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06)
“안녕하세요. 노형진입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이혜선이라고 해요.”
“말씀 낮추세요.”
“정식으로 사건을 맡긴 상황이니까 그럴 수는 없죠. 사건이 끝나면 그때 낮출게요.”
이혜선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 갔다.
확실히 들은 것처럼 마냥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이 지친 것 같네.’
딱 봐도 상당히 지친 듯한 그녀의 모습에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아마도 지금 그녀가 버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손채림일 것이다.
“채림이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남편이 저를 이용할 거라고요?”
“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요. 나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아니, 아마 맞을 거예요.”
이혜선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그녀가 아는 남편이라면 그러고도 남으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녀는 힘겹게 말했다.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지금은 집에서도 각방을 쓰고 있어요. 부딪히지도 않고 있고요.”
“대화는요?”
“계속 말을 걸고는 있지만, 제가 대꾸하지 않고 있지요.”
“역시나 그렇군요.”
“역시?”
노형진의 말에 이혜선과 손채림은 어리둥절했다.
역시라니?
“정작 집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죠, 손하균 씨가?”
“네.”
“아마 그 말을 건다는 것도, 톡이나 문자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거나 하는 거 아닌가요?”
“잠깐만요…….”
이혜선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통 그런 식으로 연락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집에 오면 별말이 없다.
각방을 쓰는 것도 뭐라고 하지 않고 말이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문제가 되지요. 제가 말한 세 가지 모두 기록이 남는 방식이니까요.”
순간 손채림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전화 기록을 뽑아서 제출하면, 아마 재판부는 손하균 씨는 관계를 복원하려고 노력했는데 네 어머니가 철저하게 무시한 거라고 판단할 거야. 당연히 그 책임은 어머님이 지시게 되는 거지.”
“그…….”
설마 일상생활에서조차 그럴 줄은 몰랐던 이혜선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얼마나 그랬나요?”
“6개월쯤요.”
“그 전에는 대화가 없었고요?”
“네.”
“혹시 이혼 결심을 한 건?”
“3개월 전이에요.”
“아마 그러면, 그도 이혼할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6개월 전부터 그럴 이유가 없다.
“설마…….”
“그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요. 그거 말고 다른 건 또 뭐가 있나요?”
“뜬금없이 꽃이나 선물을 사 주거나 하는…….”
“신용카드로 말이지요.”
노형진의 말에 다들 부들부들 떨었다.
모두 다 기록이 남는 행동들이다.
“어머님은 보통 집에 계시지요?”
“네, 아니면 바깥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그걸 증명해 줄 기록은 없고요?”
“…….”
이혜선의 대답이 없자, 노형진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이 상황에서 내연남이라도 하나 나타나면 상황은 끝인 건데.”
“내연남? 우리 엄마한테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노형진의 머릿속에 뭔가 스쳤다.
“혹시 카드 쓰십니까?”
“요즘 카드를 쓰지 않는 사람도 있나요?”
“잠깐 주시겠습니까?”
이혜선은 노형진에게 군말 없이 카드를 건넸다.
그걸 받아 든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거, 어머님 카드 아니죠?”
“네?”
“이 카드 말입니다. 어머님 명의의 카드가 아니죠?”
“그건 그렇죠. 저는 일단 무직이니까.”
당연히 남편이 만들어 온, 남편 명의의 카드다.
노형진은 카드를 이리저리 뒤집다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 카드 사용 내역은 보신 적 있습니까?”
“전혀요.”
볼 이유가 없다.
자신이 사용하지만, 대금을 갚는 건 남편이니.
“사용 내역 알림도 손하균 씨 쪽으로 문자가 날아가고요?”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있지요, 아주 큰 문제가.”
노형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고문학 팀장님한테 이 카드 사용 내역 좀 뽑아 달라고 해 봐.”
“응? 아니, 왜?”
“안 한 걸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잖아. 한 걸 증명하는 건 쉽고.”
“무슨 말이야?”
“일단 알아봐 달라고 해. 급한 거니까 가능하면 빨리.”
손채림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카드를 들고 나갔다.
노형진의 머릿속에 복잡한 계획이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부인이 남편의 카드를 쓰는 거야 흔한 일이기는 하지만…….
“카드도 조작했다고 생각하나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카드는 언제나 제가 가지고 다니는데요.”
“카드가 수중에 없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죠.”
노형진은 착잡한 기분으로 말했다.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기다리는 동안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도대체 손하균 씨는 절 왜 그렇게 싫어합니까?”
손하균은 노형진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사실 같은 세상을 살아왔다고 보기에도 세대 차이가 있다.
그런데 자신을 이상하게 싫어한다.
물론 지금이야 자신이 싫어할 만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아…….”
이혜선은 왠지 묘한 표정이 되었다.
“어릴 적에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슨 큰 실수라도 했나요? 하지만 애초에 저희 집하고는 왕래도 없었는데요.”
“형진 씨 잘못은 아닌데요…….”
“네?”
자신이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굴어서, 어릴 때 그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자기 잘못은 아니라니?
