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643)
“미안하다…… 미안하다…….”
무려 100억.
평생을 가져다 바쳐도 벌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엄청난 돈.
그걸 자신에게 빚지도록 만든 아버지.
그 사실을 알고 사장은 미쳐 날뛰었다.
“이 미친 새끼야!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안하다……. 내가 미쳤었다, 흑흑.”
“이게 미안하다는 말로 해결될 문제야!”
이건 도무지 답이 없다.
그리고 끝도 안 보인다.
“이런 미친 새끼가!”
사장은 당장 채운수를 패 죽이기라도 할 듯한 모습이었다.
“그…… 그만둬요.”
“영아야!”
“그래도 제 아빠예요.”
“씨발, 이런 새끼가 무슨 아빠야!”
“그래도 아빠라고요!”
“아오, 씨발!”
일어나서 의자를 발로 차는 사장.
그리고 채영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런 채운수 옆에 앉았다.
“아빠…… 우리 같이 노력해요. 그러면…… 갚을 수 있을 거예요. 성공한 가수가 되면…… 1년에 100억도 번다잖아요. 그러니까…… 나 노력할게요……. 노력할 테니까…… 아빠도 같이 노력해요…….”
“흑흑흑…….”
“엄마도 내가 용서할게요. 잠깐 같이 실수한 것뿐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 용기를 내요, 전처럼……. 우리끼리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예요.”
“미안하다……. 으허허허, 미안하다!”
딸의 품에서 오열하는 채운수를 보던 사장은 몸을 팍 돌렸다.
“에이, 씨발!”
그는 문을 박차고 나왔고, 그길로 사장실로 올라왔다.
그곳에서는 이미 노형진과 손채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때요?”
“어떻고 자시고…… 그냥…… 연기는 못 해 먹겠네요.”
“아니, 지난 며칠간 연습하셨잖아요?”
“아, 음…… 전 연기에는 재능이 없나 봅니다.”
사장은 아까와 다르게 빙긋 웃었다.
“아래쪽은 어때요?”
“영아가 변호사님 말대로 살살 구슬리고 있습니다. 일생일대의 연기를 하라고 하더니, 지금처럼 하면 여우주연상이라도 받겠어요.”
“후후.”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아마 그녀는 진짜 모든 걸 걸고 연기하고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죠. 진짜 영혼까지 갈아 버리고 싶은데 그래도 꼴에 부모라고 자식이 손잡고 싶어 하니.”
철저하게 몰락한 두 사람이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슨 수를 쓰든 딸을 잡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들은 앞으로 채영아에게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채영아 역시 그걸 알고 있다.
조금은 독하지만, 그것 말고는 그들을 다시 묶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사장은 한숨을 푹 쉬면서 신문을 던졌다.
“아주 1면마다 난리입니다, 난리.”
채영아의 아버지 채운수가 채영아의 명의로 100억대 도박 빚을 졌다는 뉴스였다.
“졸지에 애가, 에효……. 도대체 어디서 새어 나간 건지.”
인생이 저당 잡혀 버린 채영아가 불쌍한지, 사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 그거요?”
그런데 옆에 있던 손채림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니, 왜 웃으세요?”
“그건 그냥 아이를 위한 팬 서비스예요.”
“팬 서비스?”
“네, 아이가 너무 열심이잖아요. 노력도 많이 하고 재능도 있고. 그래서 미래에 성공하라고 살짝 푸시 해 준 거죠.”
“푸시요? 100억대 도박 빚이?”
사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건 없는 빚입니다.”
“네?”
노형진은 살짝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설명해 주지 않으면 사장이 걱정하느라 한 10년은 늙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도박 빚은 받을 수 없는 빚입니다. 물론 모르고 빌려준 거라면 받을 수 있지만, 법적으로 도박에 쓰일 걸 알면서도 빌려준 것은 받을 수 없는 돈이지요.”
“잠깐…… 그럼…….”
