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1)
“개정합니다.”
드디어 시작된 재판. 노형진은 재판정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생각보다 많잖아?’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언론에서 관심을 가질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재판정을 꽉 메우고 있었다.
‘하긴.’
희대의 병신 삽질로 인해서 무려 600억이나 되는 돈을 줘야 했다. 게다가 거기에 들어간 예산은 그것보다 훨씬 많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피고 측은 국가 단체도 아니고 인권단체도 아니고 선교 단체입니다. 즉, 종교 단체라는 것입니다. 피고 측은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는 등 국가의 안전 권고를 무시한 채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인질로 사로잡혀 무려 600억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정부가 대신 주고 나서야 풀려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조차 아니한 채로 지금도 자신의 정당성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산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 예산이란 국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에 따른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산에 의한 혜택은 극히 일부 종교 단체가 아닌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숭고한 돈이 피고 측의 무단 행동으로 인하여 다른 집단도 아닌 테러 단체에 지급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 측은 반성도 하지 아니한 채로 얼마 전에도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등 그 뻔뻔함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피고들은 명백하게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상황이므로 그 피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노형진의 말에 청계 측 변호인은 담담하게 일어나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국가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집단입니다. 또한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국민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소방관이 불을 껐다고 그 피해자에게 돈을 받나요? 아니면 경찰이 도둑을 잡았다고 피해자에게서 돈을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그건 그들이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에게 구조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국가가 자신의 임무를 방치하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동입니다. 피고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신념을 행하던 중에 어쩌다 일이 잘못되었을 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청계의 변론.
‘그럴듯하기는 하네.’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변호, 아니 변명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들의 말에는 오류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는 것.
“더군다나 피고 측은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서 떠난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그건 아픈 사람을 방치한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행동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저 순수한 마음에 아픈 사람들을 구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던 노형진은 한숨이 나왔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저들은 허황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여행 목적은 누가 봐도 의료 지원이 아닌 선교였습니다.”
“의료 지원이 맞습니다. 그들은 해당 지역의 아픈 아이들을 위해서 명백하게 의료 지원을 간 것입니다.”
“그래요?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이에 해당 인원들이 의료 지원을 갔다는 증거를 제출합니다.”
그들의 손을 떠나서 판사와 노형진에게 전달되는 서류. 그 안에는 그들이 가지고 갔다고 하는 여러 가지 의약품들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니나 다를까, 꼼수가 뻔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원래도 그랬지, 아마?’
원래 역사에서도 저들은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의료 지원이었다면서 온갖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말에 속아서 의료 지원을 간 사람들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실상은 너무나 뻔했다.
“보다시피 가지고 간 의약품의 종류만 해도 무려 40종이나 됩니다.”
청계의 변호사는 그걸 보여 주면서 말했다.
확실히 목록에는 여러 가지 목록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노형진이 그런 뻔한 말에 속을 리가 없었다.
“재판장님, 이 약의 정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 약사님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약사?”
“약사라니?”
뜬금없는 말에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약사라니? 이 상황에서 왜 약사가 등장한단 말인가?
하지만 노형진은 애초에 저들이 어떤 방어 전략을 가지고 나올지 알고 있었기에 그걸 깨기 위해서 약사를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설마 바로 그 자리에서 약사가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한 청계에서는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음…… 약사라…….”
얼마나 전격적이고 의외였는지 판사조차 당황한 얼굴. 하지만 그걸 막을 이유는 없었기에 판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정합니다.”
“약사님,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그 말에 앞으로 나오는 한 남자. 그는 하얀 약사 가운을 입은 채로 증인 선서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에…… 권만성이라고 합니다. 여기 법원 앞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증인은 저희에 대해서 아십니까?”
“전혀요. 그냥 오늘 아침에 노 변호사님이 오셔서 증언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시죠?”
“모르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죠.”
“좋습니다. 그럼 증인께서는 이 약들을 아십니까?”
그 약들을 보던 약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 아는 약들입니다.”
“그럼 이걸 목적에 따라서 분류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지요.”
종이를 받아 든 약사는 하나씩 약들을 분류하기 시작했고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서 약들은 모조리 꼬리표가 붙은 채로 분류되었다.
“총 네 개의 집단으로 분류하셨군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에…… 이쪽은 소화제입니다. 말 그대로 소화를 촉진시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쪽은 진통제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지사제입니다.”
“지사제요? 지사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아, 보통은 설사약이라고 하죠. 어떤 이유에서든 발생한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입니다.”
“아, 설사약이군요. 그럼 다음은?”
“이쪽은 소독약 계열입니다.”
“소독약 계열요?”
“네, 일종의 상처에 바르는 약들입니다. 빨간약이라고 부르는 요오드 용액부터 알코올 같은 것들이죠. 뭐, 요즘은 바르는 약도 종류가 많아서 한꺼번에 묶었습니다.”
종류별로 분류한 목록들. 노형진은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약사에게 대놓고 물어봤다.
“그래서요. 이 약들은 어떤 겁니까?”
“일반적으로 약국에서 살 수 있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살 수 있는 것?”
“네,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죠. 뭐, 그러다 보니 성능이 아주 좋은 건 아닙니다만.”
