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699)
“일이 더럽게 꼬이네.”
노형진은 소학림의 사건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탁자를 탁탁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사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이를 갈면서 음험한 짓을 준비하고 있을 줄이야.
정확하게는 몰랐다기보다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걸 무서워하면 변호사를 못 하니까.
“이런 사건이 있었어?”
“네가 오기 전이니까 잘 모르겠지.”
노형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새끼가 강간하고 죽여서 시체를 버렸는데 무마되었던 사건이야.”
“살인 사건을?”
“소명자가 가진 돈이 많았으니까.”
그 정도 돈이면 충분히 무마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나서면서 그게 틀어졌어.”
소학림은 살인으로 잡혀서 8년 형을 받았고, 소명자는 마지막에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았다.
소학림이 그의 외동아들이자 유일한 후계자였으니까.
“그럼 아직 감옥에 있겠네.”
“그럴 거야.”
소학림은 아직 감옥에 있을 것이다.
“소명자는 원한을 잊지 않은 모양이고.”
“그런데 왜 일이 이 지경이 된 거야?”
“아마 돈을 벌어서 날 찍어 누르려고 한 걸걸.”
상당한 부자인 만큼, 소명자는 막대한 돈으로 노형진에게 보복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움직이면 보복한 주체가 자신이라는 게 알려질 테니 잠깐 침묵을 지켰을 테고.
“문제는 내가 그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었다는 거지.”
“아…… 그래서…….”
“그래, 더 많은 돈으로 찍어 누르기 위해 터무니없는 짓을 벌인 거야.”
“다른 방법은 생각도 안 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잖아. 평생을 그렇게 살았는데 다른 방법이 생각나겠어? 지금까지 돈에서 밀려 본 적이 없을 텐데.”
이율 500%.
웃기지만, 그게 복수를 위해 소명자가 선택한 길이었다.
“더럽게 꼬이네, 진짜.”
중국에서 나비가 날갯짓한 게 미국에서는 태풍이 된다고 하더니, 자신이 잡은 살인범이 이런 미친 괴물을 만들어 낼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걸 신고를 안 한다고? 500%면 당장 경찰이 구경만 하지는 않을 텐데. 어찌 되었건 현행법 위반이잖아.”
“해 봐야 뭐 어쩌겠어. 우리나라에서 법정이율 안 지키는 사채업자가 한두 명이야? 처벌 자체가 무척이나 낮잖아.”
“끄응…… 그건 그래.”
약간의 벌금.
그리고 민사소송을 통해 그동안 받은 돈을 돌려주는 것.
그게 전부다.
“그런데 소명자는 다른 선택을 한 거지.”
채무자를 죽이는 것.
그리고 그걸 소문을 내는 것.
“그러면 누가 신고를 하겠어?”
“와…… 악질이다.”
“악질 정도가 아니야.”
노형진은 짜증스러운 듯 소학림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마 돈도 안 받을걸.”
“응? 돈을 왜 안 받아?”
“원금을 갚으면 더 이상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
누군가 죽을 것 같으면 결국 다른 곳에서 빌려서 갚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디서 빌리든 그 이율보다는 낮을 테니까.
“하지만 원금을 갚지 못하면 이자는 계속 늘어나지.”
“그거 확실해?”
“확실해. 사건 기록을 봐. 직접 와서 돈을 수금하게 되어 있잖아. 한국의 전산 시스템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데.”
그냥 핸드폰 하나면 계좌 이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그걸 직접 와서 돈을 받는다?
인건비가 얼만데?
“뻔하지. 이자만 받는 거야. 원금을 갚으려고 하면 핑계를 대거나 선이자라는 식으로 원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거지.”
노형진은 탁자를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이기는 건 어렵지 않아. 문제는 소명자의 뒤에 있는 사람들이야.”
소명자는 언제든 중국에서 사람을 불러다가 손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복수하고 싶다고 하면 차라리 너를 노리는 게 더 빠르지 않았을까?”
“쉽지 않을걸.”
사실 노형진은 별로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기습하는 게 쉽지 않다.
“회사에는 경호 팀이 있고 아파트는 워낙 보안이 철저하니까. 다른 업무를 볼 때 습격한다고 해도, 결국 조사하면 그들이 나오게 되어 있어.”
“네가 힘이 있다는 게 문제인 거구나.”
“그래. 내가 힘이 있는 사람과 싸울 때 쓰는 방법과 비슷한 거지.”
노형진은 누군가와 싸울 때, 상대방이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덤비지 않는다.
일단 그의 힘을 빼고 나서 주변에서 그를 버렸을 때 물어뜯는다.
“나를 습격하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그 이후에는? 너도 알잖아, 내가 아무리 다른 변호사들과 사이가 안 좋다지만 변호사나 검사, 판사에 대한 공격은 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는 거.”
“그렇지.”
검사든 판사든, 결국 언젠가는 그만두고 나가서 변호사를 해야 한다.
그런 만큼 누군가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변호사를 공격하면 자신이 나갔을 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래서 검사든 판사든,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 겨우 대부분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 버린다.
자신이 미래에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아무리 소명자가 돈이 많다고 해도, 정부와 싸울 정도는 아닐 거야. 그러니 손대지 못하는 거지.”
“그래서 너를 밟아 버리고 나서 폭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그래.”
노형진은 입맛이 썼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언젠가 보복 사건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벌어지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첫 타자가 힘이 있는 사람이라니.
“그런데 바뀐 건 없잖아.”
“응?”
“아니, 소명자고 소학림이고, 바뀐 게 있나? 그냥 일이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내가 기분이 나쁜 건, 보복이 겁나거나 화가 나서가 아니야. 나 때문에 엉뚱하게 불똥이 튀어서 피해자가 발생해서 그런 거지.”
