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
‘어떻게 알긴. 설치하는 걸 다 봤으니까.’
진짜로 생각도 못 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자동차의 손상 부위도 없고 테러의 증거도 없었던 것이다. 증거는 얼음뿐인데 충돌 시 충격으로 박살 났을 테고 그마저도 순식간에 녹아 버렸을 테니 결국 과속으로 인한 사고로 결론 지어질 수밖에.
“석공석, 네게 패거리가 있었나? 그런데 고작 패거리가 애새끼냐? 후후후.”
“패거리는 아냐. 그냥 증인.”
“증인?”
팡!
팡!
그 순간 어두운 창고 안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짐들 뒤에 있던 경찰들이 한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철그럭.
그걸 본 유상호는 자신도 모르게 권총을 떨궜다.
“증인이 많아서 제거하기는 힘들 거야.”
족히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같이 총이나 녹음기를 들고 있었다.
“이이익”
분노하는 유상호. 하지만 그보다 더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짓이었냐.”
그 말을 들은 유상호는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서 죽은 사람처럼 바뀌었다.
“형제들이 죽은 게…… 네놈 짓이었냐?”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유상호.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는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아…… 아버지…….”
“네놈이 저지른 짓이었단 말이냐!”
유민택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자신의 아들이 두 명이나 죽었다. 그런데 그 사건의 주범이 막내아들일 줄이야.
“왜! 왜! 왜! 왜 그랬단 말이냐!”
석공석이 마지막 순간 부른 회장님은 유상호가 아니라 유민택이었던 것이다. 진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약속된 언어였다.
“어, 어떻게…….”
“운이 좋았지.”
노형진은 트릭과 범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읽어 낸 것이다. 그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채고는 경찰과 함께 그에게 향했다. 자신이 한 일과 트릭에 대해서 다 알고 심지어 돈을 받은 액수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안 석공석은 포기하고 모든 것을 말했던 것이다. 때마침 소장을 특별송달을 통해서 직접 받은 유민택이 끼어들면서 사태가 뒤집힌 것이다.
“유상호 씨, 당신을 두 건의 살인 교사와 두 건의 납치 미수로 체포합니다.”
손이 돌려져 수갑이 채워지는 유상호. 그리고 유민택은 그런 그 모습을 보면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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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상치 못한 결말인데?”
검사 결과지와 판결문을 받아 든 노형진은 진심으로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결말에 당황했다.
“부자 관계일 가능성이 1% 이하라니…….”
즉, 절대로 아버지와 아들일 수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문제는 이게 영민, 즉 강소영의 아들의 시험 결과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영민의 시험 결과지는 99.98%로 혈족 관계, 즉 손자가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꺼번에 세 곳에 검사를 위탁해서 한 것이니 틀릴 일은 없다. 문제는 유민택과 유상호였다.
“유상호가 발악한 이유를 알겠네요. 까꿍.”
노형진은 영민에게 손을 흔들면서 웃어 줬다.
“왜?”
“아들이 아니다. 즉, 어머니가 바람피워서 낳은 남의 자식이라는 거니까요. 더군다나 그의 유상호의 엄마인 김화정은 재혼이에요. 그러니까 첫째와 둘째와는 어머니가 다를 수밖에 없죠.”
“그렇다는 건?”
“그걸 알면서도 김화자가 모른 척했다는 거죠.”
“돈 때문인 거야?”
“돈도 돈이지만 이게 터졌을 때 불어올 피바람을 생각하면 김화자도, 유상호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돈 몇 푼이 아닌 아예 유전자 검사 자체를 막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둘째 아들인 유상민의 아들, 즉 유민택의 손자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유민택은 당연히 유전자 검사를 선택할 것이다. 문제는 그의 꼼꼼한 성격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혈족인 유상호 역시 검사를 맡길 게 뻔하다는 거다. 지금도 한 곳이 아닌 세 곳에 한꺼번에 유전자 검사를 위탁한 그가 아닌가? 유상호 역시 자기 친아들로 알고 있었으니 어머니는 다르지만 아버지는 같으니까 확실한 비교 자료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식이 아닌 게 드러나게 되는 거죠.”