“네. 채운수는 현장에서 돈을 빌렸죠.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빌려준 사람은 그게 도박에 쓰일 걸 알고 있었고요.”
“그러면…….”
“애초에 이건 소송해도 못 받습니다.”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로 받아 내려고 계획을 짰다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다.
“어…… 그러면? 어째서? 그러고 보니 어디서 새어 나간 건지…….”
미심쩍은 얼굴이 되는 사장.
손채림은 그런 사장에게 자신들이 뭘 도와줬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언론은 원래 이런 걸 이슈만 만들어 놓고 책임은 안 지잖아요. 어차피 그 100억, 소송해도 못 받아요. 인정되지도 않는 빚이니까. 하지만 그 뉴스는 영영 나가지 않겠지요. 설혹 나간다 해도, 아주 작게 나갈 테고요.”
“그건 그렇지요.”
“그러면 국민들의 눈에 채영아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겠어요? 자신을 배신했던 엄마와 자신을 팔아먹고 100억대 빚을 안겨 준 아빠를 용서하고, 어떻게든 그걸 해결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소녀 가장. 그런 모습 아니겠어요?”
“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가 절대 나쁜 건 아닐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런 이미지는 아무래도 국민들에게 동정표를 받게 되지요.”
마음의 빚은 둘째 치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100억의 빚은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이미지만 얻을 뿐이지 그 때문에 고통받을 이유는 없다.
“유소미 양이 부탁하더군요. 진짜 재능이 있는 아이니까 제발 잘 부탁한다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하하!”
안 그래도 사장은 지금 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노형진이 미리 언론에 슬쩍 흘린 덕분에 채영아는 철저한 피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부모까지 용서하고 같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다 끝난 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채운수의 양육권을 박탈하는 거니까요.”
“그렇지요.”
“사실 언론에 뿌린 건 영아를 푸시 해 주려고 한 것도 있지만, 재판부를 압박하려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재판부? 아하! 친권 박탈 소송요?”
“네.”
채영아는 친권 박탈 소송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부모를 붙잡고 싶은 아이가 아닌가?
“하지만 검사나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은 그런 식으로 보지 않을걸요.”
이 정도의 이슈가 되었다.
100만 원의 도박 빚이라면 용서할 수도 있겠지만 100억대 도박 빚이다. 그걸 그냥 넘어갈 사람은 없다.
“아마 조만간 지방자치단체장이 양육권 박탈 소송을 할 겁니다. 법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과 검사는 그 이유가 있는 경우 박탈 소송을 청구할 수 있거든요.”
“오오오!”
그리고 이 100억짜리 빚이 언론에 나간 이상 어렵지 않게 친권 박탈 소송에서 승리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목적하던 걸 얻게 되지요.”
채영아의 엄마의 친권은 이미 박탈된 후다.
“그러면 법원에서 법정대리인을 선임할 겁니다.”
전문 법정대리인은 아이가 벌어 오는 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아예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지도 않을 테고, 그 돈에 손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다행이지요.”
그러면 아이는 오로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고통받을 일도, 더 이상 덧없이 부모의 사랑을 갈구할 일도 없다.
‘비록 가짜 사랑이겠지만.’
아이에게는 그 가짜 사랑마저도 필요하다.
‘계획대로 되기는 했는데…….’
노형진은 이 승리마저도 가짜 같아 왠지 입안이 텁텁해졌다.
초거대 미꾸라지 한 마리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이네.”
유민택은 노형진의 손을 잡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걸 보면서 노형진은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큰일인가 보군요.”
“티가 나나?”
“어지간한 일로는 저를 부르시지 않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대룡과 전쟁하던 성화가 사라진 후로 유민택은 노형진과 자주 만나지 않았다.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만나기에는, 두 사람 다 너무나도 바빴다.
“도대체 무슨 일이신지요? 다급하게 차량까지 보내 주신 걸 보니 이만저만 큰일이 아닌 것 같은데.”
보통은 노형진에게 와 달라고 연락해서 노형진이 찾아오는 식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예 차까지 보낸 것을 보니 상당히 다급한 일이 터진 듯했다.
