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618)
“친애하는 재판장님.”
노형진은 일단 변론에 나섰다.
증거를 추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3심까지 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여기서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피고인 이송학은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1심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그는 현장에서 절도는 했을지언정 강간 및 살인은 하지 않았습니다.”
노형진의 말에 검사는 코웃음을 쳤다.
“피고인 측 주장은 말도 안 됩니다. 피고인 측도, 주장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증거는 제출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랬다.
1심의 변호사도 마찬가지 주장을 했다. 하지만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아니,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증거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노형진은 다르게 생각했다.
“증거요? 검찰 측, 피고인이 범인인지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피고인이 현장에서 얻은 장물을 판매하는 것을 알고 잡았습니다.”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요. 그렇게 잡았지요. 그런데 그건 저희 쪽 주장과 같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는 현장에 피고인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걸 훔쳤다는 것을 인정했지요.”
“그걸 이제 와서 인정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지요?”
“‘이제 와서 인정해 봐야’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살인을 하고 얻은 장물을 채 이틀도 지나기 전에 판매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나요?”
노형진은 좌중을 보면서 말했다.
판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살인 후 고작 이틀입니다. 피고인은 지금까지 살인은커녕 동물도 한 마리 죽여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람 둘을 죽이고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그 현장에서 얻은 장물을 판매한다? 그게 피고인의 다급함을 말하는 증거라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다급함이라니?”
“1심에서 제출했던 참고 사항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1심에서는 변호사가 자비를 이끌어 내기 위해 진단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걸 다르게 생각했다.
“보다시피 피고인의 아버지는 암입니다. 그것도 아주 다급하게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피고인이 어찌 다급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자비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피고의 심리 상태를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어야 한다.
“재판장님, 그 기록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 수술 시한이 사건 이후 사흘 이내입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최소한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피고인이 손을 씻었던 절도를 다시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건 피고인 측 주장이고요.”
“그래요? 그러면 검찰 측에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질문이 엉뚱하게 넘어오자 검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검찰 측, 지금 콘돔 가지고 있습니까?”
“에? 지금 장난합니까? 신성한 법정에서 콘돔이라니요?”
기분이 나쁘다는 듯 눈을 찌푸리는 검사.
노형진은 그의 대답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여기 방청객 중에서 혹시 콘돔 가지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웅성거릴 뿐, 콘돔이 있다고 손 드는 이는 없었다.
“그렇겠지요. 한국에서 콘돔은 상시 들고 다니는 용품이 아니니까요.”
“그래서요? 그게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나요?”
“피고인은 빈집을 털기 위해, 즉 범죄를 저지르려 그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검찰 측의 조사에 따르면, 살인범은 콘돔을 끼고 강간을 했다고 했지요? 애초에 빈집을 털러 가는데 도대체 콘돔을 왜 가져갑니까?”
“……!”
검사는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에는 콘돔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현장에서 쓰고 버린 콘돔이 발견되지도 않았지요.”
“그거야 범인이 회수해 갔으니까…….”
말을 하던 검사는 말끝을 흐렸다.
그건 자신들의 주장일 뿐이니까.
“그리고 설사 콘돔을 상시 가지고 다닌다고 한들, 두 개씩 들고 다닌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건…….”
확실히 그 부분이 이상하기는 하다.
검찰은 이송학이 빈집을 털러 갔다 모녀를 보고 우발적으로 강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발적으로 강간을 저지른 사람이 콘돔을, 그것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피해자들의 체내에서는 어떠한 유전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이를 기반으로 이송학이 콘돔을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현장에서 추적한 결과와는 완전히 상반된 바입니다. 절도의 현장에서는 이송학의 유전자가 발견되었습니다. 강간을 하고 난 후 이미 써 버린 콘돔까지 챙겨 간 피고인이 절도의 현장에서는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자신을 꽁꽁 싸매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검찰이 이송학으로 사건을 특정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노형진의 말에 검사는 눈을 확 찌푸렸다.
