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53)
“아주 지역 상권을 초토화시키는구나.”
창문 너머 상가의 모습을 보던 손채림은 주변에 파리만 날리는 식당들을 보면서 한탄하듯 말했다.
작전을 시작한 지 채 이 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상권은 벌써 초토화되었다.
두 번째 기업이 휘청거린다는 소식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이다.
노형진은 손채림의 그런 안타까운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자신이 노렸던 부분이니까.
“그래야 한주암이 정신 차리지.”
“그래도 그렇지, 참 인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네.”
“정치인들이 자주 실수하는 게, 자기들이 정치를 하는 기반이 국민들인 걸 잊어버린다는 거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인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국민이 뽑은 거니까.”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시계를 바라보았다.
“물론 몇몇 정치인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가끔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사람들에게까지 설설 길 필요는 없거든.”
“그래서 지역 상권을 박살 낸다?”
“간단한 거 아냐? 난 그 정도 능력은 가지고 있고.”
아무리 노형진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전체를 쥐고 흔들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하지만 한 지역 상권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지. 거대 기업도 아니고 중견쯤 되는 곳이라면 말이야. 그리고 이런 지방은 중견 기업 하나 날아가면 지역 상권이 흔들리지.”
“그리고 그게 정치인의 책임이라면 그는 재기 못 하고 말이야.”
손채림은 완전히 어두운 얼굴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뿐만이 아닐걸. 고작 그 정도로 멈출 거면 애초에 벌써 사과받고 끝냈겠지. 결과적으로 정신 차려야 하는 대상은 국회의원 한 명이 아니라 정당이거든.”
노형진이 노리는 것은 단순히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바로 그 뒤에 숨어서 자신의 목을 노린 정당이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보복이라도 들어오면 어떻게 해? 내가 정치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그리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은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손채림.
“물론 한국 기업이라면 그럴 수 있었겠지.”
세무조사를 하거나, 죄를 뒤집어씌우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마이스터는 한국 기업이 아니지.”
막대한 돈을 쥐고 있는 외국 기업이다.
그들이 한 지역의 상권을 박살 내는 것은 매우 쉽다.
“경고구나.”
“그래, 일벌백계라는 거지.”
이번에 한주암을 박살을 내 둔다면 누구도 절대 마이스터를 터치하지 못한다.
어쭙잖게 욕심을 내서 그들을 건드리면 지역구가 박살이 난다는 것을 알 테니까.
“그리고 지역구가 박살이 난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어째서?”
“지역구가 박살이 나면 단순히 자기 인생만 박살 나는 게 아니니까.”
정당의 힘은 국회의원의 숫자에서 나온다.
국회의원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 그건 정당의 힘이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힘이 빠진 정당은 한국의 정치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는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 누군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깽판을 친다면, 그 피해는 모두가 입게 되는 거야.”
“그런데 이번에는 네가 깽판 치고 있잖아.”
노형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피해는 모두가 입는다고 했지 내가 입는다고는 안 했다.”
“헐?”
“이런 명언이 있지. 나만 아니면 돼!”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 문이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미리 준비된 자리에 앉으면서 서로 눈치를 살폈다.
“반갑니다, 여러분. 저는 노형진이라고 합니다.”
“어…… 예…….”
눈치를 보면서 움찔거리는 사람들.
그들은 다름 아닌, 이 지역의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의 사장들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희더러 보자고…….”
그들은 눈치를 살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터넷에서, 아니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났으니까.
이 지역 1위와 2위 기업이 마이스터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여러분들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협상?”
“네.”
“어떤 협상요?”
“여러분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이지요.”
“허…….”
“소문이 사실입니까?”
“무슨 소문요?”
노형진은 모른 척했다.
“어…… 아닙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눈치가 없을 리가 없다.
질문을 던진 남자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일단 여러분들에게 드리고자 하는 부탁은, 주소를 옮겨 달라는 것입니다.”
“네? 주소요?”
“네. 다른 지역으로 옮겨만 주신다면 별다른 불이익은 없을 겁니다.”
노형진의 말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글쎄요.”
노형진은 그마저도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진짜로 주소를 옮기면 손대지 않는 겁니까?”
“단기적으로는 말이지요.”
“단기적…….”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주소를 옮기는 것으로 만족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아예 사업체를 옮기는 것을 권한다는 뜻이다.
“갑자기 자리를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그곳에서 투자받을 수도 있는 일이고…….”
노형진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러한 웃음에 다들 공포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 한 가지는 확실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지요, 후후후.”
* * *
“한 의원! 이거 어쩔 겁니까!”