“그러면요? 혹시 아시나요?”
“형진 씨 아버지와 악연이라고 해야 하나요?”
“악연?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시는데요.”
알았다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말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손하균이라는 존재를 아버지는 모른다.
“그 사람하고 형진 씨 아버님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에요.”
“그런가요? 거기서 싸운 건가요? 하지만 그런 거라면…….”
아버지가 모른 척한 것일까?
하지만 아버지는 모른 척한 거라고 하기에는, 진짜로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싸운 거라고 보기는 힘들죠. 학생회장 후보였을 뿐이니까.”
“네?”
“아버님이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 한 건 알죠?”
“네.”
“그러면 그때 선거에서 경쟁하던 사람이 누군지, 혹시 말하던가요?”
“아니, 누가 그런 걸 기억하는…….”
노형진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학교인 자신에 대한 묘한 증오심.
“설마?”
“남편이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패배한 사건이었죠. 나도 들은 거지만.”
“허?”
학생회장 선거에 두 명의 후보가 나갔다.
학교 1등에 선생님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면서 등장한 손하균과, 그다지 주목받은 적도 없는데 자의로 출마한 노형진의 아버지 노문성.
“그때까지 남편은 한 번도 패배란 걸 겪어 본 적이 없었어요.”
언제나 1등. 언제나 최고.
모두가 자신의 아래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그런 게 아니니까…….”
학생회장은 성적순으로 뽑는 게 아니다.
물론 선생님들은 성적순으로 뽑는 걸 좋아하겠지만, 학생들은 훨씬 친화력이 있는 노문성을 선택했다.
애초에 손하균은 학생회장이 될 수가 없었다. 대놓고 주변 사람들을 천민 취급하는 손하균을 좋아하는 학생은 없었으니까.
투표 결과도 근소한 차이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패배.
손하균은 노문성이 얻은 표의 10분의 1도 채 얻지 못하고 무참하게 패배했다.
어지간하면 선생들이 뒤집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패배였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자기를 패배시켜서 제가 싫다 이건가요?”
“그냥 패배가 아니에요. 전교생 앞에서 창피를 준 거나 마찬가지였지요.”
“아니, 뭐 거창한 것도 아니고 고작 학생회장 선거에서 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형진 씨에게는 고작이겠지만, 그에게는 인생이 바뀐 일이었지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패배했다는 것.
그건 손하균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못난 놈들은 재능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고 무시하게 된, 가장 큰 일이었다.
“어이가 없군요.”
수십 년을 자신을 미워한 이유가 고작 그거라니.
“그런데 손하균 씨가 그걸 이야기해 주던가요?”
“그럴 리가요. 그가 자신의 창피한 부분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었다면 제가 이혼할 리가 없지요.”
“그러면?”
“동창회에서 들었어요. 부부 동반 모임이었지요.”
“끄응,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이야기 하시지 않던데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간 동창회였으니까요.”
그곳에서 자신이 패배한 과거가 잠시 화제가 되었다는 이유로, 손하균은 다시는 동창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또 하필이면 그 동창회는 노형진의 아버지가 나가지 않았던 때였고.
그러니 아버지 역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노형진은 소름이 돋았다.
고등학교 때 선거에서 한 번 패배했다는 이유로 그 자녀까지 증오하다니.
‘제대로 미친놈이군.’
그것 말고는 그를 표현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학교에서도 중간밖에 안 가던 노문성 씨가 자신을 꺾고 승리한다는 게, 그는 용서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저를 싫어한다고요?”
“그의 입장에서는 대를 이어서 자신에게 덤비는 꼴이니까요.”
하물며 그때마다 지고 있다.
‘끄응…….’
오랜 시간을 고민한 이유가 고작 아버지의 학생회장 기록 때문이라니.
‘이건 뭐, 원죄도 아니고.’
노형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회귀 전에 엮였으면 큰일 날 뻔했군.’
회귀 전에는 그나마 직접적으로 연결된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사건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엮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밟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그때의 자신은 버티지 못했을 테고.
“미안해요.”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노형진은 탐탁잖은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이 미친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앞이 캄캄했다.
때마침 들어오는 손채림.
“좀 걸릴 거래.”
“그래.”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했어?”
“나를 왜 싫어하느냐에 대한 이야기.”
“우리 아빠? 아니, 그 인간이?”
“응.”
“왜 그런 건데?”
“학생회장 선거 때문이라는데.”
“응?”
이혜선은 다시 설명해 줬고, 손채림조차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 되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딸의 친구를 그렇게 혐오했단 말인가?
“진짜 미친놈 아냐?”
“그래서 더 위험한 거야.”
머리가 좋고 원한을 아주 오래 기억하며, 그걸 복수할 수 있는 순간까지 참는 인내력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 녀석이라면 상대방을 천천히 함정으로 몰아넣을 거야.”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 뻔했다.
“도대체 몇 개의 함정이 준비되어 있을지……. 답이 안 보이는군.”
노형진은 역시 이번 사건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