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606)
“뭐라고요?”
유온진 측에서 온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소송을 끝내기 위해, 합의를 하려고 했다.
물론 변호사 역시 동석하기는 했다. 혹시 모를 법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형진의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돈 받을 생각, 없습니다만?”
“돈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요?”
“애초에 그 돈을 받기 위해 한 소송도 아니고, 무엇보다 여러분은 그 돈을 줄 자격도 없는 분들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담당자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함께 온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이 사건을 담당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기존의 변호사는 결국 그만뒀다.
제대로 정보도 주지 않는 의뢰인을 대신해서 싸워 봐야 의미도 없고 이길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좋게 충고까지 해 줬는데도 제 성질에 못 이겨 펄펄 뛰다가 이기지 못하면 수임료도 못 준다면서 그의 멱살을 잡고 패대기친 유온진의 행동 때문이었지만.
그래서 대타로 들어온 것이 이 자리에 동석한 변호사였다.
그도 나름 사건에 대해 설명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유온진이 자신에게 불리한 건 쏙 빼놓고 이야기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으음…….”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 변호사, 저쪽에서 하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애초에 돈을 받기 위한 소송이 아니라 그걸 못 쓰게 만들기 위한 소송이라는 겁니다.”
“뭐요?”
얼굴이 핼쑥해지는 남자.
그 영화에서 못해도 두 배 이상의 수익은 더 뽑아낼 수 있는데 그걸 못 쓰게 만들겠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됩니다. 저쪽에서 건 소송은 체불임금 반환 청구 소송이 아니니까요.”
즉, 받지 못한 돈을 받기 위해 건 소송이 아니라, 초상권이 침해되는 것을 멈추기 위한 소송이었다.
“그게 뭔 말이에요?”
“소송의 목적이 다르다는 겁니다.”
당연히 돈이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변호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내가 들은 것과 많이 다르지만…….’
자신이 들은 건, 저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체불임금 지급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돈을 안 받겠다고 나오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닥친 이상 조언은 해 줘야 한다.
“소송 자체만 보면, 돈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에요.”
“이이익.”
‘하지만…….’
부들부들 떠는 담당자를 보면서, 설명을 해 준 변호사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받을 수 있는 기회인데?’
받지 못한 15억의 돈. 그걸 받을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안 받겠다고? 소송을 끝까지 가겠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동의한 건가? 몇 달의 시간과 적지 않은 돈이 날아가는 일인데.’
하지만 당사자들이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변호사가 마음대로 합의하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게 생각하세요. 그 돈 드릴 테니까 합의합시다. 그러면 그쪽도 우리도, 둘 다 좋은 거 아닙니까? 이번 영화, 본인이 투자자라면서요? 무려 1,200만입니다, 1,200만. 한국 영화사에 획을 그은 작품이에요. 그걸 이렇게 날릴 겁니까?”
“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우리는 받지 않을 겁니다. 아니, 받지 못한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네요.”
“뭐요? 받지 못한다고요?”
“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체불임금을 줘요?”
“뭐요?”
“아니, 그런 거 아닌가요? 당신들이 애초에 자신들은 만선팩토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쪽에서 임금을 준다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그건…….”
상당히 곤혹스러운 말이 나오자 담당자는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변호사는 그런 노형진의 말에 한숨을 푹 쉬었다.
‘당했다.’
법적으로 자신들은 만선팩토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제삼자다. 따라서 그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이유는 없다.
그건 임금 지급이 아니라 단순 증여가 될 뿐이다.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게 뻔한데 그걸 우리가 왜 받습니까?”
“이 변호사, 이거 맞는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는…… 그건 못 주네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변호사도, 담당자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뭐 어쩌자는 거야? 그냥 영화 날려? 어? 그게 얼마짜리 영화인데!”
“계약해야지요.”
“계약?”
“초상권 사용 계약 말입니다.”
이 변호사의 입에서 원하던 말이 나오자 노형진은 씩 웃었다.
역시나 변호사답게 자신이 뭘 노리는지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이번 변호사는 그래도 전임보다는 좀 더 머리가 돌아가네, 후후후.’
그래 봤자 자신의 거미줄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맞습니다. 이건 체불임금이나 출연료의 문제가 아니죠. 초상권 사용의 사후 허락 같은 개념이니까요.”
“뭔 놈의 조건이 그렇게 복잡한지. 알겠습니다. 그 사후 허락인지 뭔지 알았으니까, 계약합시다.”
담당자는 이런저런 법률 용어가 복잡한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금도 당장 방송할 수 있게 하라는 위의 성화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름 바꾸고 사인부터 합시다.”
“아니, 그걸로는 안 되죠.”
“안 된다?”
“엄연히 다른 계약인데 협상부터 해야지요.”
“협상이라니?”
협상이라는 말에 담당자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협상이라니. 그 돈이 그 돈이면, 계약서만 대충 새로 고치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그다음 말에 그는 입을 쩍 벌렸다.
“계약 조건은 현 조건의 다섯 배입니다. 그러니까 15억이 아니라 75억이죠.”
“뭐?”
경악스러운 숫자에 담당자는 부들부들 떨었다.
“무슨 개소리야! 어떤 미친 새끼가, 엑스트라들한테 75억씩 뿌리는 새끼가 어디 있어!”
“엑스트라라니요? 명백하게 초상권 침해 계약입니다만?”