시장은 당장 달려와서 한주암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같은 당 소속이라 모른 척 도와주려고 했지만, 피해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지역의 기업이 벌써 3분의 1이나 빠져나갔어요! 지금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알고나 있는 겁니까!”
“그건…….”
“당신 때문에 지금 이 지역 자체가 망해 간다고요!”
한주암은 결국 언성을 높였다.
“아니, 왜 나한테 그럽니까! 나한테 일 시킨 사람은 당입니다, 당! 그런데 왜 나한테 독박을 씌워요!”
“아니, 이 사람이 진짜!”
발끈하는 시장.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도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같은 당 아닌가?
당에 항의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가 책임질 수도 없다.
결국 남은 건 희생양을 고르는 것뿐.
결국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터진 아가리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아가리? 아가리? 이 새끼가 미쳤나!”
“그래, 미쳤다! 너 때문이 이 지역이 날아가게 생겼어, 지금!”
회사 입장에서는 단순히 사업의 주소지를 옮기는 것뿐이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어떤 사업자든, 자신의 사업 주소지를 옮기는 것은 자유니까.
하지만 자치단체 입장에서는 돌아 버릴 일이었다.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벌써 예산의 4분의 3이 날아갔어! 뭐? 독박? 씨발, 네가 싸지른 똥을 왜 우리가 치우는데!”
“내가 싸지르다니! 위에서 시킨 거라잖아!”
“개소리하지 마!”
기업의 세금은 각 지역에 내도록 되어 있다.
그 말은 기업이 이탈하면 지역의 세금이 팍 줄어든다는 뜻이고, 이런 지방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기업에서 내주는 세금이 중요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너 때문에 내년에 어떻게 운영할지 답도 안 나오는데, 뭐? 이 새끼가 미쳤나?”
세금이 있어야 지역 경제를 운영하고 다른 회사를 끌어올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악순환이다.
노형진이 다른 곳으로 주소를 옮기면 일단 터치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주소를 옮겨 버렸다.
그 상황에 이 지역에서 새로 사업장을 열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당장 지금이라도 가서 사과하라고!”
“아니, 당에서 하라고 한 걸 나보고 사과하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방법 있어?”
“그건…….”
입술을 깨무는 한주암.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싹싹 빌고 그 아래로 가야 한다.
“큭…….”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을 풀어 줄 만큼 노형진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똑같은 놈이 되는 거지, 뭐
“한주암이 결국 만나자는데?”
손채림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가능하면 빨리 은밀하게 만나자고 의견을 전해 왔다.
“왜일까?”
“왜는 무슨. 뻔한 거지. 사과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
유찬성 의원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앉았다.
유찬성은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5선을 지켜 냈다.
“이제 5선이면 당 대표쯤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내 주제를 아는 사람이네. 내 욕심도 아는 사람이고.”
히죽 웃는 유찬성.
“나는 짧고 굵은 것보다는 길고 오래가는 게 좋아.”
섣불리 감투에 욕심을 부려서 다 까발려지고 묻혀 버리기보다는, 느긋하게 있다가 정치에서 은퇴할 결심이 설 때쯤 치고 올라갈 생각을 하는 게 그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나가 봐야 시끄럽기만 하고.”
“그런가요?”
“그래. 애석하게도, 다수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미세한 차이이지 않나?”
“그건 그렇지요.”
현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수적으로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야당들의 의석 수를 다 합하면 현 여당보다 많은 것이 사실.
“거기에다 조만간 아주 시끄러워질 거야. 그럴 때 당 대표 하면 득보다는 실이 더 많지.”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유찬성.
“조만간이라 하시면?”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직 모르는 건가? 하긴, 송 대표는 이제 초선이니…….”
그는 찻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이 탈당을 할 걸세.”
“탈당요?”
“그런 소문이 계속 나오고 있어.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건 그렇겠군요.”
더군다나 현 대통령은 프락치였다는 것이 드러난 상황.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와 친한 사람들은 죄다 현 야당이었다.
“그리고 여당과 야당이 바뀔 걸세.”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통령이 탈당으로 끝내지 않을 거라는 거지.”
“설마.”
노형진은 딱딱한 얼굴로 유찬성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하는 사건의 일말의 가능성.
그걸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당적을 옮긴단 말씀이십니까?”
“그래도 이상할 건 없지 않나?”
“초유의 사태군요.”
대통령의 탈당이 전혀 없는 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는 본인의 지지율이 너무 낮아서, 선거에서 당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 탈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적을 옮긴다라…….”
“법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
“누가 그럴 가능성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일이 실현되면, 여당과 야당이 뒤바뀔 것이다.
“확실한 건가요?”
“그렇다고 봐도 무방하네.”
유찬성의 말에 노형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네도 예상은 했을 텐데?”
