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605)
“이건 못 이깁니다.”
“뭔 개소리야!”
유온진은 못 이긴다는 말에 발끈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 자체가 애초에 불법인지라…….”
돈을 주지 않을 생각으로 계약했다는 증거는 사방에 넘쳐 난다.
물론 전혀 관련이 없는 제삼자인 만큼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게 맞지만, 초상권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
“초상권 침해는 단순히 과거의 범죄가 아닙니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사건인지라…….”
방송을 할 때마다, 영화관에 걸릴 때마다, 인터넷으로 한 편이 팔릴 때마다 초상권은 침해된다.
애초에 계약 자체가 무효라는 부분을 타파하지 않는 이상 그건 영구히 지속될 것이다.
“그걸 타파하는 게 네가 할 일이잖아.”
“그러면 미리 이야기라도 했어야지요.”
변호사는 속이 쓰렸다.
유온진이 그에게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은 탓에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노형진이 그 부분을 찌르고 들어오면서 말문이 막혔다.
‘이미 판사에게 심증이 확증되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반박은 재판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이다.
인간이라는 게 재판정에서 반박하지 못하면 의심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반박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서, 지금도 반박할 거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기존 업체들과 직원 이름이 다 같은 겁니까?”
달라진 것은 오로지 직책뿐.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지.”
“뭘 알아야 변론을 하지요.”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영화 좀 만들어 보려고 한 것뿐이야.”
“그런데 왜 출연료를 안 주신 겁니까?”
“그건, 흠흠…… 영화가 다 망해서.”
“다 망한 건 아니잖습니까!”
다섯 편의 영화 중 두 편은 망했지만 두 편은 그래도 본전치기는 했다. 그리고 한 편은 엄청나게 벌었다.
그 한 편이 바로 문제가 된 >천년호>였다.
‘안 봐도 뻔하기는 한데…….’
처음에는 진짜로 안 줄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영화는 희대의 괴작 소리를 들으면서 폭삭 망했다. 아마 그때 그나마 손실을 줄이자며 인건비를 떼어먹는 계획이 나왔을 테고, 그게 성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두 번째 영화까지 말아먹고 나서, 그것도 인건비를 떼어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뻔하지.’
하다 보니 소송이 걸려도 안 줘도 되는 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방법을 몰랐을 뿐, 방법을 알고 나니 나중에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공했어도 그 돈을 주기가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 후에도 계속 주지 않았고 말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뭐, 다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 거지, 뭘! 흠흠.”
유온진은 애써 말을 돌렸지만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그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온진이 뭐라고 하든 그들이 작정하고 사기 치기 위해 덤벼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계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변론을 하더라도 그건 의미가 없다.
“이건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고?”
“네.”
“그럼 돈을 줘야 한다는 거야?”
“돈을 준다고 다 해결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뭐?”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의 초상권은 이미 침해된 상황입니다. 애초에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사람들도, 동의가 없으면 초상권 문제가 됩니다. 하물며 상업 영화에서 문제가 안 되겠습니까?”
“으음…….”
“지금은 일단 돈을 주고 최대한 좋게 좋게 합의를 하시는 게 최선입니다.”
“큭.”
유온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깝기는 하지만 돈을 안 줄 수는 없을 듯했다.
“다음부터 그러지 마세요.”
변호사가 해 줄 수 있는 충고는 그것뿐이었다.
* * *
“뭐야? 싸우고 자시고 할 이유도 없었잖아?”
“그러니까요. 전 그냥 방어할 생각만 했네요, 하하하.”
무태식은 호탕하게 웃었다.
노형진이 그들이 그렇게 나올 거라고 이야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방어하나 생각만 했지, 설마 그들의 주장 자체를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무효라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어떤 방식으로 지랄 발광을 해도, 그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변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후에 벌어진 사건을 다투기 위해서는 무효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들은 이미 몇 번이나 그런 짓을 한 놈들이지요.”
당연히 판사도 계약 자체의 무효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고 말이다.
“그래서 느긋했구나.”
“어차피 싸울 이유가 없으니까.”
저쪽 변호사가 무대에서 혼자 칼춤 추고 지랄 발광을 다 해도 이쪽 관객석으로는 넘어오지 못하는 꼴이다.
“그런데 저쪽은 이제 어떻게 나올까?”
“남은 건 하나뿐이지. 합의.”
“이제는 받을 수 있겠군요.”
무태식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이제는 받지 못한 임금을 받게 해 줄 수 있다.
물론 15억이 큰돈이기는 하지만 영화사가 번 돈은 400억이 넘는다. 그러니 그걸 못 받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이어진 노형진의 말은 두 사람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안 받을 건데요.”
“네?”
“뭐라고?”
“그 돈, 안 받을 겁니다. 우리가 그 돈을 받을 이유가 없지요.”
“어…… 어……? 이거 돈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요. 돈을 안 받으면, 피해자들은요?”
노형진은 살살 뺨을 긁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의뢰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애초에 의뢰 내용 자체가 돈을 받기 위한 소송은 아니었잖습니까?”
“그거야 그런데…….”
두 사람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노형진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노형진은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쪽은 돈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저쪽은 돈을 주고 이번 소송을 끝내고 싶어 한다. 그러니 지금 받아야 사람들에게 돈을 돌려줄 수 있다.
그쪽에서는 얼마 안 되는 푼돈이니 뭐니 하지만 개개인당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천만이 넘는 그 돈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임과 동시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다.
“받을 수 있는데 안 받겠다니? 무슨 복수니 뭐니 그런 걸 생각하는 거야?”
형사로 보자면 복수가 되겠지만 민사로는 복수에 한계가 있다.
그런 만큼 가능하면 받아 내는 게 좋기는 하다.
“뭐, 복수라고 하면 복수이기는 한데.”
“정말 복수라고?”
“뭐, 전에 말했다시피 민사라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돈도 받지 않고 무슨 복수가 된다는 거야?”
노형진은 살짝 미소 지었다.
“충분한 복수가 되지. 두고 봐. 아주 짜릿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