그걸 알고 있는 유상호와 김화자는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유전자 검사를 막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협상하지도 못한 것이다. 협상 자체도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보고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결과적으로 유상호는 후계나 상속 문제가 아니라 아예 쫓겨나야 합니다. 아니, 혼자서 쫓겨나는 건 문제가 아닐 거예요.”
“문제가 아니라고?”
“까르르르, 까꿍!”
방긋 웃는 영민이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는 노형진.
“유상호의 엄마, 그러니까 김화자는 재계 서열 11위의 성화그룹의 막내딸이죠. 유민택이 아내가 죽고 나서 정략결혼을 한 건데 만일 자기 자식도 아닌 사람의 아이를 낳고 그걸 감추고 재산을 빼돌리려고 한다고 생각해 봐요.”
“아!”
“맞아요. 성화그룹이 재계 11위, 대룡그룹은 재계 9위. 하지만 그 차이는 근소. 두 그룹의 전쟁이죠.”
“그럼 이제는…….”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성화그룹이 대룡그룹을 집어삼키려고 한 것도 엄청난 문제인데 그 과정에서 대룡그룹의 정당한 후계자 두 명을 죽여 버렸다.
“성화와 대룡은 이제 같은 하늘 아래에서 못 살아요.”
아마 둘 중 하나가 쓰러지는 순간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벌써 시작되었다. 사실상 은퇴를 생각하며 조용히 지내던 유민택이 복귀를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경영을 하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 공격 대상은 당연히 성화그룹일 것이다.
“남은 것은 영민뿐이죠, 결국.”
비공식적으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유민택이 다음 세대에는 성화그룹이 없는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했으니 아마도 그가 전쟁을 진두지휘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세대라는 건.
“저기 오네요.”
시커먼 차들이 줄줄이 온다. 드디어 본가로 가는 날이 된 것이다.
“잘하는 짓일까?”
“잘될 거예요. 실질적으로 미래의 대룡의 유일한 후계자인데 설마 막 대하겠습니까?”
엄마 품에서 바둥거리는 영민이를 보면서 씩 웃는 노형진.
“나는 어떻게 될까?”
“뭐, 잘해 주시겠죠. 유일한 후계자의 엄마인 데다가 실질적으로 유일하게 남은 혈족이잖아요.”
심지어 유일한 며느리이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면 혹시나 유민택이 쓰러지게 된다면 대룡과 성화의 싸움을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은 그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민이가 그 정도까지 크려면 아직도 수십 년이 남았으니 말이다.
“잘 가르치세요. 자기 아버지 따라서 멍청한 짓 하게 만들지 말고.”
“하지만 그 멍청한 짓 덕분에 영민이가 태어났는걸.”
“그런가요?”
하긴, 그 멍청한 짓 덕분에 영민이가 태어났고 그 덕분에 대룡그룹의 숨통이 트였다.
‘어쩌면 대룡이 10년 후 망한 게 단순히 이상호의 무능 탓만인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
대룡이 망하면서 대룡의 자산과 기업들은 대부분 성화그룹에게 헐값에 판매되었다. 그리고 그로써 성화그룹은 재계 서열 3위로 한 번에 격상되었다. 그때는 단순히 무능함 때문인 줄 알았는데 지금 사태를 보면 단순한 무능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걱정 마. 최소한 여자한테 잘하는 법은 알려 줄게.”
시커먼 차들이 호텔 앞으로 와서 멈췄다. 그러고는 그녀 앞에서 차의 뒷문이 열렸고 다른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그녀의 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잘 가요, 누나.”
“고마워.”
“별말씀을요. 나중에 성공해도 저 모른 척하기 없기예요.”
“그럴 리가, 호호호.”
마지막 인사를 끝낸 그녀가 차를 타고 떠났고 그걸 보고 노형진은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사상 가장 힘든 친자 확인 소송이었어. 진짜 변호사 하지 말고 다른 거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였다.
스포트라이트(1)
“너무했나?”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수능 만점자 때문이었다. 물론 매년 수능 만점자가 나오기 때문에 발칵 뒤집힐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뒤집힌 것은 이번 수능 만점자가 고작 중학교 2학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몇 개 틀릴걸.”