“노조와의 문제일세.”
“노조요?”
“그래.”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 그들을 대신해서 사 측과 싸우거나 협상하는 존재.
그들을 노조라고 한다.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는 별문제가 없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는 그랬지.”
유민택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노형진의 앞에 차를 내놓았다.
지난 며칠간 얼마나 머리를 쓴 건지,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성화를 흡수하지 않았나.”
“으음…….”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그렇다. 성화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공장들과 기업들, 사람들은 한국의 다른 기업들이 달려들어서 물어뜯었다.
당연히 각자 나눠 가졌고, 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혔던 대룡 역시 상당한 기업들을 가지고 왔다.
“어디가 문제입니까?”
“성화전자, 아니 이제는 대룡전자군. 그곳일세.”
“대룡전자요?”
“그래.”
성화전자는 한국에서도 순위권에 들 정도의 기업이었다.
성화의 주력 중 하나로, 그곳에서 나온 수익이 성화의 부실한 다른 기업들을 지탱하는 돈줄이었다.
“그곳이 왜요? 딱히 문제가 있을 이유가 없을 듯한데.”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말했듯이 그곳의 노조가 문제일세.”
“그곳의 노조라고 하면…….”
“자네가 가능하면 고용 승계를 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주인이 바뀌었다고 성화전자의 직원 전부를 바꾸는 건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다.
직원들의 숫자도 적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해직되면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공장 주변으로 이사한 사람들이 많아서, 만일 그들을 자르고 새로운 사람들을 뽑으면 주변 방세나 물가가 말 그대로 폭등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왜요?”
“그들과 연봉 협상 중이네.”
“그거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회사와 노조가 해결할 문제이지.
“터무니없는 조건을 달고 있나요?”
“하, 아예 개소리를 하고 있지.”
갑자기 짜증스러운 한탄을 내뱉는 유민택.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문제인데요? 설마 연봉을 100%씩 올려 달랍니까?”
“100%는 아니고, 30%씩 올려 달라더군.”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그도 대룡전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주식을 투자하려면 기업에 대해 잘 알아야 하니까.
“거기 연봉이 결코 적은 게 아닐 텐데요.”
평균 연봉 1억, 실수령액 7천만 원.
한국에서는 꿀을 빠는 직장으로 유명하다.
거기에 30%의 연봉 인상이면, 실수령액 기준으로 연봉이 1억이라는 소리다.
“경기가 개판인데 그게 가능합니까?”
지금 한국은 말 그대로 ‘헬조선’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상황이다.
경기 침체와 정쟁이 얽혀서,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요.”
“자네가 노조 편을 들어 주려는 경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네.”
“정확하게는 대부분의 노조가 힘이 없는 존재니까요.”
연봉 협상?
그건 진짜 일부 강성 노조의 힘일 뿐이다.
대부분의 노조라는 존재는 연봉을 올려 달라고 투쟁하기는커녕, 자기 사람을 지키기도 급급하다. 한국은 노조에 상당히 적대적이니까.
교과서에서 노동권을 요구하면 빨갱이라는 식으로 가르치고 최저임금을 올리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지경이니 말 다 한 셈이다.
“연봉이야 그렇다 쳐도, 이놈들이 더 나아가 진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 왔네.”
“터무니없는 요구라면?”
“우평리 공장을 폐쇄하고 그곳에 있는 일감을 이쪽으로 모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거야.”
“우평리 공장요? 잠깐만…… 우평리 공장이면 대룡에서 만든 곳 아닙니까?”
“그렇지.”
우평리 공장.
대룡이 아직 성화와 전쟁 중이던 때에 만들어진 공장으로, 그때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대룡전자의 지방 공장 중 하나다.
그런데 그곳은 사연이 있다.
아니, 사연이 구구절절하게 많다.
그곳은 집에서 사회에서, 학대받고 고통받아 소외되던 아이들을 받아 주는 곳이다.
