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3)
“개정합니다.”
다시 시작된 재판.
아니나 다를까, 청계에서는 노형진의 예상대로 그들이 의료봉사가 아닌 자원봉사를 한 것이니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자원봉사라는 것은 이 나라에서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고아들과 미혼모들 그리고 홀로 사는 노인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거기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내는 겁니까?”
“그거야 우리 측의 선택입니다. 그게 법적인 문제는 아닐 텐데요?”
“지난번에는 의료봉사였다면서요?”
“단어를 잘못 선택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의료봉사나 자원봉사나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 자체는 동일한 것 아닙니까?”
이번에는 청계 쪽도 단단하게 대비해 온 것인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물러날 수가 없으리라. 600억이면 엄청난 돈이다. 그 돈이면 한창 크고 있는 만구파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제대로만 된다면.’
노형진 역시 물러날 수가 없었다. 기억이 맞다면 이때쯤 만구파가 그 배에 대한 취역을 허가받는다. 그렇게 되면 미래에 그 비참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걸 그대로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 타격이 크면 아마 전면적으로 철수할 가능성이 높아.’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의 그 비참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재판장님, 관련 증거를 제출합니다. 해당 봉사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들입니다.”
재판장에게 한 뭉텅이 사진과 목록을 건네는 청계의 변호사들. 거기에는 피해자들이 그곳에서 찍었다고 주장하는 사진들로 가득했다.
“이 허름한 집을 보십시오. 이곳이 우리 피해자들이 자원봉사를 한 곳입니다. 피해자들은 이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해 그곳에 갔을 뿐입니다. 행사 말미에 탈레반 반군에게 사로잡히면서 일이 좀 틀어지기는 했습니다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사진에는 한 무리의 한국 사람들과 그 앞에 행복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누가 봐도 자원봉사를 했다고 할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노형진은 코웃음이 쳤다.
“재판장님, 이게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고아원에 가서 물건을 던져 주고 단체 사진을 찍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아니, 애초에 정치인들은 물건이라도 줍니다. 그런데 이 증거로 제출된 사진에는 그 자원봉사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단순히 현장에서 찍은 사진일 뿐입니다.”
노형진의 반박에 청계의 변호사들은 벌떡 일어났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 당시 자원봉사를 하셨던 피고 중 인솔자로 일하셨던 분을 모셨습니다.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인정합니다. 증인, 나와서 선서하세요.”
그 말에 방청석 뒤에 있던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나와 증인 선서를 했다. 청계 측 변호사는 그에게 다가가서 천천히 질문하기 시작했다.
“증인, 그 정신적 피해가 다 치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러내어 미안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증인은 아프가니스탄에 왜 간 겁니까?”
“자원봉사를 목적으로 갔습니다.”
“그럼 이 사진은 뭔가요?”
그 남자가 나와 있는 사진을 보여 주는 청계의 변호사. 그 남자는 한참 그걸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원봉사 이후에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놀고 나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좋았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그 자원봉사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움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다시 재판장을 바라보는 청계 측 변호사.
“재판장님, 증인의 증언처럼 이들은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그곳에 갔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이들의 얼굴이 얼마나 해맑고 행복해 보입니까?”
확실히 노형진조차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미소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들이 있는 동안 행복해했고 그건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가 안 좋았다는 이유로 자원봉사가 아니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판단입니다.”
청계의 변호사가 질문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이렇게 증인까지 나왔는데 너희가 무슨 수를 쓰겠느냐는 얼굴이었다. 물론 그 증인이 피고 중 한 명이라는 게 문제지만, 이미 입을 맞춰 놨으니 이상한 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원고 측, 증인에게 질문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노형진은 앞으로 나가서 증인을 바라보았다.
‘인솔자인가?’
그 당시 그들을 이끌었던 인솔자라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누구보다 현실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과연 현실을 잘 알까?’
노형진은 한번 미끼를 던져 보기로 했다. 만일 가이드가 나왔다면 이런 미끼를 던지지는 못하겠지만 상대방은 인솔자, 즉 해당 지역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니까.
“증인, 증인은 그 납치 피해자들 사이에서 직책이 무엇이었습니까?”
“인솔 담당이었습니다.”
“인솔 담당?”
“네, 사람들을 확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대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질문, 즉 함정을 슬쩍 던졌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중 무엇을 했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곳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집도 고쳐 주고 음식도 해 주었습니다. 동물을 키우는 것도 도와주었고요.”
“그래요?”
“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줬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들이 뭘 했다고 말할지에 대해서는 사전에 입을 맞췄다. 그런데 그걸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대답하라는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아, 질문이 잘못되었군요. 그럼 하나씩 질문을 드리죠. 첫 번째 질문, 그곳에서 집을 어떻게 고쳤습니까?”
“당연히 그곳의 흙을 물에 갠 다음, 벽에 발라서 고쳤습니다.”
“오! 그렇군요. 좋은 일 하셨네요. 그럼 두 번째, 그곳에서 어떤 동물을 키우는 걸 도와주셨지요?”
“소와 돼지, 염소 등입니다.”
“아. 동물 경험이 있나 봅니다.”
“뭐,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노형진.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에 청계 사람들은 왠지 불안해졌다.
‘저 녀석이 저렇게 순순히 물러날 녀석이 아닌데?’
그들은 왠지 모를 걱정에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 잘못된 건 없지?”
“없습니다.”
“그래, 대답은 무난한데, 뭘.”
저런 대답은 어렵지도 않은 대답이다. 잘못될 건더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저렇게 자세하게 물어볼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저 무엇을 했다고 하는 수준으로 입을 맞췄지만, 인솔자였던 증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그럼 아이들의 점심은 무엇으로 해 주셨습니까?”
