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39)
“맞선이라…….”
송정한은 바쁜 와중에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었다.
애초에 새론은 기획 소송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고, 이 정도 규모의 기획 소송이 흔한 건 아니니까.
“나 때는 그런 거 없었는데 말이지.”
“대표님은 어떻게 결혼하신 겁니까?”
“응? 아, 내 와이프는 학교 선배 동생이었지.”
그때는 서로서로 그렇게 소개를 받아서 결혼하는 게 보통이었다.
지금이야 결혼 업체를 이용하지만, 그때는 거의가 인맥이었던 것이다.
“아니면 기껏해야 마담뚜를 거치거나.”
“마담뚜요?”
“아…… 그랬지.”
김성식의 말에 송정한은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사법 고시 합격하고 나니 집으로 마담뚜가 오더군.”
“저도 그랬습니다.”
“허.”
신기한 이야기에 손채림은 눈을 빛냈다.
“마담뚜요? 아직도 그런 게 있어요?”
“여전히 있을걸. 안 그런가?”
노형진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뭐야? 안 갔나?”
“그럴 리가요.”
노형진이 사법시험을 합격했을 때도 찾아왔었다.
“와, 신기하다.”
“아직도 있을 수밖에 없지.”
그들은 철저하게 상류층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 만큼 상류층이거나 상류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빠르게 접근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람들은 사기는 안 쳤네만.”
“손님이 상류층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군.”
상류층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면, 마담뚜는커녕 먹고살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류층을 대상으로는 이런 장난 안 칩니다.”
“그렇겠지.”
결국 아무런 힘도 없고 정보도 없고 대응할 방법도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더 웃긴 건, 이런 알바가 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여자만 있는 게 아니다?”
“네, 몇몇 업체에는 남자 알바도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여자 알바와는 좀 다르다.
여자 알바들은 외모를 무기로 휘두르지만, 남자 알바는 재력을 무기로 휘두른다.
“그래서 상류층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는 말로 여자 회원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사례도 있다고 하더군요.”
“남자는?”
“당연히 사기죠.”
재력은커녕 그냥 알바생이다.
적당히 있는 척하다가 헤어지면 땡.
“남자든 여자든, 일단 사기에서 안전한 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였던 것이 여자 알바생일 뿐인 거죠.”
“흠…….”
송정한은 턱을 문지르며 고민에 빠졌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봐서는 사기인 것은 맞지만, 이걸 해결할 만한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그래서 저도 고민 중입니다.”
맞선 정보를 캐내는 것은 불법이다.
그리고 맞선을 본 사람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맞선을 자주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자신의 친구인 교동이만 해도 가입만 세 번이다.
이번 횟수를 뺀다고 해도, 맞선만 무려 열 번을 넘게 본 셈이다.
‘>백 번 선본 남자>라는 영화도 나오는 판국에 횟수만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
그렇다고 가입 기록을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가입 기록이야 만들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개개인의 정보를 캐내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불법이다.
“인터넷으로 현상금을 거는 것도 불가능해. 일단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다가 떠드는 경우는 드물 것 같네.”
“여자는 건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가 건드리는 건 회사입니다.”
“회사?”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무슨 증거가 있다고?”
일단 법적으로는 맞다.
그 계획을 짠 것은 다름 아닌 회사다.
그런 만큼 신고 대상은 그 여자들이 아닌 회사가 되어야 한다.
“다들 여자를 노리는 쪽으로 이야기하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집단소송의 좋은 점이 뭔지 아십니까?”
“뭔데?”
“있어 보인다는 거죠.”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생각해 보세요. 저들은 알바를 불러서 횟수를 때웠습니다. 그렇지요?”
“그렇지.”
“아닌 걸 어떻게 증명하죠?”
“응?”
노형진은 그동안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생각하다 보니 그 고민이 의미가 없다 싶었다.
왜 구분해서 생각한단 말인가?
사기의 주체는 아르바이트를 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회사다.
자신들이 그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화낼 이유는 없다.
“집단소송을 할 때 그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회당 300만 원이죠. 그런데 꽝이 걸린 사람들 기분이 어떨까요?”
“꽝이 걸린 사람들의 기분이라……. 당연히 돈이 아깝겠지.”
“그런 상황에서 만일 집단소송을 건다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요?”
“아하!”
안 그래도 요즘 인터넷에서 그런 소문이 많이 퍼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알음알음 수준이지만.
그리고 그런 소문을 접한 사람 입장에서는 한 번쯤 의심을 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왜 나만 거절당하나.
왜 나만 이런 취급을 당하나.
혹시나 나와 만난 사람이 알바생이 아닐까?