“그건 그렇지요. 대놓고 프락치 짓을 했는데 사실 지금까지 안 넘어간 게 이상한 거죠.”
“선거 때문 아니겠나.”
선거 전에 옮기면 지지자들이 결집해서 자신들이 불리해진다.
그러니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것인데, 이젠 선거가 끝났으니 볼일이 없어진 거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네.”
유찬성은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중요한 건 지금이지. 그래, 한 지역을 통째로 넘기겠다고?”
“그렇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람으로?”
“아니요.”
“응?”
“우리도 똑같이 행동할 겁니다.”
“무슨 소리인가?”
“저들에게 걸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들이라 하면?”
“자유신민당 말입니다.”
유찬성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특정 지역구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그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 뒤에 마이스터가 있으며, 노형진이 전면에서 움직인다는 것까지 전부.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치권의 초유의 관심사네. 과연 마이스터의 힘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이냐.”
“그래서 결론은요?”
“한주암은 버려졌네.”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많았다.
‘예상대로군.’
노형진이 한 놈만 팬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전체와 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스터가 아무리 한국에서 힘을 못 쓴다고 해도, 지역구 하나는 날릴 수 있다. 그게 자네가 노리는 거 아니었나?”
“맞습니다.”
“그런 거라면 확실하게 성공한 거야. 마이스터가 외국계라는 특성상, 한국에서 공격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물론 노형진은 공격할 수 있다.
애초에 노형진을 건드려 보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고.
“하지만 지역구 하나를 날려 먹음으로써, 경고는 확실히 된 거지. 한국에는 어지간한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마이스터에 덤빌 만한 규모의 공장이 없으니까.”
당연히 한 지역에 있는 가게들을 하나씩 좀먹으면서 소문만 내면 그만이다.
“그러면 다음 선거에서 그가 다시 뽑힐 가능성은 아주 낮지.”
차를 음미하면서 즐거운 듯 말하는 유찬성.
“정치인들이 정치만 하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기업들과 상부상조하네. 기업의 후원이 없으면 정치도 못 하니까. 그리고 기업의 후원이 사실상 당의 생명 줄이나 마찬가지이고 말이야. 자네가 정치인의 약점을 아주 정확하게 노리고 들어갔네.”
정치인은 당에 충성한다.
하지만 그건 진짜 충성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당이 그에게 부귀영화를 줄 수 있는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역구가 확실한 유찬성만 봐도, 그는 당에 그다지 충성하지 않는 타입이다.
“결국은 자신이 우선이죠.”
노형진은 그걸 알려 준 것이다.
노형진과 싸우다가 당의 자금줄을 잘라 버린 놈의 결말은 결국 방출인데, 그걸 알면서도 노형진에게 덤빌 국회의원은 얼마 없을 것이다.
당은 몰라도 최소한 국회의원 한 명, 즉 너 하나는 죽일 수 있는 능력.
“원래 전쟁터에서 병사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소총 부대가 아니라 저격수죠. 소총수들이 쏜 총알은 운 나쁘면 맞는 거지만, 저격수의 총알은 그 사람 하나만을 노리니까요.”
유찬성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까지는 알겠는데, 똑같은 행동을 하겠다니?”
“저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부적으로는 의원님 당의 사람이되, 외부적으로는 아닌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왜?”
“전 한주암의 모가지를 칠 겁니다.”
유찬성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현직 국회의원이다.
사실 현직 국회의원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아무리 초선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한주암의 모가지를 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국회의원은 어떤 면에서는 대통령보다 높네. 왜 그런지 아나?”
“알지요. 자를 방법이 없으니까요.”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제도로 국민들이 자를 수가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그가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자를 수가 없다.
오로지 스스로 내려오는 것뿐.
물론 조사나 수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는 국회가 ‘방탄 국회’라고 불리는 임시국회를 남발하면서 보호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위에서 치게 만들어야지요.”
“응?”
“이제 제 방법을 저들은 알았을 겁니다. 한주암이 어떻게 당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 겁니다.”
물론 정치계에서 끝까지 싸우려고 한다면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스터는 외국계 대기업이지요.”
노형진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오늘부터 할 작전에는 유찬성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한국의 기업이라면 괴롭힐 방법은 많습니다. 세무조사를 한다거나, 회사를 감사한다거나, 수장을 체포한다거나.”
“그렇지.”
그래서 한국 기업들은 정치인들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 특히 미국계 기업은 한국에서 손을 못 대지요.”
“그건 그러네.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서 분탕질을 치고 가도 한국 정부가 제대로 손쓰지 못하는 건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지.”