“아…….”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밟아야지.”
노형진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사실 법적으로 연좌제는 불법이다.
그걸 합법으로 해서도 안 되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진짜 아주 빡 돈단 말이지.’
대놓고 보복하겠다고 하는데, 연좌제가 불법이라고 두고 봐야 한다니.
“에효.”
노형진이 한숨을 쉬자 손채림이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위로해 주었다.
“힘내고, 우리가 할 거 하자고.”
“그래. 조사한 건 어때?”
“일단 지금 소명자의 재산은 총 1,400억이야. 그중 200억이 건물 같은 부동산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금이야.”
“더럽게 많네. 많이 늘기도 했고.”
노형진이 기억하기로는 그 정도 돈이 있지는 않았다.
즉, 자신에게 보복을 하려고 기를 쓰고 돈을 모았다는 소리다.
“여기저기 정치권에 선을 대 놓은 것도 있고, 검찰 쪽하고 상당히 친밀하게 지내고 있어.”
“검찰?”
“응.”
하긴, 살인 사건을 덮으려면 그것도 필수였을 것이다.
거기에다 자신을 밟아 버리기 위해서는 그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사실일 테고.
“국정원 쪽하고도 선이 닿은 것 같고.”
“얼씨구? 그건 또 어떻게 나온 거야?”
“염룡이가 털어 봤대.”
“허? 국정원을?”
“아니, 회사 컴퓨터 말이야.”
물론 회사 컴퓨터에 ‘이 돈은 국정원 돈’이라고 쓰여 있지는 않다.
하지만 석호국제유통이라는 회사에 정기적으로 큰돈이 들어갔다는 흔적을 찾아냈다.
“상식적으로 사채업자가 돈을 줄 이유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석호국제유통을 털어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대.”
“실패?”
“어.”
“어째서?”
“그래서 국정원이라 의심하는 거야. 알지, 유령 기업? 연 매출이 10억밖에 안 되는 회사가 컴퓨터 보안용으로 15억짜리 프로그램을 쓴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아.”
처음에는 쉽게 보고 건드렸는데, 대상의 보안 수준이 이상할 정도로 높았던 것.
알고 보니 해외에서 쓰는 15억짜리 보안 프로그램이란다.
“걸리는 거 아냐?”
“그럴 일은 없다고 하더라고. 살짝 건드렸다가 의심스러워져서 캐나다 쪽에 있는 친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건드려 본 모양이야.”
그렇다면 이쪽이 걸릴 일은 없다.
물론 국정원에서 캐나다를 조사한다면 또 모르지만.
“그 애들이 거기에 걸릴 만한 실력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화이트 해커 집단 애나머스.
그들이 그렇게 쉽게 잡힌다면 전 세계에서 그들 때문에 고민할 이유는 없다.
“그러면 날 건드리지 않는 게 말이 되는군.”
지금 국정원은 노형진이 미국의 CIA와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다.
사실 아예 거짓말도 아니고.
그러니 본격적으로 건드리기에는 상당히 부담을 느낄 것이다.
“아주 작심을 했군.”
노형진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설마 국정원까지 포섭했을 줄이야.
“지금까지 진행된 것에 대해 아는 게 있어?”
“이게 안 좋은 소식인데…….”
“응?”
“너희 가족들 주소가 새어 나간 것 같아.”
“뭐?”
노형진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가족들의 주소가 새어 나가다니?
“한 달 전쯤에 너희 가족들 열람 및 복사 기록이 있었어.”
“한 달 전쯤?”
“그래. 너희 가족들이 뭐 사정이 있어서 열람하고 복사했을 수도 있겠지만, 한꺼번에 세 곳을 다 열람해서 복사했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한 달 전…… 한 달 전이면…….”
송정한이 사건을 맡아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할 때쯤이다.
“너 열람해서 복사한 적 없지?”
“없지.”
세 곳.
자신과 부모님의 집과 누나네 집까지…….
“설마…… 세영이도?”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아. 일단 가족으로 올라가 있지 않으니까.”
“이런 개 같은.”
한 달 전, 송정한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자 그걸 알아챈 소명자가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자신이 알게 되면 복수를 막기 위해 움직일 게 분명하니까.
“다행히 당시에 네 부모님은 여행 중이셨고 네 매형도 판사가 되어 보안 대상이 되면서 손쓰지 못하게 된 거지.”
“후우.”
노형진은 끓어오르는 피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 심호흡을 했다.
‘가족들을 건드리겠다 이거지.’
그에 대한 복수를 하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가족을 건드린다?
거기에다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자기 아들이 강간 살해한 것이다.
그것도 막대한 뇌물을 뿌려서 고작 8년 형을 받았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복수를 한다?
“일단 우리가 알아낸 걸로는 그 정도야. 그들이 누구를 들여왔는지는 알 수가 없어.”
손채림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이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괜찮아?”
“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어. 내가 어째서 경호 팀을 만들었겠어?”
변호사는 결코 안전하기만 한 직업은 아니다.
특히나 새론처럼 적극적으로 거대 집단과 싸우는 곳들은 더더욱 말이다.
실제로 노형진뿐만 아니라 다른 변호사들도 보복당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머리는 차갑게, 심장은 뜨겁게.”
분노할수록 그들에게 끌려간다.
진심으로 화나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머리는 차갑게 해야 한다.
“그쪽에서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 역시 끝장을 봐야지.”
그냥 처벌을 한다?
그건 안 된다.
아예 재기 불능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그들은 끊임없이 복수하려고 할 것이다.
“더러운 거라면 나도 만만치 않게 더러운 놈이거든.”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간만에 더러운 짓 좀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