“지금 검찰을 뭐로 보고! 누명을 씌우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는 겁니까!”
“증거를 조작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수사하기 귀찮아서 방치했다고 생각합니다.”
“뭐요!”
발끈하는 검사.
판사는 손을 들어서 그런 검사를 진정시키고, 물끄러미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피고인 측 변호인,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요?”
“피고인은 체포당한 후에 진술을 하고 자신의 죄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거짓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송학을 마주 보았다.
“하지만 그걸 증명하는 게 바로 검찰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CCTV입니다.”
“CCTV?”
“그렇습니다. 피고인의 진술을 보면, 제법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어디서 어디로 움직였는지 이송학은 최대한 자세하게 진술을 했다.
그저 그런 사건도 아닌, 살인 사건이었으니까.
“그런데 검찰 측에서 제출한 기록을 보면, 그 해당 동선의 CCTV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게…… 현장에는 CCTV가 없었습니다.”
검사는 아차 했다.
사실 노형진의 말이 맞다.
애초에 이송학이 범인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당 기록을 확인해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과는 다르게 그건 상당히 중요한 증거였다.
그는 애써 변명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있었다.
“피고인의 동선에 CCTV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CCTV가 없었던 것은 검찰 측 말처럼 현장뿐이지요. 그리고 피고인의 진술서에는 그 동선과 움직인 시간까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확인하고자 했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 그러한 영상은 중요한 증거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니까.
“분명히 촬영된 영상의 타임 라인을 비교하면 피고인 이송학은 사실상 그 범죄를 저지르는 게 불가능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걸 확인하지 않았지요?”
검사는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송학이 빈집을 터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5분이 안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강간하고 죽이는 데 든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이 15분은 터무니없이 짧다.
따라서 이송학이 말한 대로 그 동선을 조사해서 추정 시간만 뽑아내도 그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
“흠…… 검찰 측, 확실히 중요한 증거 같은데, 관련 증거 있습니까?”
“그게…… 관련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그걸 확보할 수 있나요?”
“죄송합니다.”
벌써 몇 달 전 사건이다. 그 당시를 촬영한 CCTV 영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제가 알기로는 이런 사건에서 그러한 동선의 추적은 기본이고 CCTV는 그걸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인데, 어째서 이번 사건에서만 굳이 그걸 찾지 않은 겁니까?”
노형진의 말에 검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만일 당시 피고인이 주장한 시간에 피고인의 모습이 촬영된 CCTV가 있다면, 이는 피고인의 무죄를 증명할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그걸 피고인은 이야기해 줬다.
그런데 정작 검찰은 그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중대한 과실이었다.
“혹시 피고인 이송학을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노형진이 그 부분을 지적하면서 공격하자 검사는 진땀을 흘렸다.
형사에서 검찰 측에 피고인의 유죄 증명 책임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고, 무죄의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아니 감췄다고도 볼 만한 행동은 재판에서 좋게 보일 수 없다.
“아닙니다.”
“그러면요? 단순히 피고인 이송학이 장물을 팔았으니까 더 이상 수사할 필요도 없다 이거였나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가 장물을 팔았다는 이유로, 그 이후에는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아무래도 관련 자료에 대한 조사를 좀 더 요구해야겠네요.”
판사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수사다. 그런데 편의를 위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면, 그도 판결을 내릴 수 없다.
“추가 수사해서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검찰 측이 구형한 게 사형입니다. 그런데 사형이 걸려 있는 사건을 그렇게 날림으로 하면 어떻게 합니까?”
판사는 평소와 다르게 검찰 측에 확실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검찰이야 구형을 하는 것뿐이지만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판사다.
판사 입장에서는, 잘못하면 죄 없는 사람의 인생을 끝장냈다는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문제가 된다.
아무리 한국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사형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죄송합니다.”
“추가 조사해서 제출하세요.”
판사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고, 노형진은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검사를 바라보면서 피식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