외국계 기업이 수백억의 세금을 내지 않고 도망가도 한국 정부는 항의하지 못한다.
정작 한국 내 대기업에는 수천억의 뇌물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그 이유는 왜일까요?”
“일단 공격 수단이 없으니까. 권력의 한계지.”
한국에서 그들의 권력은 강하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에서만’ 강한 것이다.
미국계 기업을 공격하려면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극단적 자본주의국가인 미국이 그들에게 도움을 줄 리가 없다.
단순히 생각해도, 한국 정부에 정치자금을 주면 그만큼 미국에서 정치인들에게 주는 정치자금이 줄어든다는 뜻이니까.
“더군다나 마이스터는 미국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투자사지. 그런 곳을 건드릴 정치인은 없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유찬성.
“하지만 마이스터는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있지요. 그리고 그걸 어필했고요.”
유찬성은 살짝 오른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노형진이 노리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현금 말이군.”
현금.
현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
돈줄을 틀어막으면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만일 다른 기업이 그렇게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기업?”
“어디 보자, 주헌통상쯤이면 되겠네요.”
“주헌통상?”
유찬성의 눈이 아까와 다르게 확연하게 떨렸다.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하면 안 됩니까?”
“주헌통상이 어떤 곳인지 아나?”
“알죠.”
주헌통상.
공식적으로는 수출입 업체다.
그러나 그 실체는, 현 자유신민당의 수뇌부급 의원 세 명이 소속된 자유신민당의 기업이다.
“그들을 조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음…… 그렇군. 초선의 가치는…… 없지.”
수뇌급 의원들 입장에서, 초선의 가치는 바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 때문에 주헌통상을 날릴 처지가 된다면…….
“보복을 하겠군.”
“바보가 아닌 이상에는요.”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최후의 경고.
그게 바로 주헌통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거랑 우리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설마 도와 달라는 건가? 그건 곤란해. 아무리 척지고 있다고 하지만 말이야, 주헌통상을 우리 쪽에서 건들면 그건 사실상 전쟁이라고.”
물론 지금도 전쟁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정치라는 한정된 무대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그러나 주헌통상을 건든다면 그때는 정치가 아니라 생활 전반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아니요. 제가 원하는 건 프락치입니다.”
“프락치?”
“그들이 하는 걸 제가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노형진의 말에 유찬성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건 좀…….”
유찬성은 말을 주저했다.
노형진이 뭘 하고자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제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상대와 같은 짓을 하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뭐?”
“똑같은 사람이 되더라도, 그들을 밟고 쓰러트리고 힘을 차지해야지요. 그리고 그 후에는 그들과 똑같은 짓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그냥 겁쟁이죠.”
욕먹기 싫고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다고, 깨끗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
그들은 양심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패배할 테고…….
‘그 고통은 국민이 진다.’
노형진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상만으로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지만 정치는 이상으로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이상만 가지고 정치하는 사람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과거의 대통령이 처절하게 보여 주지 않았던가?
“똑같은 짓을 할 겁니다. 내부에 프락치를 심을 겁니다.”
“으음…….”
유찬성 의원은 심각한 눈빛이 되었다.
노형진이 말하는 ‘똑같은 짓’이, 그냥 내부에서 정보만 캐내 오는 그런 사람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밀어주고, 그가 해당 당에서 권력을 잡게 해 주고, 최후에는…….
‘하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유찬성이 봐도, 그게 자신에게 걸리적거리는 자들을 밀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자기 사람을 심어 두고 조직 자체를 통제하는 것.
“그들 내부에 심어 둔 사람이 있지요?”
노형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에 와서 갑자기 누군가 나서서 마이스터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갑자기 자유신민당에 가입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누가 봐도 그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내부에 심어 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자유신민당이 프락치로 대통령 자리를 빼앗았지만, 사실 민주수호당도 자유신민당 내부에 프락치가 없다는 말은 못 할 것이다.
그들처럼 권력의 핵심에 프락치를 두고 있지 못할 뿐.
“마땅한 사람이 없는데…….”
유찬성은 그런 노형진의 말에 부정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 역시 닳고 닳은 정치인이니까.
“급수가 너무 낮으면 의미가 없고.”
“급수?”
“지역구 관리자 정도가 우리가 가진 한계일세.”
아니나 다를까, 그들 역시 내부에 정보원이 있었다.
“그렇군요.”
지역구 관리자가 마이스터와 관계가 있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건 너무 이상하다.
“잠깐만…… 내 생각을 해 보겠네.”
유찬성은 뭔가 생각이 있는 듯, 말을 이어 갔다.
“자네는 먼저 주헌통상을 공격하게나.”
노형진은 빙긋 웃었다.
“이미 시작했습니다.”