“보통 라면이나 고기를 구워 줬습니다.”
“오! 라면. 역시 대한민국 라면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군요. 아이들이 좋아하던 라면이 뭐던가요?”
“얼큰한 새참라면을 좋아하더군요.”
“아, 새참라면. 그러면 고기는 미리?”
“네, 미리 준비해 갔습니다.”
“역시 삼겹살?”
“네, 삼겹살을 좋아하더군요. 잘 먹더군요.”
“알겠습니다. 증언 잘 들었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던 노형진은 무심한 눈으로 재판관을 바라보았다.
“재판장님, 현재 증인은 위증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위증이라니! 증거 있어?”
다짜고짜 위증이라고 말하자 깜짝 놀라는 청계의 변호사. 하지만 노형진은 벌써 그의 대답에서 말도 되지 않는 부분을 찾아낸 상황이었다.
‘아직은 이슬람 문화가 한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니까.’
아직은 이슬람 국가라고 하면 반군, 또는 테러범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시기다. 특히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은 더더욱 말이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에서도 위험한 그쪽보다는 좀 더 개화되고 관광지가 된 쪽의 영상을 많이 보여 주니까.
“피고는 물에 흙을 개어 벽에 발라서 집을 고쳐 줬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초가집처럼 말입니다.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건 세계 공통 아닙니까?”
그 말에 노형진은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고는 천천히 하나씩 반박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럴까요? 아프가니스탄에는 우리나라처럼 작은 갈대 같은 게 없지요.”
“……?”
‘내 이럴 줄 알았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
자원봉사로 그들이 할 만한 건 뻔하다. 그러기에 그들의 말에 반격할 준비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형진은 미리 준비한 증거를 그들에게 내밀었다.
“대학으로부터 협조를 얻어서 구한 해당 지역의 일반 건물 사진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요.”
“이건 그냥 진흙으로 지은 건물 같은데요?”
재판관이 봤을 때 그 사진에 보이는 집은 허술해 보이기는 하지만 진흙으로 만든 집처럼 보였다.
“아닙니다. 이 지역에서는 물이 귀해 갈대류 같은 생물이 자라기 힘듭니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지요. 그래서 벽을 세울 때 나무나 갈대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진흙을 바르는 방식이 아닌 이 확대한 사진인 갑제 5호증처럼 벽돌 형태로 흙을 반죽해서 올립니다.”
확실히 그렇다. 관련 대학에서 제공한 건물의 대다수는 마치 벽돌처럼 만든 진흙 덩어리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심지어 피고 측에 제출한 사진들 속의 건물들 대다수가 그런 형태였다.
“그건…….”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증인은 말문이 막혔다.
“분명히 벽에 바른 건물도 있습니다.”
애써 한 변명이 그거였다.
“뭐, 그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아무런 내부에 지탱하는 구조물도 없이 단순히 진흙만을 쌓아 올린 건물이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대형 건물에 왜 콘크리트만 붓지 않고 철근으로 기둥부터 만드는지에 대해 이해를 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착각입니다. 저희가 보수했던 건 그냥 진흙으로 되어 있어서…….”
“알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로 동물을 키우는 걸 도와주셨다고 하셨는데요.”
“네.”
“아까 뭐라고 하셨지요?”
“소나 양, 돼지 같은 걸 도와줬다고.”
“소나 양, 돼지라……. 증인.”
“네?”
“이슬람 국가는 돼지를 먹지 않는 거 아십니까?”
“뭐라고요?”
그걸 몰랐던 남자는 도리어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멍청이 아냐?’
그건 기본 중 기본이다. 물론 아주 안 먹는 건 아니고 어떤 나라는 약간은 허용하지만,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는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애초에 돼지는 살찌는 속도가 빨라서 키우는 거지, 소처럼 밭을 갈거나 짐을 나를 수 있는 놈이 아닙니다. 즉, 먹지 못하면 키울 이유조차 없는 게 돼지입니다. 그런데 그걸 키우는 걸 도와줬다고요?”
“…….”
대답하지 못하는 그를 보면서 노형진은 확신했다.
‘저 새끼는 분명 축사 근처에 접근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대번에 돼지가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의 공부만 했어도 이슬람교에서 돼지가 금기시되는 고기라는 건 알았을 것이다.
“세 번째, 아이들한테 점심으로 고기를 구워 줬다는 건데 피고의 행동 기간과 제가 준비한 기간을 보십시오. 묘하게 겹치지 않습니까?”
투명한 비닐에 달력을 그려서 보여 주는 노형진.
“그건?”
“라마단입니다. 보통은 단식 기간이라고 하지요.”
“단식 기간? 사람이 그렇게 오래 굶고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피고 측 변호사는 그 기간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항변했다. 하지만 그 역시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그건 말 그대로 단식이라고 하니 굶는 거라고 생각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정확하게는 단식 기간 중 일몰 후에만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증인, 뭐라고 했지요? 점심? 아무리 애들이라지만 이슬람교의 기본을 모를 거라 생각합니까?”
“…….”
“그리고 뭐요? 점심때 삼겹살을 구워 주고 라면을 끓여 줘요? 모든 이슬람 신자들은 할랄이라는 종교적 과정을 거친 고기만 먹습니다. 즉, 한국처럼 아무 곳에서 도축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종교적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당연히 돼지에 대한 할랄이 진행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돼지고기를 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삼겹살을 구워 주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
모든 것이 말이 안 된다. 일단 고기 자체를 구할 수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구워 줄 것이며 설령 고기를 구해서 구워 준다고 해도 라마단이라 점심때 그걸 먹을 리가 없다.
“증인, 할 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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