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9)
“그럴 리가.”
분명 아버지의 카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돈이 한두 푼도 아닌데 정지라니?
“다시 한 번 해 봐.”
“네.”
직원은 다시 긁었지만 여전히 거래 불가라고 뜰 뿐이었다.
“그럼 이건?”
다른 카드를 내미는 신성현. 그러나 이것저것 긁어도 되는 것이 없었다.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체크카드까지 말이다.
“어떻게 된 거야?”
그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갑자기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
“응? 왜?”
“나 백화점에 백 하나 사러 왔는데 카드가 안 되는데?”
“안 된다고?”
“응.”
“그럴 리가?”
“아니야, 안 돼.”
그 순간 신성현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방금 썼던 카드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챈 것이다.
“혹시 그거 아버지 카드야?”
“응, 그런데?”
그리고 분명 아버지는 오늘 아침에 병원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 영감탱이가.”
신성현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나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어차피 바로 다음 병원에 처넣을 거라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카드와 통장을 바로 지급정지 시킬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다.
“며칠 봐서 해 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리고는 어디론가 전화했다.
“아. 난데. 한 번 더 일해 줘야겠어.”
며칠 뒤 신명태의 집으로 한 대의 구급차가 앵앵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달려 왔다. 그런데 그 차는 보통 119와는 색도, 모양도, 심지어 앵앵 울리는 소리도 달랐다.
속칭 129였다. 129는 사설 구급차 서비스를 말한다. 좋게 말하자면 사설 구급차 서비스란 애매한 환자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일반 차량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 비상용 차량인 119를 쓸 수가 없으니 129가 돈을 받고 대신 움직인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설 구급차 업체들이 많이 난립한 상태에서, 모든 업체에게 수익이 발생할 정도로 환자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잘못된 업체들이 개척한 수익 모델은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바로 납치 대행.
“이 노친네, 어떻게 나왔대?”
“무슨 변호사가 빼 줬다는데요?”
입구에 멈추는 차량.
그리고 그 안에서 내리는 덩치 좋은 두 사람과 한 사람의 자동차 운전사.
“미친 노친네 같으니. 그 안에 있으면 먹여 줘, 재워 줘, 다 해 주는데 뭐가 좋다고 기어 나와서는.”
“덕분에 우리야 좋은 거 아닙니까? 한 번 더 이송하면 당연히 돈을 더 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이번에는 좀 거리가 먼 곳이던데. 이번에도 짭짤할 거야.”
이들이 말하는 이송이란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가둬 버리는 걸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식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명백하게 불법이라 한 번에 1천만에 가까운 돈을 받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곳에 살아 봤으면 좋겠네.”
“그리고 자식 놈에게 끌려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낄낄낄.”
서로 시시덕거리면서 그 문으로 다가가는 사람들. 그들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서 익숙하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어?”
그들은 불이 꺼진 안쪽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없나?”
“집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이거, 튄 거 아냐?”
“튀었다고?”
“그런 것 같은데?”
“아니지, 자고 있을 수도 있잖아.”
“하긴.”
정신병원에서 그렇게 시달리고 나온 인간이라면 일찍 잠들 수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면 술은 구경도 못 했을 테니 고주망태가 되어서 널브러져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자.”
그들은 마당을 가로질러서 안으로 다가갔고 현관을 열고 집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안은 조용하고 썰렁할 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진짜로 튄 거 아냐?”
“일단 일찍 잠들었을 수도 있으니 뒤져 보자.”
천천히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온 방 안을 뒤지고 나서야 집 안이 비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튄 거 아냐?”
“젠장, 이 노친네, 어디로 간 거야? 일단 돌아가자.”
그들이 막 몸을 돌려서 현관으로 나오는 찰나였다. 갑자기 강렬한 빛이 동시에 그들을 비췄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으헉!”
“이건 뭐야, 씨발!”
갑자기 비추는 빛에 멈춰 버리는 세 사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손전등을 든 채로 자신들을 노려보는 네 명의 경찰과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저기요, 우리는 구급차 요원입니다. 환자가 있다고 해서 온 것뿐이라고요.”
약간 당황한 듯한 행동대원 두 명과 다르게 느긋하게 대답하는 운전자. 아마도 이 팀의 대장인 모양이었다.
“근데 왜 불법 침입을 했지?”
“불법 침입이라니요? 우리는 정당하게 받은 열쇠로 열고 들어왔습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운전자는 느긋하게 말했지만 곧 어둠 속에서 나오면서 코웃음을 치는 노형진의 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긴급 출동을 하는데 언제 열쇠를 받아서 문을 열고 들어가?”
“…….”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긴급 출동이라는 것은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반대로 열쇠를 받아서 열었다는 건 사전에 올 걸 예정하고 있었다는 뜻이니 그들이 긴급 출동했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집주인이 부른 거라고요. 정말입니다.”
일단 시간을 끌면서 자신을 부른 신성현이 오기를 기다리려고 하는 세 사람. 하지만 그들의 그런 말은 실수였다.
“집주인? 신고한 게 집주인이다, 이 새끼들아.”
“네?”
경찰의 말에 무슨 소리인가 하는 얼굴이 되는 찰나, 그 경찰 뒤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노친네!”
“저거!”
잡아야 하는 대상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달려들 수가 없었다. 경찰들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데다가 주변에 시커먼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분이 집주인이거든? 카메라에 너희가 보여서 부르신 분이다.”
“카메라?”
그 말에 당황하는 세사람. 노형진은 신명태를 바라보았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난번에 절 납치한 사람들입니다.”
“얼씨구? 가택침입에 납치까지 했어? 경찰 여러분, 들으셨죠?”
노형진의 말에 경찰은 고개를 끄덕거리면 수갑을 꺼내 들었고 그 세 사람은 황급하게 변명하기 시작했다.