“그럼 이걸로 해외 취약 지역에 의료봉사를 갈 수 있을까요?”
“그거야…….”
힐끗 피고 측을 바라보던 약사는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될지도요?”
“될지도?”
“일단 한국인들이야 약을 많이 먹어서 이 약들의 효과가 잘 듣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도라면…….”
“그렇다면 증인의 말은 그리 확실하지는 않을 정도라는 거네요.”
잠시 고민하던 그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법원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인 만큼 증인석이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제가 아프가니스탄에 가 본 적은 없습니다만 이걸로 의료봉사는 힘들죠. 항생제도 아니고. 그나마 쓸 만한 건 지사제랑 소독약 정도겠네요.”
그 말에 노형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목록을 들어 올렸다.
“보다시피 피고 측에 제출한 약들의 목록은 이름만 많을 뿐이지, 그 목적은 총 네 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소화제와 두통약입니다. 애초에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아사자까지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에서 많이 먹어 소화가 되지 않는 경우에 먹을 소화제가 의료 구호품으로 필요하겠습니까? 또 두통과 같은 통증은 단순히 순간적으로, 단시간에만 효과를 거둘 진통제를 먹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지역은 기본적으로 질병이 만연하니 그에 관련된 항생제를 처방받거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이것들 중 그 땅에서 시급히 필요한 종류는 지사제와 소독약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과연 의료봉사가 가능한지 궁금하군요. 의료봉사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의사 한 명은 데리고 가야 하며 최소한 상당량의 항생제는 가지고 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건 의료봉사가 아닌 선교 활동이 목적이었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약품들입니다.”
맞다. 의료봉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항생제다.
한국에서는 돈 몇천 원이면 맞을 수 있는 항생제지만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은 그게 없어서 사람이 죽으니까.
“이상으로 질문을 끝내겠습니다.”
노형진이 물러나자 증인에게 다가가는 청계.
“증인! 아까 말한 이 정도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건 무슨 뜻이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한국 사람들은 약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약에 대한 내성이 꽤나 높습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그렇게 약을 많이 쓰는 지역이 아니니 내성이 적어서 좀 더 쉽게 약이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릅니다.”
마치 그 말을 구원의 동아줄인 양 매달리는 청계 측 변호사.
“그 말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료봉사가 가능하다는 거죠?”
“그거야 그렇지만…….”
“이상입니다.”
그 한마디로 끝내 버리는 청계.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다급하기는 한 모양인데.’
물론 청계가 저렇게 다급한 건 저들이 실수를 해서이다.
보통 이런 방어 전략은 다음 재판 때에나 깨지기 마련이다. 가령 이번 같은 경우, 청계에서 이런 식으로 방어하겠다며 변론하면 그다음 재판에서 노형진이 새로 의사를 준비해 이에 대한 반박을 하기 마련이다. 그게 일반적인 재판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들이 방어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관련 증인을 미리 준비하여 그걸 깨 버렸다.
즉, 노형진이 자신들의 전략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는 걸 뜻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그런 경험을 당해 보지 않은 그들로서는 당황한 나머지 어이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꼴이지.’
미국은 그런 거 없다. 상대방이 뭐라고 할 것인가까지 미리 가능성을 따지고 예측 방어를 해 간다.
상대방의 대응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나가면 상대방은 이렇게 나올 거라는 예상을 하고 그걸 다시 깨거나 그걸 이용해서 교묘하게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이는 심리전까지 쓴다. 마치 바둑, 장기, 체스 등에서 몇 수 앞을 내다보듯이…….
그러니까 그냥 상대방이 주는 것만 반박하는 게 아닌 거다. 그래서 그런지 청계 측 변호사들은 서로 이야기하면서 눈치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물론 노형진은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뻔하게 알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 재판한 건 아니지만 청계, 아니 만구파는 상당 기간 언론 플레이를 했고 그 결과, 그 사건을 기준으로 도리어 세력을 몇 배나 확장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는 짓거리로 봐서는 그 선지자라는 놈의 작품은 아니야.’
선지자라는 인간의 솜씨라면 그 녀석이 똑똑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번에 이길 수 없는 재판을 신청한 걸 봐서는 그는 똑똑한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걸 조작한 건 만구파가 아닌 청계라는 뜻.
‘그거라면 뭐.’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 있게 본 덕분에 그들의 전략을 다 기억하고 있는 노형진에게는 어려운 재판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내성의 차이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이 목록에는 수량이 없는데요. 수량이 어떻게 됩니까?”
난데없는 수량 언급에 짜증 나는 얼굴이 되는 청계 변호인단.
“그건 왜 묻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해외 의료봉사를 할 정도로 많은 양의 약을 가지고 가려면 심사받아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심사 기록이 있나요?”
은근슬쩍 물어보는 노형진. 그러나 그런 게 없을 거라는 건 노형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만일 없다면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같은 성분의 약들이 제각각 여러 개 브랜드로 나뉘어 있다는 점으로 봤을 때 의료봉사가 아니라 그저 관광 여행을 하는 정도일 경우에! 개인이 알아서 사 가는 양의 비상용 약으로 보이는데요. 안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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