고아, 가정 폭력이나 집안 사정 등으로 인해 가출한 아이 등, 그런 떠도는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기숙학교를 우평리에 만들었고, 그 아이들이 졸업한 후에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 바로 우평리 공장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요.”
“벌써 이백 명이 넘네.”
“으음…….”
불운한 환경에서 살다가 대룡에서 제공한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우평리 공장에 취직한 아이들은 보통 그들끼리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측은지심 때문에 벌인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나 마찬가지.
“거기에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들과,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사는 지역 주민들까지 합치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인원이 그 공장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지. 자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지?”
“알지요.”
한 지역에 근무자가 1천 명인 공장이 있으면 그곳의 사회적 자금의 흐름은 최소 5천 명 규모로 이루어진다.
규모가 커질수록 한 지역이 그 공장만 바라보고 살게 되어 있다.
우평리같이 작은 곳에서 공장이 빠지면 그 지역 자체의 경제가 날아간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에서는 그곳을 폐쇄하고 모든 물량을 이쪽으로 몰아오기를 요구하고 있어.”
“그래요?”
“그게 말이나 되나?”
“측은지심에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그러시는 겁니까?”
“둘 다.”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정이 불쌍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봐도, 우평리 공장은 상당히 중요한 시설이다.
“그곳은 자네도 알다시피 인건비가 싸지.”
“그렇지요.”
기업이 공짜로 자선사업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민택도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는 대신, 졸업 후 일정 기간 정해진 임금으로 근무하는 조건을 달았다.
한쪽은 당장의 생계, 다른 한쪽은 미래의 인건비를 걸고 거래를 한 셈이다.
“그런데 그쪽 물량을 이쪽 공장으로 가지고 오면? 허, 단가가 어떻게 될 것 같나?”
“터무니없어지겠지요.”
“커피포트 하나에 요즘 5만 원이면 쓸 만한 걸 살 수 있네. 그런데 연봉 1억짜리가 만든 커피포트로 수익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겠나?”
“미쳤군요.”
지금 우평리 공장은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저가의, 하지만 질 좋은 물건을 다량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본공장에 흡수되면?
“프리미엄이니 어쩌니 하면, 5만 원짜리 커피포트가 20만 원이 넘게 되겠지.”
하지만 진짜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명품 가전 브랜드가 존재하는데 원래 5만 원짜리이던 대룡 커피포트를 20만 원씩 주고 살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쪽은 생산량만 따지고 있네.”
“생산량이야 충분히 따라가겠지요.”
노형진은 한숨만 나왔다.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야. 저쪽이 워낙 요지부동이어야 말이지.”
임금도 임금이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조건을 요구할 줄은 몰랐다.
노형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에도 이랬답니까?”
“아니,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군.”
원래 대룡이 아니라 성화였을 때는 이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단다.
그래서 방심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공장을 붙잡고 거의 인질극을 벌이고 있단다.
“사람 봐 가면서 하는 거군요.”
“그래. 그래서 더 괘씸하네.”
노형진도 유민택도, 그들이 왜 저러는지 알아차렸다.
성화 시절에는 이러지 않았다. 이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곳은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또 그도 안되면 사람을 보내서 반쯤 병신 만드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룡은 아니죠.”
착한 기업이라는 대룡의 이미지 그리고 유민택의 인본주의 경영 등등 사람을 우선시하는 정책 때문에, 대룡은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만만한 거지.”
자신들이 아무리 달려들고 물어뜯어 봐야 이쪽에서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저러는 것이다.
‘인간이란 참.’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회귀 전에 정권이 바뀌었을 때도 그랬다.
국민을 사찰하고 감금하고 인생을 망가트리던 정권에서는 10년간 입 닥치고 가만히 있던 소위 자선단체나 인권 단체가, 대통령이 바뀌고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인권을 지키라면서 게거품을 물고 자기 말을 안 들어 준다고 탄핵을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을 패는 사람에게는 무서워서 꼬리를 감추다가 자신을 인정해 주니까 만만하게 보고 덤비는 것이다.