더군다나 업체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소문으로는 심하면 30%가 알바라고 했다.
보통 5회의 만남을 약속하는 만큼 5회 중 최소 1회, 운 나쁘면 2회는 알바를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는 그걸 수면 위로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국을 통해 뉴스화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을 통해 종편 뉴스에 내보내 달라고 할 수도 있고.
“그걸 보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애프터 신청을 거절당한 대부분의 사람들.
그들이 과연 상대방이 순수하게 선보러 나온 사람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피해자나 가해자를 거를 필요는 없지요.”
의심이 있으면 고발한다.
그게 정석이니까.
“그리고 그들은 그게 얼마나 타격을 줄지 알 겁니다.”
맞선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는 만남? 그건 역시 의미가 없다.
“과연 그들이 뭐라고 할지 두고 보자구요, 후후후.”
* * *
다음 날부터 언론에서 일제히 맞선 알바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제히’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하기는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알바비로 15만 원 받았어요. 나가 보니까 부자인 줄 알더라고요. 부자요? 하하, 부자면 그 돈 받고 나가겠습니까? 회사에서 그러더라고, 부자인 척하라고. 거기 입고 나간 거요? 당연히 짝퉁이지요.
노형진은 뉴스를 보면서 씨익 미소 지었다.
누군지 모르게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지만, 그 남자가 하는 말은 속이 쓰리다 못해 터질 만한 내용이었다.
“알바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많지 않아?”
손채림은 그 인터뷰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기는 하지. 아무래도 맞선 업체에서는 여자가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여자 알바가 압도적으로 많겠지.”
“그런데 왜 남자를 이용한 거야?”
“여자 알바도 나왔잖아.”
“그래도 인터뷰 내용의 대부분은 남자잖아? 피해자도 남자가 많을 텐데?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남자 알바를 써?”
“집중력 때문에.”
“집중력?”
“아무래도 남자들은 피해를 입어도 어지간하면 뒤로 물러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설사 움직인다고 해도, 주변에서 사람을 모으기보다는 그냥 알아서 소송을 하려고 하고.”
“그런데?”
노형진은 인터넷에 들어가서 검색어를 쳤다.
그리고 손채림은 그걸 보고 탄성을 질렀다.
“허어?”
“반면에 여자들이 뭉치는 속도는 어마어마하지.”
벌써 몇몇 카페가 생겼다.
맞선 알바에 대한 소송을 하고자 하는 카페들.
그런데 닉네임 같은 걸 보면, 아무래도 그걸 만든 사람은 여자인 듯했다.
“남자들은 대개 개개인으로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지만, 여자들은 보통 뭉쳐서 대항하려고 해. 우리의 목적은?”
“집단소송이지.”
“그러면 우리가 만나야 하는 사람은 누구?”
“뭔 소리인지 알겠네.”
그냥 해당 카페의 주인만 만나서 이야기하면 된다.
남자들이 많기야 하겠지만 그들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은 데 반해, 여성 피해자들은 이미 뭉친 상태니까.
“우리가 의뢰를 받기는 편하지. 그리고 이런 식으로 먼저 시작해 놓으면, 나중에 남자 피해자들을 데리고 오는 것도 편하고.”
“하긴, 그렇겠네.”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인 카페가 있으니 남자들은 거기에 이름만 올리면 된다.
“개개인이 소송하려면 입증책임 같은 게 문제가 되지. 하지만 개개인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이렇게 뭉칠수록 소송가격은 커지고 증명의 부담은 줄어든다.
“당연하게도 결혼 회사 입장에서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
“아직 소송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맞선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야. 알음알음이라는 건, 사실 대부분은 예상한다는 거거든.”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과 드러나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그 차이가 아마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무고죄 받고 무고죄 더
“하지만 상대방이 사기꾼인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노형진의 예상대로 한두 군데씩 피해자들이 모이는 곳이 생겼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해서 모인 사람들 또는 호기심에 들어온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입했다.
노형진이 그들을 설득해서 자리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그게 이번 사건을 뒤집을 카드였다.
“증거는 이미 확실하게 모아 뒀습니다.”
“저도 압니다. 이미 말씀해 주셨지요.”
노형진이 모은 증거는 어마어마했다.
알바를 했다는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그런 알바를 구하는 인터넷 게시 글 등등.
생각보다 알바를 뛰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뭘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두려워하다니요?”
노형진은 여전히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고 되물었다.
“어차피 그곳에 다시 들어가서 소개받을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런데…….”
“물론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자기가 조금 손해를 감수하고 말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기꾼들은 그러한 감정을 이용한다.
