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0)
애초에 손해배상에는 명확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형진이 봤을 때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배상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상대방도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재판장님,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끝이 없습니다. 분명 불법행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작위는 분명 존재합니다. 국가는 어떻게든 국민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국민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데 국민 중 누가 국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지극히 추상적인 말이다. 노형진은 그걸 보고 상황을 알아차렸다.
‘저거 개새끼네.’
개새끼. 그건 노형진이 사기꾼에 가까운 변호사들을 욕할 때 쓰는 말이다. 그들은 이 사건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의뢰인에게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고는 변호사비를 받고 대충 일하는 것이다.
승소 비용은 못 받지만 그 변호사비 역시 적은 게 아니다 보니 짭짤하게 수익이 남아, 그런 짓을 하는 변호사들이 은근히 많았다.
‘길게 끌 필요도 없겠군.’
이럴 때는 저쪽에서 공격해 오는 걸 기다릴 이유가 없다. 저런 변호사들의 대부분이 공격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준비해 오지 않다 보니 그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미리 공격해서 그 밑천을 드러내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었다.
“그렇다면 피고 측에게 묻겠습니다. 원고 측, 그러니까 이 나라의 정부가 하지 못한 부작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여 주십시오.”
“네?”
“부작위가 뭔지 정확하게 말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부작위란 뭔가를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 그걸 하지 않는 걸 말한다. 그런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국가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하지 않았지요. 하지 않은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요?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국가에서는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가 경고였고 두 번째 시도가 여행 티켓 취소였습니다. 세 번째에서는 전용기를 보내서 돌아오라고 했지요. 이 이상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거야…….”
사실 이 정도만 되어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군대를 보내서 선교사들을 지켜 줬어야지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군대가 타국에 무단으로 진입하면 실질적으로 전쟁 상태에 들어간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시겠나요?”
“…….”
이유야 어찌 되었건 한 나라의 군인이 다른 나라에 진입하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 설사 그것이 구출 작전같이 상식적으로 인정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물며 이슬람 국가에 포교하러 가는 사람들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한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은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국가이며 국교는 이슬람교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포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거야…….”
바보가 아니고서야 국교가 있는 나라에서 포교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다.
“해당 국가에 대한 명백한 내정간섭을 저지른 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거야…….”
국교가 있는 나라란 말 그대로 그 종교가 그 나라의 중심이라는 뜻. 그걸 없애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음…….”
그쪽 변호사는 한참 생각하고 나서야 간신히 대답했다.
“내정간섭이란 말 그대로 국가 간의 분쟁입니다. 우리 같은 약소한 종교 집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네, 말씀하신 대로 내정간섭이라는 것은 국가 간 분쟁입니다. 그리고 작은 사설 집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요.”
의외로 순순히 그 변호사의 말에 수긍하는 노형진. 그러나 그게 상대방을 편들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말씀하신 대로 저쪽은 작은 집단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공인을 받지 않은 개별적 사설 집단이 타 국가에 무력 및 기타 심리 전단을 동원하여 분쟁을 유발시키는 경우, 그것을 일반적으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네?”
“테러라고 하지요, 아마?”
상대방의 변호사는 등골이 오싹했다.
‘당했다.’
지금까지 절묘하게 방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들이 테러와 연관되고 있었다. 물론 과거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지극히 문제가 될 일이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만민구원파는 얼마 전에도 테러 행위를 했고 여전히 그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닙니까?”
“…….”
이게 문제다. 미군에 대한 습격 미수 사건으로 인해 만민구원파는 여전히 테러 단체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종교 활동을 테러로 몰고 가다니.
“그건 비약입니다! 그건 단순한 종교 활동이었단 말입니다!”
“만일 누군가 만민구원파의 기도 시간에 들이닥쳐서 불경을 왼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단순한 종교 활동이라고 놔둘 겁니까?”
“그거랑 이게 같습니까?”
“그럼 뭐가 다르다는 거지요? 그쪽도 이슬람 국가로, 실질적으로 전 영토가 이슬람 영역권입니다. 영역권에 타 종교 집단이 들어가서 포교하는 게 누군가가 당신들의 기도 시간에 들어와서 불경을 외우는 거랑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거기는 남의 영토고!”
“네! 남의 영토죠! 그런데 왜 그 나라에 대한민국의 법을 요구합니까? 그 나라에서는 포교 활동이 불법인 거 몰라요?”
방어하는 것마다 막히자 변호사는 할 말이 없었다.
“자, 자! 그만! 이제 그만들 하시고!”
심지어 판사도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끝낼 정도였다.
“피고 측, 이거 아무리 말해도 말도 안 되는 사항인 거 아시죠?”
“그거야…….”
“이 사건은 기각합니다.”
“……!”
패소도 아닌 기각이라는 말에 피고 측 변호사는 눈을 크게 떴다.
“재판장님!”
“다음 재판, 시작하겠습니다.”
“이건 종교 탄압입니다!”
노형진은 코웃음이 나왔다.
‘자기들이 조금만 불리하면 종교 탄압이라지?’
애초에 이건은 성립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건이었다. 단지 변호사가 돈 욕심을 낸 것뿐이다. 그러니 그 결과는 애초부터 뻔했다.
“재판장님!”