저쪽은 명백하게 초상권을 침해했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수익을 위해 사용했다.
“손해배상, 정신적 위자료, 이자 등등을 합하면 75억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미친!”
노형진이 싱글거리면서 웃자 담당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변호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저걸 노리는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이건 전혀 새로운 계약이다. 그리고 칼자루는 저쪽이 쥐고 있다.
칼을 쥐고 있는 사람이 그걸 휘두르지 않을까?
자신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지고 올 텐데?
“75억은 그리 쉽게 말씀하실 만큼 적은 돈이 아닙니다.”
“알죠. 하지만 그 영화로 400억 넘게 이득을 본 것도 압니다. 추후 그것보다 더 벌 수도 있죠. 2차 판권이나 다른 판매 라인을 통해서요. 그에 비해 75억 정도면 뭐, 많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어떤 미친놈이 그걸 받아들여!”
“그럼 팔지 마세요. 당신들 말마따나 개개인으로 보면 푼돈이니, 그 돈 없어도 그 사람들 안 망하니까.”
어깨를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노형진.
“아무래도 합의는 불발된 것 같네요. 뭐, 그 조건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바로 오겠습니다. 하지만 알아 두세요. 우리는 그 조건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겁니다.”
노형진이 엄포를 놓고 가자 분노에 덜덜 떠는 담당자.
“이 변호사! 저 개새끼 말이 사실입니까? 네? 사실이냐고요!”
“사실입니다. 이건 전혀 별개의 계약입니다. 우리는 제작사가 아니라 제삼자이니까요.”
“그러면 저거 안 받아들이면요?”
“그거 못 파는 거죠. 아니면 CG로 모조리 지우고 새로운 영상을 편집해서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끄응…….”
수많은 엑스트라들의 장면을 모조리 대체하기 위해서는 CG비가 어마어마하게 들 것이다.
설사 재촬영해서 집어넣는다고 해도, 어색함은 어쩔 수 없을 테고.
“그러면 결국 사람을 다시 뽑아서 재촬영해야 하는데, 과연 될까요?”
으드득.
재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장비고 사람이고 다 다시 불러야 한다. 그리고 주연배우들 역시 다시 불러야 한다.
하지만 이미 상영까지 끝난 영화를 재촬영한다고 부르면, 과연 올까?
올 리 없다.
설사 온다고 해도, 엄청난 비용을 추가로 부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엑스트라나 조연이나 단역이 없는 장면은 영화의 10%도 채 안 될 겁니다. 결국 그걸 다 다시 찍어야 한다는 건데, 그러면 사실상 영화를 그냥 새로 만드는 꼴이 됩니다.”
“미친.”
“그런데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배우들과 감독, 스태프들이, 이미 다 찍었던 영화를 다시 찍는다고 하면 과연 열성적으로 할까?
당연히 대충 해치우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걸 장면에 삽입하면…….
“영화가 엄청나게 개판이 되겠지요.”
대충대충 만들어진 장면이 들어갈 테니 1,200만을 달성한 영화는 동네 B급 영화로 전락할 것이다.
당연히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외국에서 사 갈 리 없다.
그리고 그건 한국의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이건 외통수입니다.”
변호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설계 좀 해
“완전 당황한 눈치던데?”
손채림은 창백한 얼굴로 돌아가는 유온진 측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키득거렸다.
“안 받는다는 게 이런 이야기였어?”
“뭐, 그렇지. 우리가 돈을 더 받아 낼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휘두르지 않을 이유는 없잖아?”
노형진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전혀 새로운 계약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받아 내는 것.
그게 노형진의 목적이었다.
“만일 원래 돈만 받아 내면 피해자들은 사실상 피해 복구가 거의 안 되는 셈이야. 받을 돈만 받은 거잖아.”
“그렇지.”
“그러니 원래 받을 돈 이상을 받아 내야지.”
“하지만 그들은 주지 않으려고 할 테고……?”
“그러니까.”
그래서 기존 계약을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계약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안 받아들이면 어쩌지?”
“뭘? 우리 조건?”
“응.”
“안 받아들이면 뭐, 어쩔 수 없지. 영화 망하는 거지.”
결국 그들에게는 그걸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거 완전 이기는 싸움이네, 호호호.”
“과연 그럴까?”
“응?”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걸.”
“뭐? 그러면 차라리 몇백억을 더 들여서 졸작을 만들 거라는 거야?”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욕심이 과하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15억까지는 주려고 했지만, 요구대로 75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벌어 둔 돈까지 모조리 까먹게 될 재촬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아마 다른 방법을 찾을 거야.”
“다른 방법?”
“그래. 그리고 그게 내가 진짜로 노리는 거고.”
“뭐? 지금 초상권 계약이 목적이 아니고?”
“그래.”
그런 거라면 이렇게 복잡한 준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전임은 좀 불안했거든. 그런데 이번에 새로 온 저쪽 변호사는 제법 똑똑해. 아니, 확실히 똑똑하지. 그러니 그는 방법을 찾을 거야.”
웃기지만, 이번 함정은 상대방이 똑똑할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종류다.
그래서 사실 전임이 멍청해서 도리어 모르고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하는 걸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분명히 방법을 찾아내겠지, 흐흐흐.’
그리고 그때가 피날레가 될 것이다.
노형진은 씩 웃으며 거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그게 내가 원하는 바지,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