당연히 그들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다.
“물론 3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닙니다만, 여러모로 복잡해지기에는 많은 돈도 아니지요.”
누군가 대표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거기에다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예의요?”
“네, 어찌 되었건 우리와 맞선을 봤던 사람들인데 그들을 고발한다는 게…….”
“아아아.”
노형진의 예상대로였다.
다들 고소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상대가 진짜인지 알바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네?”
“우리는 맞선 상대를 고발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요?”
“맞선 상대와 함께 고발하는 거죠.”
“맞선 상대와 함께 고발한다고요?”
“여기에 계신 분들, 다들 전화 가지고 계시지요? 그렇다면 이 중에는 맞선을 보았던 상대의 번호를 가진 분들도 계시겠네요?”
“그건 그런데…….”
아예 번호도 못 받고 나온 사람도 있는 반면, 그래도 전화번호는 주고받았다가 애프터 신청에서 거절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저는 그분들과 함께 회사를 고발하고자 하는 겁니다.”
“어떻게요? 증거가 없잖아요?”
“고발과 고소는 다릅니다.”
“다르다고요?”
“네.”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 하는 부분이다.
몇 번이나 설명을 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설명해야 하는 부분.
“고소는 ‘내가 피해를 입었으니 저들을 처벌해 주십시오.’ 하는 거지요.”
“그런데요?”
“고발은 ‘불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조사해 주십시오.’ 하는 겁니다.”
“으음…… 그래서요?”
“두 가지는 전혀 다르지요.”
고소는 무고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고발도 그건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다른 건, 당사자가 없다는 것이다.
고소를 하면 입증책임은 고소한 사람에게 있지만 고발은 쉽게 말해서 ‘신고’하는 것인지라, 그 사건에 대한 조사 및 범죄의 입증책임이 경찰에게 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지요?”
누군가 묻자 노형진은 차분하게 그에게 설명해 줬다.
“즉, 우리가 입증할 필요가 없이, 경찰이 알아서 다 해 준다는 겁니다.”
“그것도 무고가 될 수 있잖습니까?”
“아니요. 이건 무고가 되지 않습니다.”
무고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거짓으로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없는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워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게 해당되지 않죠.”
어찌 되었건 그런 맞선 알바를 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또 그런 알바를 하려고 인터넷에서 사람들을 모으는 글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두기도 했으니까.
“그들이 알바를 썼다는 증거는 확실하게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거죠.”
범죄일 것 같은 일말의 가능성.
그 가능성만 있어도 고발에는 문제가 없다.
“고소와는 다르죠. 고소는 내 피해를 입증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범죄 사실을 증명해야 하지만 고발은 그럴 이유가 없다.
“무고가 되지 않는다?”
“네. 지금 몇몇 분들이 그들과 통화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인정했다.
“나한테 사기 친 거 아니냐고 따졌더니, 고발하면 무고로 맞고소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디죠?”
“뚜장인이라는 곳이에요.”
“아아.”
노형진도 그곳이 어딘지 알았다.
뚜장인.
조사해 보니 알바를 가장 많이 쓴다고 소문난 기업이었다.
‘40%라고 하던가?’
노형진은 어이가 없었다.
이는 절반 가까이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소하면 무고로 고소한다고 했다고요?”
“네.”
“역시나군요.”
“역시나?”
“무고라는 게 의외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방어 방법이거든요.”
“네?”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기업입니다. 만일 고객과 트러블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할까요?”
“그건…….”
“일반적으로 일단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고 할 테지요.”
지금은 21세기다.
인터넷에 까발리면 여러모로 안 좋다.
안 그래도 뉴스에서 계속 때리는 중인데 오해라면 당연히 ‘고객님, 오해입니다.’를 시전하지, ‘응, 너 고소.’를 시전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맞고소 운운한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지요. 진짜 억울하다, 아니면 이쪽 입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저들은 서비스 업체입니다. 그러면 보통 어떤 것부터 하려고 할까요?”
“아하!”
일단은 오해라고 하면서 고객의 기분을 풀어 주고 오해를 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너 고소를 시전했다는 거죠?”
“네? 아, 네. 그러더라고요. 그런 소리 하면 죄다 고소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그러면 입 막기입니다.”
고소한다고 겁을 주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하지만 억울하면 경찰에 가서 푸는 게 정상 아닌가요?”
“물론 보통은 그게 정상이지요. 하지만 뉴스를 보셨잖습니까?”
“끄응…… 그건 그러네요.”
당장 뉴스에서 까발리는 정보만 봐도, 맞선 업체들이 선량하게 운영한 건 아니라는 증거는 넘친다.