원래 알고 있던 문제들인 데다가 자신의 특수 능력인 사이코메트리를 이용하여 방석, 볼펜, 시계, 심지어 지우개까지 과목별로 전용 커닝 페이퍼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수능을 봤는데 그게 시끄러워진 것이다.
“뭐, 이제는 떠날 거니 상관없지.”
어차피 이 난리를 치다가 한 달 후면 조용해질 게 뻔하기 때문에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당황한 건 그의 아버지였다. 검정고시를 한 번에 두 개 다 통과했다는 걸 보고 머리가 뛰어나다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수능 성적이 만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전혀 엉뚱한 문제로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다닌 거냐?”
“그냥 작은 인연이죠.”
“도대체 작은 인연이라는 게 어느 정도이기에…….”
대룡그룹에서 무려 5천만 원이나 보내왔다. 축하금이라고 또한 대학 졸업 때까지 매년 3천만 원씩 학자금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물론 대학은 안 가서 그건 흐지부지되었지만
‘좀 과한데?’
아마도 강소영에게서 사정을 들은 유민택의 호의일 것이다. 손자를 찾아 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구해 줬으니 말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어차피 공부하러 가게 되면 돈이 필요하다. 부모님이 그 정도 감당할 능력이 되지만 그렇다고 남이 주는 걸 거부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냥 받아요.”
“하지만 너무 거금이라…….”
“나중에 그만큼 도와주면 됩니다.”
“자신 있는 게냐?”
“제가 언제 허튼소리 했나요?”
그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려서부터 말도 안 되는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 아들이었다.
“그래, 그러자꾸나.”
결국 그건 받는 걸로 결정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앞으로 1년간 힘든 시간이 닥쳐올 것이다.
기숙 학원. 말 그대로 기숙사제로 운영되는 학원들이다. 노형진이 선택한 것은 사법시험 수험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기숙 학원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1년을 지내면 35학점을 취득할 수 있고 그럼 자신은 당당하게 사법시험을 치를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가 방이다.”
“감사합니다.”
카드 키를 받고 들어가는 붉은색의 오래된 건물. 영화에도 몇 번이나 나온 그 유명한 하버드의 구 기숙사와 비슷한 외형이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원하는 곳.
“아, 힘들다.”
털썩, 방에 있는 침대에 주저앉는 노형진.
“1년이라…….”
길지는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왠지 좁은 방을 보고 있자 짜증이 몰려왔다.
“아, 갑자기 짜증.”
지난 생에도 미친 듯이 공부만 하다가 죽은 것 같은데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하니 왠지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풀 수도 없고.”
지금의 나이는 열여섯 살. 미성년자다. 술도 안 되고 담배도 안 된다. 물론 하려면 못 할 건 없지만 법률계 쪽에 갈 예정인데 사소한 오점이라도 남기면 곤란하다.
‘여친이라도 사귈 걸 그랬나. 아니야, 그것도 왠지 위험해.’
한창 여자가 궁금하고 성욕이 왕성해지기 시작하는 나이인 열여섯 살. 그런데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노형진이다 보니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는 심정으로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일을 저지르면 또 기록에 남을 수도 있다.
“젠장, 면허도 못 따니 나가지도 못하잖아.”
기숙 학원이라고 해서 시내에 있는 게 아니다. 상당히 깊은 시골에 있다. 주변에 놀거리가 많으면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시내, 아니 읍내로 나가려면 하루에 두 번 있는 버스를 타야 한다. 물론 자가용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나가지만 당장 노형진은 운전면허를 딸 나이가 아니다.
“아, 미친 듯이 공부해서 한 번에 붙어야지, 더러워서 진짜.”
다 아는 걸 다시 해야 한다는 것에 짜증을 부릴 때쯤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복장을 보니 껄렁껄렁한 것이 그다지 공부할 타입은 아니었다.
“안녕.”
이 시즌에 짐 들고 이 안으로 들어온다는 건 당연하게도 룸메이트라는 뜻이기 때문에 노형진은 애써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의 반응이었다. 물론 상대방이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어색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건 예상했다. 그런데 그 반응은 예상하고 많이 달랐다.
“이런, 젠장! 이런 애송이가 룸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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