는 정도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교 폭력은 폭행, 갈취는 기본에 협박과 납치, 감금, 강간뿐만 아니라 여자아이의 경우 성매매까지 시키는 악독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어떤 면에서는 어른들이 만든 폭력 조직보다 더 악질적인 범죄자들이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으니 마음 놓고 행동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이 발전을 못 따라가는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들은 갈수록 악독해지는데 어른들은 여전히 학교 폭력이라고 하면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제가 본 톡 내용에 의하면 자살을 하도록 유도한 게 맞아요.”
“그런데 경찰은 뭐라고 하던가요?”
“단순 학교 폭력으로 처벌하려고 하더군요.”
“단순 학교 폭력이라…….”
그러면 잘해 봐야 근신 정도에서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도 마찬가지겠군요.”
“네.”
퇴학도 아니고 기껏해야 정학 정도일 것이다.
만일 가해자들의 부모가 항의하면 근신 정도일 테고.
‘피해자는 이미 죽었고.’
노형진은 피해자의 어머니를 슬쩍 바라보았다.
허름한 복장에 얼굴에 가득한 주름.
누가 봐도 힘없는 우리네 서민의 모습.
그녀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 봐야 그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다 그녀는 장애인이다.
한국 사회는 절대 장애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장애인이라는 존재는 약자들 사이에서도 최약자니까.
‘경찰은 이걸 단순히 폭행으로 넘길 테고. 그러면 잘해 봐야 5호 처분 정도 나오겠지.’
손해배상을 한다고 해도 살인이 아니라 단순 폭행 정도일 테니 갈취된 금액과 폭행에 대해서만 인정될 것이다.
거기에다 가해자가 한 명이 아닐 테니 그걸 나눠 낸다고 하면…….
‘기존의 판례를 따지면 잘해 봐야 한 2천만 원 정도 나올 테고.’
가해자가 몇 명인지 모르지만 나눠 내면 그다지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닐 것이다.
“경찰에서는 조사 중이라고 하던가요?”
“네. 하지만 그게 끝이겠지요.”
“그럴 겁니다.”
일단은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와중이니 잠깐은 수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 이상 가지 않는다.
그다음은 뻔하다.
대충 설렁설렁 조사해서 넘기고, 변호사는 앞날이 창창한 청소년들 어쩌고 하면서 변론할 테고, 판사는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터무니없이 약한 처벌을 내릴 것이며, 가해자들은 법정에서 나온 후 사람 한번 죽여 볼 만하다며 낄낄거릴 것이다.
‘이건 뭐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니고.’
매년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도 열 번 이상씩은 벌어지는 일이지만 수십 년째 바뀌지 않는 일이다.
가해자가 힘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청소년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이름하에 말이다.
“가해자들이 뭐 힘 있는 애들인가요?”
“그냥 옆 동네에 사는 평범한 애들입니다. 아, 평범하지는 않네요. 그게 문제죠.”
“네?”
“사실은 피해자분이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시거든요. 그런데 가해자들은 일반 아파트에 살고 있지요.”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피해자 어머니 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군요.”
“역시 한 번에 알아들으시네요.”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그 옆에 일반 아파트가 있는 경우.
‘뻔하지.’
같은 아파트에 사는데 한쪽은 영구 임대 아파트, 한쪽은 일반 아파트.
그러면 일반 아파트에 사는 상당수 사람들은 되도 않는 우월함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도 저쪽은 훨씬 좋은 조건으로 들어왔다는 불만 때문에 그곳 거주자들을 대놓고 무시한다.
결정적으로 그 두 아파트는 학군이 겹친다.
어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대놓고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무시하라면서, 자기 자녀의 인성을 망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아무래도 편들어 줄 사람이 없지요.”
영구 임대 주택은 상대적으로 숫자도, 아이들도 적다.
거기에다 주변이 모조리 아파트라면 대놓고 무시당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주변에서 힘을 줘야 하는데.”
“툭 까고 말해서, 일반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비렁뱅이가 자살해서 아파트값을 떨어트렸다고 항의까지 했답니다.”
“미친놈들.”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협박과 가혹 행위를 통해 자살하게 만들었다. 현행법상으로 보면 명백하게 살인인데요.”
사건만 보면 자살당한 셈이다.
“그래서 온 겁니다. 이대로 두면 제 의뢰인의 아이의 죽음은 개죽음이 될 겁니다. 끊임없이 죽고 죽고 또 죽겠지요.”
“거절할 수가 없게 만드시네요.”
실제로 한 학교에서 1년 동안 다섯 명이나 자살자가 나왔다.
이유는 학교 폭력이었지만, 정작 그 폭력을 가한 사람은 전학을 가고 이름을 바꾸고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저로서는 방법이 없더군요.”
“이해합니다.”
형사는 철저하게 검사와 경찰의 문제다.
변호사들이 아무리 살인죄로 해 달라고 주장해 봐야 그들이 살인죄로 취급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다른 유가족들이라고 그런 항의를 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걸 살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흠…….”
법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항이라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살인으로 가기는 해야 하는데…….”
“네. 그런데 저는 그냥 개인 변호사라서요.”
살인으로 의견서를 내기는 했지만 그게 통과될 가능성은 10% 미만.
“제가 받아들이기로 하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학교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학교 폭력은 단순히 애들 싸움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폭력으로 이득을 본 자들은 나와서도 똑같은 짓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폭력과 협박으로 이득을 보려고 한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네요.”
“네? 지금 해 주신다고…….”
“해 드린다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요.”
“언론을 통하면 안 될까요?”
“언론요?”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도 손민후 변호사는 노형진이 언론을 통해 어떻게 힘써 주기를 바라고 온 모양이었다.
자신보다는 노형진이 하는 말이 언론에 더 강하게 먹힐 테니까.
“이미 언론에는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게 몇 달씩 갈 사건인가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한계가 있지요.”
“으음…….”
“지금까지처럼 처리될 겁니다. 물론 제가 나서면 1주나 2주 정도는 더 연장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경찰이나 검찰은 절대로 이걸 살인으로 처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요.”
노형진은 눈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