“그러니 귀찮게 설득하느니, 간단하게 협박으로 넘어가는 거죠.”
“그런데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이용한다?”
“무고죄를 받고 무고죄를 더 올리는 거죠.”
“네? 무슨 카드 게임 레이즈도 아니고.”
“레이즈 맞습니다.”
이쪽에서 사기를 베팅 했고 저쪽은 무고로 대응했으니, 이쪽은 그 무고죄 받고 거기에 무고를 더 얹어서 베팅 하는 것이다.
“헐.”
틀린 말은 아니다.
그쪽이 범죄를 감추기 위해 무고를 하는 순간, 그들은 무고죄를 저지르는 셈이 되니까.
“하지만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요?”
“네, 그들이 사기를 쳤다는 증거 말입니다.”
“그 증거는 여러분들의 전화기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 전화기요?”
“아까 맞선 봤던 분들 중에 전화번호 아시는 분들, 있다고 하셨죠?”
“저 있습니다.”
“네, 저도요.”
몇몇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상당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아예 번호를 받지 못했다면 모를까,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혹시 몰라서 또는 귀찮아서 일단 저장했던 번호는 그냥 두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전화해서 같이 고발을 하자고 하세요.”
“그건…….”
“일단 의심은 확실한 상황입니다. 증거도 있고요. 그들 입장에서도, 상대방이 알바생인가 의심할 수 있는 거죠.”
“전 알바생이 아닙니다만?”
누군가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알바생이 아닌데 상대방이 자신을 알바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계신 분들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여러분 상대분께서 만난 사람이 딱 한 명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러네요.”
일반적으로 1회 가입 비용인 300만 원을 내면 5회의 만남을 주선한다.
자신은 알바생이 아니지만, 그들 중 몇몇이 알바생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 고발하는 거죠.”
“그게 무슨 효과가 있지요?”
같이 묶어서 고발한다면 효과가 있다는 노형진의 말이 그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첫째, 더 이상 알바생이 그런 알바를 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찔릴 테니까요.”
“그것뿐인가요?”
“두 번째가 중요합니다. 알바를 걸러낼 수 있겠지요.”
“알바를 걸러낼 수 있다?”
“만일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고 3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동참하지요.”
위임장에 사인 한번 해 주거나 도장 한번 찍어 주면 끝나는 일이다.
그런 간단한 일을 통해 최소 300만 원, 많게는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다면 다들 주저하지 않고 사인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전화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상대방이 거절한다면, 그건 무슨 뜻일까요?”
“아하!”
본인들이 켕기니까, 뭔가 할 수가 없는 이유가 있으니까 도장을 안 찍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귀찮아서 안 찍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어깨를 으쓱하는 노형진.
“하지만 그런 사정까지 우리가 챙겨야 합니까?”
“네?”
“어차피 끝난 사이 아닌가요?”
“아…….”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니다.
“착한 사람일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안 볼 건데? 자기가 귀찮아서 도장 찍기 싫다고 해도, 일단 경찰서에서 수사받다 보면 생각이 좀 바뀌겠지요.”
“그, 그런…….”
간단한 문제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착해요. 좀 악독할 필요가 있어요.”
미국은 개인의 이익에 대해 철저하다.
미국 같으면 이런 사기를 치다가 걸리면 징벌적 배상까지 뒤집어써서, 기업이 버티기는커녕 줄줄이 망해 나갈 것이다.
“내가 착하니까 조금만 참아야지? 그건 멍청한 겁니다. 내가 착하니까 조금만 참으면, 그게 바로 호구예요.”
“으음…….”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은 ‘내가 참아야지.’가 아니라 ‘나를 건드리면 죽인다.’입니다.”
몇몇이 기분 나쁜 듯 헛기침을 했다.
“물론 그게 싫으시면 여기서 빠지셔도 됩니다.”
노형진은 말하면서도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시는 순간 경찰이 부르겠지요.”
“뭐요?”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희는 누가 알바인지 모른다고.”
당연히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서 설득해야 하고, 그들은 고발하기 위해 이쪽에 연락을 취할 것이다.
“만일 거절한다면, 저희 입장에서는 알바라고 생각해서 고발을 진행할 수밖에요.”
몇몇 사람들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도장을 찍고 나가시든가,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으시든가.”
노형진의 말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이봐요! 무슨 말을 그렇게 험하게 합니까!”
몇몇 사람이 노형진에게 삿대질을 했다.
물론 노형진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바보로 패배하는 건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마음에 안 들면 나가시면 됩니다. 다음에는 경찰서에서 뵙겠네요.”
다들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