“피고 측, 퇴정하지 않으면 법정 소란 죄로 체포하겠습니다.”
그들이 싸우든 말든 노형진은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곳에는 담당자가 서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랄 게 있나요, 애초에 이건 성립되지 않는 거였는데.”
“그러기는 하지만요.”
원래 역사에서도 이건 기각되었다. 만구키드가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상권 청구.
“그 부분은 좀 문제가 됩니다. 아무래도 판례가 없으니까요.”
“음…….”
과연 국가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쓴 돈이 구상권의 청구 대상이 될 것인가는 판례가 없다. 그래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니 원래는 청구도 안 했겠지.’
확실하게 돈이 된다면 아무리 만구키드들이 노력한다 해도 청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데다 만구파의 로비로 인해 취소되었다.
“뭐, 그 부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군요.”
“어떤?”
“‘과연 만구파에서 줄까?’라는 거죠.”
걱정스럽게 말하는 담당자.
하긴 설사 민사를 한다고 해도 만구파에서 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정부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뭐, 이기기만 한다면 확실하게 받아 낼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하하하하.”
하지만 노형진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자신이 있었다.
“이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기기만 하면.”
다만 그게 확실하지 않을 뿐이었다.
공공의 목적이란 (1)
“역시 저 녀석들이네.”
“그렇지요?”
노형진은 재판정으로 출정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번 사건은 아마도 만구파의 그 선지자라는 인간이 독단으로 한 모양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게 아닌 것이 확실했다.
“짜증 나는 새끼들.”
함께 변호하게 된 송정한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들의 눈앞에는 청계의 변호사들이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겁니다.”
지난번 사건은 그 선지자라는 놈이 돈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한 소송인 반면 이번에는 청계가 스스로 방어하기 위한 소송이다.
청계의 입장에서는 사이가 좀 틀어졌다 해도 여전히 쓸 만한 패 중 하나인 만민구원파가 무너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대표님이 직접 나서시다니 의외네요.”
“금액도 금액이고 의뢰인이 특별하잖나.”
“하긴요.”
다른 곳도 아닌 정부다. 그것도 금액이 600억짜리인 사건.
“이번에 지면 우리가 좀 고달플 거야.”
“그거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물론 노형진은 질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청계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 새론의 애송이들 아닌가?”
“애송이?”
“그래, 애송이들이지. 후후후, 세상 물정 모르는.”
청계는 점점 새론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그들을 비하하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쓰는 단어가 애송이였다.
기존의 질서 중 그릇된 것을 타파하고 공평한 법률 서비스를 지원하는 특성상 새론이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소속된 변호사들이 대부분 애송이라 불릴 정도로 신입이거나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인 데다 새론의 3대 중추 중 한 명인 노형진 역시 활동 기간이 무척이나 짧은 애송이급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새론을 애송이라고 놀리고는 했다. 물론 노형진은 그 말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
“뭐, 그래도 애송이는 발전 가능성이라도 있지요. 요즘 경찰서 정모는 잘하고 계십니까?”
“뭐? 이 새끼가!”
“아니, 제가 뭐라고 했나요?”
노형진 역시 그들을 비웃고는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경찰서 정모다. 그들의 수익 모델이 대부분 가진 자와 범죄자들의 보호에 있다 보니 일단 사건이 들어오면 경찰서로 매일같이 출근하는 탓이다.
“집사 노릇하랴 변호사 노릇하랴 힘드실 텐데 말이지요.”
“뭐라고?”
“진짜 죽을래?”
다른 말에는 냉철하게 버티던 그들도 집사 변호사라는 말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집사 변호사란 말 그대로 감옥에 있는 부자들이나 범죄자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시다바리나 하는 변호사를 뜻하는 것인데,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도 못하는 쓰레기들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런 사건이 많이 들어오는 청계의 특성상 그때마다 청계에서는 당연히 집사 변호사들을 보내 그들의 생활을 보조하기에 집사 변호사 노릇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청계 출신들이 그에 대해 심각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멍청하기는.’
노형진이 그들을 비웃는 건 집사 변호사를 해서가 아니다.
어찌 되었건 그 노릇도 법을 이용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사 그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의뢰인의 이득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게 변호사다. 그런데 그에 발끈한다는 건 그들 자신조차도 부끄러워한다는 것.
‘그런 정신으로 무슨.’
노형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고 송정한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대신 마무리를 지었다.
“이번에는 쉽게 못 끝날 겁니다.”
“과연 너희들이 우리를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송정한, 너는 그만두고 나서부터 점점 간땡이가 부어 가는 것 같다?”
“저, 원래 간땡이 부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쯧쯧, 저러다가 막판에 후회하지.”
그중 한 명이 비웃는 얼굴로 송정한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송정한은 그들이 들어간 입구를 바라보다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분노를 삼켰다.
“저 녀석은?”
“서울중앙지법 출신이다. 아무래도 제대로 준비해 온 모양인데?”
“좋지 않군요.”
재판 장소는 서울중앙지법. 그리고 상대방은 그곳 출신.
“대놓고 전관이군요.”
‘그래야 하니까.’
“하긴.”
무려 600억이다. 그러니 저쪽에서도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들어가도록 하지. 이딴 재판, 빨리 끝내고 싶군.”
“그러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방을 들었다.
“한번 기대해 보도록 할까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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