“그것 말고도 또 있네.”
“또 있다니요?”
“나는 대기업의 대표야. 나중에 새로운 공장을 만들 때 어디다 만들겠나?”
“아…….”
한쪽은 거의 연봉 1억을 받아 간다. 한쪽은 그들의 3분의 1을 받아 간다.
“거기에다 불쌍한 아이들은 계속 생기지. 사람을 뽑는 데 하등 문제가 없네.”
“하지만 본공장 쪽은 아니겠군요.”
인건비도 비싸고 여러 가지 문제점도 많다.
결정적으로 똑같이 만들어서 똑같이 팔아도 수익률은 우평리 공장이 넘사벽이다.
“미안하지만 말이야, 회사의 운영자 입장에서 보면 우평리 공장의 사람들이 쓰기는 훨씬 편해.”
월급은 실수령액 4천만 원선.
그 대신에 주변의 싼 땅을 이용해서 숙소를 공급한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시설은 모조리 대룡 관련 업체에서 공급하는 물건이다.
“거기에다 대부분 어딜 가도 이 조건으로 일 못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본청만큼 크게 요구하는 것도 없지.”
“흠…….”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그게 문제군요.”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네.”
자연스럽게 기업인 대룡은 우평리 공장을 늘리고 본청을 줄이는 정책을 쓰게 될 것이다.
성화 아래에서 수십 년간 꿀을 빨던 본청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권력을 가진 노조 입장에서는 눈이 돌아가겠군요.”
“그래.”
그래서 저들은 눈엣가시인 우평리 공장의 폐쇄를 요구하는 것이다.
“연봉이야 어찌 되었건, 우평리 공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네.”
“저쪽은 뭐랍니까?”
“연봉은 포기해도 우평리 공장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이야.”
“당연하겠죠.”
우평리 공장이 유지되는 한 대룡은 대비책이 있다. 그러니 자신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공장 설비를 옮기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우평리 공장이 사라지면 아니게 되지.’
오로지 자신들만 있다.
만일 자신들이 파업하면 대룡전자는 그대로 멈추는 것이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보면 순간의 이익을 포기하고 대체재가 될 수 있는 우평리 공장을 폐쇄하는 것이 노조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완전 귀족 노조야.”
“귀족 노조라…….”
노형진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귀족 노조라는 말을 싫어한다.
애초에 노조라는 게 노동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권 단체가 되어서 이 난리라니.
“이대로 두면 파업하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어서 말이야.”
“노조 깨기를 할 생각이십니까?”
“그럴 거면 내가 자네를 왜 부르겠나?”
“그건 그렇지요.”
노조 깨기.
기업들이 회사 내 노조를 무력화시킬 때 쓰는 방법은 많다. 이런 걸 보통 노조 깨기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파업이나 기타 노사분규에 무조건 민사소송을 해서 상대방을 자금으로 묶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노조원당 수억씩 빚이 생기기 때문에 꼼짝 못 한다.
아니면 복수 노조를 만들기도 한다.
어용 노조를 만들어 소속 사람들에게는 온갖 이익을 주고 소속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사회적으로 좋은 방법이 아니지요.”
“그래.”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정부에서는 그걸 고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사회적 평판만 무시하면 충분히 쓸 수 있다.
“웃기는군. 사회적으로 좋은 기업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꼼짝 못 한다니.”
유민택은 어깨를 으쓱했다.
“노조 깨기는 안 된다라…….”
노형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일단은 말이죠, 제가 한번 협상 자리에 나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노조와 사용자는 극단적 대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협상할 때 굳이 싸울 이유도 없는 문제를 놓고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중재를 좀 해 보지요.”
“그래 주겠나?”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엄밀하게 말하면 제삼자니까.
“자네만 믿겠네.”
그러나 유민택은 안도한 듯 노형진의 손을 꼭 잡았다.
노형진은 왠지 쓸데없는 데에 낚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