“진짜라니까요. 우리는 이송 요청을 받아서 온 것뿐입니다.”
“그래? 진단서는?”
“네?”
“이송 요청을 받아서 온 거면 의사한테 진단서를 받았을 거 아냐, 이 새끼들아. 그러니까 진단서는?”
“…….”
진단서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서로 눈치만 바라보면서 눈을 데굴데굴 굴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상황이 엿 같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무단 침입에 납치 그리고 납치 미수. 연행하는 데에 지장 없으시죠?”
“충분합니다.”
경찰은 능숙하게 수갑을 꺼내서 그들에게 다가갔고 그들의 눈은 사방으로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도망갈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노형진은 그걸 보고 뭔가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씨팔!”
한 명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자 사방으로 도망치는 범인들.
“잡아요!”
그러나 대놓고 그렇게 눈깔을 돌려 댔으니 경험 많은 노형진과 경찰이 모를 리가 없었고 순식간에 제압당한 그들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놔! 놓으라고, 썅!”
“이 새끼야, 가만있어!”
결국 경찰에 끌려서 나오는 세 사람.
노형진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장의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서 차로 다가갔다.
“변호사님?”
“일 여러 번 할 일 있겠습니까?”
노형진은 능숙하게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경찰을 불렀다.
“증거가 있군요.”
“증거요?”
“네.”
경찰은 다가와서 그걸 확인했고 벽에 걸린 작은 공간에 놓여 있는 주사기와 앰플을 발견했다.
“이건?”
“강력한 신경안정제입니다. 이걸 맞으면 사람은 저항도 못 하지요. 마약류로 분류되어 의사가 아니면 처방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얼씨구?”
이런 물건이 119도 아닌 129에 있을 리 없다. 더군다나 이건 임의로 쓰기 위한 게 아니라 의사의 결정에 의해서 사용하는 물건. 그러나 여기에는 의사가 없다.
그렇다면 목적은 단 하나.
“마약 사범이셨구만.”
마약이라고 하면 보통 헤로인이나 대마류를 생각하지만 이런 물건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마약으로 분류되니 그걸 어긴 저들은 당연히 마약 사범이 된다.
“아주 증거가 넘치네, 개새끼들.”
경찰은 혀를 끌끌 차면서 그들을 경찰차에 태웠고 그들은 발악하면서 그들에게 끌려갔다. 잠시 후 렉카 한 대가 오더니 구급차마저도 끌고 갔다.
“진짜로 왔군.”
신명태는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을 납치했던 그 녀석들이 진짜로 다시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자 무척이나 슬퍼졌다.
“그래도 이번에는 안 잡혀갔잖습니까?”
잡혔다면 나중에 짜고 가족들의 부탁을 받아서 옮긴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저들은 무단으로 남의 집에 들어가 강력한 진정제를 의사의 진단서도 없이 사용하여 그를 기절시킨 후에 끌고 가려고 했다.
법률에서는 이런 인간들을 납치범이라고 부른다.
“저들도 벌을 받아야지요. 자기 돈을 위해서 멀쩡한 사람을 납치하는 건 나쁜 짓인 거, 저들이 모를 것 같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범죄는 결국 자기가 책임지는 겁니다. 남이 시켰다고 합리화되는 게 아니구요.”
“그런데 진짜로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네, 솔직히.”
“계좌를 동결하셨으니까요.”
아무리 아들들이 그동안 돈을 빼돌렸다고 하더라도 그게 쉬울 리가 없다.
당장 신명태가 정신병원에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의 전 재산을 아들 명의로 넘겨주는 은행이나 거래처가 있을 리 없으니 그들이 받을 수 있는 거라고는 기껏해야 임대한 건물의 수익료 정도.
그것만 해도 작은 게 아니지만 말이다.
“이제 어쩔 건가?”
“어쩌긴요. 범죄자들을 족쳐 봐야지요.”
노형진은 경찰에게 부탁해서 그들의 조사에 동석할 수 있었다. 피해자의 대리 변호사로서 발언권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혀를 끌끌 찼다.
‘미쳤구만.’
세 명 다 전과를 단 전과범이었다. 두 명은 폭행, 한 명은 강도. 그들은 교도소에서 나와서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자 납치로 방향을 돌린 것이었다.
가족들의 부탁을 받고 납치하는 행동은 뒤끝도 거의 남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오늘까지 말이다.
“진짜라니까요! 전 아들이라는 작자한테서 부탁받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억울하다고요. 우리는 합법적으로…….”
“지랄. 언제부터 돈 받고 사람 납치하는 게 합법적이었냐?”
“아니, 우리는 법정대리인이라는 사람한테서 부탁받은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진단서는 어디 있냐고.”
아무리 말해도 풀려날 수 없는 상황. 그들은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방법이 없었다.
“변호사님, 이 새끼들 어떻게 할 거예요?”
“일단은…… 집어넣고 민사로 가야지요.”
“제발…… 제발 변호사님, 한 번만 봐주세요.”
당장 지금 걸린 것만 해도 족히 10년은 감옥에 가야 하는 범죄다. 그런 상황에서 민사까지 걸려 버리면 죽으라는 소리다.
“아, 내 알 바 아니죠.”
“잘못했습니다. 변호사님께서 시키는 대로 다 할 겁니다. 진짜로 다 하겠습니다.”
“흐음!”
노형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건 어때요? 제가 조건을 하나 달죠.”
“어떤…….”
“당신들이 납치, 아니 이송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
“헉!”
그 말에 눈이 커지는 세 사람. 그도 그럴 것이, 그걸 공개하면 못해도 백 명은 넘기 때문이다.
“그걸 공개하시고 명단을 넘기세요. 그러면 민사는 모른 척해드리지요.”
“그럴 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